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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시의 공간 - 춘천
봄내가 낳고, 기른 시인들
한명희
1.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적임자가 아니다. 나는 춘천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춘천 시인들에 대해서는 더 모른다. 춘천에 세컨드 하우스가 있고, 춘천에 직장을 둔 지 4년이 되었지만 나를 춘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춘천이 주소지이고 춘천시에 세금을 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춘천을 얼마나 좋아하느냐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는 스스로를 춘천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다. 자발적인 소외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와 춘천>이라는 원고 청탁을 덜컥 수락해버린 것은 순전히 거절을 잘 못하는 나의 성격 탓이다. 아니, 원고 청탁을 일차 거절하긴 했었다. 더 적당한 사람이 원고를 쓸 것으로 알고만 있었는데, 넉 달 후 그러니까 계간지의 홋수가 바뀌어서 다시 원고 청탁이 온 것이다. 문예지 편집자의 안목에 내가 적당한 필자라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터무니없는 착각 속에서 그만 글을 쓰기로 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내가 듣고, 읽고, 추측한 것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내가 경험한 것으로는 시와 춘천을 얘기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얻어 들은 것을 적자면 왜곡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추측한 것은 때로 사실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냥 듣고 본대로 시와 춘천을 얘기해 볼까 한다.
2.
춘천에 살기 전 내게 춘천은 이승훈 선생님과 최승호 시인, 박찬일 시인의 도시였다. 물론 소설 쪽으로는 전상국, 오정희, 한수산, 최수철 등의 뛰어난 분들이 있지만 시 쪽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자그마한 도시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문단의 별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나의 춘천행이 설레었던 건 그런 문단의 별들이 맡았던 공기를 나도 나누어 마실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다시 이승훈 선생님 얘기로 돌아가자. 선생은 춘천에서 태어났고 춘천에서 직장 생활도 했다. 춘천을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늘 춘천을 그리워하는 느낌이다.
해 지는 가을 저녁 가게에 들른다 가게 총각은 인사도 없고 말도 없고 난 감자튀김 두 봉지를 들고 묻는다 하나는 노란 포장 하나는 붉은 포장이다 이 둘은 뭐가 다릅니까? 총각은 여전히 아무 표정도 없이 의자에 앉아 말한다 저도 모릅니다 저는 과자를 좋아하지 않아서 과자에 대해선 잘 몰라요 그럼 물건을 팔겠다는 거야? 뭐야? 속으로 중얼대며 감자튀김 두 봉지를 들고 나온다 물론 악의는 없다 너무 선량해서 문제지 안녕히 계세요 가게를 나오며 인사를 해도 대답이 없는 강원도의 가을 저녁
──이승훈, 「고향 가게」, 『이것은 시가 아니다』(세계사, 2007)
내가 춘천 사람이 되어가고 있구나 느끼는 때가 있다. 식당 주인의 불친절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때가 바로 그때다. 서울에서 식당에 들어갔다가 주인의 친절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내가 춘천스러워지고 있구나 느끼게 된다. 불친절함이 ‘너무 선량함’이란 걸 알게 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리기는 했다. 그러나 다음의 경지에까지 이르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1988년 4월 시인의 고향 특집으로 춘천엘 갔다 (…중략…) 난 기자와 함께 고교 시절을 보낸 효자동 집을 찾아갔다 (…중략…) 기자와 함께 들른 동네는 많이 변했지만 집으로 올라가던 좁은 길은 그대로다 쌀가게 담을 끼고 올라가면 대문 마당엔 해가 비치고 아무도 없다 계십니까? 난 마당에서 주인을 찾았다 웬 등이 굽은 노파가 나온다 제가 옛날에 살던 집인데 서울에서 왔습니다 노파는 나를 보자마자 욕을 하기 시작한다 나쁜 사람들! 흥 우리를 속였어 누가 모를 줄 알고? 마당 수돗가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노파는 계속 욕을 하고 그날 춘천에서 듣던 바람 소리 아아 옛날에도 그렇게 바람만 불고 있었다
──이승훈, 「고향」, 『이것은 시가 아니다』(세계사, 2007)
그리워서 찾아간 옛날에 살던 고향집. 거기서 시인은 새로운 집 주인으로부터 욕을 얻어 먹는다. 자기네를 속였다고. 이승훈 선생님을 떠올리면 당연하게도 박찬일 시인이 따라온다. 완전히 우연이겠지만 두 분은 매우 특이한 식성(?)을 가지고 있다. 이승훈 선생님과 ‘멸치’는 너무도 유명해서 다시 얘기할 필요도 없으리라. 더불어 이승훈 선생님은 “학교 연구실에서 20년 매일 잡채밥을 시켜 먹는” 참으로 독특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정년 퇴직을 하신 요즘은 점심 식사를 어떻게 하시나?) 박찬일 시인은 어떤 술자리에서건 “장수 막걸리”를 꼭 따로 챙겨가지고 간다. 아무리 좋은 술집에 가더라도 꼭 장수 막걸리가 필요한 것이다. 요즘은 막걸리가 국제적인 인기여서 다양한 상표의 막걸리가 출시되는 모양이지만 박찬일 시인은 꼭 “장수” 막걸리만 찾는다. 그의 시 「장수막걸리를 찬양함」을 인용해 보자.
거울은 빈털터리다
우주도 빈털터리다
우주라는 말도 빈털터리다
빈털터리는 빈털터리다
막걸리도 빈털터리다
막걸리가 맛있다
아, 막걸리가 맛있습니다
──박찬일, 「장수막걸리를 찬양함」, 『하느님과 함께 고릴라와 함께 삼손과 데릴라와 함께 나타샤와 함께』(뿔, 2009)
박찬일 시인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팔호광장 오거리의 포장마차에서 장수막걸리를 마셨다고 한다. 그것도 졸업할 때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지금은 팔호광장에 포장마차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거기를 지날 때마다 어디쯤에 포장마차가 있었을까 두리번거리게 된다.
춘천에 내려오기 전의 춘천이 이승훈·최승호·박찬일 시인의 도시였다면 실제로 춘천에 내려와서 본 이곳은 이영춘·박기동·허문영 시인의 도시이다. 물론 이영춘 선생님은 강원여성문화예술인연합회장이어서 또 박기동·허문영 시인은 같은 강원대학교에 근무하고 있어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분들은 나와 근친하다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춘천에선 빼놓을 수 없는 분들이다.
“김도연의 소설을 읽으면 시간의 옆구리 같은 걸 느낄 수 있단 말야!”
소설가 이외수의 말이다
난 그 말의 의미를 한참 생각했다
시간의 옆구리? 시간의 옆구리라?
정상적인 상황에서 벗어난 것들
보편적인 진리에서 벗어난 것들
과거, 현재, 미래에서 툭 튕겨져 나간 것들
가야 할 길 위에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
있어야 할 사람 집에 다른 무엇이 살고 있는 것
과거, 현재, 미래 속에 다른 시제가 생성된 것
엉뚱한 것들, 엉뚱한 것들,
정상적인 혹은 보편적인 상황 위에
또 하나의 엉뚱한 상황,
지하도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나라
석, 박사가 되어도 일할 곳 없는 나라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나라
툭 터져 나간 옆구리 시간의 나라
작년 가을 내 칸나는 40세 젊은 나이로
옆구리 나라로 툭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아픈 시간의 옆구리,
피 철철 흘리는 옆구리 나라의 사람들
──이영춘, 「시간의 옆구리」, 『들풀』(북인, 2009)
이영춘 선생님의 작품 중에서 「강촌 연가」를 인용할까 하다가 「시간의 옆구리」로 바꾸었다. 이 시가 ‘춘천 문인’들이 교유하는 분위기를 조금은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서다. 김도연의 소설에 대한 이외수 선생의 평, 그리고 그 평에 대한 이영춘 선생의 의문, 그 의문에서 촉발된 우리나라의 현실적 상황에 대한 인식. 이 모든 것이 이 짧은 시 속에 다 드러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시는 우리나라를 ‘옆구리 나라’로 풍자한데 묘미가 있겠지만 적어도 시의 1연은 춘천 문인들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지금은 김도연 소설가는 대관령에서 이외수 선생은 화천에서 살고 있지만 김도연 소설가는 춘천에서 대학을 다녔고, 이외수 선생은 춘천에서 30여 년을 살았다고 한다. 그들이 춘천에 있을 때 춘천 문인들의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으리라. 나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지만 가끔 시인들이 ‘그때’를 회상하며 낭만적인 분위기에 젖는 것을 본다.
박기동 시인은 고향이 강릉이다. 그러나 춘천에서 산 지 30년도 더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춘천에 살면서 춘천 시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온 것 같다.(누구는 ‘마당쇠’라고 표현하지만 그보다는 정신적 지주가 좋을 것 같다.) 젊은 시인들이 그를 평하는 태도에서 그런 것이 느껴진다. 그의 시 「입춘대길」을 보자.
봄내에서 한 십년 살다보면
물에서 나는 냄새를 거부할 수가 없다
안개는 안개인데, 손잡을 데 마땅치 않은, 가령
가는 명주실이라든가 살얼음판에 나선 바람이라든가
더 이상 앞으로 가기 어려운
이곳은 안개밀집지역이라 해야 하나
지워지지 않는 위수지역이라고 해야 하나
(…중략…)
봄내에서 한 이십년 살다보면
물에서 올라오는 삼월이 소식을 듣지 않을 수 없다
얼음 깨고 올라오는 복수초는 제주도나 대관령으로부터 아니라
몇 년 시 못 쓰고 살아온
나 같은 불령시인에게도
안으로부터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삼월이 소식을 들어야 한다
──박기동, 「입춘대길」, 『나는 아직도』(한결, 2008)
‘봄내’는 춘천의 다른 이름이다. 봄의 냇가. 너무나 예쁜 이름이다. 춘천은 수향水鄕이자, 안개의 고향이다. 박기동 시인은 봄내에서 한 십년 살다보면 ‘물에서 나는 냄새를 거부할 수가 없’고, 봄내에서 한 이십년 살다보면 ‘물에서 올라오는 삼월이 소식을 듣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물냄새도 제대로 맡을 줄 모른다. 춘천 사람이 되려면 아직 한참 멀은 것이다.
그러나 허문영 시인이 말하는 춘천의 풍경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감전-남춘천역 가는 길」에서 보여주는 이런 모습이 내가 춘천을 사랑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린 아파트를 나서면 행복과일가게를 지난다 예쁜 과일들이 진한 향기를 화장을 한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과일보다는 망치나 톱 같은 운명을 닮고 싶다고 속으로 내뱉는다 평화정육점을 지나 현대만물상회 앞엔 어디선가 뜯어낸 욕조와 수도꼭지가 내 생활의 낡은 역사처럼 나뒹군다 21세기 비디오점엔 <살인이 추억> 포스터가 눈을 부릅뜨고 있다 (…중략…) 큰길을 건너면 철둑길 옆에 1톤 봉고트럭이 강냉이와 뻥튀기를 튀기고 있다 나는 귀를 막고 봉고차 옆을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지나고 있지만 이대로 귀를 꼭 막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해본다 기찻길 밑 움푹 파인 굴을 지나 곤계란 파는 허름한 가게 앞을 지나면 노인들이 평상 위에서 계란을 드시며 지난 세월과 화투판을 벌이고 있다 (…중략…) 이윽고 남춘천역 대합실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날 채비가 되었는지 개찰구 앞에 줄줄이 서 있다 그러나 나는 지나온 풍경에 감전되어버린 채 떠날 준비가 안 된 철새처럼 기차표를 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허문영, 「감전-남춘천역 가는 길」, 『물 속의 거울』
‘그린 아파트’를 나와 ‘남춘천역’에 이르기까지의 길가 풍경이 꼼꼼하게 묘사되고 있다. 거기에는 ‘행복과일가게’며 ‘평화정육점’이며, ‘현대만물상’같은 가게가 있고 강냉이와 뻥튀기를 튀기는 봉고트럭도 있다. 곤계란을 파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미니 실내 야구장도 있다. 가게 이름은 행복하고 평화롭지만 그 속 ‘생활’들은 빛바랜 포스터처럼 쓸쓸하게 낡아가고 있다. 이런 빛바랜 쓸쓸함에 끌리는 것은 나뿐일까?
춘천에서 났거나 춘천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춘천에서 대학을 다닌, 특히 강원대학교를 졸업한 시인들을 주목하게 되는 것은 내가 강원대에서 근무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보여준 시적 성취 때문이다. 강원대 국어국문학과를 나온 박용하,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김창균 시인. 또 김선우, 김남극 시인. 모두 우리 문단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 시에 춘천의 정기가 얼마간 배어 있으리라. 그들은 비록 몸은 춘천을 떠나 있지만 춘천 시절을 잊을 수는 없으리라. 이홍섭 시인은 대학을 춘천서 다니지는 않았지만 강원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하니 그 또한 그러하리라.
춘천에서 나서 춘천에서 살면서 시를 쓰는 시인들, 혹은 춘천에서 나지는 않았어도 현재 춘천에서 시를 쓰고 있는 시인들은 별로 교유할 기회가 없어 들은 ‘풍월’로만 얘기할 수밖에 없다. 오직 한 사람 한승태 시인을 빼고.
이렇게 낙담하는 마음이 많으니
한 때 사랑도 참 많았나보다
이름을 淸平이라 하고 석탑을 쌓은들
호랑이와 이리가 주인자리를 내놓을 수야 있나
두려움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끝내 사랑한다고 폭포는 떨어지는데
공주는 아직 저문 능선에 귀 기울이고
그대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난 아직 이해할 수가 없다
어쩌자고 이 몰골로 사랑을 알았을까
이끼 핀 공주塔은
환희嶺 작은 언덕 위에 서 있는데
탑신의 모서리마다 새겨진,
한 때 옥개석 위로 기어 올라간 영혼은
몇 겁의 석양으로 붉어지고
내 안의 千塔은 어찌 허물 것인가
山寺 길목의 높은 곳에 이르러
저 혼자
바람만 공양하고 돌아나간다
──한승태, 「뱀을 기다리며-청평사 공주塔에 기대어」
춘천에는 아름다운 곳이 참 많다. 아니, 많다가 아니가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청평사가 아닌가 한다. 외지에서 춘천으로 관광을 오면 가장 많이 찾는 곳도 청평사일 것이다. 나는 대학생 때 청평사가 청평에 있는 곳인 줄 알고 한 남자를 따라 나섰던 적이 있다. 한승태 시인의 「뱀을 기다리며」는 청평사 중에서도 특히 공주탑에 얽힌 전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청평사에 가시는 분은 꼭 공주탑을 한번 보시기 바란다. 절 입구에 공주상도 있고 공주탑에 얽힌 전설을 써넣은 안내판도 있으니 그것도 한번 보시기 바란다.
다시 춘천 시인들 얘기로 돌아가자. 춘천에는 <수향시낭송회>가 있다. 이들은 매월 모여서 시낭송회를 연다고 한다. 이영춘 선생님이 나에게 전해준 수향시낭송회 사화집 제17집에는 다음과 같이 회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회장 조성림, 부회장 권준호, 현상언 사무국장 이현협, 인터넷 수향시 카페 운영 정중화, 그 외 회원 고현수, 김금분, 김택성, 김학철, 김현숙, 노영일, 노용춘, 유명선, 윤용선, 이국남, 이근구, 이무상, 이영춘, 이해웅, 이현협, 전영순, 정주연, 정중화, 조성림, 진호섭, 최복형, 최인철, 한기옥, 허림, 허문영, 현상연, 황남중”. 삼척의 『두타시』, 속초의 『물소리시』, 서울의 『우리시』, 남양주의 『남양주시』 동인들까지 사화집에 참여한 것으로 보아 시낭송회도 춘천 시인들만의 낭송회는 아닌 듯하다.
이들 중 권준호 시인은 『고로쇠노동조합』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시집을 내었는데, 그 중 한편을 소개한다.
덕돌이, 덕만이, 응칠이……
노을 속에서 걸어나온다.
잠뿍 꽃이 핀 얼굴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신영강 봄밤엔
술내 젖은 육자배기,
어두운 달빛 흐른다.
낮잠으로 밥을 대신하고 싶다던
젊은 혼령 숨쉬는 금병산
봄, 봄, 봄밤엔
살아 맺힌 그리움,
무섭다하던 정
끝내 감추지 못해
빈 가지 뚫고 터진다.
산동백, 노란 허파꾀리모냥
퐁 퐁 터진다
──권준호, 「봄밤-김유정을 생각함」, 『고로뇌노동조합』
권준호 시인의 시에는 춘천을 소재로 한 것이 많다. 위의 시는 김유정을 생각함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소설가 김유정은 춘천이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춘천에는 <김유정 문학촌>이 있고, 김유정의 이름을 딴 기차역 김유정 역이 있다. 이 김유정 문학촌은 한승태 시인이 팀장으로 있는 <애니메이션 박물관>과 함께 춘천의 대표적인 명소가 되었다.
<A4 시모임>도 활동이 활발하다. 이 모임은 1993년에 박기동, 이홍섭 시인이 제안해서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김금분, 황미라 시인이 여기에 의기투합했고, 유태수, 허문영, 원태경, 김홍주 시인 등이 합류했다고 한다. 2010년 2월 현재 <A4 시모임> 홈페이지(www.a4poem.com)에 올라와 있는 “A4 시인”은 권준호, 김금분, 김재룡, 김창균, 김춘배, 박기동, 박제영, 송병숙, 원태경, 유문호, 이규호, 이상문, 이향숙, 전형근, 정현우, 조현정, 허림, 허문영, 현상언, 황순의 스무 명이다. <A4 시모임>도 동인집을 내는 모양으로 현재 9집까지 발간하였다고 한다.
그밖에도 다른 모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모임에 속하지 않고 열심히 시를 쓰는 분들도 계시리라. 그러나 대단히 죄송하게도 내가 ‘들은’ 시인들은 위에서 쓴 사람들이 전부다.
3.
겨울에는 불광동이 여름에는 냉천동이 생각나듯
무릉도원은 도화동에 있을 것 같고
문경에 가면 괜히 기쁜 소식이 기다릴 듯하지
추풍령은 항시 서릿발과 낙엽의 늦가을일 것만 같아
춘천이 그렇지
까닭도 연고도 없이 가고 싶지
얼음 풀리는 냇가에 새파란 움미나리 발돋음할 거라
녹다만 눈 응달 발치에 두고
마른 억새 깨 벗은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피고 있는 진달래꽃 닮은 누가 있을 거라
왜 느닷없이 불쑥불쑥 춘천이 가고 싶어지지
가기만 하면 되는 거라
가서, 할 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거라
그저, 다만 새봄 한아름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몽롱한 안개 피듯 언제나 춘천 춘천이면서도
정말 가본 적은 없지
엄두가 안 나지, 두렵지, 겁나기도 하지
봄은 산 너머 남촌 아닌 춘천에서 오지
여름날 산마루의 소낙비는 이슬비로 몸 바꾸고
단풍 든 산허리에 아지랑거리는 봄의 실루엣
쌓이는 낙엽 밑에는 봄나물 꽃다지 노랑웃음도 쌓이지
단풍도 꽃이 되지, 귀도 눈이 되지
춘천이니까.
──유안진,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춘천에서 나고 자랐어야만, 또 춘천에서 살아야만 춘천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춘천에 산다고 다 춘천을 노래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유안진 시인은 춘천에서 나지도, 자라지도, 살지도 않았지만 춘천을 소재로 아주 좋은 시를 썼다. 나는 언제쯤 이런 시를 한편 쓸 수 있을까? 춘천의 물냄새를 제대로 맡을 수 있을 때쯤에야 좋은 시가 쓰여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