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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대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 말을 안다. 교과서에서 배웠고, 개천절이 되면 방송이 틀어주고, 교육기본법 제2조가 못 박고 있는 이 나라의 교육이념이다. 지금도 어린이들이 부르는지 모르겠는데 한 때 "아름다운 이땅에 금수강산에 단군할아버지가 터잡으시고 홍익인간 뜻으로 나라세우니 대대손손 훌륭한 인물도 많아~"라고 시작하는 노래도 부르고는 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에서 익(益)자를 들여다보면, 이 글자는 본래 '일(溢)'에서 온 것으로, 물이 그릇에 넘치는 형상이다. 명사로는 '이익', 형용사로는 '유익하다', 동사로 쓰일 때는 '증익하다(增益)' 또는 '보조하다(補助)'의 뜻이다.
고대 한문에서 익(益)이 '이롭게 한다'는 타동사로 쓰인 사례는 거의 찾기 어렵다. 홍(弘) 역시 '널리'보다는 '크게'가 본뜻에 가깝다. 그렇다면 '홍익인간'을 고대 어법에 충실하게 옮기면 "인간을 크게 늘린다" 또는 "인간 세상을 크게 돕는다"가 된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번역은, 어느 시점에 누군가 특정한 이념적 방향을 위해 선택한 근대의 해석이지 고대 문헌이 말하는 본래 뜻이 아닌 것이다. 번역이 바뀌었다는 것은 이념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이념이 바뀌는 것은, 언제나 시대가 그것을 필요로 할 때 일어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홍익인간' 기록은 13세기 말 고려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렬왕 때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와, 그로부터 10여 년 뒤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다. 두 문헌 모두 단군사화를 전하면서 이 네 글자를 남겼다.(내가 쓰는 모든글에서 단군신화라는 말을 쓰지않고 단군사화라고 씀을 이해 부탁드린다.)
'삼국유사'에서 환웅은 하늘 아래에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탐해 구했고, 아버지 환인은 그런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며 "홍익인간 할 만하다"고 판단한다. 홍익인간을 '의도'하는 주체는 아버지신 환인이다. 아들신 환웅의 욕망은 '인간 세상을 탐하는' 것이고, 아버지신의 판단은 '거기서 인간을 크게 증익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제왕운기'는 그것을 물음이자 명령으로 바꾼다.
환인이 환웅에게 "삼위태백에 이르러 홍익인간 할 수 있겠는가"고 묻는다.
물음처럼 썼지만, 아들신이 아버지신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다. 사실상 명령이다.
두 문헌의 맥락을 종합하면, 홍익인간은 우주 최고신 환인의 의지이자 명령이다.
'삼위태백'이라는 특별한 장소와도 결부된다. 3이라는 성스러운 숫자, 범접하기 어려운 처녀지(危), 하늘과 통하는 우주산이자 광명신앙의 성소(太伯). 이 모든 것이 겹쳐진 상징 기호다.
하늘의 신이 꼭 집어서 택한 우주의 중심 지점에 최초의 국가가 세워졌고, 거기서 신의 자손이 인간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이 내가 이해하고 있는 단군사화의 골자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맥락에서 홍익인간을 섣불리 인본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환웅은 인간 세상의 군장이 아니라 천신이고, 그가 지상에서 펼치는 '재세이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이화세계'는 인간 스스로의 자율이 아니라 천신이 하늘의 이치로 인간사를 관장하는 신정(神政)의 문맥이다. 단군 역시 통치하다 끝내 신령한 산으로 들어가 신이 된다.
신인합일
천손강림
광명신앙
이것이 초기 단군 사화의 뼈대다.
홍익인간은 그 사화 안에서 인간 세상을 '크게 늘리겠다'는 하느님의 의지를 표현하는 구절이지, 인간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겠다는 인도주의 선언이 아니었다. 고대의 홍익인간은 철저하게 신정(神政) 세계의 언어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조선 초에 이르면 슬그머니 달라진다.
세종실록 지리지와 권람의 응제시주, 두 문헌은 단군 사화를 인용하면서 공통적으로 두 가지를 바꿨다.
첫째, '삼위태백'이 사라졌다. 신성한 장소성을 지운 것이다.
둘째, '홍익인간'이 '의욕하화인간(意欲下化人間)'으로 바뀌었다. '하화(下化)'는 불교의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연상시킨다. 불보살이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듯,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을 교화하기로 의욕했다는 것이다.
셋째, 고려 말 단군 사화에서 '홍익인간'을 의도하는 주체는 아버지신 환인(하느님)이었다. 조선 초에는 그 주체가 아들신 환웅으로 바뀐다.
아버지 하느님의 의지가 지워지고 아들 천신의 의지가 부각된다. 환웅은 천상에서 내려와 온갖 인간사를 관장하는 천신의 이미지를 벗고, 불교의 전륜왕이나 유교의 성인처럼 지상에서 교화를 펼치는 성스러운 군왕으로 묘사된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가 편찬된 13세기 말로부터 불과 200년 뒤, 조선 초의 두 공식 문헌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방향으로 단군사화를 바꿨다.
유교 국가 조선은 신인합일이나 신정(神政)의 이미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하늘 하느님의 의지는 교화하는 군왕의 의지로 대체되었고, 성스러운 장소는 지워졌으며, 신화는 인본주의에 한 걸음 더 가까운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고대의 신정 세계가 중세의 교화 이념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홍익인간'이라는 말은 그렇게 역사의 무대 뒤로 잠깐 물러났다.
그 말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일제강점기다.
1920년대였다.
나라가 무너졌고, 독립운동 진영에는 이념이 필요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홍익인간이 이념으로 다시 소환되기 직전인 1919년, 상하이에서 선포된 대한민국임시헌장 제7조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신(神)의 의사에 의하야 건국한 정신을 세계에 발휘하며, 나아가 인류의 문화 및 평화에 공헌하기 위하여 국제연맹에 가입함."
민주공화국을 선언한 헌법에 '신의 의사'가 등장한다. 서구 근대 헌법의 문법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문구다. 이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그 답은 22년 뒤에야 명문화된다.
1941년 임시정부 건국강령 제1장 총강은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나라의 건국정신은 삼균제도의 역사적 근거를 두었으니…홍익인간과 이화세계하자는 우리 민족이 지킬 바 최고공리임."
1919년 헌장의 '신의 의사에 의하야 건국한 정신'이 1941년 강령에서 '홍익인간'으로 명시된 것이다. 이 두 문구를 잇는 인물이 건국강령의 기초자이자 삼균사상을 정립한 독립운동가 조소앙이다.
고대 단군사화에서 홍익인간은 하느님 환인의 의지와 명령이었다. 신이 결정하고 신이 명령한 신정(神政)의 언어였다.
중세 조선에서 그 신정의 언어는 지워지고, 군왕의 교화 이념으로 대체됐다. 그런데 근대 임시정부의 헌장에는 다시 '신의 의사에 의하야'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것은 기독교적 신이 아니다. 당시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떠받친 대종교의 한배검을 가리킨다. 고대의 신정 언어가 근대 독립운동의 건국정신 속에서 다시 소환된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대종교 때문이었다. 당시 임시의정원 의원 다수가 대종교인이었고, 임시정부 국무위원 중에도 대종교인이 상당수였다.
임시정부는 대종교를 종교 단체로서가 아니라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 역사적 뼈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종교의 구현 목표인 '홍익인간 이화세계'가 임시정부 건국강령의 최고 공리가 된 것은 그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 건국강령이 1945년 12월 조선교육심의회에서 교육이념 채택의 근거가 되었고, 1949년 교육법 제1조로 법제화되었다. 지금의 교육기본법 제2조 '홍익인간'이 그 직계다.
삼균(三均)이란 지력(智力)·권력(權力)·부력(富力)의 균등이다.
교육의 균등, 정치의 균등, 경제의 균등.
이 세 가지가 고르게 실현될 때 비로소 통일 독립국가가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이 논리의 역사적 근거를 단군사화의 홍익인간에서 찾았다. 고대의 네 글자가 근대의 균등 이념을 담는 그릇이 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그 건국강령보다 20여 년 앞서, 1920년 북경에서 출간된 한 철학서가 놀랍도록 유사한 논리를 펼쳤다.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이다. 이 책은 단군의 치세를 경제(농기구 제작과 농업 교육), 교육(문자 창제), 정치(정덕의 정사) 세 방면으로 묘사하며, 단군을 '동방 한국을 창립한 군주이자 스승'으로 재정립했다.
경제의 균등(균산), 교육의 보편화(균지), 민주적 권력(균권). 즉, 삼균주의와 구조가 겹친다. 전병훈이 '홍익인간'이라는 말을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그가 재구성한 단군 이야기에는 이미 훗날 홍익인간 이념이 걸어갈 길의 윤곽이 새겨져 있었다. 정신철학통편은 다른 이유로도 꼭 알아야 하는 책인데 바로 '천부경'이 실린 최초의 책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홍익인간의 역사는 하나의 연속된 서사가 아니다. 각 시대가 자기에게 필요한 의미를 이 네 글자에 덧씌운 겹겹의 지층이다.
고대에는 인간 세상을 '크게 늘리는' 하느님의 의지였다. 인구가 곧 국력이고, 국가의 팽창이 곧 생존이었던 신정(神政) 시대의 언어다.
중세 조선에서는 '아래로 인간을 교화하는' 성왕의 통치 이념으로 변했다. 군왕과 특권계급이 종교·도덕적 우월성을 앞세워 백성을 교화하던 시대의 문법이다.
근대 일제강점기에는 '널리 사람을 이익케 하는' 균등과 연대의 이념이 되었다. 국가와 만민이 함께 이익을 산출하고 향유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근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이 흘러든 번역이다.
그런데 이 세 번의 전환에는 하나의 일관된 맥이 있다. 고대에는 신이 홍익인간의 주체였고, 중세에는 군왕이 그 자리를 대신했으며, 근대에는 민중과 국가가 그 주체가 되었다. 홍익인간의 역사는 곧 누가 이 이념의 주체가 될 것인가를 둘러싼 긴 다툼의 역사이기도 하다.
신화가 역사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는 않는다. 신화는 각 시대가 과거와 나누는 대화다. 기원에 관해 사유하는 주체가 자신의 현재를 과거에 투영하고, 그 과정에서 이야기가 덧붙고 지워지고 각색되며 살아 움직인다. 신화는 과거에 묶인 박제가 아니라 현재로 진화하는 활물이다.
이것을 '신화의 재발견'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재발견은 원래 있던 것을 다시 찾는 데 그치지만, 실제로 일어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각 시대의 지성이 자신의 현실에 맞게 이야기를 갱신한 것이다.
삼국유사의 '홍익인간', 세종실록의 '하화인간', 1919년 임시헌장의 '신의 의사에 의하야 건국한 정신', 1941년 건국강령의 '넓이 사람을 이익케함'이 모두가 신화의 역사 안에 수렴되어 홍익인간의 의미를 두텁게 만들어왔다. 그 가운데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그 모두가 살아있는 이야기의 지층들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홍익인간은 해방 후 대한민국 교육이념으로 법제화되어 지금도 교육기본법 제2조에 살아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한다. 그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이 홍익인간을 최고 공리로 천명했다. 이 연결은 선언이 아니라 법적 구속력을 가진 규범적 사슬이다.
그러나 이념의 계보가 이렇게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말의 뿌리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한 줄짜리 번역을 외우는 것과, 이 말이 고대의 신정 사회에서 출발하여 중세의 교화 이념을 거치고 근대의 균등 사상과 만나 독립운동의 건국정신으로 뿌리내린 살아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아는 것.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수준의 이해다.
1919년 임시헌장의 '신의 의사에 의하야'라는 문구가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이념의 계보를 얼마나 멀리서 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증거다.
그 문구는 낡은 신학의 잔재가 아니라, 수천 년 전 하느님 환인이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며 '인간을 크게 증익하겠다'는 의지를 품은 그 신정(神政)의 언어가 근대 독립운동의 언어로 다시 살아 돌아온 것이었다.
신화는 박제로 두면 죽는다.
단군사화의 홍익인간이 지금도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려면, 우리 시대가 이 네 글자와 진지하게 대화해야 한다.
지금 이 나라가 이 이념에 새롭게 투영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그 답의 출발점은 앞서 말했듯이 헌법에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못 박았다.
그 임시정부가 단 두 개의 국경일을 가졌는데, 하나는 독립선언을 기린 3·1절이었고 다른 하나는 민족의 시원을 기린 개천절(당시 이름으로 건국기원절) 이었다. 홍익인간은 그 개천절의 정신적 뿌리다. 법통을 계승한다면, 그 무게도 함께 계승해야 한다.
통일을 말하면서 단군을 외면하는 것은 모순이다.
남과 북이 70년 넘게 다른 체제로 살았다. 자유민주주의와 주체사상 사이에는 타협이 없다. 그러나 단군 앞에서는 다르다. 북한도 1993년 단군릉을 국가 차원에서 개축하고 단군을 민족의 시원으로 공식화했다.
체제는 달라도, 양쪽 모두 같은 조상 앞에 서 있다. 단군의 역사는 이념 대립을 우회할 수 있는 유일한 공통 지반이다.
홍익인간은 그 지반 위에 세워진 이념이다. 인간 세상을 크게 돕겠다는 그 원칙은 어느 체제도 정면으로 부정할 수 없다. 정치 협상은 통일의 형식을 만들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민족 동질성의 회복, 그 내용을 채울 수 있는 것은 공유된 기원의 이야기뿐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했다. 그 임시정부가 홍익인간을 최고 공리로 천명했고, 단 두 개의 국경일 중 하나로 개천절을 지켰다. 평화통일을 말하는 대통령이라면, 그 뿌리를 먼저 바로 세워야 한다. 개천절에 대통령이 직접 서는 것은 의례가 아니다. 통일의 정신적 토대가 살아있다는 선언이다.
대통령이 3·1절 경축식에 반드시 참석하듯, 개천절도 대통령이 직접 주관하고 경축사를 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헌법이 약속한 임시정부 법통 계승의 실질이고, 홍익인간 이념을 살아있는 국가 정신으로 다루는 최소한의 예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