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53선지식+1= 54선지식
동남 동녀 7명 + 바라문 3명 + 보살 7명 + 비구 4명 + 비구니 1명 + 우바새 11명 + 우바이 10명 + 왕족 2명 + 천신 9명 = 54선지식
기포의 새벽 편지-2840
화엄 세계-089
동봉
제7문 성익돈초成益頓超
후8後八
정명성익正明成益
편익돈원遍益頓圓
보고듣고 하는행이 씨앗되어 싹이트니
여덟가지 어려움속 십지단계 뛰어넘고
이해하고 실천함이 자기몸에 있는지라
오랜겁에 얻을과를 한생애에 마쳤도다
原文
第三 見聞爲種 八難 超十地之階
第四 解行在躬 一生 圓曠刧之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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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행解行은 바로 몸의 할일입니다
첫째 해解에 열 가지가 있으니
이를 십주十住라 이름하고
둘째 행行에 열 가지가 있으니
이를 달리 십행十行이라고 합니다
보고 들음은 눈과 귀를 거칩니다만
내용을 간직하는 곳은 신경이지요
십주, 십행은 몸으로 익힙니다
가령 힌번 제대로 익힌 자전거는
나중에 저절로 탈 수 있는 것처럼요
이를 몸소 실천한 구도자가 있었으니
선재동자善財童子라고 합니다
달리 남순南巡 동자라 하는데
남인도南印度 쪽으로 여행하면서
선지식을 찾는 데서 기인합니다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동자들 중에서
대표적 인물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선재동자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자그마치 쉰세 분의 선지식을 찾아
몸소 구도의 길을 떠난 구도자입니다
일설에 선재동자는 경전의 인물일 뿐
실존했던 분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역사 속에 실존했느나 아니냐가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삼신 중 법신法身과 보신報身은
분명 역사 속 불보살님은 아닙니다
역사 속 불보살님은 석존을 비롯하여
마명, 용수, 세친, 원효 등일 것입니다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아미타불
관세음, 보현, 문수, 지장보살 등은
한결같이 법신이거나 보신입니다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선재동자 범어梵語 이름이 있습니다
'아낌없이 나누다'의 뜻을 지닌
'수다나Sudana'입니다
풍부하게 베푼다는 중성 명사로
선재동자가 어머니 태에 들 때부터
세상에 고고지성을 울릴 때까지
뜻하지 않았던 진귀한 보배가
저절로 생기고 들어오는 바람에
선재善財라는 태명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 태명이 실명이 되었는데
복성장자福城長者가 그의 부친입니다
선재동자는 홀로 참된 이치를 찾아
남쪽으로 순례길에 올랐으므로
남순동자南巡童子라 합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따르면
선재라는 소년이 복성福城에서
처음 문수보살을 만나 가르침을 듣고
구도하려는 큰 마음을 내게 됩니다
그러자 문수보살은 소년에게
남쪽으로 가라 길을 권유하지요
이렇게 해서 선재는 쉰세 분 스승을
차례로 만나면서 구도길에 오릅니다
선재동자가 구도의 기나긴 여정에서
만나 본 선지식이 총 쉰세 명이나
문수보살은 두 번 중복됩니다
실제 선지식이 쉰두 분입니다만
한 분이 중복되기에 쉰세 분입니다
선재 자신을 선지식에 넣지 않았는데
나는 화엄경 입법계품을 읽을 때마다
구도자로서의 선재를 생각했습니다
구도자 일원에 선재동자를 넣어
쉰네 분 선지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빠진 귀함이 또 있을까요
의상조사가 법성게 210 자를 쓰기 전
손수 그린 해인도海印圖가 있지요
화엄법계도/법성도라고 하는데
네 가지 무애법계를 상징하는
네 각도角圖를 네 귀퉁이에 담아
모두 쉰네 번의 90°각이 그려집니다
이는 자신 외의 쉰세 분 선지식에
구도자 남순동자를 넣은 것입니다
화엄의 선지식을 이야기할 때
구도자 없이 쉰 셋으로 얘기하지만
주인공이 없는 객은 가치가 없습니다
쉰네 분의 신분은 곧 이러합니다
가나다 순으로 표기했는데
1. 동남 동녀 7명
2. 바라문 3명
3. 보살 7명
4. 비구 4명
5. 비구니 1명
6. 우바새 11명
7. 우바이 10명
8. 왕족이 2명이고
9. 천신이 9명입니다
동남 동녀 속에 선재 동자가 들어 있고
외도와 바라문을 하나로 묶었으며
비구 비구니는 사부중이기에
마치 우바새와 우바이처럼
따로따로 표기했습니다
그리고 왕과 왕자는 왕족으로
일부 신들은 천신으로 묶었습니다
이들을 모두 선지식善知識이라 함은
어휘 대로 악지식惡知識이 아닌
좋은 분, 훌륭한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맨 앞의 선지식인 문수보살과 함께
마지막 선지식인 보현보살은
곧 우로보로스 현상입니다
제 꼬리를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
끝없는 반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삶의 법칙과
생주이멸生住異滅 사물의 법칙과
성주괴공成住壞空 우주의 법칙까지
영원불변永遠不變이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움직이고 윤회하며
여러 가지 변화 과정을 따릅니다
이를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합니다
쉰세 분 선지식을 차례로 찾아다니며
불도를 이룬 선재가 누구일까요?
게다가 동자라면 아이를 가리킬까요
카네코 다이에이金子大栄 박사는
그의 저서 <사십팔원四十八願>에서
동자에 관하여 이렿게 표현합니다
화엄의 선재동자를 비롯하여
유마경의 광엄동자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나이의 다소多少가 아니라
말과 행동과 마음의 순수 그 자체라고
‘동자’는 나이가 젊다는 뜻이지만
지극히 순수하고 정성스러우며
순진한 어린이 모습을 간직했기에
한마디로 '동자'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문수보살 가르침을 시작으로 하여
선재동자는 길에서 수레를 끌고
물에서 나룻배를 다루는 이와
호객呼客하는 자를 만나며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심지어 거리의 여인을 만납니다
성별과 신분과 나이를 뛰어넘어
거룩한 스승을 찾아 어디든 떠납니다
토굴에서 미륵보살을 친견하고
문수보살을 다시 찾은 선재는
보현에게서 열 가지 행원을 듣고
기나긴 구도 여행의 막을 내립니다
영화 '더 웨이The Way'가 떠오릅니다
에밀리오 에스테베즈가 만든 영화
죽은 아들의 유해를 배낭에 메고
아들이 생전에 가고자 했던 여정을
눈물과 아픔을 가슴에 담고 독백하며
톺아가는 주인공 마틴 쉰의 열연이
선재동자를 대하는 느낌입니다
데보라 카라 웅거의 넉살이
우울한 여행에 생명을 불어넣지요
길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많은 사람이
마틴 쉰에게는 다시 없는 스승입니다
선재동자는 여행 중 그의 한 생애에
세 아승지겁을 두고 닦아갈 도를
모두 원만하게 이루어갑니다
보고 듣는 것이 다 씨앗이 되듯이
행동, 언어, 마음으로 닦는 것이
이른바 '해행재궁解行在躬'입니다
몸소 이해하고 실천함을 벗어나
해행재궁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광겁曠劫의 결과果를 그 한 몸으로
원만하게 이룬 선재동자에게서
광활한 우주가 한마음에 들어 있고
찰나 속에 우주의 역사가 들어 있다는
화엄 세계를 새롭게 다가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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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1 [영화감상] 더 웨이The Way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bodhami&logNo=150185714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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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선재 동자 진영/인터넷에서 가져 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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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2022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