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향에 취해 아흔아홉구비길을 돌며 걷는 대관령옛길
글/사진:이종원
대관령 옛길은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고 민초들의 애환과 사연까지 쌓여 있어 사람 내음이 물씬 묻어있었다. 할머니의 손잔등처럼 매운내가 나고 태백산맥 자락에서 대대로 살아온 백성들의 핏대마냥 힘이 서려 있었다. 적절한 경사와 시원스런 시야 덕에 길은 어머니의 품안처럼 포근하다.
옛 대관령휴게소에서 국사성황당까지 3가지 길이 있다. 그 중에서 솔향길을 밟는 것이 가장 싱그럽다. 다소 돌아가는 길이지만 조용하고 호젓하며 오르내리는 경사도 완만해 걷기에 그만이다.
지금(5/19) 한창 야생화가 활찍 피어 있어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진다.
얼레지는 봄의 여왕인 것 같았다. 수술은 클레오파트라의 눈썹이며 꽃잎에 새겨진 문양은 연분홍 입술자국이었다.
보라색 빵빠레가 20개가 붙어있는 현호색. 줄기를 진통제 약재로 쓴다고 한다.
양떼목장까지 펼쳐지니 굳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먼발치서 목가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목장의 철책선을 따라가면 선자령등산로가 이어지고 우측 샛길로 꺾어지면 국사성황당이 나온다.
(사진:범일국사 영정...마부의 표정이 날카롭다.)
국사성황당은 범일국사를, 산신각은 김유신장군을 모시고 있다. 2005년 유네스코에 의해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선정된 강릉단오제는 국사성황당에서 대관령신들을 불러들이면서 그 화려한 막이 올라간다.
성황당 뒷편으로 신목들이 자라고 있다. 무녀들이 손을 대면 유난히 흔들리는 나무가 있다고 한다. 그걸 잘라서 여성낭신에게 바친다. 어찌보면 이 신목은 남근으로 이해하면 된다. 삼척의 해신당처럼 남근사상이 가미되지 않았나 싶다.
(사진: 산신각에 모셔진 김유신 위패)
대관령성황당에서 서낭신을 모셔 강릉시내 강릉정씨 여성낭신과 함께 제사를 드리는 의식이 단오제의 주테마인데 어찌 보면 신들의 합방의식을 통해 자손 번창을 기원했는지 모른다. 백두대간 등뼈를 차지한 대관령에서 북쪽으로 맥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환웅이 곰을 만났다는 백두산에 닿는다. 그렇다면 단오는 한민족의 정신의 근간인 단군신화의 변형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중국이 단오는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데~~이런 정신과 근간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음력 4월 보름이 되면 대관령옛길은 성황신을 모시러 가는 행차로 긴 행렬을 이룬다. 나팔과 태평소, 북, 장고를 든 창우패들이 분위기를 만들고, 호장, 무당패들이 그 뒤를 따르며 수백명의 마을사람들이 제물을 진 채 고개를 향해 걸어 올라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사진: 김홍도의 그림 대관령. 옛길과 경포대가 보인다.)
국사성황당에서 80m쯤 올라가면 백두대간 주능선이 나온다. 지금이야 한국인들은 동남아, 유럽은 물론 세계일주까지 지구 전체를 누비고 있지만 불과 100년전까지 조선의 선비들의 유일한 염원은 금강산과 관동팔경의 유람이었다. 그들은 고개를 넘으면서 어떤 신세계가 펼쳐질지 기대와 설렘으로 동해를 마주했을 것이다.
길은 봅슬레이길처럼 U자형으로 패어 있고 창자처럼 굽어 있다. 발자국이 모여 만들어진 길이였기에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고 민초들의 애환과 사연까지 쌓여 있어 사람 내음이 물씬 묻어있었다.
(사진:피나물 군락이 길 양편에~)
강릉사람들은 대관령을 '대굴령'이라 칭했다. '대굴대굴 굴러가며 오르내렸던 고개'란 뜻으로 그런 급경사를 옛사람들은 '갈之'자의 길로 바꾸면서 느림과 여유를 즐기게 했다. 봄이면 노란 피나물, 가을이면 구절초가 나그네의 벗이 된다. 1917년 8월 신작로가 놓이면서 옛길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뻥 뚫린 신작로를 바라보는 봇짐장수는 차마고도를 빼앗긴 마방의 심정이 아닐까 깊다.
‘새가 다닐 험한 길은 하늘에 걸렸고, 이 길을 가는 나도 반공중을 걷고 있네.’ 길에는 만난한원진의 시를 음미하면서 동해를 바라보는 맛이 그윽하다. 끊어질 만한데 산전수전 다 겪은 노선장처럼 독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길은 할머니의 손잔등처럼 매운내가 나고 태백산맥 자락에서 대대로 살아온 백성들의 핏대마냥 힘이 서려 있었다. 다시 구절양장 속으로 들어간다. 과거 길에 오른 선비가 곶감 100개를 사서 고갯길을 넘으면서 한 굽이씩 돌 때마다 하나씩 빼먹었다는데 마지막 산모롱이를 돌 때는 단 한 개만 남았다고 해 ‘99고개’는 틀린 말은 아닌가보다.
'횡계와 강릉의 딱 반'이라는 의미의 반정에 서면 바다를 끼고 있는 강릉 시내가 아늑하게 보인다. 보기 좋은 각도에서 꼼꼼히 관찰할 수 있도록 망원경까지 갖추고 있다. 김홍도의 '대관령' 그림에는 백두대간과 경포호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오늘날 반정에서 내려다 본 풍경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자신의 돈 100냥을 들여 반정에 주막을 짓고 어려운 나그네에게 침식을 제공한 이병화의 선행을 기리는 ‘이병화유혜불망비'를 어루만지면서 나눔의 정신을 되새겨 본다. 신사임당의 사친시는 한양길을 향하면서 고향 강릉 땅을 바라보며 다시는 못 뵈올지 모르는 어머님을 그리며 쓴 시다. 조금 더 내려가면 벤치와 탁자가 놓여 있어 도시락 까먹기 좋은 장소다. 5굽이가 연속적으로 이어진 길도 보였다. 급경사를 최대한 줄여 덜 지치도록 배려해준 선조들의 지혜가 고맙다.
푹신한 부엽토길. 칸느의 레드카핏을 거니는 것보다 훨씬 편안하다. 부드러운 흙길이 하산할수록 돌길로 바뀌고 그들의 염원을 담아 돌탑을 쌓았다.
곧게 내뻗은 아름드리 금강소나무가 품어낸 향기는 나그네에게 청신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다리를 건너자 길은 시원스러 계곡과 동행한다.
귀틀집주막집 쪽마루에 앉아 그동안 참아왔던 수다를 한꺼번에 터뜨린다.
계곡은 차츰 넓어지고 물소리는 커진다. 등산화를 내던지고 발을 담궜다. 청량함이 뼈속까지 전해진다.
오솔길 끝은 하제민원터가 차지하고 있다. 산적과 들짐승이 많은 대관령을 혼자 가는 것을 막고 10명의 사람이 모이면 통과시켜 주었던 대관령 관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펜션과 현대판 주막이 대신하고 있고 뜬금없이 우주선 화장실이 서 있어 당황스럽다. ‘얼마나 대관령 옛길이 예뻤으면 우주인들도 반해서 우주선을 착륙시켰겠느냐’ 라는 취지로 화장실을 만들었다는데 그런 억지가 오히려 귀엽기만하다.
하제민원터에서 대관령박물관까지는 딱딱한 포장길이며 마지막 고개 원울이재를 넘어야 한다. 강릉으로 발령 받은 관원이 멀리 푸른 바다가 보이자 세상 끝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설움에 복받쳐 눈물을 흘렸고, 몇 년 뒤 다시 발령받아 한양으로 돌아갈 때는 그동안 정이 들어 백성의 인심을 못 잊어 울었다는 고개다.
드디어 옛길의 끝인 대관령박물관 박물관이 반긴다. 고인돌 형태로 건물로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등 4개의 전시실과 토기실, 민속품이 전시되어 있어 한 바퀴 돌면서 산촌마을 토속문화재를 만나면 된다.
길안내 서울-경부고속도로-신갈JC-영동고속도로-횡계IC-구 대관령휴게소
맛집 대관령 박물관 아래 옛 성산면에는 옛카나리아(033-641-9502 성산면 구산리 365-2)에서는 얼큰하면서도 부드러운 대구머리찜을 맛볼 수 있다. 밑반찬이 달랑 김치 하나지만 대구머리 하나로 승부를 거는 집이다. 콩나물 ,떡볶이 감자, 두부가 양념에 묻혀서 나온다. 대구머리를 다 발라 먹은 후, 양념 국물에 밥을 비며 먹으면 든든해진다. 주문진의 교항삼거리
주문진 해암횟집(033-661-1620)은 광어, 우럭은 물론 동해에서 맛볼 수 있는 도치회, 복어회가 한상 가득 나온다. 동화가든(033-652-9885)은 유명한 초당두부집이다.
*숙박 대관령자연휴양림(033-641-9900)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된자연휴양림으로 해수욕과 산행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100% 목조로 된 숲속의 집과 산림문화휴양관을 갖추고 있다.
대관령의 남우장여관(033-335-5581)은 관광공사 굿스테이 숙박시설이며 가격이 저렴하고 사파리목장펜션(033-335-5675)에서는 목장체험과 백두대산 산책을 할 수 있다. 강릉 초당동의 씨에스타(033-651-4475)는 럭셔리 펜션과 모텔을 갖추고 있으며 모텔 수(033-644-1237)는 바다와 경포호를 볼 수 있도록 객실이 배치되어 있다. 포시즌비치관광호텔(033-655-9900) 은 객실에서 일출 감상할 수 있으며 임당동의 동아호텔(033-648-4411)은 관광공사 굿스테이 숙박업소다. 선교장전통문화체험관(033-648-5303)은 한옥숙박체험이 가능하다.
|
|
첫댓글 정말 가보고 싶습니다.
대장님 덕분에 대관령 옛길을 돌고 왔습니다...^^*
자세한 설명과 좋은 사진 감상 잘하고 갑니다.
숲길 보기만해도 시원해지는 느낌입니다. 청신한 기운을 허파에 가득 채우러 가야겠어요. ^^
한겨울에 눈길 밟으며 걸었던 그 길입니다. 초록이 함께하는 계절에 걸으면 바로 이 맛이로군요. ^^
꽃피는 계졀에 다시한번 가고 싶었던 대관령 옛길이네요. 아름다운 숲길 잘 보고 갑니다. *^^*
혼자하는 트래킹여행을 두달전부터 시작했어요..대관령 옛길도 그중하나였는데 항상 역사와 함께 술술 풀어내시는 보따리 덕에 많은 도움되겠어요..감사합니다.모놀에 한표..!! 꼭 일등되리라 믿어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길이네요^^*
잘 다녀오셨군요. 해암횟집에서 대장님 다녀가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여러모로 감사드립니다. 겨울에 걸었던 그길 신록이 푸르를때에 다시 걸아보고 싶었습니다.
잘 보고갑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잘보고 퍼갑니다.
와우~몇일전 아는동생이 대관령가고 오는데 차안에서만 11시간 있었다고..양한마리 못봤다고 해서 배꼽잡고 웃었는데..이런 멋진산책로랑 맛집이 있었다니..함가고싶네요~
아! 정말 가 보고 싶은곳입니다, 차후 이런 행사가 있다면... 가을 쯤이면 더 좋겠지요...
우리 산천을 걸어볼 좋은 장소를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흔적없이 다녀갔는데... 변함없이 띄워주시니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감상하고 있지요. 당근 모놀에 한표![!](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행사 했지유 ![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몸은 못 따라가도 눈은 앞서갑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저는 두번가봤는데 편안하고 참좋은 길입니다....시간이 됨 한번더 가고싶으곳....^^
초여름에 가면 좋을것 같네요^^
가고 싶던 곳인데...먼저 안내를 받으니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