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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하라 | 1-2 1 ①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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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채로 삼겼을것 | 3-5 3 ② 그 때에 저희의 노가 우리를 대하여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엄몰하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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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찬양 | 6-8 6 ③ 우리를 저희 이에 주어 씹히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 지로다
7 ④ 우리 혼이 새가 사냥군의 올무에서 벗어남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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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편,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않으셨다면
요절 : 2절,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124편에는 “다윗의 시”라는 표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1상) 하고 시작이 됩니다. 이는 고백, 선언, 간증을 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나의 간증이요, 이것은 나의 찬송일새” 하는 셈입니다. 찬양의 제목은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도표를 보시면 이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은 이렇게 말하라”(첫째 단원) 하면서, 대적이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라”(둘째 단원), 그래서 “우리를 저희 이에 주어 씹히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 지로다”(셋째 단원) 합니다.
첫째 단원(1-2) 이스라엘은 이렇게 말하라
둘째 단원(3-5) 산 채로 삼켰을 것이라
셋째 단원(6-8)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첫째 단원(1-2) 이스라엘은 이렇게 말하라
①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1상) 합니다. 먼저 유념할 점은 “시”(詩)라는 문학형식은 서술문과 달라서 단어(單語) 하나하나에 많은 뜻을 함축(含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말하라”는 것이 단순한 것 같으나 신앙에 있어서는 중요한 요점인 것입니다.
㉠ 왜냐하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부인(否認)을 하고 있지는 안치만, 당연히 말해야 할 경우에도 비겁하게 침묵(沈黙)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07편에서도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는 이같이 말할 지어다”(107:2) 하고, 129편에서도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1) 합니다.
바울은 “당연히 할 말을 담대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6:20) 하면서 디도에게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딛 3:8) 하고 격려합니다. 성경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 블레셋 군대의 싸움을 돋우는 자 골리앗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을 하면서 대표자 한 사람 나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방자하고 교만한 말을 들으면서도 모두가 두려워 침묵하고 있었을 뿐, 이스라엘 진영에는 그를 대적할 대표자로 나설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때에 다윗이 등장하게 되는데 만일 다윗마저도 “말하지”를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그러나 다윗은 말하기를,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26, 45) 선언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제 말을 한” 셈입니다.
㉯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말합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이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4, 16) 하고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에스더는 “이제 말을 한”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은 증거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 이렇게 말한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합니다. “스데반, 베드로, 바울” 등 이들은 목숨을 걸고, “너희가 죽인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시라”는 점을 담대히 증거 하다가 순교를 당한 것입니다.
㉡ 무엇이라 말하라 하는가?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면”(2),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를 말하라는 것입니다.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할 문제가 있는데 여호와께서 어떻게 해서 “우리”, 즉 이스라엘 편에 계시게 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108:7절에서도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하고 증거합니다.
다윗은 “우리가 여호와 편에 있지 아니 하였더면” 하고 말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그것이 먼저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셨다”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편에 계시는 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하여졌는가?
모세는 이에 대한 답변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바로의 노예가 되어 신음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하시는 일에 부름을 받고 쓰임을 받은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편에 계시게 되었는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신 7:6) 합니다.
㉮ 지상 만민 가운데서 택하셔서 성민(聖民)으로 삼으시고,
㉯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하여 내 백성”(출 6:6-7)을 삼으셨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택하심과, 구속”, 즉 값을 주고 사셨다는데 있습니다.
㉣ 모세는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행해주셨는가를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만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 7:7-8) 합니다.
㉮ 두 가지를 들고 있는데 첫째는 “사랑하심을 인하여”,
㉯ 둘째는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즉 아브라함에게 세워주신 메시아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면”에 함축된 의미입니다.
㉤ 이 원리는 신구약을 막론하고 동일합니다. 주님께서도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하십니다. 다시 강조합니다만 “택하시고, 구속”하심으로만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는 것이 가능하여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보다 영광스럽고도 경이로운 말씀은 달리는 없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이에 대한 답변을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제시해준 분은 사도 바울입니다.
㉮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4, 7) 하고 말씀합니다.
㉰ 그래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롬 8:31, 33) 하고 담대히 선언했던 것입니다.
둘째 단원(3-5) 산 채로 삼켰을 것이라
② “그 때에 저희의 노가 우리를 대하여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3),
㉠ “그 때에 물이 우리를 엄몰하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며”(4),
㉡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5) 합니다.
그렇다면 “그 때”가 어느 때를 가리키는 것인가? 학자들은 124편이 “다윗의 시”라면 역사적인 배경이 어느 때를 가리키는가에 대해서 고심을 합니다. 그러나 구속사(救贖史)란 전 과정이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의 “그 때”의 연속이었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사 1:9)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면”의 상황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계시록 12장에서는,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계12:13, 15) 하고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떠내려가지” 않고 무사하고 안전할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이제 말해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니라,
㉮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권적으로 성취해 오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엡 3:9)입니다.
㉯ 우리가 “이제 말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 우리가 “이제 말해야” 하는 것은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 2:5) 한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 우리가 “이제 말해야” 하는 것은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한 복음인 것입니다.
셋째 단원(6-8)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③ “우리를 저희 이에 주어 씹히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 지로다”(6) 합니다.
㉠ “씹히지 않게 하신 여호와”라 말씀하는데, 구속사란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한 대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사 42:3) 역사였던 것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 노아 당시 “죄악이 세상에 관영”했습니다. 본문의 표현대로 하면 죄악이 모든 심령을 “산채로 삼킨”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계셔서 악의 세력을 홍수로 심판하심으로 여덟 명이라는 “의의 후사”(히 11:7)를 남겨주셨던 것입니다.
㉯ 죄의 세력은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까지 타락시킴으로 이스라엘을 “산채로 삼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세워주신 언약을 인하여, “한 지파, 한 등불”을 남겨주심으로 “산채로 삼키지” 못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 에스더서에서는 하만이 유다인들을 산채로 삼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계셔서,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에 9:22)이 되게 하심으로 대적의 입에 “씹히지 않게” 하셨던 것입니다.
㉱ 최대에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사탄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음으로 산채로 삼키려 했습니다. 만일 무덤이 열리지 않았다면 “물이 엄몰”(4) 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계셔서 다시 살리심으로 대적의 입에, “씹히지 않게” 하셨던 것입니다.
㉡ 그러므로 구속함을 얻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로 요약이 되는데,
㉮ “말하라” 한 전파하는 일과,
㉯ “찬송”하는 일입니다.
이는 입으로만이 아니라 삶 자체가 “전파하는 것과, 찬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④ “우리 혼이 새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남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7) 합니다. 91:3절에서도,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합니다.
㉠ 이점을 107편에서는,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놋 문을 깨뜨리시며 쇠 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107:14-16) 하고 찬양합니다.
이런 구원하심이 이스라엘에게는 육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여도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될 예언적인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서는,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하고 말씀합니다.
㉡ 그래서 124편도,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8)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여호와께 있도다”(121:2) 하는 것과,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는가? 구원계획에는 여호와의 거룩하신 “이름”이 걸려 있다는 점을 말씀해줍니다.
㉢ “그 때에 저희 노가, 맹렬하여 우리를 산 채로 삼키려 한” 것은 우리를 대적하는 것 이전에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무산시키려는 “여호와의 이름”을 대적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8:11),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않으셨다면”입니다.
적용 :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구속하여 주시지 않으셨다면,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시지 않으셨다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셨다면,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견인하여주시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를 말하고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제 편에 계십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설 차례입니다.
묵상
㉠ 이제 무엇이라 말하라 하는가에 대해서,
㉡ 말해야할 구속사에 나타난 예들에 대해서,
㉢ 이제 신약의 성도들은 무엇이라 말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