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 채널에서 김태호PD가 제작한 새 프로로, 여러 나라로 배낭여행을 다녔던 젊은이 3명이 제각각 주사위를 던져서 그다음 나라로, 또 그 다음 나라로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프로가 있습니다. 그 프로를 보면 주사위가 던져진 대로 낯선 나라에 떨어져, 어떤 돌발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아주 씩씩하게 돌진하는 세 젊은이들의 두려움 같은 건 전혀 없는 씩씩한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너무 빠르게 또 복잡하게 변하다 보니까, 우리 사람들마다는 어느 정도씩 미래에 대한 ‘두려움’ 혹은 ‘불안감’ 같은 게 있습니다. 즉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이런 두려움이나 불안감 때문에, 그래서 어떤 심리적 위로나, 신앙적 믿음, 이런 게 더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얘기를 좀 다르게 풀어보고 싶습니다. 이런 두려움 같은 것이 우리 굳건한 신앙을 어렵게 만드는 것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 신앙에 해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익숙함’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익숙한 것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지요. 우리 사람들은 참 간사한 면이 있는데, 가령 어떤 낯선 장소나 낯선 일이 나에게 주어지면 ‘그 낯선 일이 아직 손에 익숙하질 않아, 서툴고 불편하다.’고 말하고, 또 시간이 지나서 일이 익숙해지면 이번엔 ‘매번 똑같은 일을 하려니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신앙적인 면에서, ‘낯설고 서툰 것’이 해가 될까, 아니면 ‘손에 붙고 익숙해진 것’... 어떤 것이 더 해로울까를 생각해 보면 저는 익숙해져 있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봅니다.
새로 서품된 새신부들을 보더라도, 처음엔 누구나 순수하고 반짝거리는 모습으로 출발을 하지만, 제도 교회에 물들다 보면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알아서 숙이고, 알아서 기면서 기성세대의 ‘안 좋은 모습’을 답습하면서, 또 그것이 주어진 소명에 충실한 것이라고 스스로 믿어버리는, 옛날 첫출발 때의 그 반짝거림을 잃어버린 모습을 너무 많이 보지 않습니까?
오늘 복음도 그런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고향으로 가시어, 회당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씀합니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이미 굳어진 마음, 익숙함에 안주하려는 마음, ‘고정화된 마인드셋’... 제가 전에도 인용했던 표현이죠? 여태껏 짧은 오리 다리만 보아왔던 사람 눈에는 길죽하고 날씬한 학 다리가 뭔가 이상하고 불안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두려움이나 불신앙 이런 것보다 익숙해진 것에 뿌리를 두고, 좀처럼 변하지 않는 완고함이 더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