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임권택의 마스터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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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에 바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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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7 /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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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후 임권택 감독의 역사는 한국영화의 역사와 같은 길 위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감독과 평론가, 영화제 관계자 등 13인의 영화인들에게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임권택의 영화'를 꼽아달라고 청했다. 각기 다른 대답들 속에서 ’임권택‘이라는 웅장한 벽화가 그려진다.
난 계속 <장군의 아들>을 쫓고 있다 류승완 | <아라한 장풍대작전><주먹이 운다><짝패> 감독
<장군의 아들>은 고등학교 때 처음 봤는데 사실 그땐 그리 열광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지막 술집에서 박상민(김두한)과 이일재가 싸우는 장면에서는 깜짝 놀랐다. 몸이 주는 쾌감이 예사롭지 않았던 거다. 더구나 <장군의 아들>은 지금 나와 많은 영화를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한참 신인이었던 정두홍 무술감독이 참여한 영화였다. 물론 당시에는 전혀 그런 사실을 몰랐고 <테러리스트>라는 영화를 통해, 영화잡지를 통해 그를 알게 됐지만 묘한 기분이 든다. 요즘 나는 <장군의 아들>로 돌아가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장군의 아들>을 처음 봤던 고등학생이 자라 영화청년이 되고 또 영화감독이 되면서, 직업 영화감독으로 끊임없이 전이되는 과정에서, 그러니까 나 스스로 액션이 많은 영화를 찍는 감독이 되면서, <장군의 아들>이 계속 내 앞에 어른거리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드라마도 재미있다. <장군의 아들>은 운명적으로 강자로 타고난 사람의 얘기가 아니라, 강해져야 하는 사회에 태어난 청년이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더 강한 적들과 상대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왜 <장군의 아들>이 계속 다시 생각나는 걸까? ‘액션은 감정이다, 정서다’ 그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 지점에서 <장군의 아들>이 주는 묘한 정서들이 있다. <장군의 아들>이 좋았던 건 ‘협객 김두한’ 유의 이전 영화들과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것이다. 김두한이 자신을 둘러싼 체제와 사회에 저항하긴 하지만 결국 승자의 느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영화가 끝날 때도 여전히 불완전한 청년의 이미지로 남고 또한 쫓기는 이미지로 1편을 마무리한다. 그렇게 폭력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의 운명을 장르적으로 보여주는 매력이 있었다. <장군의 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하게 되는 임권택 감독님의 작품이자, 나에게는 여전히 뛰어넘어야 할 큰 산이다.
시대의 진실을 직시하는 <길소뜸> 달시 파켓ㅣ'버라이어티' 한국 통신원
임권택 감독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시대극보다, 내 기억 속에 강하게 자리 잡은 영화는 평범한 시대를 고스란히 담아낸 영화 <길소뜸>이다. 이 영화를 접한 관객은 인물들의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빛바랜 필름의 화질, 한자 오프닝을 통해 이 영화가 꽤 오래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걸 금세 알아챌 것이다. 1997년부터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살아오면서 늘 1980년대 한국이 궁금했다. 80년대 한국영화들을 접할 때면 늘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영화 속 이야기들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으며, 그 시대에 대해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를 자문하게 된다. <길소뜸>의 몇몇 장소들은 내 눈에도 낯익었지만 어쩐지 그것은 타국의 정취를 자아낸다. 촬영과 편집의 세련된 정밀함이 돋보이는 <길소뜸>은 시대의 냉혹함을 대하는 정직함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영화 속 로맨틱한 관념이나 가족, 혈연주의는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해진 전쟁과 분단의 냉혹한 현실을 외면하게 하지 않는다.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은 단순하고 진실한 이야기 속에서 무엇이 사람들을 서로 보듬게 하고 때론 밀쳐내게 하는지에 대한 보편적인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놀랍도록 현대적인 <취화선> 정윤철 | <말아톤><좋지아니한가> 감독
장승업의 삶과 예술을 담아낸 <취화선>은 '<서편제>-><취화선>-><천년학>'으로 이어지는 예술가 3부작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서편제>와 <천년학>이 ‘소리’라는 공통점이 있다면 <취화선>은 ‘그림’인데, 얼핏 비주얼의 예술인 그림이 영화에 더 적합한 소재여서 만들기 쉬웠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라 할 수 있다. 음악가를 다룬 영화들은 많지만(<아마데우스> <파리넬리> <샤인> <레이> 등), 화가를 다룬 영화들은 훨씬 적을 뿐더러 대중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림 그리기란 아무리 재주를 피워 앵글을 잡아도 드라마틱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러나 <취화선>은 이런 우려를 당당히 넘어선다. 생생한 캐릭터와 드라마틱한 장승업의 인생역정뿐 아니라 임권택 감독이 영화를 풀어나가는 독창적 서술방식이 그 어떤 영화보다 빛났던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편집이 거칠고 툭툭 이어 붙인 듯 매끄럽지 않아 보인다. 하나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3차원 세계를 2차원의 캔버스 위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 영화는 장승업의 인생과 예술을 다각도로 펼쳐 보여준다. 결국 영화를 보는 동안엔 다소 거칠고 맥락이 점프하는 느낌이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관객의 머릿속에서 영화가 마법처럼 최종 편집되며 놀라운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노장 감독이 구사한, 놀랍도록 현대적인 서사구조. 칸국제영화제가 결코 오리엔탈리즘에 경도돼 상을 준 건 아니었다.
생생한 캐릭터의 절정 <티켓> 변영주 | <밀애><발레교습소> 감독
<티켓>은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로 가득 차 있다. 김지미, 안소영 모두 멋진 연기를 보여준다. 강원도 항구도시의 티켓다방을 배경으로, 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이 어찌어찌 구시렁구시렁 살아간다는 내용도 좋다. 임권택 감독님에 대해서는 <만다라>를 보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티켓>에서 큰 인상을 받았다. <티켓>뿐 아니라 <짝코> <만다라> <씨받이> 등 임권택 감독과 송길한 작가가 협력한 영화들은 모두 보석처럼 빛나는 작품들이다. 암울했던 80년대, 그 영화들은 바로 한국영화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임권택 감독님 영화들 중에서 한 편을 꼽으라면 단연 <티켓>이고, 함께 작업했던 배우들 중에서 한 명을 꼽으라면 방희라는 배우에 대해서 강조하고 싶다. <신궁> <짝코> <만다라> <오염된 자식들> <불의 딸> <씨받이> 등 방희는 임권택 영화에서 감히 최은희, 김지미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던 배우라 말하고 싶다.
80년대 베스트 <길소뜸> 양성희 |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길소뜸>은 시대와 개인, 역사와 개인의 관계를 그린 역작이다. 임권택 감독님의 베스트일 뿐 아니라 80년대를 통틀어도 한국영화의 베스트로 꼽을 수 있다. 분단과 이산을 소재로 한 가장 리얼한 영화이자, 그런 의미에서 가장 한국적인 임권택 영화이기도 하다. 1983년 KBS가 연출한 민족주의적 이벤트 '이산가족 찾기'의 '감동'을 리얼리스트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집단적 흥분감을 가라앉히고 이처럼 냉정하게 분단의 현실을 직시한 영화도 드물었다. <길소뜸>은 내게 언제나 80년대(1986년 개봉)라는 시대적 공기를 일깨우는 영화다. 아마도 80년대 한국영화가 건져 올린 최고의 영화적 수확이기도 할 것이다. 김지미, 신성일의 건조하고 절제된 연기도 잊히지 않는다. 신파의 정반대에서 신파보다 더한 울림으로 남은 영화다.
초등학교 단체관람의 추억 <아벤고 공수군단> 이상용 | 영화평론가.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내가 기억하는 세 편의 임권택 영화가 있다.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처음으로 본 것은 <아벤고 공수군단>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단체관람으로 본, 반공영화로 기억된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당대 최고의 글래머 여배우였던 정윤희가 옷을 벗고 뒷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그날의 사건이 일어났다. 극장에서 갑자기 화면을 어둡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불 좀 켜요!”라는 초등학생들의 외침이 극장 안에 울려 퍼졌지만 허사였다. 기회가 된다면 정말 환하게 하고 볼 장면이었는지 확인하고 싶다. <만다라>는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진지하게 대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버스에서 주인공들이 내리는 초반 장면부터 황량함과 엄밀함이 엄습해온다. 이후 많은 영화들에서 이 영화의 첫 장면은 반복된다. 길 위의 사람들, 길 위의 구도자들. 성과 속을 오고가는 <만다라>의 세계는 여타의 한국영화 감독들이 잘 다루지 않던 세계이기도 하고, 80년대를 넘어서 90년대 꽃피기 시작한 한국영화의 미래를 예비하는 길을 안내해준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외국영화를 잘 보시지 않던 아버지는 유독 <장군의 아들> 비디오만큼은 여러 번 대여해 보셨다. 덕분에 여러 번 보게 된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가 바로 <장군의 아들>이다. 하나의 테이크로 연출된 여러 액션 장면들의 백미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김두한을 영웅으로 떠받들지 않으면서 정서적인 흡입력을 발휘하는 솜씨는 이전 '다찌마리'(영화 속 액션 장면) 영화들과는 차별되는 것이었다. 다시 볼수록, 임권택 감독님이 요리한 장르의 폭이 넓고 깊다는 생각을 절감하게 만드는 영화다.
기점이 된 <만다라>와 <안개마을> 임순례 | <세친구><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감독
<만다라> 이후 임권택 감독님 영화들은 모두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만다라>를 기점으로 감독님 영화의 틀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현대사나 전통문화 등의 소재에서 작가적인 기점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영화사에서도 8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작가적 혹은 예술적 흐름 속에 방점을 찍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 영화들은 거의 다 좋아하지만 그중 꼽자면 <안개마을>이다. <만다라>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은데 둘 다 원작이 탄탄한 작품들이다. 사실 70년대에도 문예영화라고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시도들이 성행했지만, 임권택 감독님은 기존 소설의 서사나 구조만 가져오지 않고 그 부분을 영화적으로 확장시킨 경우라고 생각한다. 또 처음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최근 우연히 케이블 TV에서 <노는 계집 창>을 다시 보게 되면서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는 등장인물들의 깊이나 사는 모습들에 그렇게 극단으로 들어갔다는 생각을 못 했었는데, 다시 보니 감독님이 정말 깊이 들어가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과는 사실 개인적 사연도 있다.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1992년 돌아왔을 때 임권택 감독님 연출부를 하고 싶었다. 그때가 <장군의 아들>을 찍고 있던 시기였다. 차기 작품으로 <태백산맥>을 한다고 하셔서 원작 전권을 열심히 읽으면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서편제>를 먼저 하시게 되면서 합류하지 못하게 됐다. 지금도 건너 건너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춘향뎐>의 90년대적 성취, 그리고 다시 보는 <하류인생> 허문영 | 영화평론가
내가 좋아하는 3편의 임권택 감독님 영화가 있다. <짝코>는 몇 번을 봐도 심금을 울린다. 두 늙은이가 버스를 타고 마지막 여정에 나서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분단을 소재로 한 젊은 감독의 어떤 영화도 미치지 못한, 아득하고 아득한 연민의 영화다. <개벽>의 경우 극장에서 놓쳤다가 TV로 방영되는 걸 보고 홀리듯 빠져들었다. 임권택 감독님 스스로는 충분히 만족해하지 않지만 내겐 풍경화가 초상화로 전이되는 기적 같은 체험을 선사한 보석 같은 영화다. 그리고 <춘향뎐>을 빼고는 1990년대 한국영화의 미학적 성취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혁신적이면서 완벽한 조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임권택 미학의 극치다. 여기에 딱 하나만 더한다면 <하류인생>이다. 어떤 감상성도 배제한 한없이 엄격하고 더없이 냉정한 이 걸출한 영화적 초상이 더 많이 조명되지 않은 것은 안타깝다.
절경 속 문제적 인간들 <개벽>, 그리고 <춘향뎐> 강한섭 |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교수
지난 세기에는 이덕화 아저씨가 해월 최시형으로 나오는 <개벽>을 좋아했다. 1991년의 비망록에 그해 한국영화 베스트 1위로 꼽을 정도로. 동학혁명과 한울님 사상이라는 심각한 소재를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서사로 풀어나간 솜씨에 반했다. 그리고 감독의 문제적 주인공들이 항상 그렇듯이 '지나치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 스며 있다. 현실의 잔혹함과 자연의 아름다움. 이 작품에 대한 갈망으로 DVD 소재를 수소문했지만 실패했다. 어떻게 다시 볼 수 있는지 알려 달라. 그러나 요즘 시대에는 <춘향뎐>에 푹 빠졌다. 우리의 이야기와 영상 그리고 인물-사건의 리듬이 어우러져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그래서 지금도 내 정체성이 의심스러울 때 가끔 본다. 볼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든다.
인본을 담아낸 연륜의 영화 <만다라> 배장수 | 스포츠칸 선임기자
내게는 한 편의 시와 한 편의 영화가 있다. '가지 않은 길'과 <만다라>다. 프루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상상의 동반자라면 <만다라>는 현실의 반려자다. '가지 않은 길'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만다라>는 걸어온, 가고 있는, 언제 어떤 길을 택하든 어떻든 잘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한 각오를 다지게 한다. <만다라>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들은 스님이지만 보통 사람이기도 하다.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 사람들이다. 내가 본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 대부분이 그렇듯 <만다라> 역시 극적인 상황보다 사람이 한층 돋보였다. 인본(人本)을 담은 임 감독의 후기 영화 가운데 그 으뜸에 손꼽힌다. <만다라>는 또 후배들에게 '가장 젊은 감독'으로 손꼽히는 영상미학의 실험성과 완성도에서도 으뜸에 든다. 일례로 이른바 '청각의 미학'을 보여준 <서편제>도 <만다라>에서 관념적인 대사와 수려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접목시킨 데서 비롯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거장의 천의무봉한 솜씨 <천년학> 안정숙 |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역시 <천년학>이다. 복잡한 이야기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낸 솜씨가 바느질한 흔적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정교해 과연 ‘천의무봉’이구나 하고 느꼈다. 설명이 필요 없이 빠져드는 영화음악만으로도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랄까. 특히 여러 인물들의 사랑과 감정을 풀어내는 탁월한 연출력은 '거장'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 지금까지 늘 임권택 감독님 최고의 작품을 <서편제>로 꼽았었는데 이를 뛰어넘는 더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건 관객으로서 영화인으로서 가슴 가득한 행복이다. 우리 관객, 특히 젊은 관객들이 나와 같은 이런 즐거움을, 행복을 함께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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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최고의 감독님의 최고의 작품, 국내 최고 시리즈물의 주인공이네요. 바로 오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