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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나눔터 스크랩 생명평화운동 봉화준비모임
서리태 추천 0 조회 88 05.10.26 11:04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지난 대구준비모임에서 찍은 전체 사진.

 

일찍 가신분이나 빠진 분도 있지만 12시가 넘어서 회의가 끝났는데도 생생한 참석자들의 표정이 좋다.

 

앞줄 수염이 긴 할아버지는 황대권님, 아직 할아버지 소리 들을 연세는 아니신데 어지간히 외모를 가꾸셔서 내가 계속 놀려댔다.

 

"할아버지 제가 염색해드릴께요. 수염도 깍고 옷도 좀 젊게 입으세요."

 

옆에 팔을 쫙 벌리고 박장대소하는 여자분은 수지행님.

 

생명평화순례 사무국장으로 일한다.

 

나보다 2살 위의 언니이고 사통팔달 안통하는데 없는 막힘없는 사람이다.

 

하늘색 티를 입고 얌전한 척 웃는 내 옆에 귀여운 여자 애는 평화 13살이고 옆에 안경쓰신 분이 아빠 김재형씨, 전남 곡성에 귀농해 계시고 평화는 2학년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공부하고 있다.

 

내 옆에 파란색 웃옷에 크게 웃고 계신 분이 총무님, 이원규 시인 부인이시다.

 

그 옆에는 양홍관님, 남편과 같은 사건으로 옥고를 치뤘던 분이고 다른 분들은 모두 기억을 할 수 없고 대구, 마창, 울산, 전남 등지에서 오신 분들이다.

 

우리 남편은 평화아빠 옆에서 뭐라고 얘기하다 찍혔나보다.

 

 

 

 

 

 

 

 

 

 

 

 

 

 

 

 

 

 

 

 

 

 

 

 

 

 

 

 

 

 

 

그날 분위기가 생각나고 괜히 사진 보며 즐겁다.

 

사람이 좋다는 느낌을 받을때 아무런 조건없이 모두 힘을 합하면 좋은 일을 할 수 있을거라는 그런 믿음이 생기는 그런 자리였다.

 

그 날(9월 3일) 이후 생명평화운동에 관심이 생겨서 홈피도 들락날락했는데 어제 봉화준비모임을 했다.

 

수지행님이 왔고 봉화전교조지회장님, 법우회(불자들 모임)분들, 귀농한 젊은 예비부부, 노조위원장님(사업장은 잘 모르겠다. 케이티와 뭐였더라...), 우리 식구들(남편과 시동생, 정철씨).

 

사무실이 없어서 가든에서 모임을 갖고 맛있는 삼겹살을 먹었는데 전교조에서 식사비를 내셨다.

 

10월 21일 저녁부터 25일 점심까지 순례 코스와 숙식, 봉화지역의 현안들이 이야기되고 수지행님이 탁발순례를 시작하게 된 과정과 지역에서의 기대되는 바를 이야기하고 서로 진지하게 봉화주민으로서 의견을 터놓고 애기하다 헤어졌다.

 

나도 봉화주민인가?

 

봉화에 사니 봉화주민이지.

 

수지행님은 80순 노모를 모시고 사는데 같이 모시고 와서 차를 운전해서 오신 정선생님하고 모두 우리집에 오셔서 주무셨다.

 

오는 길에 그간 지역을 다니면서 겪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주로 지역 전교조 -내가 단양에서 교사로 근무할때 경험했던 일-에 대한 의견도 나누었다.

 

탁발순례라 하니 나는 우리 집을 사무국장님께 하룻밤 탁발하고 다음날 아침과 점심 "공양"을 하고 우리집 인터넷을 탁발한 건가?

 

암튼 하루를 지내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수지행님은 내게 마음이 통하는 언니가 되었고 속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혼자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건강도 문제가 될 것 같아 누군가와 일을 나눠서 해야할 것 같았다.

 

그래서 사무국 일을 함께 할 사람을 아는 사람 중 생각해보다 혹시나 하고 아는 선배에게 전화해서 의향을 물어봤는데 갑작스러워서 나중 얘기하기로 했다.

 

지리산 실상사에서 숙식을 하고 일주일에 하루 쉬는데 격주 토요일도 쉬게 될거고 사대보험이 되고 보수는 6~70만원정도라 한다.

 

남자든 여자든 생명평화운동에 대한 이해가 넓고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어울려 활동을 하는데 무리가 없고 문서작성이나 조직활동에 대한 실무력이 필요하다.(구인광고중)

 

적임자가 없어서 할 수 없이 혼자서 그 많은 일을 감당하느라 애를 쓰니 옆에서 보기에 딱했다.

 

 

 

참 얘기하다보니 우리 왕언니(블로그에 내가 헌사까지 썼던 그 언니)랑 같이 불경공부를 한 사이라네.

 

정말 기가 막히게 좁은 세상이다.

 

오늘 왕언니한테 전화를 해서 그 기적같은 만남에 즐거워하며 

 

"죄짓고는 못살겠다. 이렇게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니 원."

 

하면서 익명성이 보장안되는 이 실명사회의 투명함에 넌더리(?)를 내며 하하호호했다.

 

수지행님 일행은 다음 모임장소인 영주로 떠나고 그동안 일하던 정철씨와 시동생도 추석을 맞아 떠나고 남편은 연탄보일러 사러 봉화 가고  졸지에 나 혼자 집에 남아 컴 앞에 죽친다.

 

이 얼마만인가?

 

사랑하는 내 블로그야 잘 있었냐?

 

맨날 가보는데 들어가보고 글을 써본다.

 

그간 밥하고 고추 말리고 고추 빻고 택배부치고 확인 전화하고 나름대로 바쁘게 살았던 자랑스러운 고추아줌마, 식당아줌마가 이제 마음 정리를 해볼까나~~

 

고추는 말리는 대로 주문 오면 다듬어 빻아서 택배부치고 입금확인하고 또 딸 때 되면 따서 펴놓고.

 

아직 갈 길이 먼데 한 5번쯤 더 딸 수 있다고 남편이 그러니.

 

고추판매는 내가 생산한(?) 물건을 직접 아는 사람(혹 모르는 분도 있지만)에게 파는 것이라 조심스러운 마음이 더 든다.

 

그냥 한꺼번에 가져다가 모르는 이들 장바구니에 실려간다면 신경을 덜 쓸텐데 혹 품질에 만족하지 못하면 어쩌나 내 신뢰성을 걸고 하는 일이니 나도 모르게 전력을 다하게 된다.

 

"고추 받으셨어요? 마음에 드세요? 감사합니다. 맛있으면 많이 선전해주세요.~~"

 

애교를 섞어서 정성껏 말을 건네고 뭔 탈이 있으면 마음이 졸아든다.

 

어떻게 할지 이리저리 궁리가 되고.

 

아함 뭔 말~~ 탁발순례 이야기하다 삼천포로 빠졌네..

 

암튼 스님이 이곳을 지나는 그 일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다시 탁발순례에 몰입하는 아줌마---

그 지역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것, 그동안 서로 모르고 지내던 사람들 사이에 고리가 만들어진다는 것, 또 생명, 평화라는 시대의 주제를 함께 고민하는 모임으로 그 사람들 고리가 남는다는 것, 정말 필요했던 운동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원래 시작은 이라크전쟁 파병반대운동이 좌절되고 나서 이라크 다음은 한반도라는 위기의식을 안고 반전 평화 운동에 모인 수많은 단체의 뜻있는 분들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는 생명평화운동.

 

도법스님이 천일 기도를 끝내고 탁발순례에 나서면서 모양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간 전국에 흩어져 각 지역안에서 운동단체 활동가로 귀농인으로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아오던 뜻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지향점을 가지고도 만남을 갖지 못했다.

 

이들이 생명평화의 물결을 타고 각계각층의 색깔을 그대로 안고 편안한 마음으로 내적인 성찰을 함께 하면서 지역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어울릴 수 있는 자리가 스님의 탁발순례를 마중하고 배웅하면서 만들어 지는 것이다.

 

꼭 해야만 하는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모임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어울려 지역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가닥을 잡는 그런 모임이 되겠지.

 

지역마다 좀 다르지만 대체로 이름을 생명평화학교라고 짓는다 한다.

 

나름대로 지역운동에 대한 생각을 그동안 가지고 있었지만 내 코가 석자이다 보니 먼 훗날의 일로 남겨두었는데 어쩌면 이 계기로 그간 속으로만 안고 있었던 것들이 펼칠 기회를 만난게 아닐까?

 

홍성풀무학교의 교육목표는 "위대한 평민"을 키우는 것이다.

 

지역에 봉사하는 낮은 사람들.

 

풀무학교가 있어서 홍성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았을까?

 

홍성사람들은 더 사람 냄새가 나는 곳으로 자기 고장을 가꾸지 않았을까?

 

도시로 대도시로 몰리는 사람들을 지역에 정착할 수 있게 하려면 이런 지역을 살리는 에너지가 모이고 힘을 발휘해야할 것 같다.

 

귀농인은 귀농인대로 마을에서 역할을 하고 교사는 교사대로 학교에서 노력을 하고 종교인은 종교인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뜻있는 사람들이 지역에서 등불을 켜는 것이다.

 

나도 그런 등불이 되려나 그냥 작은 성냥불이라도 내 자리를 잘 가꿔야겠다.

 

긍정적이고 좋은 기운을 느끼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미래의 봉화를 그려본다.

 

우리 아이들이 "위대한 평민"으로 아님 그냥 행복한 주민으로 살아갈 지역사회의 모습을 내 손으로 가꾸어가는 발걸음을 뗀 것만 같다.

 

너무 오버하는 건 아닌지 모르지만 참 가슴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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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5.10.28 18:39

    첫댓글 서리태님께서 이리 신경을 써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윗글의 주인공 잣나무님은 3년전 저의 소개로 저희 동네로 귀농하여 한 마을에 같이 살고 있습니다. 민주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룬 후 10여년전 단양으로 귀농하여 집도 짓고 소백산 영농조합도 운영하다 3년전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이곳으로 귀농했지요...

  • 05.10.28 18:52

    황대권씨와의 인연으로 생명평화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불교귀농학교에 생태공동체 강사로도 활동하며 나름대로 어려운 시골생활을 견디며 지금은 집을 짓고 있습니다. 딸 둘이 있는데 큰애도 홈스쿨링을 합니다. 가까이 살다보니 가끔 다투기도 합니다 ~ ^^ 지금은 서로 조용히 지내며 모든일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 작성자 05.11.07 11:13

    그랬군요..... 아직 확실히 얘기나누진 못해봐서 잘은 모르지만... 황대권님의 농사얘기는 아직 현실감이 부족한것 같기도 하고...ㅎㅎ 죄송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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