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목욕탕에서 자신의 성기에 보형물을 삽입한 남자를 본다. 눈쌀을 찌푸리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다.
제러드 다아이몬드의 책, '섹스의 진화' 에서 언급된, '팔로카프' 다. 팔로카프는 뉴기니 고원지역의 일부 원주민에서 발견된다. 남성기를 감싸는 길이 60 센치 직경 10 센치 정도의 길다란 관이다. 원통형에서 끝으로 갈수록 뾰족해진다. 팔로카프는 원주민 남성들이라면 몇개씩은 가지고 있다. 그들은 여러가지 색으로 장식하기도 하고 장식품으로 집에다 전시하기 한다. 마치 넥타이를 고르듯이 매일 다른 팔로카프를 성기에 감싸고 발가벗은 채로 밖으로 나온다.
그들에게 물어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성기를 보이면 창피하기도 하고 남자로서의 예절이고 위신이죠"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럼 발가벗고 다니는 것은 뭐란 말인가.
공작은 아름다운 꼬리를 활짝 펴면서 암컷을 유혹한다. 성적 매력을 표시하는 것이다. 성적 매력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도구다.
그런 의미에서 목욕탕에서 자신의 성기에 보형물을 삽입한 되먹지 못한 남자와 뉴기니 고산지역 원주민 남자의 팔로카프는 공작의 꼬리와 비슷한 의미는 아닐까?
원주민과 목욕탕 남자에게 직접 물어 본다면, 아마 화를 낼 것이다. 감히 인간을 동물과 비교할 수 있냐고. 나는 그 답변에 모른 척 하면서 아마, 영화 '로미오와 쥴리엣과 한국영화 '클래식' 을 떠올릴 것이다.
동물의 생존은 오로지 자신의 유전자를 자손에게 남기는 번식에만 국한이 되어 있다. 공작의 꼬리도 역시 자신의 유전자를 위한 몸부림이다.
그렇다면, 성기에 보형물을 삽입한 목욕탕 남자와 팔로카프를 매일 새로 씨우고 나오는 뉴기니의 남자의 경우에는.
인간에게 있어, 성적 매력이란,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생존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의 형이상학적 표현이 사랑이다. 그것은 겉모습을 바꾸어 예술, 언어, 문화로 까지 발전한다.
로미오와 쥴리엣과 클래식의 또 다른 표현이 팔로카프라고 한다면, 너무나 심한 비약일까?
감히, 목욕탕 남자의 성기보형물과 뉴기니 원주민의 팔로카프와 우리의 자랑스런 영화 클래식과 비교하다니.
진정한 사회주의자인 나는, 되묻는다. 유물론의 번식의 1차적 의미가 유신론의 2차적 의미 사랑으로 변한 것에 불과하다고.
어쩌면 심한 경우, 인간은 본래의 진실된 의미를 왜곡시키면서, 또 다른 역사적 오류를 범할지 모른다는.
부풀어 올라 꼴사나운 성기를 가진 목욕탕 남자가 갑자기 귀엽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일일까?
난 유물론자 진정한 사회주의자가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