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에 출발했다.
2시간이면 족히 올거리를 3시간이 넘어서 도착했다.
분기점에서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3번을 반복했다. 지독한 길치다.
조선의 왕들 중에 유일하게 국장을 못 치룬 단종의 원을 풀어주기 위해
영월에서 국장을 열어준 것이다.
엄흥도의 자손들 답다.
"영월이 단종 때문에 먹고 산다"
"영월에 볼 것이 마땅히 없는데 영월하면 '단종제' '단종'이 생각나서
관광이나 여러면에서 단종때문에 먹고산다." 고 누군가 말했다.
무덤사진을 찍다보면 여러사람들을 만난다.
흥미롭다.
다니면서 만난 역사적인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한 말이었다.
당시, 그에게 즉답을 했다.
" 그렇다면, 영월에 사는 엄흥도와 영월의 후손들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고 했
다.
오히려 단종이 기뻐할 것이다.
긴 세월 이어온 그들의 충절에 뭔가 은전을 베푸는 길이기 때문이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3대를 멸한다는 왕명에도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무덤을 만들어 준 것은 영월 백성 엄흥도였다. 또한 영월의 백성들은 단종의 능 주위를
단장하고 지나는 이마다 절을 올렸다. 또 복원된 뒤에는 매년 제를 지내드렸다.
40여년의 역사를 지닌 단종제 또한 영월군민들의 단종에 대한 깊은 예의였다.
40여전에는 이런 문화재가 돈이 되지 않았다.
영월 군민들의 단종에 대한 깊은 마음이 단종제를 탄생시킨 것이다.
영월이 단종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충절의 영월이 있기에 단종이 영월이 함께 있는 것이다.
영월군민 천 여명이 참여한 영월의 단종제를 보면서 단종과 영월의 인연은 영원히
이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전력발전소 직원인 상여꾼을 이끄던 이광성(54)님, 행사에 참여한 석정중 정남희(16)
미쳐 이름을 못 물어본 영월군청 공무원, 얼굴을 가린 여인으로 행사에 참여하신 박점조(76)님
까지 연령과 직업들이 다양한 영월 군민들이 치룬 단종제는 깊은 감동이었다.
제향이 치뤄지는 동안 어른들은
육일무를 기품있고 절도있게 추어 예를 가췄다.
제향이 끝난 뒤로는
향불 뒤로 영월의 어린이들이 단종능을 향하여
재롱을 떨면서 춤을 추었다.
여느 문화재와 다른 깊은 애정이 깃든 행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