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17
태종 3 -중전 민씨 영광과 불행(2)
중전 민씨 가문의 불행~~결론을 먼저 말하면, 중전 민씨의 친동생인 민무구, 민무질이 1차로
남편인 태종에 의해 죽고, 그로부터 6년 후 그 아래 동생들인 민무휼, 민무회 형제도 또 다시
남편인 태종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것도 민씨가 중전의 자리에 있는 가운데...
태종의 입장에서 볼 때,장인인 민제는 보수파의 핵심인물로서 따르는 이가 많고, 처남인 민무
구와 민무질은 군사 부분의 실세들,그리고 대궐의 안주인 왕비, 여기에다 무엇보다 원자가 외
가에서 자란까닭에 외삼촌인 민씨 형제와 매우 가까웠고, 나중에 원자가 세자를 거쳐 보위를
이을 경우 민씨 일가의 힘은 통제 불능일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민씨 형제들이 죽게 되는 과정은 매우 복잡했는데, 그 중 하나만 보면, 태종이 어느 날 갑자기
선위 (왕위를 세자에게 물려주고 물러앉는것)하겠다는 쌩쇼를 한것과 관련해 민씨 형제들이
슬퍼하며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기쁜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 탄핵의 내용이었습니다.
태종은 민씨 가문의 발호와 세자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우려해 민무구, 민무질을 작심하고 죽
였고, 6년 후에는 그 동생들이 세자를 충동질해 복수를 꽤하려할 것을 우려해 또 다시 작심하
고 마누라 가문의 씨를 말려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다 당시 명나라에서는 황제가 권력유지를 위해 일을 벌이기만 하면 1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이 발생했으니, 태종으로서는 자신이 벌리는 일 정도는 별 거 아니라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암튼 중전 민씨는 이방원이라는 독한 남자를 만나 왕비가 되는 영광을 누
렸으나, 그 대가는 너무나도 혹독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18
태종4 -양녕과 충령
태종은 정비 민씨와의 사이에서 양녕, 효령, 충녕, 성령 이렇게 4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태종이 중전 민씨 일가를 몰락시키고 많은 공신들을 처치한 이유는 오로지 미래 군주인 세자
양녕대군이었는데, 양녕대군의 탈선이 만만찮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양녕은 어린 시절부터 빡빡한 군주교육을 따라가지 못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공부에 흥미
를 느끼지 못했으며, 열일곱에 이르러서는 최초로 기생을 불러 통하는 등 여색을 밝히기 시작
하였습니다.
태종은 초장에 버릇을 고쳐놓으려 여러 시도를 하였으나, 그럼에도 양녕은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을 넘어 장안의 건달들을 궁 안으로 불러들여 놀기까지 하는 등 탈선의 종류와 강도를 점점
높여 갔습니다. 야사에서는 세자의 이러한 탈선이 아버지의 무자비한 숙청에 대한 반발이라고
도 하고, 왕의 마음이 충녕에 있음을 알고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도 하나, 이렇게 볼 만한 그럴
듯한 근거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태종의 셋째 아들 충녕(장차 세종대왕)은 어려서부터 영특한 데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해
태종의 관심을 받았습니다.같은 왕자라 하더라도 세자와 왕자의 지위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
가 있었으니, 세자는 나라의 주인이 되는 것이나 왕자는 그냥 종친에 불과했고, 경우에 따라서
는 본의 아니게 역모에 휩쓸려 죽어나갈 수도 있는 지위였습니다.
따라서 충녕의 뛰어난 자질은 어디에도 사용할 곳이 없는 쓸데없는 것이었습니다.
실록에는 충녕이 세자에 도전하는 것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을 정도의 도발행위를 여러 번 한
것으로 나오는데,이를 두고 충녕이 세자의 탈선을 빌미로 왕위를 욕심냈다거나 충녕의 뛰어남
을 강조하기 위한 사관들의 아부성 멘트였다는 등의 해석이 있으나, 진실은 알 수 없는 것이겠
지요.
아무튼 세자 양녕은 여러 번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태종에게 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
까,아버지는 뭘 잘했다고 날 나무라십니까?”라는 취지의 편지가 결정적 이유가 되어 세자의 자
리에 오른지 14년 나이 스물다섯에 폐위되고, 충녕이 세자가 되었습니다.
충녕대군은 세자가 된지 두어 달 만에 태종으로부터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오르니, 이 분이 바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세종대왕입니다.
(19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