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이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되가는 하나 그래도 옛날부터 교통의 요지로서 제 몫을 충분히 해내던 사당동이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쓰임새 많은 교통 지역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듯 보인다.
참으로 오랫만에 찾아든 지하철 2호선 사당역 6번 출구 계단을 오른 소회와 느낌이다.
변한 것은 별로 없지만 역시나 아주 그대로는 아닌 사소한 변화는 눈에 보인다.
그렇게 계단을 오른 첫눈에 주변을 살피고 돌아보니 아직 친구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역시나 서울을 떠나 먼거리에 살고 있는 쥔장이 제일 빠른 걸음을 놓았다는 것이요
원래 멀리 사는 사람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암튼 그렇게 계단을 올라 시선을 곁에 두자니 군데군데 벤치에는 어디론가 가야하는 군상들의 집합처요
또 그 벤치는 갈 곳이 없는 노숙자들의 나른한 쉼터 역할을 하고 있었고 혹은 약속 장소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중이었다.
물론 내게 부여된 6번 출구 의미는 약속장소였고 역시 너무 이르게 도착하게 된 탓에 별 수 없이 주변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렇게 눈을 돌려보자니 벤치마다 각자 다른 사연의 주인공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누군가는 내려 비추는 햇살에 의지하여 온몸을 쭈욱 편 채 벤치 한공간을 차지하고 누웠고
그곁엔 커다란 가방이 흔들리는 햇살에 기대어 제 주인의 뒤돌아선 모습을 지키고 있다.
왠지 기분좋을 햇살아래 그 모습은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그 곁자락, 나름 온갖 정성을 다해 예쁘게 차려입고 최상의 모습으로 약속장소에 찾아들었을 나이든 여자가 시선에 들어온다.
아직 오지 않는 오랜 친구, 아마도 온갖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세월을 나눈 늙다리 친구쯤 될,
그러나 약속 시간에 늦어버리는 친구를 기다리면서 궁시렁 혼잣말을 하며
벤치곁에 심겨진 팬지를 핸폰으로 촬영하다가 짜증이 극도로 오르는지,
"너 어디야...."라며 친구에게 화내던 나이든 여자의 볼멘소리가 귓전을 울릴 때쯤
그 곁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아지고 힐난의 시선을 의식한 그녀는 이내 고개를 떨군다.
이해가 된다...욱 치받혀 오른 그녀의 표정으로 보아 한참을 기다린 듯하다.
그리고 또다른 벤치에는 근사한 등산 복장의 초로의 신사가 친구를 기다리며 가벼운 배낭을 들었다 놨다 안절부절이다.
역시나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은 동반인에 대한 분주한 마음의 표시렸다.....싶을 때 허겁지겁 또다른 일행이
짜잔, 등장을 하니 그새 붉으락 푸르락 하였던 얼굴이 펴지면서 왜 이리 늦었나며 볼멘소리를 하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으로 손을 건네다 그들의 목적지를 향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긴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쥔장의 시선과 마음도 따스한 봄날처럼 온몸에 기분좋음으로 물든다.
그렇게 오고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여전히 시간이 남는 고로 슬슬 장소를 옮겨가며 도심의 풍광을 바라본다.
언제나 그랬듯이 도심은 바쁘게 흘러가고 그 흐름을 따라 걸어가는 시민들의 발걸음도 바쁘다.
어느 누구 하나 서두름 없이 여유있게 걷는 사람이 없는 고로 괜히 쥔장만 느적느적거리며
할 일 없는 사람인 듯 풍광을 쫒아가는 시선만 바쁘다.
그렇게 몇분의 시간을 할애하니 친구가 알려준 구 벨기에 대사관이 눈에 들어온다.
그 벨기에 대사관은 제 역할을 마치고 이제는 남시립미술관으로 변모하여 제1세대 여류 조각가 김윤신의 조각전을 진행중이다.
물론 계절에 맞춘 그러나 십여일 일찍 피었다는 들어서는 입구에 벚꽃이 시선을 강탈하지만
그저 내 시선은 초입에 배치된 그녀의 조각품에 꽃혔다.
강렬하다, 매력적이다, 신선하다....
그렇게 봄날의 뜨락을 지나 계단을 올라 묵직한 문을 열고 전시관으로 향한다.
첫대면을 허락한 조각가 였지만 왠지 나무와 돌을 조각한다는 사실에 이미 홀려서 쥔장의 발은 그저 무한대로 움직이는 중이다.
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1935년생 여성조각가 김윤신, 그 시절에 어찌 저런 과감함이 있었더란 말이냐?
조각을 향한 그녀의 자유로운 여정 속에 몰입되어 목조각, 돌조각, 석판화에 깊숙히 빨려들어갔다.
개인적으로 주위에 예술가들을 일상의 친구로 두고 있어 그들의 작업 과정에 익숙한 입장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독창적인 표현력과 조형감각은 시대를 초월하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늘 새로움은 예기치 않는 곳에서 찾아들기는 하지만 여성 조각가들을 보자면
그녀들의 넘치는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로 부터 기인하는지 항상 궁금했다.
하지만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의 작품을 보는 순간에는 절로 알 것 같았다.
여자로서 물리적, 신체적 힘을 가하여 그 어떤 고난과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고
기어이 근성있게 나무, 돌을 이용한 조각과 석판화라는 작품을 세상에 내어놓으며
사물의 본질을 통해 본연의 자연과 우주적 철학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웬만한 집념과 의지와 끈기가 아니면 반영되기 어려울 일이겠다.
그렇다고 보자면 그녀는 디지털 만능 시대에, 있는 그대로 날 것으로서 물질의 본성을 잃지 않으려 애써가며
나무와 돌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흔적이 보여 더더욱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욱 이름을 날리고 있어 생소하지만 역사적 인물로 존재하게 될 그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삶을 살아내며 작품세계에 몰입해 있다는 것을 알겠다.
그런 그녀의 삶이 매우 궁금하여 그녀가 전하는 메세지를 인터뷰 화면을 통해 진지하게 보고 들었다.
이미 촬영되어 보여지는 화면만으로도 그녀의 강인함과 굳건한 자연 철학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작업은 하나에서 둘이 합일을 이루다가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을 깨우치는 순간 온 우주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그로인해 작업의 중요한 철학적 모토를 찾게 되며 이로써 그녀는 작품을 통해 희미해져가는 근원적 감각을 되찾음은 물론
자연과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인간 스스로 혹은 그녀 자체가 자연의 일부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듯하다.
작품을 돌아보고 그녀에 관한 자료를 화면을 통해 보고 들으며 그녀 "김윤신"에 대한 매력도는
그저 여성조각가 였다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기는 어려웠다.
완전히 개인적으로 매료되어 당사자도 없는데 궁금함을 못참고 이것저것 물어봤던 관람객의 입장으로서는
그녀는 근래 드물게 보는 여성조각가 였다.....아마도 세기를 관통하는 1세대 여성조각가 이지 싶었다.
그렇게 혼자서 온몸으로 그녀를 느껴가며 감탄을 하다가 다시 약속 장소로 찾아드니
친구들이 삼삼오오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 행렬을 뒤따라 갔다.
모처럼 문화적 마인드 활성화를 위해 만남을 갖게 된 친구들과의 한끼는 만족스러웠다.
요즘같은 물가고에 아주 괜찮았던 음식과 간만에 웃고 떠들 분위기를 조성해준 친구들에게 고마웠다.
와중에 간신히 콧물, 목감기가 사그러 들어 친구들과 수다발을 날리 수 있었으니
그동안 극도의 피로감으로 헤매던 한주간의 쥔장이 아니었다.
봄날과 더불어 찾아든 간만의 여유가 이리도 짧게 지나가나 싶을 정도로 그 순간은 매우 흡족했다.
엽렵한 친구들의 배려도 차고 넘쳤으며 여전히 활기 찬 친구들의 양호함도 좋았다.
이후 미당 선생댁의 방문이 있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참....미당 선생은 한동안 취재하느라 많이 찾기도 해서
새삼 찾아들 이유도 없고 다음 일정이 있어 미당 서정주 선생댁 답사는 절로 빠지게 되었다.
이후로는 고터에서 또다른 친구와 수다 삼매경이었지만 환자인 그녀가 굳이 만나자고 조른 이유를 알겠더라....
그렇게 늦은 밤까지 그 친구의 밀린 이야기를 듣다 돌아오니 환자가 되바뀐 셈이 되었다.
완전 널브러진 채 한 마디...역시 서울은 버거워 라고
첫댓글 제[가 예전에 사당동에 직장이 있어서 그 곳에 3-4년을 출퇴근을 한적이 있어서,,, 그리고 관악산을 오를 때 그 곳에서 만나서 오르곤 했지요,,, 요즘은 지하철 2호ㅓ선과 4호ㅓ선 환승만 하고 올라가 보지는 않고 있습니다..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하셨네요,,,
ㅎㅎ 그러셨군요.
저 역시 사당동의 기억은 모임장소거나
먹을거리 장소거나 지나가야할 중간기착지로서혹은 미당 서정주선생님과의 대담을 나누며 가졌던
아주 좋은 기억으로만 남았더랬는데 참 새삼스럽더라구요.
@햇살편지 녜,,, 예전에 관악산 오르는 길에 서정주님 집이 그 곳에 있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 관악산에 자주 등반을 했었는데요,,
사당동, 예전 남자사람 친구 생각, 친구 용욱이 살고 있는곳, 며느리 상견례 하던곳, 더 올라가면 친구들 만나 식사하던공 등등의 생각들이...
ㅎㅎ
저마다
각자의 상황이 담긴 추억의 사당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