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얘기는 이천이십사 년 팔월에서 시월, 그중에서 시월 이십팔일부터 삼십일일까지의 제주섬에서 있었던 사실적 스토리에 기반한 것이다)
<사흘, 완성하다>
제주에 오면 무조건 백록담이지, 이런 생각들, 그때는 그게 무조건 박혀 있었나 봐, 하기사 돈 들여왔는데, 돌아가서 얘깃거리가 있어야지, 그런 것도 그렇지만, 일종의 성취감, 아니면, 그냥 가는 것, 거기 있으니까, 지금도 꿈속에서 그때가 떠오르고, 일상에서도 그때를 품고 다니고,
우리의 그 시절 제주기행, 이제 완성을 위해, 화룡점정의 꼭짓점을 향해, 움직일 때가 온 거야, 체력, 산행 실력, 내공 이 모두를 갖춘 이와 하나도 갖추지 못한 이가 전장에 나서게 되었지, 승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섣부른 예측 불허, 주사위가 하늘에서 쿵하고 떨어졌다.
어떤 이는 새벽 두 시 반에, 대개들 새벽 네 시에 일어나는 신공을 경험하며, 대장 희공 작품 김치찌개, 미역국을 든든하게 해치우고, 0544 하우스 나섰지, 잠시 나침반의 오류로 지체되긴 하였어도, 다른 이들이 너무 일찍 온 터에 주차장 만석이라 6키로 떨어진 곳에 주차하였어도, 선봉 호공은 6시 51분 성판악 검색대 통과하였고, 본진은 7시 20분에 통과, 백록의 거대한 대열에 합류하였고,
원래 계획은 7시 통과, 진달래 9시 30분, 백록담 11시였다. 선봉에 선 호공은 앞서 또 다른 선두가 있는 줄 알고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정말 재미없게도, 땅만 보고 스스로 재촉하였지, 조금 걷다가, 왔던 길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걷다 보니 계속 걷고 있더군, 0700 날은 완전 밝았고, 바람이 살랑거리고, 너무 깨끗한 공기 흡입하고서, 0732 초입임에도 힘에 부친다, 어르신들 덕에 주저앉지 못한다, 근데 어찌 올라가시려나, 많이들 모이셨네,
0757 한 시간쯤 걸었나, 소나무가 우렁차게 포효하고 있었지, 어찌나 굵고 화려하던지, 어디서나 볼 수 없는 장관이었지, 조금 더 올라가니 속밭대피소 0807가 나온다. 그냥 패스했지, 잠시 뒤 0813 키 크고 우람찬 거목 끝으로 서광이 서서히 나리는데, 아, 나는 어디에, 나는 누구, 정수리에 제대로 꽂혀 들었지
0838 사라오름 입구, 이제 진달래까지 한 시간 남았나, 그 유명한 사라오름이지만 역시 패스했지, 뚜벅뚜벅, 또박또박 0847 나즈막한 평상이 나왔지. 쉬어가라는, 물 한 모금 축이고서, 날다람쥐 아닌 다람쥐 되어 걸음에 날을 세웠지, 왼 무릎 아픈 관계로 오른 무릎에 힘 주고 가는, 참 이상한, 어정쩡한 비공을 선보이면서,
그러다 보니 하늘이 도왔는지, 진달래대피소가 0926 영롱하게 다가왔지, 감격스러웠지, 내가 어찌 예까지 왔던고, 물 한 모금, 바나나 한 조각, 털어 넣었지, 곳곳이 진달래라, 4월에 왔더라면 대궐 속의 왕이었으리라, 외국인들 많고, 모녀, 부부사이, 계모임, 평일인데도 어찌 이리 많이도 왔을꼬,
내려가려다, 지금까지 온 게 아까와 행진을 할 수밖에 없었지, 다른 일행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네, 이제 본격 오르막이야, 지금까지 약간 수월했다면, 이제부터 본게임이라고 쓰여있네, 그런데 처음부터 된 놈, 나쁜 놈을 만나버렸네, 데크길 공사로 진창길 헤쳐 나가느라, 휴, 이만저만 아니었지, 왜 하필 오늘이람, 신발이 진흙 속에 풍기덩, 철거덩,
1014 높은 경사도, 고통이 밀려왔지, 환희도 같이 왔다네, 구도를 하는 건지, 나를 구하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그 길이 이 길인가, 오 마이갓, 한라산 나무들 고사목으로 곳곳 서 있네, 어찌 이런 일이, 기후 때문인가, 온 산이 허옇다, 허리가 끊겨 나가고 있었지만, 포기는 못하고, 한라산 오른편 전경이 눈에 잡히기 시작했지, 하늘과 구름과 까마득히 사람 사는 동네와, 그 옆으로 바다와, 곳곳에서 화가들이 날렵한 붓을 놀리고 있었고,
1037 왜 올라가는고, 올라가야만 하는지, 끝없는 질문에 딱 답을 해 주는 이도 없었지, 이제 어쩌란 말이냐, 몸부림이었지, 그런데 그 시각, 기가 막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보배 같은 하늘전경과 바다전경이 눈앞에 떡허니 나타났네, 그게 없었다면 주저앉고 말았을 걸세, 그런데 다들 참, 잘 올라가고 있었지, 뒤쳐졌던 이들 앞서 나가고, 앞서던 이들 물러서지만, 이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네,
마지막 젖 먹던 힘 다 짜내어 1058 눈물 나는 정상에 다다랐다네, 기적이었지, 11시 도착을 지켜낸 셈이지, 네 시간 십분, 뭐 그게 무어 중요하랴, 나는 여기 있고, 백록이 내 곁에 있는데, 히야, 사슴이 정말 뛰노네, 그게 사실이었구나, 신화가 사실로, 현실이 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네, 참,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게, 좋은 일이야,
1123 계속 줄을 섰지, 사진이 뭐라고, 대장 희공에게 전화하니 20분, 아래 있다는, 생사확인, 아, 내가 선두였구나, 다들 줄을 서고 있었지, 그게 뭐라고 하면서도, 1140 드디어 본진 일행을 만났지, 쉬엄쉬엄, 가방을 비워가면서, 먹어가면서, 왔다고 하더군, 진정한 산꾼이었지, 희공과 둘이 줄을 서고, 나머지 일행은 백록담 주변서 주유천하했지,
거의 한 시간, 기다린 끝에 하얀 글씨 선명한 정상석 끌어안고, 1200 인생샷 남길 수 있었다네, 목을 놓고 울었다네, 신이시여, 고맙습니다, 신이시여, 이런 기회를 다 주시는군요, 죽는 날까지 신과 더불어 살겠나이다, 꺼이꺼이 통곡하고 통곡했지,
여덟 팔공은 정상석 그리고 정상목 붙들고 하늘을 날아다녔고, 새벽같이 만공이 준비한 주먹밥, 더운물 공수해 끓인 라면, 인공은 빵으로, 남한땅 가장 높은 곳에서, 정찬을 즐겼지, 그윽하게, 참, 그게 가능했다네, 나 이대 나온 여자야, 그보다는 나 백록담서 밥 먹은 사람이야, 그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긴 혀, ㅎㅎ
1300 만공이 주도하는 토의 끝에 관음사
코스로 하산 길을 잡고 내려섰지, 아쉬웠지만 가야 했다네, 이쪽 편 경치 장관이었지, 이때까지는 몰랐지, 극악의 고통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왕관릉, 남벽의 그 위대함과 제주시 전경이 실시간으로 체크되는,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기에,
1346 머지 않아 맞닥뜨리고 말았지, 관음사의 혹독함을, 엄청난 급경사를, 사실 오르는 데는 그냥저냥 올라도, 내리는 데는 좌슬이상으로 극심한 고통과 시간 딜레이가 따라다녔지, 다른 칠공에 미안스럽고, 그러면서 다시는 다시는 관음사 오지 않으리라, 외치고 있었다네, 1401 첫 다리, 장엄했지, 이런 산중에 다리라니, 희공의 독 사진 연출되고, 진공과 현공은 성판악 주차장 세워 둔 차량 회수하려 내려가고 없었고,
1420 고대했던 삼각봉대피소에 도착했지, 그 한해 전 겨울, 모두들 오르고, 만공과 둘만 이곳서 타임컷에 걸려 회군했었지, 둘은 산이 떠나라 외쳤지, 아니 올라가길 잘했네, 잘했네, 삼각바위 배경 삼아 전체 컷 남기고서, 다시 아래로, 아래로,
개미등에 올라탔지, 그 눔의 개미등이 그리도 험난 할 줄은, 호공이 더디 움직이자, 희공과 인공이 천천히 걸어면서 노심초사 걱정해 주었지, 인공의 산실력은 정말 빼어 났지, 일본
후지산을 안방 드나들듯, 에베레스트도 다녀왔음직한, 1513 아직도 개미등은 끝나지 않고, 사람들 미끄러운 돌길에서 이리 쿵 저리 쿵, 넘어지고 자빠지고, 성한 자가 얼마 없었다네, 이런 일도 있었네,
두번 째 다리 부근에서 아주머니와 어느 힘든 표정이 역력한 남정네, 물어왔지, 얼마나 남았을까요, 호공이 500미터라고 하자, 희공이 아니요. 바로 요깁니다!, 그런데 사실 1키로 더 남았고, 우리는 줄행랑치고 말았다네, 그 일행은 우릴 두고두고 원망했을까, 끝날 듯 끝날 것 같지 않던 개미등에서 벗어나 1610 두 번째 다리 마주쳤지, 이 다리 내려가는 게 또 얼마나 후달거렸던지,
그로부터 눈물과 싸워가며, 고통을 참아내며, 아무도 나를 데려갈 수 없다는 절박감, 스스로 가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는, 끌고 또 끌고서, 인고의 구도행렬이 엄청 길게 이어졌지, 1643 지나고 1701 지나고, 결국 끝이 오더군, 1718, 길고 긴 사슬을 끊어 버렸다네, 원공과 만공이 정상급 선수답게 먼저 와 있었고, 진공과 현공은 그 사이에, 차를 관음사 코스 시작점 매점옆으로 옮겨 놓고 있었다네,
1730 관음사코스 입구 출발하여, 휴, 다 끝났다, 애월의 삼겹살 집으로 날아갔지, 1800 두 테이블로 부담 없는, 넉넉한 삼겹의 밤이 이어지고, 제법 마셨지만, 완등의 넉넉함과, 만족감이 몹시 컸던지, 모두들 웃고 있었지, 껄껄껄, 허허허,
하우스 마지막 밤을 맞이하러 가기 전에 만공의 생일케익을 인공이 준비하고서, 2000 하우스에 도착했고, 세상에서 가장 만만하고, 가장 편한 저녁을 온전히 ,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지, 다들, 그 밤의 주인공은 인물로 가장 으뜸인 만공이었지,
생일잔치가 펼쳐졌지, 많이 차리지는 않았지만 촛불 불어 제치고, 남은 과일들, 남은 소주와 맥주들, 의당 점령해야, 한다는 의무감들, 노래가 이어지고, 파랑새 노래 나오지 않았지만 산유화가 더 좋았고, 희공ㆍ만공의 듀엣 노래 "유리창엔 비",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지, 다들 축하송, 호공도 현공도, 원공도, 용공도, 특히 용공은 양희은의 '찔레꽃 피면'을 몽환적으로 살려 내었지,
그렇게 나흘간의 제주 기행, 그 사흘여정이 한참이나 더디게 더디게 앨범 속으로, 가슴속으로 타 들어가고 있었다네,
완성이란 글자를 가진 붉은 도장이 여덟 공신의 손등에 선명하게 찍어대고 있었고,
그 밤이 언제, 어떻게 막을 내렸는지 아무도 몰랐지, 맞아, 지금 생각해도, 축하노래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러, 그려, ㅎ, 그땐 젊었으니, 다 그랬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