[기적 소리만~배성] 1970년 가사지원 - YouTube
기적 소리만 - 배성
기적소리만 - 나훈아 - YouTube
불효자식 - 배성 . 2019 . 9. 1 - YouTube
불효자식 - 배성
배성, 나훈아의
'기적소리만' 노래를 소개한다
이 노래는 1970년 발표된 노래로
진남성 작사 작곡의 작품임.
배성
1969 '사나이 부르스' 로 데뷔
1969~1975에 가요활동
1970년초 PD가요계 비리
신문수기로 발표
가요계 떠남
도미
산호세에서 네온사인 및
프라스틱 제조사 설립
조영남 권유로
2008년 10월 가요무대에
'사나이 부르스' 노래를
부르기도 함.
서라벌가요대상 수상
목포난영가요제대상 수상
나훈아
작사가 작곡가 가수
1947.02.11.
부산 동구 초량동 출생
본명 : 최홍기
서라벌예술고등학교 졸업
정규앨범 : 19장
앨범발표수 : 200여장
자작곡 : 800여곡
취입곡 : 2600여곡
히트곡 : 120여곡
1966 '천리길'로 데뷔
1984년 일본 데이지쿠레코드와
계약, 성공적 진출함
1969~1972, 1982
MBC 10대가수상(5회수상)
1972
TBC 가요대상 남자가수대상
1983
1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주제가상
1996
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특별상
1998 MBC 가요제전 본상
2001
MBC 명예의 전당 가수부문
2007
문화관광부 환경문화대상 가수부문
기적소리만
1절
가랑잎이 떨어지는 쓸쓸한 정거장
정든 그 사람을 멀리 보내고 나 홀로 섰네
사랑을 하면서도 보내야 하는
사나이 이 가슴을 알겠냐만은
기적소리만은 기적소리만은
내 마음 알고 갔겠지
2절
기적도 잠이 드는 적막한 정거장
비에 젖고 젖은 가로등 밑에 나홀로 섰네
사나이 두 주먹에 흘러내리는
뜨거운 이 눈물을 알겠냐만은
기적소리만은 기적소리만은
내 마음 알고 갔겠지
남자가수 배성(1949년생 대구)
1969년에
사나이 부루스라는 곡으로 데뷔하여
1975년까지
5~6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활동해 온 트로트계열 가수로
가끔 TV에도 출연하는
그리 유명하지는 않아도,
무명도 아닌 B급 정도의 가수였다.
가수가 되려고 작곡자를 찾아가면
음반을 내줄테니,
돈을 내라고 한다.
당시 취입료 20만원,
홍보비 30만원을 요구했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본 홍보비가 들면
몇 번 정도 출연이 가능하다.
그러나 효과는 그것으로 끝.
몸이 달은 가수는
직접 돈봉투를 들고
5천원에서 5만원까지 급을 나누어
PD들에게 지급하며
홍보를 부탁한다.
매일 아침 방송국에 출근해서
PD 책상 위에
박카스, 콜라, 커피 등을
놓아두는 작전을 구사했다.
이어서 작곡가와 함께
지방홍보를 나서는데
50만원 정도가 또 든다.
이때 담당작곡가 혼자가 아니라
그의 동료 몇 명이 어울려서
유람삼아 가는데
가수는 완전히 시다바리다.
작곡가들은 내내 호텔방에서
술과 도박이고
가수는 호텔 잡고
술담배 시중까지
눈코뜰 새가 없다.
지방홍보는 다름이 아니라
음반들고
방송사들을 찾아가서
돈봉투와 함께
인사를 하는 것이다.
위 같은 비리구조는
원천적으로
가수가 가요계 인사들에게
철저히 종속된 것에
기인하는 것이다.
가요계 관련인물들의
소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착취'가
계속된다.
음반사는
음반판매량을 알려주지 않는다.
배성의 경우
주위에서 판매고가 천만원 정도는
될 거라고 들었으나,
음반사는 5~6백 정도는
될 거라고 얼버무린다.
거물급 가수가 아니면
인세는 꿈도 못꾼다.
음반사는 배성에게 수고했다며
양복을 한벌 맞춰주고는
처음이라 이 정도라고 하며
대신 다음에는 더 좋은 곡을
주겠다며 꼬드긴다.
쇼단의 단장은
초보가수가 너무 돈을 알면 못쓴다고,
충고하며
1회 출연료를 2만원에서
1만5천원으로 깎아버린다.
술집에서 PD를 만났다하면
술값 뜯기는 것은 기본이라
한 달에 술값이 25~3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시간이 나면 관계자들과 어울려
포커를 하는데
예의상 잃어주는 것이 기본이다.
그 외에도 차량 빌려주기,
유력인사 생일잔치에 불려가
노래하기가 추가된다.
가요계에서 몇 년 굴러먹은 배성은
꾀를 내기 시작했다.
어차피 들 돈이면
사업도 하고 홍보도 하자는 생각으로
양주 집과 의상실을 운영해 보았으나,
약아빠진 상전인 이들이
배성의 뜻대로 움직여줄 리가 없었다.
몰려와서 외상만 긋고 가는 바람에
1년도 못되어 망하고 말았다.
서서히 타락해가는 자신과
가요계의 생활에 환멸을 느낄 무렵인
1973년에
출연약속을 어긴 죄로
PD에게 얻어맞은 이후
청산을 결심하고
1974년에
아내와 같이 생선 장수로
전업하면서
배성의 '한 여름밤의 꿈'은
막을 내린다.
- 옮긴 글 -
배성 미국 이민 30여년간
성공한 사업가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카페 게시글
음악
진남성 작사 진남성 작곡 배성 나훈아 노래 기적 소리만
靑山 노승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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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8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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