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0개 만들기'로 꽃들에게 희망을
서울대 10개 만들기_김종영
『꽃들에게 희망을』 책을 보면 정상을 차지하기 위해 애벌레들이 서로를 짓밟고 기어 올라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둥 꼭대기는 구름에 가려져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마침내 기둥의 수수께끼가 풀린 바로 그때, 꼭대기에서 조그맣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잖아!” 그러자 또 다른 목소리가 대꾸했습니다.
“조용히 해, 바보야! 밑에 있는 놈들이 다 듣겠어. 우린 지금 저들이 올라오고 싶어 하는 곳에 와 있단 말이야.”
대한민국에서 학벌은 새로운 신분입니다. 서열화된 대학 졸업장은 지위권력을 창출하는 또 하나의 신분증이죠. 정상을 차지한 이들은 이때부터 굳히기에 들어갑니다. 거기까지 올라간 기술을 총동원하여 제자리를 굳게 지킵니다. 새로운 독점적 지위가 만들어집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김종영 교수의 주장은 분명합니다.
대학의 지위권력이 독점하는 병목을 풀고 공간의 과도한 집중도 해체해야 한다고.
지방의 중심지마다 이미 균형있게 배치된 기존의 거점국립대를 모두 서울대(또는 한국대)로 이름을 바꾸고, 국가가 현 서울대 수준으로 연구비를 대폭 지원해야 한다고.
처음 책 제목을 듣고 수많은 교육전문가의 숱한 교육 해법들 중 하나일 거라고, 하지만 제목은 꽤 파격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진학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수시로 바뀌는 대입제도와 입시경쟁 속에서 힘겨워하는 학생, 학부모, 교사들을 돕는 일입니다. 고통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대입제도가 일선에서 잘 작동되는데 기여(!)한다고 생각하면 종종 답답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교육부의 2028 대입제도 개편 절차와 내용을 보고 또 한번의 열패감이 들었고, 최근 초등 의대반 열풍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에 입시 해법이 통할까?’
작년에 진학담당 선생님들과 독일 베를린의 고등학교(김나지움), 대학교, 라이프치 교육청을 방문했습니다. 독일의 대학은 모두 평준화되어 서열이 없습니다. 아비투어를 통과한 고등학생들은 전국의 모든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소수 학과를 제외하고는 원하는 전공 분야를 원하는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 대학 진학률은 우리보다 한참 낮지만, 순수학문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115명 (2024년 기준_나무 위키) 이나 배출했습니다. 정말 마음아프도록 부러웠던 것은 입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 연구의 우수함을 향해 자기와 경쟁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우리나라는 대학서열을 깰 수가 없어서 안돼’라는 불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미국은 그러한 연구 중심의 독일 대학 시스템을 배워와 대학의 변혁을 이뤄냈습니다. 1960년대 3차 산업혁명이 미국에서도 변방이었던 캘리포니아 대학들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실리콘 밸리가 탄생하였습니다. 미국의 전체 노벨상 수상자는 411명으로 세계 1위, 과학분야만 293명(2024년 기준_나무 위키)입니다. 저자는 우리 교육 난제의 해법을 캘리포니아주 대학 체제에서 찾았습니다. 현재 캘리포니아 10개 대학은 세계적인 연구 역량(노벨상 64명 배출_2020년 기준)을 발휘하는 대단히 상향 평준화되고 다원화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19세기 말까지 하버드도 스탠포드도 모두 지방대였고, 대학의 개혁안을 두고 일어난 기득권의 강력한 저항에 좌초되기도 했습니다. 칼텍과 스탠포드 대학 개혁 사례는 대학이 단순히 학벌을 주는 곳이 아니라 창조를 선도해야 하고, 가치 창출과 경제성장의 엔진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교육 문제의 해법을 두고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학습된 열패감’을 안고 왔습니다. 교육 개혁의 필요성과 타당성은 모두가 소리 높혀 외치면서도 각론에 들어가면 가능성을 두고 싸웁니다. 왜냐하면 대입에 대한 유불리를 따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지적처럼 대입제도에 매몰되어 그보다 더 중요한 대학 체제의 개편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대학은 그저 학벌을 따는 곳으로 인식하고 창조권력의 가능성은 잘 상상하지 못합니다.
대한민국은 서울대라는 정상을 기어 올라가기 위해 너무나 힘을 빼고 있습니다. 저자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었고 그 해법도 너무나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사회학자로서 그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배경, 지금까지의 교육 개혁안들의 면밀한 평가, 독일과 미국 대학체제 분석, 대학별 예산 체크까지 세부적인 측면도 보여줍니다. 생각할수록 그 해법이 놀랍습니다. 다만,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지방 사립대 문제, 학과 통합과 특성화 과제 등 다양한 문제가 상존합니다. 안되는 이유는 100가지도 넘습니다. 하지만 필요성은 그야말로 절박합니다. 아이들과 청년들의 일상이 고통입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우리 대학들도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을 타고 세계적인 창조를 견인하는 곳으로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독일처럼 대학의 지위권력을 평준화시켜 대학병목을 제거하고, 미국의 연구중심대학처럼 창조권력을 최대한 올려야 합니다(34쪽).
『꽃들에게 희망을』 책 마지막에 가면 ‘새로운 시작’으로 장면이 전환됩니다. 애벌레 기둥이 해체되고 애벌레들이 기둥을 내려와 사방으로 나아갑니다. 여러 갈래로 기어가 각자의 장소에서 고치를 만들고,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을 깨는 기다림 끝에 비로소 나비가 됩니다. 다양한 나비들이 날아다니며 꽃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남을 밟고 올라가는 애벌레 기둥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절대로 고치를 만들고 나비로 거듭날 수 없었습니다. 삶의 의미와 가치는 결코 지위권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첫댓글 "정말 마음아프도록 부러웠던 것은 입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 연구의 우수함을 향해 자기와 경쟁한다는 점이었습니다.".이 문장 엄청 공감됩니다.
꽃들에게 희망을과 서울대 100개 만들기 두권의 책이 인용되어서 인용부분이 많다는 느낌이 들어요. 장학사라는 걸 초반에 배치하는 식으로 단락배치를 바꿔보면 어떨까 싶어요. 왜냐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거 같아서요.
네 선생님^^
퇴고에 적극 참고할게요.
감사해요♡
현장의 이야기라 선생님의 글이 정말 힘있게 느껴집니다. 확신의 어조도 느껴지구요.
고마워요 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