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에 빗댄 정치판 편가르기
요즈음 시골 농촌에는 옛날과 달리 농부들이 안보인다. 요즈음 농사일은 러시아 사람,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사람들이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다고 한다. 농촌에서 농사일은 그들이 맡아서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농부들은 이미 늙었고, 젊은 농부들을 한국인들보다 외국인들이 많다는 말이다. 그런데 외국인 농사꾼이 늘어난것처럼 늘어난 것이 또 있다. 바로 백로와 같은 새들이다. 아마도 농촌의 외국인 농부들이 친환경적이라서 그런가? 새들은 살맛이 났나 보다. 늘어난 백로를 보면서 세파를 노래한 옛시조가 요즈음에도 똑감은 경고음을 보내고 있어서 시조 몇 수를 찾아 보았다.
백로가(白鷺歌)
여말선초에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어머니인 영천 이씨(永川李氏)가 지는 시조.
까마귀 싸우는 골짜기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 빛을 샘낼세라
맑은 물에 기껏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청구영언>
가마귀 ᄡᅡ호ᄂᆞᆫ 골에 白鷺(백로)야 가지 마라
셩낸 가마귀 흰 빗ᄎᆞᆯ 새올셰라
淸江(청강)에 잇것 시슨 몸을 더러일가 ᄒᆞ노라
烏群莫入鷺(오군막입로, 출처)
烏群莫入鷺 (오군막입로)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烏群戲濁岸 (오군희탁안) 까마귀 떼 흙탕물 언덕에 모이고,
白鷺立清波 (백로입청파) 흰 백로 맑은 물결 위에 서 있네.
一念同塵去 (일념동진거) 한 생각 잘못 품어 세속에 섞이면,
霜翎失素華 (성령실소화) 서리 깃 흰 빛도 이내 사라지리.
黑羽爭腐食 (흑우쟁부식) 검은 날개 썩은 먹이에 몰려들고,
白影避晴川 (백영피청천) 흰 그림자 맑은 물을 피해 숨네.
若與群鴉伍 (약여군아오) 저들과 벗되어 섞인다면,
清名一夕捐 (청명일석연) 청명한 이름도 한밤에 버려지리.
오로시(烏鷺詩) 까마귀와 백로
이직(李稷, 1362~1431) 여말선초의 관료,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정승.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 쏘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청구영언>
가마귀 검다 ᄒᆞ고 白鷺야 웃지 마라
것치 검운들 속좃ᄎᆞ 검울소냐
것 희고 속 검운 즘ᄉᆡᆼ은 네 야긘가 ᄒᆞ노라
以烏爲黑 白鷺勿笑
雖有黑表 豈內黑乎
表白內黑 唯汝已也
냇가의 해오라비
신흠(申欽, 1566~1628) 조선 중기의 관료, 외교관, 군인, 문장가.
냇가의 해오라비 무슨 일로 서 있느냐
무심한 저 고기를 엿보아 무엇하려느나
아마도 한 물에 있으니 잊은들 어떠하리
<청구영언>
냇가에 해오라비 므ㅅ일 서잇는다
무심한 저 고기를 여어 무슴 하렷는다
아마도 한 물에 잇거니 잊어신들 엇더리
溪邊鷺立何事
魚自無心底事窺
旣是一樣水中物 相忘也宜
<ChatGPT>
溪邊白鷺 何事長立
窺彼無心魚 欲將何爲
同在一水中 相忘亦可矣
백로(白鷺)의 鷺는 ‘해오라기 로’이다. 순우리말 옛말로는 '하야로비' 라고도 하고, 요즈음은 '해오라기'로 많이 부른다. 옛문헌에는 하야로비, 해오리, 해오라비, 해오리 등으로 불린다. 여기서 자주 나오는 ‘해’는 희다(白)는 뜻이어서, ‘해오리’는 ‘흰오리’라는 말이다. 해가 희다는 뜻은 ‘해맑다, 해사하다, 해쓱하다, 해말쑥하다’에서 처럼 ‘해’는 희다는 뜻이다. 따라서 ‘해오리’라고 할 때는 바로 ‘흰오리(白鴨, 鷺)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