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1:40절을 한번 보십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그렇지만 죽은 오라비가 사는 것도 못 믿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겠는가?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내가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살았다 그리고 영생이 내게 있다’ 하는 이 기본적인 믿음도
내게 없는데 어떻게 주의 영광을 보겠느냐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먼저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부터 먼저 주로 영접하세요.
주의 말씀을 통해 부활과 생명이신 그 분을 먼저 구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 속에서 “나다, 나다” 계속해서 주장 안 하십니다.
워낙 우리가 깨닫지 못하니까 ‘내가 여기 있다 나다 나’ 하는 것이지
그 분이 우리 속에 들어오시면 우리 속에서 우리의 성분이 되어 가십니다.
생명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고 사랑이 되시므로 우리의 성품이 되십니다.
우리 속에 기름부음으로 스며듭니다. 이것이 바로 그 분의 속성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을 따라 행하면 ‘나는 은사나 능력 있는 사람이야.
나는 권세 있는 사람이야‘ 이렇게 주장하지 않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나타난다고 말씀하십니다(갈5장)
성령을 따라 행하는데 우리들에게 어떤 권세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속성들이 우리의 성품으로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주로 모셔 들이면 언제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분이 우리 속에 점진적으로 스며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배운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실물로 오셔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눅16장에서 부자가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 형제 다섯이 있는데
나는 잘못 믿어서 이 음부에 왔지만 나사로를 다시 보내서 내 형제들만은
이곳에 오지 않게 해 주소서’ 할 때 성경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는가 하면
모세와 그 선지자들의 말씀을 받지 않으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도 그들은
믿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말씀을 받지 않으면 표적을 봐도 못 믿게 되어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 안에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 실물로 오셔서 육성으로 나는 부활이야
나는 생명이야 하고 설교를 하셔도 마르다와 마리아는 그 말을 못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나 성령시대 우리들이나 실물을 보고 들었다고
해서 더 잘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다음에 성경 말씀이 들려 왔기 때문에 우리가 믿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실물을 보았으면 더 잘 믿었을 것인데 그 유대인들은
바보 같은 것들이구나 이게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결코 바보가 아닙니다.
그때까지는 3일 후가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성령이 가르쳐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과 생명이시니 그를
믿으면 다시 살아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사실을 못 믿었다 이 말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난다는 소리는 들었고 과거에 자기의
부모 따라 애굽에 갔다가 나사렛에 산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아니 저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네 그렇다면 좋다 야! 너희들 빨리 가서 나사렛 동사무소에
가서 예수란 사람의 호적등본 한번 떼 와 봐 할 때에 그 호적등본에 어떻게 되어 있을까?
틀림없이 목수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 이렇게 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면 더 못 믿습니다.
그래서 눅3장에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요셉의 아들이라고 했다고 기록합니다(눅3:23)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관점이 예수를 요셉의 아들로 볼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약에 예언한 선지자인가? 선지자 같으면 왜 나사렛에서 살까?
베들레헴에 난다고 했는데... 이와 같이 사람들이 헷갈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아무리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고 권세 있는 말씀을
증거하셔도 그들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성령님이 오셔서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가르친 다음에 비로소 복음을 전하면 받아들이게 되어있단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지를 않습니다(요6:65)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면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고 하시므로
너희들은 아직 믿지 못한다고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시니까 나사로가 살아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만나고 있는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을 가로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정관념이 된 신앙이 불신이 되어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우두커니 서 있게 된 겁니다.
그러나 드디어 예수님께서 41절부터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요11:43) 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나사로가 나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무엇이란 말인가요?
바로 말씀이십니다(요1:1) 말씀 자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지 않고 ‘죽은 자들아 다 나오라’고 했으면 큰 일이
날 뻔 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창세 이후로 죽은 자들이 몽땅 다 나왔을 것 아닌가요?
그 만큼 주님의 말씀은 위력이 있다는 뜻으로 말을 해 본 겁니다.
나사로가 다시 살고 무덤에서 나오는 사건은 바로 주님이 바로 창조의 말씀
그 자체이심과 동시에 부활이요 생명이란 말입니다.
그 분이 저와 여러분 안에 지금 계십니다. 믿어지십니까?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속성입니다. 바로 ‘태초에(안에) 계시던 말씀’이셨던
그리스도의 속성이란 말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속성인 부활과 생명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속에서 끊임없이 역사하십니다. 할렐루야!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