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에 모든 짐을 관광차에 다 싣고 부다 지역에 있는 "우짜이 교회", 또 다른 이름의 "빛과 소금"의 교회에 30분쯤 걸려서 가다. 뒷 정원에 천막으로 친 교회가 있는데 사람들이 많아 앞 정원에 의자들을 놓고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고 한다.
헝가리에 한국인을 위한 교회가 다섯 개가 있는데 이 교회는 헝가리 집시들을 위한 교회로 담배를 피우고 냄새가 나는 참으로 어려운 목회를 하는 선교사님의 모습이 감동이 되었다. 비교적 젊고 단정한 세 사람의 헝가리인들이 나와 찬양을 인도하고 있었고 온 지 두 달밖에 안 된 젊은 선교사부부가 두 어린 딸들과 왔고 그의 아내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김홍근 목사님이 현지 언어로 설교를 했고 그 냄새나는 사람들을 껴안고 볼을 맞대고 인사를 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나중에 헝가리를 위해 통성기도를 하는데 잔디밭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맨 나중에는 헝가리 국가를 부르고 젊은 선교사 목사님이 축도하고 예배를 마쳤다.
헝가리 국가는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한다. 정 회장님의 남동생이 잔뜩 준 약을 나누어 주느라고 고생을 하고 헝가리식의 슈트를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일주일에 다섯 번을 그렇게 급식을 하는데 서 사모님이 끓인다고 한다.
화장실이 만원이라 이층에 올라갔는데 그곳의 화장실에도 불이 안 들어오고 물도 안 나와 목욕탕 물을 부어야 했다. 그곳은 부다 지역으로 좋은 동네 지역이고 집도 크고 정원도 크고 좋은 집인데 잘 가꾸지를 못한 것 같다.
우리 일행 한의사가 목사님 아버지가 일하시다가 넘어져 다치셨는데 침을 놓아 드렸다. 사람들이 약을 타가고 또 계속 타간다. 공짜근성으로 그렇게 하지만 어디에 어떻게 먹는지를 알고 그렇게 하는 것일까? 미리 약에 무슨 내용인지 쓰고 서 사모님에게 드리는 것이 나았을 것을 …
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을까? 사랑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선교사님 부부가 참 훌륭하고 불쌍하고 존경스럽다. 12시 30분에 교회를 떠나 헝가리 식 식사를 하고 1시 40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출발하였다. 차 속에서 요한스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듣기도하고 모차르트의 생애를 영화로 보았는데 너무나 비참하여 마음이 아팠다.
6세부터 궁중에서 연주를 했던 천재 모차르트는 말년을 가난하고 암울하게 보냈고 짧은 생애 동안에 1200곡을 작곡하였고, 일찍 죽자 아내가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갔고 두 아들도 다 죽어 후손이 끊어졌고 프리메이슨 단체의 회원이었다. 죽고 난 후 100년이 지나서야 그를 재평가하게 되어 오늘에는 존경받는 위대한 음악가가 되었다.
4시 30분 국경을 통과하여 5시 30분에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시내를 관광했다. 오늘밤에는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음악회를 가기로 하고 50불씩 돈을 내었는데 표가 예약이 되지 않았고 지금 사려면 750유로를 내야 하고 가이드도 가야하니 100불을 각자가 더 내야 한다고 해서 안 가기로 하고 저녁식사 후에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다.
이곳에 나온 가이드는 미렉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했고 결혼해서 자녀가 둘이나 되는 심리학을 공부하는 학자로써 차 속에서도 쉴 사이 없이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는 박식한 사람이었다. 버스가 달릴 때에는 잠깐 비가 오다가 우리가 거리로 나올 때는 화창한 황제날씨로 매일 새벽에 좋은 날씨를 주시라고 기도했는데 정말로 화창하고 좋은 날씨를 계속 주셨다.
동 유럽의 4월의 날씨는 너무나 변덕이 심해서 “너 꼭 4월 같다."고 하면 변덕이 심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예측을 불허하는 4월인데 이렇게 좋은 날씨는 황제날씨로 이런 주말에는 사람들이 절대로 집에 있지 않고 다 어디론가 나간다고 한다.
연합국 4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쏘련)이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나치에서 해방시켰는데 쏘련 해방군 병사의 동상을 세우고 그 동상이 손상되면 오스트리아에서 경비를 내어 잘 보수하기로 약속을 하였다고 한다.
“너 나치 아니냐?”라는 말을 제일 싫어하고 오스트리아가 어쩔 수없이 나치에 협력하였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하지만 그러나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사람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오스트리아는 경제 강국으로 GNP가 세계 15위고 유럽에서는 3위, 33,000불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를 다 표방하고 중간노선을 걸으려고 노력하고 세계 각국에서 자유롭게 방문하도록 허락해서 비엔나에서 신상옥, 최은희가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보다 북한과 더 가까운 사이였는데 지금은 우리나라의 경제가 발달하였고 우리나라의 지하철을 오스트리아 기술자가 와서 뚫어주고 쓰레기 소각장 기술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는 공과대학이 유명하고 신 오스트리아 공법으로 지하철 기술이 세계에서 최고이고 기계, 자동차 부품을 세계로 수출하고 수력발전 기술이 발달해서 전기기차를 교통수단으로 많이 사용하고 동과 서 유럽으로 뚫어진 국제 기차역이 있고 특산품으로 크리스탈과 양모 등이 있다고 한다.
과거에 그 좋은 기술로 북한을 도와 땅굴을 파기도 했었다. 지하철역이 1, 2, 3, 4, 6호 선이 있고 5호선이 없는데 과거에 이차대전 당시에 이곳의 자랑인 잠수함이 영국의 5자가 들어간 함대에게 혼났기 때문에 5자를 싫어하는 징크스가 있는데 한국이 4자를 미국이 13자를 싫어하는 것과도 같다.
비엔나 국기는 빨간색, 하얀색, 빨간색으로 전차가 빨간 색과 하얀색으로 되어있고 100년의 전차역사를 가지고 있고 전기로 운영한다. 주일에는 모든 상점들이 문을 안 열고 오후 6시가 되면 상사는 혹 일을 해도 직원들은 칼같이 퇴근해서 가족과 같이 지내고 여름에는 오스트리아 인구가 바뀐다고 한다.
모두 다 여행을 떠나고 또 이곳에는 타 지역 관광객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온 높은 정치인과 이곳의 국회의원과의 약속을 토요일 오후에 있어서 통역으로 갔는데 이곳의 국회의원이 혼자서 직접 커피를 타주고 영접하고 담화를 하였는데 돕는 직원이 없어서 놀랐다고 하며 그것이 진정한 참다운 권위라고 이야기하는데 참 감명이 깊었다.
파리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오스트리아에 와서 보고 파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었는데 “기가 죽는다.”라고 했다고 하며 유명한 아이스크림 사장에게 한국의 기업가가 한국에 와서 장사를 하면 돈을 많이 벌게 해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사절하고 가족과 여행하는 것을 더 즐길 정도로 돈보다 삶의 질을 더 중하게 여기는 오스트리아인들이라고 하고 오후 6시에는 상점들이 거의 문을 닫기 때문에 물건들을 살 수가 없다고 한다.
관광수입은 국민 총 수임의 10%이고 646년이 넘는 단일민족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함스브르크의 화려한 역사와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고 잘 보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럽 도시에는 두 가지의 행정이 있는데 역사적인 구 시가지를 잘 보전하고 끊임없이 신 시가지를 잘 개발하여 골고루 평준화하려는 노력이다.
옛날 시가지는 1000년이 넘는 웅장하고 화려한 역사적인 성당들이 있는데 잘 보전하도록 노력하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신 시가지에는 길을 넓히고 큰 호텔들을 짓고 잘 개발하여 발전시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전 국토의 40%를 나라가 소유하고 있고 지금도 계속 나라가 땅을 사들이고 있다고 한다. 나라가 소유한 땅에 서민아파트를 짓고 시가 관리하고 국민들이 싼 값에 임대하여 자녀들에게 물려주기까지 영구히 살게도 해주고 절대로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지 못하게 한다고 하니 너무나 부럽다.
땅값이 10년, 20년 전이나 똑같고 안정되어 있는데 폴란드나 헝가리는 땅값이 무섭게 뛰고 있고 그 나라들은 2009년에는 유럽연합에 들어가야 하는데 오스트리아는 이미 가입하여 지금 유로를 쓰고 있다.
사회 복지를 제일 우선으로 하고 세금이 많지만 그러나 의료 보험과 노후 보장이 너무나 잘 되어 있어서 걱정 없이 안락하게 즐기며 살고 세금을 포탈하면 아주 망하기 때문에 모두가 정직하게 살게 된다고 한다.
한국 동포는 2000명 정도 살고 있고 1400명은 유학생들이고 나머지 600명은 무역, 음식점, 의사, 식품점, 관광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모든 국민은 수입의 1%를 종교세로 내고 캐톨릭과 개신교 국가로 목사와 신부는 나라에서 월급을 받지만, 이곳의 한국 교회들은 등록이 안 되어 받을 수가 없고, 사람들이 교회는 안 가면서도 “나는 기독교인이다”라고 생각하고 부활절, 성탄절을 제일 큰 명절로 여기고 온 가족이 다 모인다고 한다.
유럽을 받치는 큰 두 개의 기둥이 있는데 기독교 문화와 헬라 문화로 75%는 카톨릭이고 6%는 개신교이고 동방교, 유대교 등이 있는데 유대교는 소수나 경제적 능력이 대단하고 비엔나의 유대인 60만 명이 많은 재산을 다 빼앗기고 학살당했다고 한다.
비엔나에는 모든 것이 한자리에 다 있는 종합 대형마트가 없고 전문매장이 있어서 운동, 전기, 가구, 식료품 등, 자기 고유영역이 있어서 그것을 보호하고 지키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