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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통주 예찬
막걸리에 담긴 한국인의 심성과 맛
순하디 순한 술, 막걸리에 우리 심상이 담겨 있다
막걸리는 한국의 술이다. 똑같은 이름의 술이 다른 나라에는 없다. 소주(燒酒, 燒酒), 청주(淸酒)는 중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다. 막걸리가 우리말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물론 쌀로 빚은 막걸리와 비슷한 유형의 술이 중국, 일본, 동남아에도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따져들면 판이하게 다르다. 한번 따져보자! 탁주(濁酒)로 분류되는 일본 술이 존재한다. 니고리자케, 도부로쿠라고 부른다. 하지만 한국의 탁주처럼 주세법으로 분류된 법률용어는 아니다. 도부로쿠는 침전시켜 여과하면 청주처럼 맑은 술을 얻을 수 있지만, 따로 여과하지 않고 그냥 저어서 마시는 술이다. 한국 동동주처럼 쌀알이 떠있거나, 단맛이 많이 돈다. 이 술은 일본에서 자기 영역이 없이 잡주(雜酒)로 분류된다. 도부로쿠는 일본술 중에서 쌀로 된 가장 소박한 형태의 술인데,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워 2002년부터는「구조개혁특구역법」으로 보호하고 권장하고 있다. 니고리자케는 도부로쿠처럼 탁한 술인데, 청주를 얻기 전에 거칠게 여과한 술이다. 니고리자케는 흐린 청주라서 법적으로 청주로 분류되고 있다. 도부로쿠와 니고리자케는 흐린 술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탁주와 비슷하지만, 알코올 도수는 막걸리보다 2배 정도 높은 15% 안팎이다. 막걸리처럼 단숨에 마셨다가는 사래가 들리거나 감전된 듯이 머리가 찡해온다. 보기에 비슷해도 맛은 다른 것이다. 일본인들이 자국의 탁주를 놓아두고 한국의 탁주에 매료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알코올도수와 맛의 다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일본인들이 맛보는 한국탁주 막걸리는 부드럽고, 달콤하다는 것이다. 탁주가 한자어이긴 하지만, 중국에서는 탁주를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인들은 기름에 튀긴 요리가 많기에 독주(毒酒)를 즐긴다. 마오타이는 53%에 이르고 백주는 60%를 넘기기도 하는데 요사이 중국에는 저도주 바람이 불어 38%짜리 소주를 많이 마신다고 한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져서 38%라니 위벽이 두껍지 않고서는 즐기기 어려운 술들이다. 지금 한창 한국의 대형 막걸리양조장들은 중국수출을 모색하고 있다. 막걸리 수출에서 일본시장이 90%를 차지하고, 중국시장은 이제 간신히 잠에서 깨어난 수준이니 중국시장이 잠재력이 크다고 여기는 것이다. 현재는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조선족과 일본인들이 공략대상이지만, 북경과 상해를 중심으로 대도시에 막걸리 마케팅을 하고 있다. 이는 중국에 미주(米酒)라는 술이 존재하지만, 막걸리와 비슷한 술이 존재하기 않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막걸리를 중국에 처음 소개하고 알리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바람이 타면 경쟁대상 없이 질주할 수 있다는 보는 것이다. 중국은 알코올 50%를 넘나드는 마오타이의 나라, 일본은 알코올 15%가 넘는 청주의 나라, 한국은 알코올 6%짜리를 가지고 있는 막걸리의 나라다. 물론 한국은 막걸리보다 알코올 20%의 소주가, 소주보다는 알코올 4%의 맥주가 더 많이 팔린다. 일본도 소주가 인기를 얻고 있고, 맥주는 전체 술소비량의 70%을 차지할 정도로 맥주가 많이 팔리는 나라다. 중국은 인구가 많아서 세계 최대의 맥주 소비국이고, 중국 칭타오 맥주는 세계 최대의 맥주생산 제조장이다. 하지만 한 나라를 상징할 때, 중국은 마오타이, 일본은 청주로 대표되고, 한국은 점차 막걸리가 그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일본탁주인 도부로쿠, 술빛이 흐려 막걸리를 닮았다
이렇게 볼 때 동아시아 3국 중에서 가장 도수가 낮은 술을 즐기는 나라는 알코올 6%짜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이다. 이 현상을 두고, 한민족이 중국 민족이나 일본 민족보다 훨씬 순하다는 공식을 끌어낼 수 있다. 술은 기호식품이라 즐겁거나 슬플 때에 마시지만, 누군가를 충동하고 자극할 때도 마신다. 술은 전장터에 나선 장병들에게 필요한 군수품이기도 하다. 말을 탄 병사들은 출병을 앞두고, 말 위에서 뿔처럼 생긴 마상배(馬上杯)로 치켜들고 환호성을 지른다. 술은 공동체의식을 키워주고, 서로를 취하게 하여 한 가지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한반도에 소주가 들어온 것도 고려시대 몽골 침략기였다. 몽골족은 대륙을 질주하면서, 작게 졸인 양고기뿐 아니라 독한 소주를 가지고 다녔고, 그 술이 한반도에 남아 한국소주의 시원이 되었다. 소주에는 피비린내나는 전쟁의 상흔이 담겨있는 것이다. 일본도 술을 정치적으로 많이 이용했다. 일본 청주에 순도 높은 알코올 주정이 들어간 것은 1930년대 만주 공략의 전쟁기를 거치면서였다. 술의 양을 늘려 병사들에게 공급하기 위해서였는데, 그 맛에 익숙해져 전쟁이 끝나고도 청주에 주정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막걸리는 전장터에 가지고 나갈 수가 없다. 어떻게 말통 술을 가져가겠는가? 전장터에는 무거워서도 가져갈 수 없다. 막걸리는 군수품이 아니라 농기구다. 농주라고 부르는 순하디 순한 쌀술을 가진 순한 민족이 한국이다. 막걸리 속에서 우리의 지난날과 우리 민족의 심성을 읽을 수 있다.
막걸리와 동동주는 어떤 점이 다를까
비오는 날이면 막걸리집 주인들의 표정이 밝아진다. 어느 막걸리바 주인에게 물어보니, 평일 매출의 1.5배는 된다고 한다. 언제부터였을까. 비오는 날이면 파전에 동동주를 찾게 된 것이. 아마도 농경시대의 흔적이라고 여겨지는데, 어떤 이는 부침개 부치는 자글자글한 기름 소리가 빗소리를 닮아서 막걸리를 마신다고 한다. 나는 비가 오면 파장 분위기가 생기고, 몸이 물위에 동동 뜰 것 같아서, 그냥 부침개에 막걸리보다는 파전에 동동주를 찾는다.그런데 동동주와 막걸리는 어떻게 다를까. 혹시 막걸리 좋아하는 일본사람을 만나게 되거든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으니 미리 알아두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내가 막걸리 좀 안다고 했더니, 일본기자들이 첫 질문이 바로 이거였다.술이 다 익을 무렵이면 쌀알이 술 위로 동동 뜬다. 쌀알의 겉면은 단백질과 지방이 많아 잘 삭지 않지만 쌀 중심부의 전분은 잘 삭아서, 쌀알이 공처럼 술 위에 동동 떠있게 된다. 이렇게 쌀알이 동동 떠있는 모습을 보고 동동주라는 이름이 생겼다. 옛사람들은 떠 있는 모습이 ‘개미 같다’고 해서 한자로 개미 의(蟻)자를 써서 부의주(浮蟻酒)라고 불렀다. 부의주는 고려시대 문헌에도 등장하는 오래된 술이다.
쌀알이 술 위에 동동 뜬 모습
문헌에 나오는 동동주의 의미는 이러하지만, 동동주는 주세법에 규정된 이름이 아니어서 그 의미가 한 자리에 정박해 있지 않다. 술 위의 쌀알처럼 동동 떠다닌다. 문헌의 의미 다르고, 양조장 의미 다르고, 음식점의 의미가 또 다르다. 양조장에서는 쌀이 들어간 술을 동동주라고 부른다. 양조장의 동동주는 밀가루 막걸리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89년까지 밀가루로만 술을 빚도록 법적인 통제를 받으면서 동동주는 한국 민속촌 아니고서는 구경할 수 없었다. 그런데 1990년부터 쌀로 술을 빚게 되면서 일반 양조장에서도 쌀알이 동동 뜬 막걸리를 빚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양조장에서는 쌀이 조금만 들어가도, 쌀알이 뜨든 뜨지 않든 상관하지 않고 동동주라고 부르게 되었다.
1990년부터 쌀로 술을 빚게 되면서 일반 양조장에서도 쌀알이 동동 뜬 막걸리를 빚을 수 있게 되었다
음식점에서는 동동주는 좀 다른 의미로 쓰인다. 음식점에 가면 동동주가 막걸리병에 나오지 않고, 작은 단지에 표주박과 함께 나온다. 그 동동주들은 주방에서 다른 재료와 칵테일 되어 나오기도 한다. 솔잎, 더덕, 인삼 따위가 들어가 솔잎 동동주, 더덕 동동주, 인삼동동주라는 이름으로 붙여지기도 하는데, 양조장에서 받아온 막걸리를 음식점 주인이 능력껏 조리하여 내놓는 술이다. 그러면서 막걸리 한통을 3천원 받는 집은 동동주를 5천원 받고, 한식전문으로 파는 밥값이 조금 나가는 곳에서는 한 단지에 1만 원을 받는다. 동동주가 고정된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음식점에서는 술집주인들이 적절하게 변주해서 가격을 차별화해서 내놓은 게 동동주다. 그래서 술집마다 동동주의 맛이 다른 것이다. 이제 막걸리와 동동주의 차이를 조금 이해하셨는지? 똑같은 것 같지만, 약간씩 다른, 그래서 막걸리의 세계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게 동동주의 세계다. 이제 어느 술집을 가시든지 동동주가 눈에 띄거들랑, 어떻게 손맛을 낸 것인지 물어보자. 단골이 아니고서는 잘 알려주지 않지만, 술 역시 개성 넘치는 음식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막걸리 한 잔 합시다!”
“막걸리 한 잔 합시다!”이 말을 들으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막걸리 한 잔 하자는 말은 “쏘주 한 잔”하자는 말과는 사뭇 다르게 들릴 것이다. 요즘 막걸리가 젊은 세대에게 인기라 해서, 여대생들에게 언제 막걸리를 마시고, 언제 소주를 마시는지 물어보았다. 여대생들 대답은 이랬다. 친구들과 수다스럽게 얘기하고 싶을 때는 막걸리집으로 가고, 기분이 좋지 않아 취하고 싶을 때는 소주집으로 간다고.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 6%이고, 소주는 20%다. 아마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갈수록 도수 높은 술을 찾게 되는 모양이다.사실 술 한 잔 하자고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술은 확률상 소주나 맥주일 것이다. 알코올 섭취량으로 보면, 성인남녀의 전체 알코올 소비량 중 50% 이상을 소주가 차지하고, 마시는 양으로 보면 맥주가 5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술 한 잔 하자는 말이 “대포 한 잔 하자”였다. 지금도 허름한 동네 술집의 간판이나 문짝에는 왕대포 혹은 대포라고 쓰여진 글자가 종종 눈에 띈다. 대포는 큰 술 잔이라는 뜻이다. 이 큰 술잔에 담긴 술이 바로 막걸리였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을 표현할 때 흔히, 말술을 마신다고 하는데, 이때 말술로 마시는 술도 역시 막걸리 종류다. 소주를 말로 먹으면 술 잘 마신다는 소리를 들을 새도 없이 골병이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막걸리는 언제부터 큰 잔에 마셨을까? 막걸리 하면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하게 양은 주전자나 큰 사발잔을 떠올린다. 하지만 큰 사발잔이나 양은 주전자와 짝지은 양은 잔은 바라보다 보면, 좀 미심쩍은 대목이 있다. 그 큰 잔들이 모두 밥그릇이나 국그릇으로 활용되었음직한 용기들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막걸리잔으로 개발된 잔들이 아니라, 어느 날부터인가 밥그릇이나 국그릇을 술잔으로 빌어 쓰게 된 것이 아닐까. 종가집 종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이런 의문을 제기했더니, 한 종부가 시어머니께 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지금의 큰 사발 잔이 본래 막걸리 잔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예전 논일 하다 점심이나 새참으로 밥을 국에 말아먹거나 다른 반찬과 비벼먹고 난 뒤에 그 빈 그릇에 막걸리를 부어먹던 관습이 남은 것이란다. 요사이 막걸리가 아무리 인기라지만 아직도 고깃집에서는 막걸리 내놓기를 무척 꺼려한다. 소주도 있고 하다못해 배불러서 못 마신다는 맥주도 있지만 막걸리는 잘 없다. 모두 이 큰 술잔 때문이다. 큰 잔으로 막걸리를 마시다 보면 고기 들어갈 배가 없어지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막걸리 잔이 큰 것은 농경사회 두레 일꾼들이 편리한대로 하던 습관이었을 뿐이라니 지금도 꼭이 큰 사발만 고집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해서, 막걸리 잔은 충분히 작아져도 상관 없다. 하지만 작아지든 커지든 그 잔이 왜 막걸리 잔인지는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위스키잔과 와인잔이 다르고 칵테일잔과 샴페인잔이 다르듯이 말이다. 지난 봄 농림수산식품부에서 막걸리 잔 공모전을 하여 16점을 선정 발표한 것도 새로운 막걸리 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 일환이었다. 차별화를 꾀하려는 막걸리바들도 자기만의 잔을 만들어 쓰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서 공모한 막걸리잔. 술이 줄어들면서 초승달 모양이 생긴다
누가 “막걸리 한 잔 합시다!”라고 할 때, 앞장서서 갈 수 있는 특별한 막걸리집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특별해 보일까. 요즘 서울의 홍대 앞이나 강남에는 전국의 다양한 막걸리를 가져다놓고, 독특한 분위기에서 특별한 잔에 안주를 곁들여 내놓는 막걸리 전문점들이 제법 생겨났다. 막걸리를 즐긴다는 것은 단순하게 술맛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동행하는 술잔과 술병과 안주와 그 문화의 분위기를 즐기는 일일 것이다. 헌데, 이보다 더 우아한 고수가 될 수도 있다. “우리집에서 빚은 막걸리 한 잔 할까?”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사실 아주 좋은 안주를 준비하지 않고서는 자기 집에서 소주나 맥주를 한 잔 하자고 청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소주나 맥주는 상점에서 사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에서 손수 빚은 막걸리라니, 술이 특별한데 안주가 김치뿐이면 어떠랴. 막걸리는 생각보다 빚는 방법도 쉽고 비교적 간단히 칵테일로 변신시킬 수도 있다. 여기에는 깔끔한 안주 한두 점만 차려도 주인의 격이 올려다보이는 술상이 될 수 있다.하지만 안주도 변변찮은데 상점에서 사온 막걸리로 술상을 차려야 할 경우도 있다. 막걸리통이 놓인 술상이라, 양주병이나 맥주병이 놓였을 때와 달리 분위기가 썰렁해질 수 있다. 가격표가 붙은 선물처럼 값싼 원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상차림은 서로 민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연 특별한 접대라기에는 주인 스스로 미흡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 때 막걸리를 고급스럽게 포장시켜 줄 수 있는 기술의 하나가 칵테일이다.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머무는 호텔에는 대개 막걸리 칵테일바들이 있다. 막걸리 칵테일은 기교를 낼라치면 그 혼합 재료와 비율이 복잡하지만, 소박하게 만들자고 들면 딸기, 키위, 바나나, 오미자나 복분자 원액을 간단하게 섞기만 해도 훌륭하다.
간단하게 소개해 보겠다. 바나나 막걸리 칵테일은, 막걸리와 바나나의 분량을 2대 1, 사이다를 0.5 비율로 섞고 잘 저어주면 노란 바나나 막걸리 칵테일이 멋지게 완성된다. 딸기나 키위도 같은 비율로 섞어놓으면, 붉은 색, 초록 색의 과일 막걸리가 탄생하게 된다. 단맛을 좀 더 돌게 하려면, 사이다 대신에 요구르트를 넣어도 좋다. 칵테일로 만들면 알코올 도수도 4% 정도인 맥주 정도로 내려가고, 마시기도 편해진다. 더구나 이때의 막걸리가 직접 빚은 것이라면 그 술상의 특별함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새삼 말하지만 막걸리 빚기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잡채나 갈비찜 만드는 법을 배우는 만큼의 시간과 정성이면 익힐 수 있는 기술이다. 예전에 우리는 집집마다 된장 고추장을 담그듯 직접 가양주를 빚었고, 그 술로 제사를 지내고 손님 접대도 했다. 복잡한 시대에 술까지 빚어 먹는 일이 번거울지 모르지만 전통의 회복이라는 거창한 관점도 멋스럽고, 음식도 예술이라는 시대에 손수 해먹는 음식을 하나 더 장만한다는 것도 멋진 일이다.
술에 관한 대표적 오해 다섯가지
수능시험 성적 발표 하루 전날 고3 학생들을 단체로 만날 일이 있었다. 농림수산식품부 주최로 대구시교육청에서 고3들을 대상으로 ‘건전한 술 문화 조성을 위한 교육’을 실시한 자리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술을 마시지 말라는 교육도 아니요, 술을 권하는 교육도 아니었다. 술을 마시려거든 우리 술과 문화를 잘 알고 마시라는 교육이었다. 요즘 청소년들이 술을 처음 접하는 연령대는 중학생 무렵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주 이르게는 초등학생 때인 경우도 있다. 그러니 졸업을 앞둔 고3 학생들 중에는 이미 ‘주당’도 계실지 모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술을 마실 수 있으려면 만 19살이 넘어야 한다. 평균적으로 대학교 1학년 생일이 지나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혹은 수능 시험을 치르고부터 곧바로 술집으로 몰려다닌다. 그럼 이들은 음주 교육은 받았을까? 거의 그렇지 않다. 이번 교육은 그런 의미에서 이루어진 자리였다. 술 교육은 여러 가지 방향에서 진행할 수 있다. 술의 원료와 제조 방법, 술을 마시는 예법, 술이 우리 농업에 미치는 영향, 우리술의 종류, 적정한 음주량, 알코올 중독 등 다양한 시각에서 문화와 과학 원리를 살필 수 있다. 그런데 술 교육을 하다보면 사람들이 술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청소년들은 아예 모르고, 성인들마저 잘못 알고 있는 편견을 풀어주는 것이야말로 음주교육의 시작임을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술에 관한 대표적인 오해는 무엇일까? 첫째, 술을 마시면 나타나는 홍조증은 혈액 순환이 잘 된다는 징표일까? 아니다. 홍조증은 술에 대한 적신호다. 알코올로 인해 생성된 아세트알데히드가 초산으로 분해되지 못하고 몸에 축적되어서 생긴 현상이다. 이 홍조증은 구토, 두통, 속쓰림 등과 동일한 숙취 현상의 하나다. 둘째, 술을 많이 마셔 울렁거릴 때, 토해야 할까 토하지 말아야 할까? 이 때 참는 게 아니라, 토하는 게 좋다. 구토는 물론 식도벽에 자극을 가해 좋지 않다. 하지만 몸이 알코올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어 빚어지는 현상이니 토하는 게 차라리 낫다. 술을 많이 마시면 급성알코올 중독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때로 슬퍼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술은 흥분제일까, 억제제일까? 알코올을 섭취하면 초기에는 중추신경과 말초신경이 흥분되고 위산분비가 촉진된다. 이때 뇌에서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생성되는데 이 물질이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하지만 술은 대표적인 억제제에 속한다. 중추신경을 억제하고, 항이뇨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하여 소변량이 늘어나고, 자신을 통제하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자연, 술에 취하면 내재되어 있던 감정이 분출되는데, 이는 이성과 감정 조절 능력이 마비되고 억제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넷째, 술맛이 쓰다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술이 쓸까? 곡물로 빚은 술이 제조되는 원리를 보면, 전분이 당화효소에 의해 당이 되고, 당이 효모에 의해서 알코올이 된다. 즉 당이 알코올로 전환된 게 술이다. 그러니까 술맛이 단 것은 알코올로 전환되지 않은 잔당이 남아있는 경우다. 하지만 충분히 발효시키면 단맛을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당이 알코올로 넘어가게 된다. 쓴 맛은 이 알코올에서 느껴지는 맛이다. 다섯째 술 취한 사람 중에는 나중에 자신의 행동은 기억하지 못하면서, 집은 찾아가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 이는 과음으로 인해 단기 기억 창고에 이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 뇌 기능이 떨어지게 되는데, 뇌의 전두엽, 중두엽, 후두엽, 소뇌, 해마, 연수, 중추신경 순으로 마비가 된다. 이 때 해마는 단기 기억을 관장하는 부분으로 이곳이 마비되면 기억이 끊기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하여 오래된 기억까지 지워지는 것이 아니어서, 사람도 알아보고 집도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해마까지 마비되면 위태로운 징조다. 이어서 연수가 마비되면 호흡곤란증이 오고, 중추신경이 마비되면 금성알코올 중독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날 강연장에서 “술을 많이 마시고도 안 취하는 방법이 없어요?”라고 질문하는 고3 학생이 있었다.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세상에 술을 마시고 취하지 않을 장사는 없다. 다만 술을 덜 취하게 하는 방법은 있다. 옛글에 나오는 얘기인데, 술 한 잔에 물 한 잔을 마시면 몸을 상하지 않는다고 했다. 술은 잇몸으로 취한다는 말도 있다. 물을 마시면 입안에 남은 알코올을 씻어낼 수 있어 좋다. 또한 몸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려면 수분이 필요하다. 물을 가까이 두고 술을 마시는 버릇을 들인다면, 훨씬 부드럽게 술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수능을 막 치른 학생들은 아마도 열아홉 생일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도둑술’을 마실 것이다. 여럿이 모였을 때, 술을 마셔야 대화가 되는 우리 사회 분위기 탓일지 모른다. 그래서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술 교육이 절실하다. 술이라는 물질에 대한 오해를 줄이고 좀 창조적인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술 한 잔에 시 한 수를 짓던 우리의 선조들의 풍류를 되살리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막걸리가 몸에 좋은 세 가지 이유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그 원인이 무엇일까 분석하는 기사들이 많았다. 언론과 방송의 지속적인 관심이다, 일본인들의 관심이다, 등산인구의 증가다 하는 분석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반응들을 가능케 한 것은 막걸리 품질 향상과 막걸리가 몸에 좋다 사실의 재인식이다. 그렇다면 막걸리의 어떤 요인이 몸에 좋을까? 내가 막걸리 학교를 운영하면서 관찰하게 된 것은 막걸리의 가장 든든한 지지층이 40대라는 점이다. 이들은 추억 속의 막걸리도 가지고 있지만, 젊은 날 폭음의 후유증으로 음식과 술을 절제해야 되겠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세대다. 비즈니스와 네트워크를 위해서는 술자리를 피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면 몸에 덜 해로운 술을 마실까 궁리하는 세대라는 것이다.
풍부한 유산균과 살아있는 효모
생막걸리에는 효모와 유산균이 들어 있다. 효모는 단백질과 식이섬유소와 미네랄로 구성되어 있고 그 자체가 영양덩어리다. 이런 특성 때문에 효모추출물로 건강식품이나 환자식을 만들기도 한다. 막걸리에는 유산균이 풍부하게 들어있는데, 이 또한 큰 매력이다. 소주 같은 증류주나 살균 유통되는 청주나 와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유산균의 숫자는 막걸리 제품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요구르트에 들어있는 유산균과 엇비슷하게 들어있다. 생막걸리 100㎖에 유산균이 1억~100억 마리가 존재하고, 요구르트 100㎖에는 10억 마리가 있다. 유산균이 장속으로 들어가 자라게 되면 장내의 수소이온농도(?)가 떨어져 잡균의 번식을 막아준다. 그러나 술 속에 유산균이 많은 것은 좋지만, 술맛을 고려할 때는 긍정적인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술이 시어져서 제 맛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 속에 필수 아미노산이 들어있다
막걸리에 들어있는 단백질의 함량은 1.6~1.9%이다. 우유의 단백질 함량이 3%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양이다. 다른 술의 단백질 함량을 보면 청주 0.5%, 맥주 0.4%이고 소주는 0%다. 이 단백질이 발효 과정에서 다양한 아미노산으로 분해된다. 이렇게 해서 막걸리에 생성된 아미노산이 성인 몸에 꼭 필요한 8대 아미노산 중에 7가지나 된다. 이 필수 아미노산이 몸의 질병 특히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면역력을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 열량도 낮다
우리 민족이 마셨던 술 중에서 알코올 도수가 가장 낮은 술이 막걸리다. 막걸리의 평균 알코올 도수는 6~8%다. 막걸리는 어지간히 먹어도 사람을 지치게 만들지 않는다. 일하면서 한두 잔 마시고, 광장에서 여럿이 어울려 마셔도, 하던 일이나 놀이를 계속할 수 있다. 저알코올 술이기 때문이다. 저알코올이라는 말은 저칼로리란 말과 통한다. 저알코올인 막걸리는 이 때문에 다이어트 술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칼로리를 비교해보면 술 100ml에 막걸리는 50~63.9kcal, 맥주는 36kcal, 포도주는 70~74kcal, 소주는 141kcal, 위스키 250kcal가 들어있다. 마시는 양이 다르긴 하지만, 막걸리는 열량이 낮다. 막걸리를 두고 알코올 중독자가 최후까지 마실 수 있는 술이라는 말을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독주를 마시면 명을 재촉하지만, 쌀의 영양분을 많이 담고 있고 저도주인 막걸리를 마시면 몸에 충격이 덜해 좀더 삶을 연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막걸리에 좋은 성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막걸리도 술이다. 술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아직 잘 모르는 대학생들은 “막걸리를 마시면 한방에 훅 가요!”라고 말한다. 도수가 낮다고 만만하게 여겨 마셔대다가, 어느 순간 알코올이 몸에 축적되어 정신을 잃고 마는 수가 생기기 때문이다. 막걸리도 술이다. 술도 약을 닮아서, 몸이 받아들이기 좋은 용량이 있다. 적당한 양은 약이 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되고 마니, 막걸리를 마실 때도 경계의 마음은 가져야 한다.
설, 나에게 ‘전통주’를 한번 선물해보자
막걸리를 즐기는 직장인들이 늘어나면서, 회사의 술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사장님이 직원에게 막걸리 한 잔 마시자고 하면 예전에는 직원들이 속으로 ‘쩨쩨하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우리 사장님이 트렌드를 아신다며 달리 본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예전에는 소주에 삼겹살을 좋아한다는 것으로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면, 지금은 파전에 막걸리를 즐긴다는 것으로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정도를 표현한다. 막걸리가 외국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막걸리를 우리 자산으로 지켜내야 되지 않느냐는 우려스런 목소리도 들린다. “김치가 ‘기무치’가 되고 막걸리가 ‘마코리’가 되어서 우리 것을 일본에 뺏기는 것이 아닌가요?” “막걸리는 일주일이면 만들어지고 쉽게 흉내를 낼 수가 있는데, 우리 막걸리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포천 막걸리 상표 등록을 일본에서 다른 사람이 했다던데 어떻게 된 건가요?” “독도처럼 막걸리도 어느 나라 술이냐는 논쟁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등 막걸리에 대해 우려하는 것들이 많다. 그렇다면 문제는 ‘막걸리라는 우리 문화 자원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인데, 영토와 문화는 그 지키는 방법이 다르다. 영토는 총칼을 든 육체로 지키는 것이지만, 문화는 자부심을 지닌 마음으로 지킨다. 즉, 독도는 영토이니 그 경계가 분명하지만, 문화는 공기와 같아서 그 경계를 짓기가 쉽지 않다. 문화는 즐기는 자의 것이고, 문화 상품의 하나가 술이다. 일본에 한국식 막걸리 공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는데, 한국에는 이미 800개 가량되는 막걸리 공장이 있다. 한국에는 지역마다 막걸리 양조장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고루 분포된 식품회사가 막걸리 양조장이다. 우리가 더 즐기고 우리가 더 가까이 하면 결코 종주국이 어디냐는 논란에 휩싸이지 않는다.
술이 관광자원화되고 지역 특산품이 되려면, 가장 필요한 게 양조장들이 개방되는 것이다. 식품으로서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소비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지점이 넓어야 한다. 일본 여행을 하다 보면 관광지가 된 일본 청주 양조장을 많이 볼 수 있다. 오래된 양조장들은 예전 작업장을 식당이나 기념품 판매장으로 개방하고, 그 근처에 새로운 시설을 만들어 방해받지 않고 술을 빚는다. 관광객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지만, 청결을 유지하면서 식품으로서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우리 양조장들도 음식점들이 주방을 개방하는 것처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막걸리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문화재로 지정한 전통술이나 민속주가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곰곰 생각해볼 문제다. 민속주는 국가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아직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라고 내세울 만한 공감대가 형성된 전통술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민속주들이 사유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문화재는 사회적인 자산으로, 그 사회가 공유해야 하는데 민속주는 소비하는 것말고 공유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더러 민속주 제조장에 가서 술을 “어떻게 만듭니까?”하고 물어보면 “왜 물어보세요.”하는 답이 돌아온다. “양조장 좀 볼 수 있을까요?”하면 “지금은 안 됩니다.”하고 말한다. 그러나 막걸리에 이르면 좀 다르다. 막걸리는 누구 한 사람의 자산이 아니다. 비슷한 맛의 양조장이 지역마다 있기 때문이다. 더러 친척이 운영하는 양조장은 그 내부까지 들어다볼 수 있고, 시골 양조장은 술받으러 갔다가 술독을 구경할 수 있다. 특별한 술 민속주보다 평범한 술 막걸리가 사람들에게 더 친숙하다보니 아주 편하게 막걸리가 우리 술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다. 하나의 술이 지역의 명주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의 숙제를 풀 수 있어야 한다. 문화재나 명인으로 지정되었다고 해서 곧장 그 지역을 대표하는 술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 술을 사랑하는 소비자들도 우리 전통주를 소비하는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전통주는 명절인 설날과 추석 때에 많이 팔린다. 주로 선물용으로 팔린다. 그런데 선물용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술을 구매하는 사람은 마시지 않고, 마시는 사람은 그 술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마시고 감탄하고 남에게 권해야 입소문이 나는데, 전통주는 벙어리 소비자들만 존재한다. 전통주가 파급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소비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번 명절에는 전통주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라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전통주를 선물해보자.
도도하고 기품 있는 ‘안동소주’
술 취한 한국인의 절반은 소주 때문이다. 맥주와 막걸리는 도수가 약해서 어지간히 마셔서는 취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실제 한국인의 알코올 소비량의 절반 이상이 소주라서 그렇다. 쉽게 취하고 빨리 깨는 술이 소주이니, 소주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무직원이나, 힘을 많이 쓰는 현장 일꾼이나 할 것 없이 즐기는 술이다. 그런데 소주가 다양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소주는 우선 제조 방법에 따라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로 구분된다. 수도권에서 많이 팔리는 술인 ‘참이슬’이나 ‘처음처럼’ 같은 소주는 희석식 소주다. 요사이는 아열대 지방에서 나는 타피오카를 많이 쓰는데 쌀, 고구마, 옥수수 따위의 곡물을 재료로 해 에틸알코올 95도가 넘는 순도 높은 주정을 우선 만든다. 그 다음에 물을 희석해 도수를 맞추고, 안 좋은 냄새를 제거하고 입맛 좋게 감미해 병에 담는다. 희석식소주는 도수가 높아도 가격이 저렴하고, 잘 정제돼 깔끔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다. 그런데 이 희석식 소주는 19세기에 영국에서 개발돼, 일본을 거쳐서 한반도에 들어온 술이다. 1919년 평양에 처음 기계식 양조장이 생기면서 시작되었으니, 조선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전통 소주는 희석식 소주가 아니라 증류식 소주다. 희석식 소주는 여러 차례 연속 증류하여 만들고, 증류식 소주는 한두 차례 증류하여 만든다. 희석식 소주는 굳이 좋은 재료를 쓸 필요가 없지만, 증류식 소주는 좋은 향과 맛을 얻기 위해 좋은 재료를 써야 좋은 술을 얻을 수 있다. 희석식 소주의 원료인 주정은 연료나 약품에도 사용되지만, 증류식 소주는 산업용으로 쓰이지 않고 대부분 기호식품인 술로 사용된다.
그 증류식 소주를 대표할 만한 한국의 전통 소주가 안동소주다. 안동소주의 내력을 이해하면 우리 소주의 대한 기초 상식을 얻을 수 있다. 한반도에 소주가 처음 전래된 것은 고려시대 몽골 침략기 때였다. 말과 화살과 창이 병사들의 무기였다면, 북과 피리와 소주는 병사들을 고무시켰던 또 다른 무기였다. 한반도에서 소문난 소주는 몽골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개성소주, 제주소주, 안동소주, 또 진도홍주까지도 몽골의 영향권에 있다고 볼 수 있다.여몽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에 안동을 거쳐 갔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충렬왕은 여몽연합군을 위로하기 위해서 안동까지 행차하여 행궁에 머물기도 했다. 그런 여파로 소주가 안동에 뿌리내리게 되었다고 추정하는데, 구체적인 문헌자료가 따로 있거나 하지는 않다. 실질적으로 안동 소주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20세기 들어와서라고 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 유명한 소주로 제비원 소주가 있는데, 이 소주가 안동 소주의 명성을 높였다. 현재 안동에 안동소주 제조장이 5군데가 있는데,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조옥화 안동소주,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명인으로 지정된 명인 안동소주, 안동소주의 대중화의 기치를 내건 일품 안동소주, 2008년에 생긴 명품 안동소주, 최근에 생긴 양반 안동소주가 있다. 그리고 대구의 금복주회사에서도 제비원소주와 안동소주를 내고 있다. 아주 다양한 소주가 안동소주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회사마다 그 제조법이 차이가 나는데, 그중에서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조옥화 안동소주를 살펴보면 이렇다. 조옥화 씨는 안동 음식을 잘 만드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1999년에 영국 여왕이 안동 하회마을을 찾았을 때 생일상을 손수 차리기도 했다. 안동시 수상동에 위치한 제조장은 너른 마당을 거느린 반듯한 2층 건물이다. 이 건물의 1층에는 전시장과 체험장이 있고, 2층에 누룩방과 제조장이 있다. 고두밥을 찌고, 직접 만든 밀누룩을 빻아서 물과 함께 섞은 뒤에 술을 빚는다. 발효통에서 15일 정도 숙성시키면 노르짱하면서도 감칠맛나는 술이 된다. 증류하기 전 단계의 이 술을 전술이라고 부른데, 전술을 증류기에 넣고 가열하여 알코올 45도 술을 받아낸다. 안동소주는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정통적인 방식으로 빚은 소주다. 한국적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소주다. 그 도수가 45도로 높아서, 꿀밤을 맞은 것처럼 얼얼했다고들 한다. 그래서 안동에서는 아이들끼리 꿀밤을 때리면서 “안동소주 45도!”라고 외치기도 했다고 한다. 쌀과 밀누룩 재료의 향이 은근히 따라올라오는 게 증류식 소주인 안동소주의 특징이다. 도수가 높아 자극적이지만, 혀 끝에 단맛이 감돈다. 술을 입안에 머금고 있으면 혓바닥과 입천장이 소금에 절여진 듯 얼얼하다. 목 안으로 술을 떨어뜨리고 나면, 카아! 하고 속이 타고, 코끝이 찡해진다. 희석식 소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고 풍부한 향과 맛이 있다. 어떤 이는 안동 소주의 향이 방금 뿌린 향수처럼 강렬하다고 말한다. 술의 기질이 강하고 카랑카랑하다. 장수가 전장터에 나가기 직전 비장하게 들이키는 한잔 술 같다. 그래서 안동소주를 대하면, 서늘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안동이 훌륭한 선비들을 많이 낸 동네이지만, 안동 소주에서는 대륙을 달리는 무인의 기상이 느껴진다. 안동소주 한 잔을 맛보면, 안동 사람들의 또 다른 기상과 우리 소주의 진면목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선홍색 신비로운 진도 홍주
진도 홍주 맛보신 적 있는지요? 홍주는 붉기 때문에 얻은 이름입니다. 우리술에는 붉은 색이 도는 술이 몇 종류 있습니다. 진도홍주처럼 지초를 넣어서 빚은 증류주로 감홍로, 관서감홍로, 내국홍로주가 있고, 붉은 누룩 홍국을 넣어서 빚은 발효주로 천태홍주, 건창홍주, 홍국주가 있습니다. 현재 상품화되고 있는 것으로는 파주에서 빚는 감홍로가 있고, 배상면주가에서 빚는 천대홍주가 있는데, 아무래도 진도홍주의 명성이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진도홍주의 유래설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신뢰할 만한 얘기는 진도에 터잡고 사는 양천 허씨 집안에서 전해오고 있습니다. 1608년에 광해군이 즉위하자, 신하들은 왕의 형 임해군을 역모죄로 몰아 진도로 유배를 보냅니다. 그런데 광해군은 형을 먼 진도까지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강화 교동도로 유배지를 바꿉니다. 충청도 아산까지 내려갔던 임해군의 행렬이 다시 길을 돌리는데, 임해군을 맞이하기 위해 진도로 먼저 내려가 있는 임해군의 처조카 허대(1586~1662)는 이 소식을 듣지 못 합니다. 그 때 허대는 임해군에게 드릴 소주 내리는 법까지 알고 있었던가 봅니다. 임해군이 영창대군과 함께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난 뒤로, 허대는 아예 진도에 눌러앉아 진도의 양천 허씨 가문을 열게 됩니다. 이때부터 진도에 홍주가 터잡게 되었고, 지금은 허대의 11대손인 허화자씨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진도홍주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동여지도를 작성한 김정호 선생도 진도홍주를 맛보고서 “홍매화 떨어진 잔에 봄눈이 녹은 듯하고, 술잔에 비친 홍색은 꽃구경 할 때 풍경이로다."라고 찬탄했습니다. 나랑 안에서 소문난 명주였던 거지요. 이런 역사성을 인식했는지, 최근에 그러니까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동안 국책사업으로 진도홍주 명주 프로젝트인 진도홍주 신활력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한 200억원 정도가 투자되었는데요, 유사이래 이렇게 큰 자본이 전통주에 투자된 적이 없지요. 그래서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진도홍주 공동브랜드로 40도 루비콘과 35도 아라리를 출시하고 있습니다. 이 공동브랜드는 진도군수가 품질인증을 하고, 전통주 최초로 지리적 표시제가 실시되고, 표준화된 제조법에 따라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어떤 전통주도 시도하지 못한, 야심찬 노력을 하고 있지요. 공동브랜드인 루비콘은 예전 진도홍주보다 훨씬 맑고 깔끔해졌습니다. 선홍색이 더 맑게 돌고, 알코올의 짱짱한 기운도 더 세련되었습니다. 지초의 맛과 누룩의 향기도 잘 조절되어 있는 편입니다. 이 루비콘 제품은 2010년 대한민국우리술품평회에서 리큐르 부분에서 우수상을 차지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진도홍주의 매력은 그 다양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진도군에는 5개의 홍주 양조장이 있고, 올해는 2개의 홍주 양조장이 더 생길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진도홍주 체험마을인 홍주촌을 만들었는데, 사실 진도홍주의 가장 큰 힘은 진도 민가에서도 홍주를 내릴 줄 안다는 것이지요. 술을 정책적으로 통제하기 때문에 그 지역 사람들이 모두 공유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진도홍주는 섬 지방의 특성상 상당히 오래도록 소주를 내리는 문화를 주민들이 공유해 왔습니다. 보리가 들어간 홍주는 뒷맛이 구수하고 진합니다. 옹기로 만든 고소리로 소주를 내렸는데, 현재 양조장에서는 감압식 증류기를 사용하여 홍주를 내립니다. 홍주의 빛깔과 특유의 향기는 지초라는 약재에서 우러나온 성분입니다. 마지막 제조 단계에서 소주를 지초에 통과시키면, 선홍빛 홍주가 됩니다. 지초의 향과 맛은 독한 알코올의 향을 가려주는데 그 맛이 아주 도도하게 느껴집니다. 지초는 관절염에 효과가 있고, 최근 경희대학교 연구에서는 당뇨와 비만에 효과가 있다는 보고도 내놓았습니다. 저는 진도홍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을 진도홍주 문화재기능 보유자인 허화자씨에게서 배운 적이 있는데요. 마실 때 꿀을 조금 타서 마시라더군요, 그러면 알코올의 쓴맛과 지초의 약재맛이 꿀과 어우러지면서 술이 입에 착 감깁니다. 요사이 진도사람들은 맥주와 홍주를 칵테일해서 붉은 노을이 바다에서 출렁거리는 것처럼 만들어 일출주 또는 일몰주라 하여 마시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진도홍주에 가장 어울리는 안주는 아마도 진도 소리일 것입니다. 진도홍주를 맛보러 진도 여행 계획을 잡아보시고, 진도 소리와 함께 진도 홍주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예전 유배객들이 즐겼을 진도의 기품있는 문화의 한 자락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막걸리와 과학의 핑크빛 만남
최근 한국식품연구원의 식품분석센터 연구팀이 막걸리에 항암물질인 파네졸(Farnesol) 성분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기사화된 게 4월 14일 목요일 석간부터였는데, 물론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각 언론사들의 통신매체들이었고, 이를 재빨리 받아 새로운 가치로 변환시킨 게 주식시장이었다. 이 주식시장의 반응을 언론은 다시 재빨리 물어날랐다. “배용준, 막걸리주 폭등에 하룻새 15억 대박”, “막걸리 항암효과 소식, 주식 춤추게 했다 ‘국순당 보해양조 대박’”이라는 기사 제목이 뽑혔다. 실제 4월 14일 일찍 나온 석간 때문에 14일 오후부터 막걸리 관련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하여, 금요일인 15일 오전 9시27분에는 국순당 주식 가격이 제한폭인 1만2,900원까지 올라, 전일대비 14.67%(1,650원)나 상승했다. 그리고 최근 ‘순희’라는 막걸리를 내놓은 보해양조 주가 역시 15일 오전 9시 27분 기준 전일대비 15%(1,800원) 상승한 1만3,800원에 거래중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막걸리가 주식시장을 움직이다니, 주식을 오래 한 사람들은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지난해 막걸리 바람으로 국순당 주가가 오르고, 막걸리양조장을 인수한 오리온 계열사인 미디어플렉스의 주가가 들썩인 적이 있지만, 이제는 막걸리 테마주라는 게 주식 시장에 등장한 것이다. 물론 ‘파네졸’이라는 항암물질 발견의 소식은 곧바로 주말 막걸리 시장을 분주하게 만들었다. 서울에서 막걸리 유통을 하는 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일요일인데 막걸리가 다 떨어져 배달할 곳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필자 또한 동네 대형 수퍼에 나가봤더니 토요일(4월 16일)에 막걸리 7짝(20병에 한짝)이 모두 나가 일요일에 팔 물건이 없다고 했다.
이는 도심 편의점으로까지 확대됐다. ‘세븐일레븐’과 ‘바이더웨이’는 막걸리의 항암효과 연구 결과가 발표된 다음 날인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 막걸리 매출을 분석한 결과, 전주 대비 4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고, 막걸리 안주류 상품도 150%, 막걸리 안주로 궁합이 딱 맞는 두부와 두부김치 매출도 덩달아 26.2% 신장했다’는 보고를 내놓았다. 특히, 막걸리가 많이 팔리는 등산로, 행락지 등 유원지 인근 점포 40여 곳의 경우, 막걸리 판매가 62.8%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고작 해야 1200~1300원짜리 막걸리가 수십억의 가치 증식과 편의점의 매출과 안주류의 매출 증대까지 불러오다니, 막걸리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했던가 경이로울 따름이다. 사실 막걸리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과거의 옷을 벗어버리고 어떻게 하면 와인처럼 행세할까 와인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맥주를 벤치마킹 할까’도 고민한 적이 있었다. 와인과 맥주와 일본청주가 먼저 세계화의 길을 갔고, 현대 과학문명의 혜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네졸이라는 항암물질의 발견으로 현대 과학의 햇살 한 줄기가 막걸리에도 쏟아진 것이다. 막걸리는 ‘고리타분하다’, ‘누룩 잡내가 난다’, ‘숙취 성분이 있다’는 부정적인 요소에 속수무책으로 질타 받아야 했던 게 막걸리의 지난날이었다.
모든 물질에는 단점이 있고, 장점도 있다. 모든 인간에게 단점도 있고, 장점도 있듯이 말이다. 장점을 일으켜세워 이를 강화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면 약점도 극복할 수 있다. 약점을 숨기는 게 아니라 약점을 극복하고, 막걸리의 장점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오늘을 사는 현대인과 현대 과학의 몫이다. 우리 조상들은 수천 년 동안 막걸리를 즐기면서 한국의 문화를 일궈오고, 쌀 문명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쌀로 만든 저알코올 음료를 우리에게 주었다. 이에 대해서 과학적인 해석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해왔는데, 발효주인 와인과 청주에 견주어 파네졸이라는 항암물질이 10배~25배 가량 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다니 식품과학이 막걸리에 단비와 같은 선물을 준 것이나 다름 없다.
사실 파네졸의 성분은 아주 미미하다. 어디 볼까. 파네졸은 5~7mg/ℓ 정도의 미량으로도 항암 항종양 성질을 가고 있는 물질로 밝혀져 있다. 그런데 포도주나 맥주에는 파네졸이 15~20ppb가 들어있는데, 막걸리에는 10~25배나 많은 150~500ppb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 때 ppb(parts-per billion)는 10억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무게로 달 수 없는 꿈의 질량만큼이나 가볍다. 하지만 이것이 지닌 의미는 무시하고 넘어갈 게 아니다. 우리는 이 좌표를 얻어서, 이제 비로소 ‘와인에 항암물질 폴리페놀이 있다면 막걸리에는 파네졸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과학이 와인에 베풀었던 찬사를 막걸리가 더 이상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나아가 와인에 전용했던 ‘소믈리에’나 ‘마리아주’라는 외래식 표현 대신 우리 문화를 함께 풀어낼 수 있는 막걸리 해설사나 우리 음식과 궁합을 맞춘 막걸리 안주를 얘기하는 차원으로 도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막걸리에 대해 지금까지는 과학적인 저주를 퍼부었다면, 이제는 과학을 통해 막걸리의 장점을 재해석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막걸리 문화의 주도권을 우리가 선도해나가야 한다. 막걸리의 주인은 그냥 한국인이 아니라, 막걸리를 가장 즐기는 한국인이고 세계인이다. 음식과 문화는 그것을 가장 아끼고 즐기는 자가 주인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도 막걸리와 전통술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와 재해석이 거듭 필요하다. 막걸리가 명주가 되는 것은 단순히 양조업자들만의 몫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 우리도 첨단 과학 장비들로 무장하고, 100년의 역사를 지닌 일본주류총합연구소에 비견할 만한 ‘한국술연구소’를 설립할 때가 됐다다.
술 한 잔이 보약 한 잔 ‘구기자술’
술은 백가지 약 중에서 으뜸(百藥之長)이라고 한다. 술꾼이 술 마실 핑계로 만든 말은 아니다. <동의보감>을 보면 다양한 술이 등장하고, 술에 대한 긍정적인 점도 기술해놓았다. 한 구절을 인용해보면 “주로 약 기운을 운행시키고 온갖 사기(邪氣)와 나쁘고 독한 기운을 없애며, 혈맥을 통하게 하고 장과 위를 든든하게 하며, 피부를 윤기 있게 한다. 우울함을 없애며, 화나게 하고 흉금을 털어놓고 마음껏 이야기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술은 만병(萬病)의 근원이라는 말도 있다. 백약지장을 압도하는 말이다. 만병 앞에 백약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동의보감>에는 “오랫동안 마시면 정신이 상하고 수명이 줄어든다. 사람이 마시면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정신이 혼미해지니 그것은 술에 독기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찬반, 좋고나쁨이 교차할 때 우리는 중용이라는 말을 곧잘 사용한다. 적당한 선을 유지하면 해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지나침이 문제다. 적당함과 지나침은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니 놓아두고, 여기에서는 한국의 전통주 중에서 대표적인 약술인 구기자 술 맛을 가늠해보자. 구기자주에 얽힌 재미난 얘기가 이수광(1563~1628)의 <지봉유설>에 나와 있다. 옛날 하서에 길을 가던 사신이 16~17세 가량의 여인이 백발의 80~90세 되어보이는 늙은이를 매질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연유를 물으니 젊은 여인이 늙은이를 가리키며 ‘이 아이는 내 셋째 자식인데 약을 먹을 줄을 몰라서 나보다 먼저 머리가 희어졌고’라고 하였다. 여인의 나이를 물었더니 395세라 하였다. 이에 사신이 말에서 내려 그 여인에게 절한 다음 그 약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여인은 구기자주 만드는 법을 그르쳐 주었다. 사신이 돌아와서 그 법대로 만들어 먹었더니 300년을 살았다고 한다. <동의보감> 잡병편에는 구기자주 빚는 법이 소개되어 있다. “구기자 5되를 청주 2말에 7일 동안 담갔다가 꺼내어 찌꺼기를 제거하고 마신다. 처음에는 3홉으로 시작하고, 뒤에는 주량대로 마신다.”고 했다.
붉은 구기자 열매
구기자주를 빚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술을 빚을 때 구기자 달인 물로 빚든지, 술에 구기자를 넣어 침출시켜 빚든지 하는 방법이다. 다만 구기자의 어느 부위를 쓰며, 얼마나 넣으며, 다른 약재와 어떻게 섞어서 쓰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가장 널리 알려진 구기자술로, 충남 청양군 운곡면 광암리에서 빚어지는 청양 둔송 구기주를 꼽을 수 있다.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술이다. 청양과 구기주 앞에 붙은 둔송(屯松)이라는 말은 청양읍내의 원각사 정문 스님이 지어준 이름이다. 언덕 둔(屯)자에 소나무 송(松)자인데, 스님은 “크게 되라고 지어준 이름이니까 더는 자세히 알려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구기주를 빚는 임영순 씨는 1996년에 농림부로부터 전통술 명인 지정을 받았고, 2000년에 충남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녀가 술을 빚게 된 것은 순전히 시집 와서 생긴 일이다.
임영순 명인이 빚은 붉은 구기주
그녀는 21살에 시집왔다. 청양 지방으로 갈래를 친 하동 정씨 종가집이었다. 일도 많았지만, 20대에 혼자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혹심했다. 새벽 3시에 눈 뜨면 혹시나 다시 잠 들까봐 아궁이 곁에 쪼그리고 앉아 물을 데우고 밥할 준비를 했다. 시어머니는 조금만 몸이 아파도 아들을 곁에 두고 자야 했다. 아들을 뺏어간 며느리가 미웠던가보다. 그래서 그녀는 시어머니가 잠들기 전까지는 남편과 한마디 말도 나눌 수 없었다. 도란도란 남편과 얘기하는 것을 들키게 되면 이튿날 시어머니 심술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술은 붉은 빛이 돌 정도로 진했다. 약재 냄새가 강하고, 새큼하고 달작지근했다. 전혀 감미를 하지 않은, 구기자와 약재로 우러낸 맛이었다. 며느리가 약재향이 강해서 젊은 사람 취향에 맞지 않다고 약재를 줄이면, 임씨는 며느리 몰래 약재를 한주먹씩 더 집어넣는다고 한다. 임 씨는 누룩과 멥쌀로 밑술을 담근다. 4일이 지난 뒤에 찹쌀 고두밥과 누룩을 넣어 덧술을 한다.
‘값비싼’ 막걸리에 주목해보라!
막걸리가 더 좋아지기를 희망하는 분들은 이런 말을 한다. “외국인들이 때때로 세제통으로 오인하는 비닐 패트병으로부터 벗어났으면 좋겠다. 트름이 나지 않고 숙성을 거친 막걸리가 나왔으면 좋겠다. 1000원짜리 말고, 값이 더 나가는 고급 막걸리가 나왔으면 좋겠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그 재료를 신뢰할 수 있는 막걸리가 나왔으면 좋겠다. 감미료를 넣지 않는 막걸리가 나왔으면 좋겠다. 찾아오는 고객을 환대하는 막걸리 양조장이었으면 좋겠다.”또 뭐가 있을까? 막걸리를 좋아하는 소비자로서 어떤 희망을 더 품을 수 있을까? 나더러 하나를 더 보태라면, “그런 막걸리가 존재한다면, 그 막걸리를 좀더 쉽게 구할 수 있는 유통구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그런데 위에서 열거한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는 막걸리 양조장이 지금 대한민국에 몇개나 있을까? 그 개수가 아마도 한국 막걸리의 성적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보겠다. 전라남도 장성군에 가면 ‘청산녹수’라는 양조장이 있다. 생긴 지 1년된 신생양조장이다. 옛 초등학교를 인수하여 제법 안정된 설비를 갖췄다. 초등학교 2층과 1층에 양조설비를 갖추고, 냉장 저장시설과 연구시설도 있다. 그곳에서 나온 술이 사미인주다. 장성과 이웃한 담양 출신인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에서 따온 이름이다.그 술이 유리병에 담겨나온다. 술병 디자인은 독자 개발하였고, 한번 주문하면 10만병씩 받아와야 한다. 저장 공간이 따로 필요한 부담스런 양인데, 청산녹수는 다행히 창고로 쓸 공간이 있다. 막걸리 한 병 값은 소비자가격으로 3,800원에 팔리고 있다. 일반 막걸리의 3배나 된다. 원료는 유기농쌀을 양조장 인근 동네에서 구입해서 사용한다. 감미료를 넣지 않기 위해서 천연꿀을 넣어 단맛을 얼마간 낸다.초기 발효 뒤에 5일 숙성시켜 술맛을 얌전하게 다스린다. 그래서 트림이 나지 않고, 과일즙을 풀어놓은 듯한 향긋함이 술 속에서 돈다. 양조장 대표는 대학에서 발효공학을 가르치는 교수라 과학을 기반으로 술을 빚고, 연구 개발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학교 복도를 견학로로 만들어놓아, 찾아오는 이들에게 기꺼이 제조과정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신뢰도 얻고, 술도 제법 많이 팔 법도 한데, 형편은 그렇지 않다.
3,800원의 술값을 지불하려는 소비자들이 많지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3,800원이 술의 가치에 견주었을 때에 결코 비싸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다. 막걸리가 싸다는 선입견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며, 생산자와 소비자가 소통하는 통로가 좁기 때문이다. 미각은 민족주의자처럼 익숙한 것에 높은 점수를 준다. 새로운 맛은 외면하려든다. 소비자의 미각이 음식의 좋고 나쁨을 가려낸다면 좋으련만, 결코 그렇지 못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듯이, 달면 맛있다하고 쓰면 맛없다고 한다. 술은 본디 알코올 때문에 쓴맛이 주도하는 식품인데도 말이다. 값싼 막걸리를 내는 양조장에서는 막걸리 한병의 출고가격이 600원 안팎이다. 최대한 유통마진을 보장해주며 박리다매의 전략을 구사한다. 원가 절감하려면 수입산 원료를 사용하고, 제조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킨다. 그런데 좋은 술은 좋은 원료로 빚어야 하고, 막걸리라 하더라도 발효 기간을 충분히 거쳐야 좋은 맛을 낸다. 좋은 막걸리를 찾는 손쉬운 방법 하나는, 와인도 그렇듯이 상대적으로 비싼 제품에 주목해보라. 그리고 그 차별성을 추적해보라. 분명 값싼 막걸리와 다른 요소가 존재한다. 막걸리를 즐길 줄 아는 소비자라면, 주점 주인이 내주는 막걸리만 마셔서는 곤란하다. 요즘은 택배로 배달되거나, 유기농 매장에서 파는 막걸리들도 생겨났다. 소비자들이 좋은 막걸리를 가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생산자들이 다투어 더 좋은 농산물과 기술력으로 차별화된 막걸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막걸리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생산자보다 소비자의 몫이 더 크다.
가을 황금 들판의 파수꾼 ‘막걸리’
안동에 갔더니, 금칠한 잔을 만드는 분이 계셨다. 금잔에 차를 마시니 차맛이 달랐다. 잠시 현혹된 듯하여 다시금 마셔보니 금잔의 차와 유리잔의 차맛이 달랐다. 신비로워서 금잔 세트의 가격을 물었더니 1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금값이 비싸기에 그런가보다 하고, 흥정도 못하고 말꼬리를 내렸다. 그런데 안동을 벗어나는데 내 눈에 온통 황금이 일렁였다. 추수를 앞둔 들판이 온통 황금판이었다.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지만, 가을 들녘만큼 아름다운 단풍이 없다. 가을 들판을 가로지르는 나는, 황금잔 속 떠있는 작은 찻잎 같았다. 농사 기법이 발달하여, 어지간한 자연 재해가 닥쳐도 어김없이 풍년이 온다. 하지만 농촌은 풍요롭지 못하다. 벼 수매가 걱정을 해야 하고, 논을 갈아엎고 심을 대체 작물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쌀의 가치를 어떻게 올릴 것인가 해법도 모색하지만 쉽지가 않다. 쌀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의 하나로, 농림수산식품부는 술을 고민해 왔다. 술을 권할 수는 없지만, 수입 술이나 수입 원료로 만든 술을 대체하는 국산 농산물로 빚은 술을 부양하고 진흥시켜왔다. 그 정책의 하나가 가을이면 열리는 대한민국 우리술 축제다. 올해는 10월 넷째주 목요일을 아예 ‘막걸리의 날’로 지정했다. 독일의 옥토버페스트, 프랑스의 보졸레누보 출시와 흡사한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우리술 품평회가 2009년에 수원의 농촌진흥청에서 열렸고, 2010년에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박람회장에서 열렸고, 2011년에는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평화공원에서 열리게 되었다. 2009년에는 품평회만을 위한 행사였고, 2010년에는 전시 홍보를 위한 행사로 확대되고, 올해는 전시 홍보와 함께 축제 행사로 확대되었다. 게다가 막걸리의 날까지 제정하면서, 해마다 행사를 이어가겠다는 의지까지 표명하였다.
선진 강대국들은 고유한 술을 지니고 있다. 영국의 위스키, 프랑스의 와인, 독일의 맥주, 러시아의 보드카, 중국의 마호타이, 일본의 청주 들이 득세하고 있는 술들이다. 국가의 후원을 받은 이 술들에는 알코올만 담긴 게 아니다. 그 속에는 음식 문화의 세계화 전략이 담겨있고, 자국 농민을 보호하는 전략이 담겨 있다. 올 가을에는 유난히 술 축제가 많았다. 10월 2일에 경기도 양평에서 가양주 주인(酒人) 선발대회, 10월 8일에서 9일까지 경기도 고양시에서 대한민국 막걸리 축제, 10월 8일부터 13일까지 경주 시내에서 경주술떡잔치, 10월 21일에서 23일까지 남한산성에서 경기막걸리 대축제가 열렸다. 그밖에 크고 작은 축제에서 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이는 막걸리 바람이 불면서 그 성과를 향유하고, 이를 통해 지역 관광자원을 개발하려는 노력으로 벌어진 현상이다.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10월 27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2011년 대한민국 우리술 대축제에는 100여개 양조장에서 낸 300여점의 술이 선보인다. 100여개의 양조장 술이 시음을 위해서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8도 막걸리 명품관이 들어서고, 지역 예선을 통과한 115개 제품이 품평회장에서 경합을 벌이게 된다. 막걸리를 맛보러 한국을 찾는 외국관광객들을 유치하려는 노력도 이뤄지고, 햅쌀 소비 촉진을 위하여 햅쌀 막걸리가 전국의 유통 매장에서 동시에 출시된다. 술 축제장은 술을 곤드레만드레 마시자는 공간이 아니다. 칼을 벼리듯이 술을 벼린 장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이고, 소비자들은 그 맛을 가늠해보는 자리다. 쌀로 만든 가장 비싼 상품은 술이다. 쌀이 남아돈다하여 논을 갈아엎을 것이 아니라, 차별화된 양조미를 통해서 논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쌀이 넉넉할 때에는 쌀이 술로 변신했다가, 쌀이 부족할 때는 다시 밥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술을 지키는 일은, 우리 쌀을 지키고 우리 논을 지키는 일이다. 막걸리를 논의 파수꾼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