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2024년 갑진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후 맞게 되는 첫 번째 주일인 오늘, 지난 월요일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에 이어 교회는 오늘을 주님 공현 대축일로 지냅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 그 말이 뜻하는바 그대로 아기 예수님이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난 후, 동방 박사의 방문을 통해 마구간의 그 아기가 하느님이 보내신 메시아 구세주이심이 공적으로 드러나게 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바로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동방에서 별을 보고 유다인들의 새로운 임금이 탄생한 사실을 알게 된 동방 박사 세 사람은 그 별을 보고 유다 땅으로 들어와 마구간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새로운 임금으로 나신 그 분께 경배를 드리고 자신들이 준비한 예물인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그 분께 바침으로서 아기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 메시아임을 공적으로 확인되는 사건을 기념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인 오늘, 제대 앞에 마련된 구유에는 오늘 교회가 지내는 그 축일의 의미에 맞게 세 명의 동방 박사들이 새롭게 등장하였습니다. 성경은 이 세 박사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지만, 교회의 거룩한 전통은 이들에 관하여 많은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줍니다. 흑인청년으로 등장하는 멜키오르, 백인장년의 발타사르 그리고 황인노년의 가스파르라는 이름의 이 세 동방박사들은 우리가 구유에서 보듯 나이도 다르고 인종도 서로 다른 세 사람으로 표현됩니다. 이들은 또한 페르시아 또는 바빌론 지역으로 대표되는 동방의 지역에서 별을 보며 천문학을 연구하는 사제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방인들의 지역이라고 여겨지던 동방의 천문학자인 이들이 유다인의 임금의 탄생을 알고 그 분께 경배를 드리러 그 먼 길을 걸어왔던 사건, 그리고 경배를 드린 후 각자 준비한 선물로서 영원한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을, 영원한 사제를 상징하는 유향을 그리고 메시아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몰약을 선물로 드린 사건은 이제 갓 태어난 이 아기가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 아기가 장차 무슨 일을 하게 될 것인지를 온 세상에 공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방 박사들의 방문과 경배 그리고 그들이 바친 예물을 통해 아기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 메시아임이 공적으로 드러난 주님 공현 사건을 기억하는 오늘, 동방 박사의 방문과 그들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한 주님의 거룩한 탄생인 성탄의 시기를 보내며 또 새로운 한 해를 이제 막 시작하려는 우리들에게 주님 공현 대축일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며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계신 것일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말씀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선, 오늘 제 1 독서의 이사야서의 말씀은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 곧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해 오기로 약속된 그 분이 세상에 빛으로 오시어 모든 민족들을 환히 비추는 빛이 될 것임을 그리고 그 빛으로 모든 이가 밝아지고 충만하게 될 것임을 다음의 말로 예고합니다.
“예루살렘아,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 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이사 60,1-2)
한편, 오늘 제 2 독서의 에페소서의 말씀은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의 입을 통해 오시기로 약속된 그 분, 곧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방의 민족들까지도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 전하는 기쁜 소식, 복음을 통해 모든 이가 하느님 사랑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힘 있게 선포합니다.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에페 3,3.6)
아울러, 오늘 복음의 말씀은 마태오 복음 사가가 전하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로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해 오기로 약속된 메시아가 유다 베들레헴의 작은 마구간에서 태어났을 때, 그 분의 탄생의 소식을 별을 통해 알게 된 동방의 세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방문하여 그 분께 경배를 드리는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 두 독서와 복음의 말씀은 하나의 일관된 흐름 안에서 구약에서부터 약속된 메시아 그리스도가 빛으로서 이 세상에 올 것임을 예고하며 그 분으로 인해 어둠 속에 있던 온 세상이 빛으로 환해질 것임을, 그리고 그 빛은 한정된 누구에게만 주어지는 빛이 아닌 누구 하나 소외되는 일 없이 모든 이가 그 빛을 볼 수 있는 모든 이를 위한 빛임을 그리고 그 빛이 바로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임을 전합니다.
유다인만을 위한 제한적 구세주를 넘어 모든 이를 위한 모든 것이 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메시아로서 공적인 인정을 받게 되는 첫 순간, 주님 공현 대축일의 의미는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점에서 한 가지 생겨나는 의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모든 이를 위한 모든 것으로 그 어떤 시간적 제한적 인종적 구별과 차별 없이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절대적 구세주로서 공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첫 순간, 주님 공현의 그 역사적 첫 순간이 너무나 역설적이게도 거창하고 화려한 그래서 모든 이들의 감탄과 경이를 자아내기는커녕 소박함을 넘어 보잘 것 없기 이를 데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한 나라의 임금도 즉위식이 되면 세상 그 무엇도 부러울 것 없이 화려하고 위엄 있게 그 즉위의 순간을 맞이하는데, 나라와 인종 그리고 시간의 경계마저 모두 허무는 진정한 임금 구세주 예수님의 첫 드러남의 순간이 너무도 초라하기 이를 데 없음이 우리의 상식상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가 인간적 본성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고 높은 자리에 앉기를 바라며 다른 이들로부터 관심과 사랑 그리고 그것을 넘어 지지와 환대를 받기를 언제나 바라고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사제로 살아가면서 매 순간, 모든 신자들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하며 이해받기를 바라고 그 사랑과 이해를 넘어 지지와 환대 그리고 인정받기를 원하고 바라는 제 모습을 보게 될 때, 또 내가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다른 이들에 대해 갖는 적개심과 질투의 마음을 보게 될 때, 제 자신의 한없는 부족함을 절감하면서 마치 저의 모습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아기 예수를 질투하는 헤로데 임금의 모습과 동일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그저 한없는 가난한 모습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아버지 하느님의 뜻만을 찾는 겸손한 마음, 예수님의 그 같은 모습이 가장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 바로 오늘 주님 공현의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치 그 모습으로 주님 공현의 의미를 일깨워주시며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매 순간 인정받기위해 발버둥 치고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비루하게 만들며 나보다 나은 남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구유에 누워계신 그 가난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진정한 주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듯 느껴집니다. 이 같은 면에서 오늘 화답송의 다음의 시편의 말씀은 진정한 참된 주님으로 우리 곁에 오신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님, 세상에 군림하는 임금이 아닌 모든 이를 위한 모든 것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시는 주님으로서의 참 모습을 잘 드러내 줍니다. 시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시편 72(71),12-13)
사랑하는 송동 교우 여러분, 우리는 많은 경우 남으로부터 인정받고 위로 받으며 무한한 애정과 지지 그리로 찬사를 받기를 원하고 바랍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다른 이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더 좋은 자리에 앉아 그들 위에서 군림하기를 우리는 바라고 또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을 희생하고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자리, 더 높은 곳을 향해 앞만을 보고 달려가고 또 달려가는 것이 우리 삶의 실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 해가 새롭게 시작된 이 즈음, 우리들 마음 안에 새롭게 다짐한 나의 계획 속에 이 목표를 위한 계획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러나 그 본질상 단 하나의 목표, 곧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우리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하느님은 주님 공현의 의미를 통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곧 세상의 부귀와 권세 그리고 사람들의 지지와 환호를 찾지 말고 하느님의 정의와 공정,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는 정의와 평화를 찾으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로부터 비롯되는 평화가 참 평화이며 그 분께로부터 비롯되는 정의와 공정만이 우리를 참 기쁨의 삶으로 초대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할지라도 그 모든 것들은 하느님의 권능에 비하면 그저 천칭에 달린 조그마한 추에 불과하고 이른 아침 땅에 떨어져 사라지는 이슬방울과 같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말씀처럼 오직 하느님 그 분만이 우리 삶의 시작이며 마침이시고 오직 하느님 그 분만이 우리 삶의 모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삶은 오직 하느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구유에 누워계신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가난한 한 아기 예수님을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바로 그 분이 세상의 모든 것 위에 계시고 우리의 모든 생각 위에 계시며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아드님, 세상을 구원으로 이끄는 구세주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가장 가난하고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의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구세주 예수님의 공적 드러남을 기억하는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 여러분 모두가 아기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구세주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며 새롭게 시작되는 새로운 한 해의 삶을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을 통해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참된 행복과 기쁨 속에서 살아가시기를 기도하며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기도로 강론을 마치고자 합니다.
“아무 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 것도 너를 두렵게 하지 마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이나, 하느님 한 분이 결코 변하지 않으신다. 인내는 모든 것을 이겨낸다.
하느님을 소유한 이는 아쉬울 것이 없다. 주님 홀로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
Solo Dios Bas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