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사고로 평생 두 발로 세상을 밟을 수 없게 됐습니다.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죠.”
혈기왕성했던 스물두 살 청년에게 닥친 불의의 사고. 경기도에 있는 모 공병부대 운전병이었던 정은창(40) 씨는 군복무 중 일어난 갑작스런 사고로 허리를 다치게 됐다. 정 씨는 몸 한 가운데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겪었지만 ‘곧 괜찮아지겠지…’라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그런 그에게 의사는 평생 훨체어를 타야 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을 내렸다.
“요추 1, 2번 뼈가 완전히 부서져 이제는 일어설 수 없다고 하더군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죠. 밥도 먹지 못하고 그저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습니다. 평생의 눈물을 그때 다 쏟은 것 같네요.”
하루에 몇 번이나 자살을 생각한 정 씨의 마음을 붙든 건 그의 부모였다. 선박 기관사였던 아버지마저도 사고로 한쪽 팔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근근히 음식점을 하시던 부모님은 생업을 접고 서울로 올라와 그의 병간호에 매달렸다. 병원비는 지원됐지만 1년 넘도록 아무런 벌이가 없자 생활이 점차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는 정 씨는 “장애를 갖게 돼 이제는 직장도 다닐 수 없고, 돈도 벌기 힘들다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다”며 “부모님께 효도할 나이에 오히려 육체적·경제적으로 부담을 갖게 해 죄송했다. 그래서 더욱 좌절해서는 안 된다는 결심이 섰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였다. 서울 수도통합병원에 있었던 1년의 세월 동안 허리 수술만 두 번, 오래 누워 있는 바람에 욕창이 생겨 차가운 수술대 위에 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정 씨는 몸을 추스르고 난 뒤 재활치료를 위해 보훈병원으로 옮겼다.
“그곳에 가니 체육관에 탁구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더라고요. 휠체어를 타신 분들이 탁구를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배우게 됐죠. 그때부터 재활치료는 가지 않아도, 탁구 채는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탁구를 쳐서 생활을 꾸릴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고. 하지만 경제의 어려움이 그를 더욱 연습에 매진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가능성을 본 코치는 체육관 문열쇠를 넘겨줬다. 정 씨는 하루에 네 시간 가량 했던 연습량을 차츰 늘려 여덟 시간 넘게 탁구를 했고, 낮에 배운 기술은 밤에 혼자 복습했다. 독하게 운동한 끝에 1994 북경 장애인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첫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지 3년만의 쾌거였다.
이후 그는 승승장구했다. 대전장애인탁구협회 소속인 정씨는 제11회 시드니 장애인올림픽대회 단체전 금메달(2000), 제12회 아테네 장애인올림픽대회 남자 단식 은메달과 단체전 은메달(2004), 제13회 베이징 장애인올림픽대회 탁구 남자 단식 은메달과 단체전 금메달(2008) 등 올림픽 3회 연속 메달을 획득했다. 덕분에 지난해에는 대전시에서 주는 자랑스런 대전인상도 받았다.
‘사고를 안 당했으면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라고 가끔 생각한다는 정 씨는 “장애가 있는 덕분에 미처 몰랐던 탁구에 대한 재능도 찾았고, 국가대표 선수도 돼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처음 장애를 갖게 되면 좌절하기 쉽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겁이 난다고 도망가거나 움츠려들지 마십시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김효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