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탈출 게임 / 최규리
여러분은 난파선에 도착했다. 고요는 흔하지 않다. 고요는 무섭다. 부서지고 깨진 흔적들이 보였다가 사라진다. 흘러 다니는 동안 문제가 발생한다. 반 토막의 나라가. 식탁을 후려친다. 껍질이 쌓인다. 라면이. 캔이. 찌그러진다. 문은 열리지 않는다. 진공 포장된 방, 등 푸른 편의점이 덮친다. 즉석 밥에. 즉석 고등어구이가 차려졌다. 훌륭하다. 어쩌다 그랬다. 방이 시작되었을 때. 여러분은 물 위를 호기롭게 미끄러져 갔다. 지느러미를 찰랑거리며. 찬란한 자소서가 깃발을 올렸다. 내부 옵션이 갖춰진, 손 하나 댈 곳 없다는 방. 방에서. 행복을. 각자의 침대에서. 부풀어 오르는 이불을 끌어안고. 문이 열리기를. 매일. 토막을 친다. 조각을 낸다. 붙잡을 수 없다. 방에서 나오면 방으로 간다. 벽이다. 비좁고 어두운 병. 빙빙 돌아가는 방, 방방 뛰어오르는 방광,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세탁기. 물이 넘친다. 버킷리스트가 떠다녔고. 걸음이. 존재할 수 없다. 꼬리를 펄떡이며. 방을 나가야 한다. 다시. 산책할 수 있을지. 힘들게 달려왔던 자리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변방에서. 즉석 떡볶이를 먹으며. 즉석 방을 찾아. 어항 속 작은 물고기들의 주거 형태를 배워야 한다. 임대수익만 열 올리는. 촉수의 움직임을. 거주지를 갖지 못한. 물고기들의 산란과 어두운 바다 밑에서 벌어지는 아귀다툼을. 지속 가능한 집의 자리는 설계될지. 초보자들에겐 비교적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빈약한 구도에 갇히기 싫다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방법을 풀어야 한다. 당신을 만날 수 있는 집은 어디일까. 다인용 식탁에서 풍요로운 배를 풀어헤치고. 춤추는 아이의 아침을 볼 수 있을까. 새끼들을 배에 붙이고. 헤엄치는 돌고래여. 팽팽한 푸른 등에 올라. 생애 첫 계약서에 날렵한 사인을 넣을. 다정한 손가락, 그대를 통과하는 암호는.
계간 『시산맥』 2021년 가을호 발표
[출처] 웹진 시인광장
최규리 시인
서울 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16년 《시와 세계》로 등단. 시집으로 『질문은 나를 위반한다』와『인간 사슬』이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장, 시와세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