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영혼이 잘됨같이...............성경바로알기 6
요한삼서 1:2
네 영혼이 잘됨같이........ 이 본문은 우리나라에서 ‘삼박자 구원’으로 널리 알려진 구절로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기독교인이면 거의가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삼박자 구원의 핵심은 ‘영혼이 잘되기만' 하면 ‘생활의 복’과 ‘ '건강의 복'이 자연스럽게 따라와서 세 가지 축복을 함께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축복의 전제가 되는 영혼이 잘 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영혼이 잘되면 이 땅에서도 부귀를 누릴 수 있고 건강하며 행복하게 살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영원한 천국의 삶을 누리는 일석삼조이니.... 예수 믿어 구원받으라는 이 주장은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켜 구름 때 같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교회에서 기복신앙과 물량주의를 부추겨온 비성경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나 그들의 물량적 세력에 눌려 감히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물량적 교회 부흥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은근히 그 흉내를 내거나 교묘히 그 내용을 재정리하여 신도들에게 전하는 그런 추세로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본문이 현실적인 축복이 되는 복된 말씀이라고 우리나라 기독교에 은근히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뜻이 과연 이와 같은 삼박자 구원을 말하고 있는가? 영혼이 잘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형통하는가? 이 본문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
성경 말씀을 바로 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성경이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부터 시작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구성을 영과 혼과 육의 세 부분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영혼과 육체의 두 부분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인간의 구성이 셋이나 둘로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 구성요소를 나누어 설명한 것에 불과 한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과 육체는 분리될 수 없으며 인간은 하나의 육체가 어떻게 하나의 영혼과 결합하여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성경은 부활의 때에도 영혼과 결합된 몸으로 인간 전체의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몸은 새롭게 변화된 새 몸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15 :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그러니까 인간은 셋 혹은 둘의 특질이 있지만 모든 것이 결합한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굳이 분리하여 말하자면 영혼의 가치 위주로 살아가느냐 아니면 정신생활이나 건강 지상주의로 살아가냐 하는 세 갈래 길이 있다고 삶의 방향을 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서나 죽어서나 영혼과 육체가 연합하여 일체가 된다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러한 맥락을 가지고 본문의 원어를 참조해서 보면 보다 뚜렷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할 때 영혼이 원어로 “푸시케”인데 그 뜻은 생명 영혼 목숨을 뜻합니다. 그런데 영혼이나 생명이 육체를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니 이 번역은 눈에 보이는 육체만이 아니고 “영혼의 사람이기도 한 너 자신”이란 뜻입니다.
잘된다는 원어의 뜻을 알면 더욱더 명확한 뜻을 알게 됩니다.
“잘 되고”로 번역된 헬라어 '유오두스다이'는 그 원형이 '유와 '호도스'가 합성된 “유오도오”로서 여행을 잘하게 하다', “번영하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좋은 길로 인도됨', '좋은 여행을 함'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바란다는 ‘‘잘됨’과 ‘강건’은 그 원어가 각기 분리된 내용이 아니라 둘 다 ‘범사에’란 단어에 연결된 내용입니다. concerning all things....‘모든 일에 관하여’ ‘잘되고’ 모든 일에 대하여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네 영혼이 잘되어지게 되면 너의 일상의 모든 일이 잘되고 건강도 좋아진다는…. 그런 뜻이 아니고. 다시 말해 신통(神通)하면 물통(物通) 몸통(身通)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삼박자가 아니고....
네가 영적인 사람(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인도되기를 바라는 견해에서 네가 하는 모든 일이 너가 영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러한 모든 일이 건전하게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적인 감각이 장성한 자이 분량에 이르는 사람이 되기를 간구한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삼박자 구원을 주장하게 되면….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는 것이니까 기도 열심히 하고 교회 일에 봉사 잘하고 성경 열심히 읽고 주일성수 잘하여 예배를 정성스럽게 잘 드리어…. 영혼이 잘되어지면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이 잘되어 승진도 하고 명예를 높이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정욕과 탐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세상 가치기준으로 성공한 사람을 모델로 새우지 않습니다…. 시종일관 성령으로 충만한 영의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를 선물하고 싶어 하십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2-24)
그러므로 성령 충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 하나님 앞에서 인간으로서 자기 존재의 참모습을 깨달은 사람은 절대로 이 땅을 대충대충 살지 않습니다. 정욕과 탐심으로부터 멀어지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인간은 자기중심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자아본능을 가집니다. 추운 날씨에 따뜻한 햇볕을 쬐기 위하여 양지(陽地)를 내가 먼저 차지하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의 소박한 자아의 본능적인 탐심이 이 지구상의 전쟁과 비참을 가져오는 원천입니다.
이렇게 인간 자아의 본질은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합당한 것 이상으로 평가받기를 바라며 남과 비교하여 탐심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이렇게 “존재하는 그대로의 자기”보다 더 높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비참입니다. 더 비참한 것은 인간이 자기가 사랑하는 유일한 대상인 자기 자신의 내면이 이러한 결함과 비참으로 가득 차게 되는 현상을 스스로 막을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오직 하나님 앞에 적나라(赤裸裸)하게 섰을 때만이 비로소 자신의 원천적인 존재가 비참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비참한 자신의 진정한 존재를 알게 된 사람은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지만 반대로 인간의 비참을 모르는 사람은 불안에 함몰되어 그 비참에서 끝내 나오지 못하며….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 앞에 적나라(赤裸裸)하게 서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비록 교회안에 있다하드라도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감화로 인간의 비참을 깨닫게 되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영적인 사람으로 잘 인도되고 모든 불안에서 해방되어 이 땅에서 창의적으로 살아갈 동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절대로 이 땅을 대충대충 살지 않습니다. 자기 현재의 삶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일하게 됩니다.
양지(陽地)쪽을 자기 혼자 차지하는 것이 아니고 이웃과 더불어 누릴 수 있는 관용이 생기고 여유가 생깁니다, 이러한 전체적인 모습을 성경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여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문장으로 하자면 “성령의 사람”으로 인도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께서 저와 이 글을 읽은 모든 성도님을 위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6)…. 우리 모두가 성령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는 존재임이 확인되고 있습니다...........아멘 woongd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