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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다. 이진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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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2011년 9·11테러의 대한 보복의 일환으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걸고 이라크를 침공했다.(그러나 미국이 지목한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 그 전쟁의 참상은 죽음을 무릅쓴 종군기자들과 인터넷의 도움으로 실시간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보도되었다. 그 중에는 한국의 한 여기자도 있었다. 이진숙.
2003년 그녀는 진실보도를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를 누볐다. 한국 기자들이 모두 철수한 상황에서, 그는 촬영기자 없이 직접 6㎜ 소형카메라를 들고 미군의 공습과 바그다드의 함락 소식을 전했다. 1991년 걸프전에 이어 다시 한 번 현장을 지킨 그녀를 두고, 당시 ‘살아 있는 기자정신’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나도 포탄의 연기가 솟아오르는 지역을 배경으로 전쟁의 참화를 전하던 이진숙 기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그런 이진숙 기자가 올해 들어 계속 이슈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전장을 누비던 기자 이진숙이 아니라 철저히 권력에 예속되어 홍보국장, 기획홍보본부장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진숙이다. 권력에 빌붙어 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하며 언론이기를 포기한 MBC(문화방송) 경영진에 맞서, 장장 170일 동안 파업을 벌였던 MBC 기자들에게 이진숙은 철저히 경영진의 입 역할을 했다.
“지금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알리던 ‘종군기자 이진숙’과 징계 예고의 온갖 협박으로 점철된 서슬 퍼런 회사 특보를 찍어내는 ‘홍보국장 이진숙’이 같은 사람인지 의심스럽습니다.” 파업 때 MBC의 한 기자가 노조의 ‘총파업 특보’를 통해 같은 회사 이진숙 당시 홍보국장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비단 문화방송 기자들만의 당혹감은 아닐 게다. 10년 전 MBC 뉴스에서 ‘바그다드의 이진숙’을 봤던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고 있다.
그 이진숙이 이번 대선 정국에서 또 한 번 권력에 접근하고 있다. 정수장학회의 MBC 지분 매각 관련하여 최필립 이사장과 비밀회동을 한 것이다. 이 일은 전체적인 구도를 봤을 때 이번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힘을 실으려는 의도임을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박근혜 후보가 아버지가 한 기업인으로부터 뺏은 장물을 자신의 대선가도에 좋은 먹잇감으로 이용하려고 하는데(그러나 이에 대해 박후보측은 정수장학회는 자신과 무관하다고 부인하고 있음), 이진숙 기자가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2003년 이라크전 당시 이진숙 기자는 취재도 중요하지만 생명이 더 중요하니 현장에서 철수하라는 회사의 지시를 어기고 바그다드로 향했다고 한다. 이진숙 홍보기획본부장이 ‘그 10년 전의 이진숙 기자’로 돌아오면 좋겠다. 그리고 MBC가 공영방송으로 거듭 태어나 언론으로서 제구실을 다하는 데 힘을 보태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살다 보면 누구나 판단을 잘못하거나 실수할 때가 있다. 그게 사람이다. 그리고 그 실수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바른 길로 갈 수 있는 것이 사람이 가진 능력이다. 그런 능력이 지금의 이진숙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