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기대 없었는데, 코난 회사에서 제공하는 제주 숙소에 당첨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름 휴가
001 제주 '물고기 카페', 저녁 8시
숙소에 여장을 풀고, 흑돼지구이부터 쎄게 달리고
코난이 우연찮게 발견한 카페로 몰려가서, 더위와 포만감을 달랬다
오래된 물건들
선풍기
누군가가 찍은 사진
바다가 흐릿하게 보이는 작은 방
마산 가족들의 옛 이야기들,
말이 빠르고 사투리가 경주랑은 또 달라, 나는 문맥을 자주 놓친다
식구가 많아, 어느 여행지에 누가누가 갔던가 누가누가 빠졌던가 헷갈려들 하신다
나는 어렴풋이 듣기만 했던 이야기인데
또 몇해가 지나면, 다른 여행지에서 제주 여행을 떠올리며,
"재영이는 밥은 되게 쪼끔 먹는데 흑돼지구이는 되게되게 많이 먹더라" 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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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제주 '물고기 카페', 오후 3시
여행의 둘째날,
아침에 마라도에 갔다가, 더위와 여객선의 출렁임에 다들 조금 예민해졌다
다만, 함께 여객선을 타고 한국의 최남단에 다녀왔음을 조용히 기념
제주도로 돌아와, 은갈치 구이와 조림을 배불리 먹고, 다시 물고기 카페에 갔다
점원들도 웃으며 "또 오셨네요!" 한다
카페 구석구석, 하루치의 익숙함, 낮 풍경은 또 이렇구나
이 카페, 참 조으다
다음에, 또 올게요 :-)
제주에서 나와, 지역을 옮겨 가며 여러 가족들과 만나고, 맛있는 걸 참 많이 먹었다
그리곤 경주에서부터, 7번 국도를 타고 고성이 어딘지도 모르고 바다가 보이는 펜션, 이미지 컷에 덜컥 예약을 해버린
숙소를 향해 지겹도록 올라간다
졸음과 폭염 땜에 코난 정신줄이 집을 나가려고 한다
중간에 동해의 한 한적한 카페에서 친구 만나 아이스커피로 코난 정신줄을 좀 잡아당기고, 다시
동해 위에 강릉, 강릉 위에 양양, 양양 위에 속초, 속초 위에 고성 이러다 북한까지 가겠네
힘들게, 드디어!! 고성군 봉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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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숙소 1층 카페테라스
직원이 커피 한잔 드릴까요? 한다
끄덕끄덕
에어콘 덕에 시원한 실내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 달리고, 문을 열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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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봉포 해수욕장, 폴짝폴짝
되게, 조용한 해수욕장이다
뉴스 보면, 해운대랑 경포대는 어마어마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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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봉포 앞바다가 보이는 테라스
우리가 예약해놓고도 우리 방이 몇 층인지도 몰랐다
와서 보니, 3층이다
그래서 방에서 바라보면, 테라스 너머 해변없이 곧장 바다가 보인다
바닷물이 밀려 들어올 것 같다
호퍼의 Rooms by the sea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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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untitled" (엎어진 그냥이)
파도 소리, 아침 태양의 눈부심,
눈 부비며 일어났더니
음 ...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를 떠올린다
집에서 데려온 그냥이가 엎어져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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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속초 '카페 일요일들', 오후 2시
며칠째 너무 잘 먹고,
여행 중엔 이상하게 화장실 가는 주기도 많이 늘어져서, 배가 한없이 무겁다 (ㅂㄲㅂㄲ)
점심은 좀 가뿐하게 국수가 먹고 싶다, 했는데
봉포리에서 속초시내로 쉬엄쉬엄 움직이다 보니, 마침 국수가게가 보인다
맛있게 후루룩 말아먹고, 속초 '카페 일요일들'
손님이 우리 밖에 없네,
조용하고, 아늑하다
커튼 사이로 보이는 속초의 작고 컬러풀한 건물들, 쨍한 하늘
편안한 음악이 흘러나왔던 것 같다
느슨하게 늘어져서, 우미갈 한줄메모, 아키리와 서기 두사람 특별히 생각해둔곳 없이 그저 여행중이겠거니 싶어
어디냐 물으니 장호항이란다
우리는 봉포리라고, 올라오겠느냐 했더니,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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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DVD title : WALL-E
숙소 구조가 묘해서, 동선은 불편하지만 친구들과 파티하긴 좋은 구조다
침실보다 큰 DVD룸, 판판하고 긴 소파(아키리와 서기가 각각 발을 마주하고도 일자로 누울수 있을 만큼 긴 :-)
해수욕을 하고 싶다고 했던 것 같은데, 두 비밀 투숙객은 방에 들어오더니, 일단 씻고, 먹고, 걍 DVD를 보겠단다
김밥, 떡볶이, 튀김, 치킨, 피자 + 콜라와 맥주 실컷 먹고
숙소 DVD 리스트가 씨네큐브 급이라, 만만하고 화끈하고 시원한 여름용 액션은 없다
고민 끝에, WALL-E
아, 되게 귀엽고, 잼있네ㅡ
밤바다, 누군가가 터트리는 폭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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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여행의 마지막 날 약간 흐린 아침, 안뇽 바다ㅡ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양구에 들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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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양구 박수근 미술관 가는길
전엔 없었던 것 같은데,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금속, 박수근의 드로잉을 따라 쇳물이 흐르니, 온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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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 박수근 미술관
몇해전 여름에 우미갈 식구들과 왔었는데,
서기 말로는 그때 비가 왔었단다
몇해전보다 짜임새가 좋아보인다, 2관도 보이고 기증 받은 작품이 늘었다
종이를 아끼느라 지우개질을 반복하며, 꼭꼭 눌러 그린 연필 드로잉이 주는 감동은 여전히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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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춘천 MBC 1층 '카페 R. MUTT 1917'
중국에서 파견 근무 중에 한국으로 휴가 나온 우미갈이, 춘천 닭갈비 먹고 싶단다
웃었다
언젠가 코난이 마라톤 참여차 춘천 와서 닭갈비를 시켰더니, 1인분은 안판다 했단다
해서, 언젠가 꼭 함께 춘천 가서 닭갈비를 사줘야겠다 생각했었는데,
마침 서기가 먼저 먹고 싶다하니, 잘 되었다 싶었다
결과적으로 양구에서 춘천까지 애써 찾아간 닭갈비집은 일주일간의 여행 중 유일하게 실패한 식당이 되었지만 ㅠ
(서기, 담엔 범계에서 닭갈비 먹자, 범계가 원래 맛있는 닭집이 많음 :-)
닭갈비 후엔, 미루에게 전해 들은 카페 알. 뮤트에서 휴식
좀 소란스럽고, 분위기가 애매해서 아쉬웠지만,
카페 이름이 뒤샹의 샘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이었고,
그냥이 사이즈에 딱맞는 양변기 모양의 냅킨꽂이 땜에 많이 웃었다 :-)
등등등
예전 나에게 여행은, 무언가를 보러가는 것이었는데,
요즘 나에게 여행은, 함께 다니는 것이 되었다.
함께,
즐겁고, 기쁘고, 무겁고, 아쉽고, 안타깝고, 뜨겁고, 모기와 습기, 신경질, 배려, 반가움, 설레임, 피로
@#$%^&*(^%$#%^&*
말로 뱉어지지 않는 생경하고 특별한, 순간들ㅡ
첫댓글 6번 보고 빵 터졌어요..ㅋㅋㅋㅋ
ㅋㅎㅎ 그러고보니럽켓님도울집그냥이랑같은동족(?)이시네요, 담에그냥이보면아는체해주세요 :-)
이쁜 여행기~ 재미있어요.^^
문득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 떠오르네요..
돌이켜보면 순간순간 소중하나, 막상 현장에선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한, 보통의 여행인데, 여여님이 여행기 잼있다니, 한칸더 소중한 기억이 됩니다 :-)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예술 혹은 아름다움에 대한 언급이 인상적이라 밑줄을 많이 그었었어요.
여정도 좋고..사진도 좋고...... 보고있는 내내 흥얼거림하고 있네요.... ^^
저도디아인님따라, 흥얼흥얼거려보지만, 음치라서실패 >_<
걍눈감고그바다를다시떠올려봅니다 :-)
부러워요, 취미가 같은 사람하고 같이 살면서 여행도 다니고 미술관도 같이 다니고,..
아름다운 한쌍입니다.^^
다들 그런 말씀들 해주셔서 검사합니다. 취미는 같으나 취향은 다르답니다 ㅠ_ㅜ ㅋㅎㅎ
와~ 남해에서 동해 그리고 화천까지,, 그 놀라운 체력에 박수를 ^^ ;; 물고기카페, 봉포해수욕장, 펠릭스 그리고 월리 참 좋네요~ 즉흥여행같기도, 잘 짜여진 각본같기도 한, 매우 달리는 여행 부럽다는~~
예~ 휴님!! 달린 건 저만 아니고 제 차도 달리느라 수고했던 여행이람니다! 휴간 다녀오셨나요?
내일부터 저도 신나게 달립니다~~
옆에있는사람이 '부럽다부럽다부럽다' 를연발합니다
에어콘근처루해서설치류한마리더태워서달리시면어때요?!?! ㅋㅎㅎ
사랑과환상의여름휴가, 고고씽!! 다녀와서이야기전해주시길!!
저두 어젯밤 여행을 끝내고.. ^^ 지금은 이 글을 읽으며 흐믓..누군가와 여행을 한다는건 일상보다 곱절 밀착호흡 하는거 같아요. 24시간 차에서나 한 방같은공간에 붙어서 ..여러가지 걸 나누어서 저두 셋이서 공평하고 뜨겁게 불평하다 웃다가 비밀얘기 하다가..그랬어요
사소님의 통영얘기 잘보았습니다! 혼자가 아닌 여행은 서로의 호흡을 맟춰보는 좋은 시간이라 느낍니다. 같이 있으되 움직임이나 시간이 서로 상대적이니까요!! 그래서 여행은 좋은 가르침이기도 한 거 같아요!
제 신랑에게 두 분의 페이지를 강요하듯 보여 주며 뭔가를 느끼길 소원 했지요..헌데 "이 더위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다 이상한 사람이야."라는 말로 제 눈을 혹사 시켰어요. 신랑을 흘겨 보느라ㅋ...한참 흘김을 당한 신랑이 조금 뒤 지나가듯 얘기합니다. 연말에 한가해 지니 연말에 놀러가자고..이 뜨거운 날, 행복한 두 분의 페이지가 어느 부부에게도 잠시 행복을 주었다는거 아시나요? ㅎㅎ
저두 부군의 일침이 전혀 틀린 얘기가 아니라 생각해요! 영화관 가는 길에 바깥을 둘러보니 동아댕기는 이는 없어요 ㅠ 다만 영화관 안이 인산인해라는 ㅠ 그렇다고 너므 집에만 있음 머리 아프니 가까운 곳으로 산책 댕기세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피운 여운이 남는 여행이었군요..^^
탁 트인 테라스에서 바닷가를 바라볼수있는 운치에 저도모르게..짱이다~!!를 연발했네요~ㅎㅎ
춘천여행시 알뮤트는 벗꽃길에 호반끼고 사브작 거리며 갔던길도 느낌이 좋았던 기억이있네요..^^
물론 대학로초입에 갈비집서 갈비1인분 당당하게 시켜 먹어주는 당당함도 필요했고요..^^
홍얼거리셨던 여행길의 에필로그를 잘보았어요~^^
두 분 여행 부러워요.
봉포 앞바다가 보이는 테라스 ... 저 까페가 특히 맘에 드네요. 저 펜션이름이 몬가요? 나두 나중에 가게... ㅎ^^ㅎ
http://www.sunrise-house.com/
[해맞이하우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봉포리 2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