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말하길 한국에는 기도의 종류는 많은데 기도가 뭔지 설명하는 이가
적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그 분 자신도
기도가 뭔지를 80이 넘어가는 지금까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 이런
저런 기도의 모임이 있고 또 많이 두들겨 맞으니 샤이(shy) 관상의 기도 등 기도하자는
말들은 참 많습니다. 근데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를 누가 설명할까 묻습니다.
이 질문에 여러분이 꼭 대답을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한국에서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는 목사의 설교를 일정 부분을 들었는데 그 내용은 우리가 지금 영적인 전투를 하고
있는데 교회가 너무 나태하고 연약한 것이 문제라면서 강해야 된다고 말을 하더군요.
그런데 끝내 어떻게 하면 강해지는지 그 방법을 설명하지 않고 강하라고만 말합디다.
이는 기도하라고 닦달하는 거나 예배에 참석하라고 강조하는 거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나 찬양을 드릴 때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기도나 찬양을 드리는
사람의 관계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숙지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그의 이름 안에 있는 목록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은 나에게 있어서 누구인가? 나는 그 분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인가? 어떤 과정을 통해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먼저 묵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기도나 찬송을 드릴 수 있는
자격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있어서 이와 같은 자격은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시7:1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나를 구원하여 내소서”하고 다윗이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시편16편이나 주님께서 다윗의 믿음을 소개한 내용(마22:41-46)이나 베드로가 성령이
오신 목적을 설명하는 내용(행2장)을 볼 때에 다윗은 주님을 항상 그 앞에 모셨으며
보좌에 앉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빤히 쳐다보고 앙망하는 믿음의 눈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께 피할 길을 알고 있기에 피할 곳과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고 단언하는 겁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배수의 진을 치고 나아갑니다.
우리가 어떤 집을 방문할 때에도 반겨 맞아 주리라는 확신이 있어야 찾아가듯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히3:1은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이해하라, 완전히 파악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동선이 곧 하나님께 나아가는 나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아버지께 나아가서 피할 곳도 하나님이시며 구원자도
오직 주님뿐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기도할 수 있는 자격입니다.
그렇지 않고 정신 줄 곧 혼은 홀딱 벗어놓고 영만 탈혼 하듯 미지의 구름 속을
치닫다가 별별 희한한 경험을 하고는 말인지 방구인지 분간 못할 소리들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큐티라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의 지혜를 구하긴 하는데 시편1편과
같은 묵상의 큐티를 하지 못하는 겁니다. 제가 알기론 큐티는 영국 런던 바이블 칼리지를
나온 성서유니온 충무였던 고 윤종하교수가 최고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로마서를
강해할 수준의 구원의 원리를 터득한 분이기에 큐티를 해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묵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일부 큐티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횡설수설입니다.
좌우로 왔다 갔다 하다 또 위로 갔다가 하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2절 “건져낼 자 없으면 그들이 사자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셨고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주신 그 분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나아가 이렇게 절박하게 부르짖는데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이
외면하시겠는가? 과연 문전 박대하시겠는가? 하나님은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3-5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셀라)”
하나님 앞에 정정당당히 처벌을 받겠다는 자세입니다. 의로운 재판장 앞에서 한 번
심판을 받아 보자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편을 드셔서
정결한 마음을 주십니다. 또 남에게 관용을 베풀 때에 주께서 가까이 다가오십니다(빌4:5)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다른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을 화해하고(마5:24) 다른 사람들의
과실을 다 용서하고(마6:14-15) 나아가야 하나님이 인정하십니다. 그래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아 청결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뵐 수가 있는 겁니다(마5:7-8)
8절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진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다윗은 일찌감치 여호와가 그의 방패와
영광이 된다고 선언한 사람입니다(시3:3) 그래서 여전히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갑니다.
사실 성도가 세상에는 자신이 없어도 하나님의 의와 사랑에는 이렇게 자신이 있어야
비로소 기도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미안해서 어쩌나 죄송해서 어쩌나 하면 안 됩니다.
9절에도 역시 그대로입니다. 빛 가운데 서 있는 자세입니다.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리로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앞에서 우물쭈물하면 안 되죠.
하나님의 그물은 아주 촘촘해서 먼지 같은 죄도 그냥 통과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주
낱낱이 하나님께 자복하므로 정결함을 얻어서 사람들의 비방이 홍수같이 쏟아져도
끄떡없을 정도로 다윗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당당함이 있어야합니다(시32:6)
10절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정직함이 구원의 조건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멋쟁이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자를 찾으십니다. 이 정직함이 자신을 보호해 주는 방패가 됩니다.
다윗은 만약 하나님께 정직하지 못하면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결연한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말씀 앞에 부끄러워 우물쭈물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묵상하는 가운데 죄 사함과
성령께서 감동하시므로 진리를 알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상태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신앙의 승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진리를 알면 영을 담은 혼 곧 심령이 진리를 따라 끝까지 나아가므로 soul의 구원을
받습니다(벧전1:9) 그 끝(테로스)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입니다. 그로인해 진리를
순종하므로 자신이 깨끗하게 되어 거리낌 없이 뜨겁게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벧전1:22)
따라서 큐티를 할라치면 시편1편처럼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외통수의 큐티를 반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의와 거룩과 영광을 얻고 주의
빛과 생명과 사랑이 나타나므로 드디어 진화의 종국인 사랑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바로 7절에 나타납니다.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민족들의 모임 곧 시편1편의 의인의 회중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천국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진정한 구원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와 거룩과 영광의 풍성함이요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생명의 충만함입니다.
여기에 기도의 참 의미가 있고 구원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찬양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 파이프는 기독교 쾌락주의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즐거움의 극치이지요.
그러나 그리스도밖에 있는 악인들에게는 심판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밝힙니다(11-16절)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의 아들의 십자가의 대속을 인정하지 않고 교만하게 제 멋대로
행하는 자들은 손을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결국 소속입니다. 의인의 모음,
그 처소 안에 있는 자, 생명책에 녹명된 자들에게는 준엄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인자의
하나님이십니다(롬11:22) 그 인자 안에 거하는 자들은 다윗처럼 하나님께 담대합니다.
17절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찬양은 승리한 다음에 오는 복입니다.
1절에서 시작된 부르짖음이 결국 의인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그 구원의 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으로 마무리됩니다. 그야말로 해피 앤딩입니다. 그게 바로 기도입니다.
시편은 하늘에 속한 의인들의 노래입니다. 땅의 의인인 욥(job)처럼 자신의 행위의 저울이나
다림줄로 측량하는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이므로 그 의가
우리의 방패가 되고 그 의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얻고 그 거룩함에 영광이 주어지고 그
영광으로 주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를 부끄럼 없이 사랑하고 찬양할 수가 있습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께 나아가는 길을 보이심을 찬양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의가
우리의 방패가 되고
거룩함을 얻고
그 거룩함에 영광이 주어지고
그 영광으로 주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를 부끄럼 없이 사랑하고 찬양하게 하심이 날마다 우리속에서 이루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