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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E 기사.....
{fashion issue】뜨개질을 하자
♤ 뜨개질을 하자 ♤
안경 쓴 꼬부랑 할머니가 꾸벅꾸벅 조는 고양이를 무릎에 앉히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형편이 넉넉지 않던 시절 한푼이라도 아껴보려는 어머니들 얘기만도 아니다. 이번 시즌 컬렉션 무대는 겐조, 고티에, 티미스터, 요지 야마모토에 이르기까지 뜨개질을 했다.
곱게 짠 기계 니트도 있지만 가장 인기 있는 스타일은 두꺼운 실로 직접 짠 것이거나 손뜨개 흉내를 낸 니트들.
♠ 실수는 용서된다
올 겨울이 폭신해졌다. 마치 할머니가 짠 듯 질박한 진짜 니트가 컬렉션 무대에서부터 거리의 조그만 숍까지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멋쟁이라면 당연히 스카프나 머플러, 모자, 손목 토시 중 하나쯤은 ‘내가 직접 짠 거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코를 하나쯤 빼먹는 것쯤은 용서받을 수 있다. 바로 이런 수공예적인 면이 감동(?)적인 것이고 오히려 세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아츠로 타야마의 스웨터는 마치 초보자의 실수투성이 작품처럼 구멍이 숭숭 나 있다. 장 폴 고티에는 그 대단(?)한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신랑 신부에게 아일랜드풍의 니트를 입혔다. 마치 신부가 생애 가장 소중한 날을 위해 직접 손뜨개한 것 같았다.
♠ 모든 게 과장되었다
이런 니트의 특징을 살펴보면 몸에 딱 맞게 재단되지 않고 비율이 맞지 않거나 지나치게 크다. 가장 다양한 손뜨개풍 니트를 발표한 요지 야마모토는 어깨보다 더 넓게 퍼지는 커다란 베레나 남성복의 두꺼운 스웨터를 응용한 투박한 울 코트를 제안했다. 이브닝 드레스까지 니트로 꿈꾸는 조세퓌스 티미스터는 옷이 바닥에 끌리고, 도로테 비스
의 목도리는 바닥을 청소한다. 스타일은 볼품없지만 소재만은 끝내(?)준다. 모헤어, 캐시미어, 울, 알파카 등으로 고급스럽다. 모두 70년대를 추억시킨다.
♠ 여자들은 다시 뜨개질을 원하는가?
15년 전부터 엘르 프랑스의 편물란을 책임지고 있는 앙드레 쿠텔은 이것을 아주 훌륭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70년대 그리고 80년대 말까지 편물 전성기에는 2만5천 장의 설명문을 독자들에게 보내주었어요.
오늘도 전화를 해서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여자들이 있지요.” 여자들은 다시 뜨개질을 하고 싶어하는가? 물론이다. 십자수에 대한 열의나 동대문 종합 상가의 털실집에 모여드는 젊은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사회학자 장클로드 고프만은 이렇게 설명한다. “스트레스가 많고 복잡한 사회에 직면한 우리는 부드러운 것을 입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다시 뜨개질을 하게 되는 거죠.” 뜨개질은 할머니들이나 하는 고루한 일로 여겨지지만, 일단 반복적이고 작은 손동작이 익숙해져 뜨개질을 하면서도 다른 일에 신경쓸 정도가 되면 뜨개질의 진정한 즐거움을 알 수 있게 된다. 여자들이여 다시 뜨개질을 하자.
♠ 손뜨개 니트를 입을 때 체크 포인트
1. 기왕이면 손뜨개 느낌이 팍팍 나는 올이 굵고 성글게 짜여진 것으로 고른다.
2. 실은 가벼운 것으로 고른다. 무거운 실은 밑으로 축축 처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실이 굵고 좀 무게감이 있으면 길이가 짧은 것으로 고른다.
3. 디자이너 정구호의 어드바이스 : 올이 굵은 스웨터는 허리선이 짧아 귀여운 느낌으로 입는다. 안에 티셔츠를 받쳐입어도 된다.
4. 위아래는 상반되게 입는다. 위아래 모두 부피 있는 손뜨개는 절대 삼간다. 하의가 부피감이 있으면 상의는 얇은 것으로, 상의가 두꺼운 스웨터라면 하의는 슬림한 스커트나 팬츠를 고른다.
♠ 기자의 손뜨개 체험
프랑스판 엘르에서 요지 야마모토의 항아리형 치마를 봤다. 너무 예뻐 그 길로 뜨개질 경험이 있는 후배와 함께 동대문 종합상가(종로 5가) 지하의 털실 상가로 갔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고, 그 중에는 학생인 듯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고등학교 가사 시간에 머플러를 떠본 게 전부인 탓에 실패해도 출혈이 크지 않을 저렴한 실로 골랐다.
흰색과 까만색이 꼬아져 있는 3천원짜리 실. 아주머니에게 스커트 하나를 뜨기 위한 대강의 털실 양과 알맞은 바늘 굵기를 추천받았다. 첫작품치고 좀 거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코 줄이고 늘리는 것 없이 그냥 ‘통자’로 뜨는 거라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다는 짐작이었다. 드디어 게이지 측정. 30코 정도, 5줄 정도를 미리 떠서 원하는 스커트 폭만큼 코를 잡았다. 160코. 밑단은 그냥 말려올라가도록 놔두기로 했다. 사실 그것 하나밖에 아는 게 없어서였지만. 1/3 정도를 뜨고 나니 잘못된 게 두 가지 발견되었다. 우선은 게이지 측정할 때 너무 조금만 뜨는 바람에 늘어나는 양을 정확히 가늠하지 못해 통
이 너무 넓어졌다는 것, 뜨는 솜씨가 일정하지 않아 군데군데 운다는 것. 하지만 도저히 풀고 다시 짤 엄두가 나지 않아 강행하기로 했다. 휴가 이틀 동안 꼬박 뜨고, 퇴근 후 틈틈이 뜨기를 일주일, 드디어 완성되었다. 허리 부분의 5단 정도는 2단 고무뜨기를 했다. 앞뜨기(겉뜨기)와 뒤뜨기(안뜨기를 말하는 것이겠지요?)를 두 번씩 번갈아 하는 것.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폭이 줄어든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고무줄을 넣는 것으로 끝.
드디어 내 손으로 뜬 스커트가 완성되었다. 모양은 썩 훌륭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늘 난 이 스커트를 입고 출근했다.
♠ 체험으로 파악한 주의점
1. 폭은 제일 넓은 엉덩이를 기준으로 한다.
2. 체형이 일자가 아니고 엉덩이가 튀어나온 편이라면 신축성이 있는 뜨기 방법을 고른다(기자는 쉽다고 앞뜨기만 하다가 망했다).
3. 실은 적당히 두꺼워야 속치마 없이도 안이 비치지 않는다.
4. 아무리 급해도 게이지는 사방 10cm 정도 짠 것으로 계산한다.
[따뜻한 살림 제안] 정성이란 바느질로 엮는 뜨개질
♣ 요즘엔 다양한 형태와 색깔의 실을 꼬아 만든 특수사가 많다.
특수사로 옷을 뜨면 단색사에 비해 질감이 독특하고,
개성 있는 색깔의 옷을 얻을 수 있다.
어릴 적에는 어느 집에나 늘 실이 있었다. 특히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털실 바구니가 안방 구석에 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고, 엄마와 할머니는 틈만 나면 바구니를 끼고 앉아 뜨개질을 했다. 꼬마들은 몸을 비비 틀면서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고서 어른들의 실 감기를 도와야만 했다. 털실로 짠 스웨터 소매가 짧아 지면 행여나 새 옷을 사주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부러열심히 팔을 밖으로 늘리려 무던 애를 쓰지만 '어느새 스웨터가 작아졌네. 이리 갖고 와라'하던 일. 엄마는 다른 색 털실을 이어 소매를 더 길게 짜 주실 생각이었으니까. 처음 풀어서 두 번째 짠 옷만 입어도 날아갈 듯하던 기분을 옷이 많은 요즘 아이들 중 몇 명이나 알 수 있을까? 추억은 모두 아름답다지만 엄마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아이들을 위해 옷을 짜주는 그 광경은 정말로 아름답다.
요즘은 아이들 옷을 직접 짜 주 는 엄마도 찾기 어렵고, 털실 파는 곳도 찾기가 힘들다. 가끔 아이들 과제물을 위해 동네 문방구에 조금있을 뿐이다. 올 겨울, 아이를 위해, 고마운 분들을 위해 뜨개질을 해보자. 여고 시절에 배운 실력만으로 목도리 정도는 누구라도 쉽게
뜰 수 있다. 방법이 기억나지 않는 다면 털실을 사러 간 길에 그 가게 에서 10여 분만 배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