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한 청중이 내민 발에 걸려 넘어져 제압당했고, 식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경호원들이 대통령을 에워쌌다. 모든 것이
순간적이었다. 2분 뒤, 대통령은 다시 연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고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하던 얘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육 여사는 그날
저녁 7시쯤 운명했다. 범인으로 붙잡힌 재일교포 문세광(文世光)은 조총련을 통해 북한과 접촉, 박정희 암살의 지령을 받았으며 일본인의 여권을 위조해 입국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넉 달 뒤 사형에 처해졌다.
- ▲ 1974년 8월 15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문세광의 저격 직후 경호원들이 연대 뒤의 박정희 대통령을 호위하고
있는 가운데 피격당한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쓰러져 있다. 조선일보 사진부 임희순 기자의 이 특종 사진은 다음날 신문에 게재되지 못하고 6일
뒤에야 실렸다. /조선일보 DB
대통령은 암살을 모면했지만, 평소 국민의 신망을 얻고 있던 대통령 부인이 서거했기에 사람들의 충격과 슬픔은 컸다. 8월 19일 청와대
앞뜰에서 열린 발인식이 끝나자, 대통령은 청와대 정문을 붙잡은 채 운구행렬이 경복궁을 돌 때까지 묵묵히 지켜 봤다. 다음해 5월 21일 신민당
총재 김영삼(金泳三)과의 회담에서 창 밖에 새 한 마리가 홀로 날아오자, 대통령은 "내 신세 같다"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고 한다.
입력 : 2008.07.21 02:58 / 수정 : 2008.07.21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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