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새로운 친구 목록, '산티아고(Santiago)'
a, 생각지도 않았던 환대
그렇게 산티아고의 집에 갔는데, 바쁘게 음식을 준비하고 있던 그의 처 '마야(Maja)'도 대환영하는 모습이었다.
당시만 해도 인야는 산티아고의 처가 독일사람이라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비록 스페인말은 유창하게 했지만 뭔가 억양이 다소 차이가 느껴지기는 했는데, 이따금 둘이 독일어로도 대화하는 걸 보면서야... 인야는 고개를 갸우뚱 했고,
그 눈치를 차렸던지 산티아고가,
"응, 인야... 우리 집사람은 독일 여자야. 나 청소년기에, 우리 가족이 독일로 이민을 가서 살았거든."(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스페인의 반 프랑코주의자였던 산티아고의 아버지 때문에 독일로 가서 살았다는 것이었다.) 하면서 계속됐던 얘기로는, 대학에 다니면서 알게 되었던 마야와 결혼했고, 자신들한테는 아들과 딸 둘이 있는데... 그들은, 하나는 독일에 또 하나는 스위스에서 각자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면서...
"그렇게 우리 가족은, 넷이야." 해서야,
'아, 그래서 이 친구가 아까 나를 그런 식으로 포옹하면서 인사를 해온 것이로구나. 그렇긴 하다지만, 독일 사람들이 그렇게 인사를 해오던가?'
이제 인야는 그쪽으로 잠깐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자신이 독일 베를린에 살았던 약 몇 개월 동안, 그리고 함부르크의 독일인 집에 머물 때에도... 독일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인사를 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래서 산티아고가 그렇게 외국어에 능통했다는 게 이해가 됐고, 역시 그래선지... 이 친구가 매우 개방적이란 것도 수긍하게 되었다.
더구나 부창부수라고나 할까?
그의 처, '마야' 역시 상당히 개방적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왜냐면 몇 마디 나누지 않은 상태였지만, 인야는 마야와도 말이 썩 잘 통하는 느낌이어서... 까미노에서 어떻게 산티아고와 만났는지를 설명하던 중에,
"산티아고 그룹 중에 한 독일인이 있었는데, 인종차별적인 사람 같았거든요? 내가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도 않더라구요. 그래서 나는 산티아고 그룹을 다 싸잡아, '상대할 가치도 없는 놈들!' 하고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산티아고가 그 다음 날 길에서, 내 카우보이 모자를 보고, 하도 잘 어울리네 색상도 좋네 하기에... 처음엔 귀찮아 했었거든요?" 하는데, 그 옆에서 빙그레 웃고있던 산티아고가,
"어떤 독일인?" 하고 묻는 것이었다.
"왜, 우리 식사에는 없었지만... 한 사람 있었잖아? 인상도 좀 어둡고, 당신하고 독일말로 대화했던......"
"아, 그 사람은... 독일인이 아니고, 폴란드 사람이었는데? 인야."
"그래? 나는 둘이서 독일말로 하는 것 같아서, 그가 당연히 독일인인 줄 알았지 뭐야... 여태까지도......"
"그렇긴 했지. 우리는 독일말로 대화를 했었으니까... 하 하 하...."
허긴, 그 사실은 그 자리에서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고... 그 보다는, 그토록 격이 없이 자신을 환영해 주는 마야와 나눈 대화 자체가 중요했던 인야는,
'어떻게 두 부부가 이렇게 마음이 열려있을까?' 하는 생각이 아니 들 수가 없을 정도였다.
사실, 인야가 산티아고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물론 갑작스러웠을 인야의 전화에 그가 처음에...
"어? 하필이면 오늘, 우리에겐 중요한 일정이 있는데.....' 했다가, "그래도 어쨌거나 우리는 만나야 돼. 그리고 우리 집에 와서 점심 식사를 해." 하기에,
더더욱 인야는,
"우리 그냥 잠깐 만나 얼굴이나 보고, 차나 한 잔 마시면서... 까미노에 대한 얘기나 좀 나눈 뒤, 헤어지는 게 어떨까요?" 하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산티아고가 펄쩍 뛰면서 극구 오라고 주장했고, 지하철 역에서도 또 억지로 자기 집까지 끌고 왔기 때문에... 따라올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인데,
어쨌든 그 부부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산티아고 집에서 있었던 특이한 점은,
산티아고가 지난 9월 까미노에서 마드릳으로 돌아온 뒤, 마야에게 동양인 화가(인야)를 만났다는 얘기를 했을 것이기에... (산티아고가 인야에게 방수덮개 등의 호의를 베풀어준 데 대한 답례로, 인야가 자신의 그림엽서 세트를 그에게 주었기에) 마야도 물론 인야의 그림들도 이미 보았을 것이라서...
식사 뒤에는, 인야의 그림 세계에 대한 얘기도 나오게 되었는데...
마야는,
"인야, 가능하면 당신의 그림을 좀 더 보고 싶은데요." 하기까지 하니,
"물론 직접 볼 수는 없겠지만, 지금이라도... 내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데요." 했더니,
산티아고가 서슴없이 노트북을 가져오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인야의 개인 홈페이지에 접속해서(그들은 한글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림은 얼마든지 볼 수 있으므로) 인야의 더 많은 작품까지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인야의 그림을 좋아하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뒤에 나온 그들의 행위는 너무나 특이했다.
무엇보다도, 선뜻,
"인야, 우리는 당신의 그림을 한 점 사고 싶은데요..." 하는 거 아닌가.
인야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너무나 뜻밖의 제안이기도 해서였다.
'내 그림을 좋아할 수는 있다지만, 바로 사겠다고?'
인야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오히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것 역시 보통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인야는 그런 걸 덥석 무는 사람이 아니었다.
산티아고 부부야 그저 자연스럽게, 한 화가의 그림을 사고 싶다고 얘길 했지만, 인야의 자세가 또 그들을 놀라게 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인야가,
"당신들의 그 제안이 뜻밖이긴 하지만, 그래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지만, 나는 내 그림을 당신들에게 팔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놀란 건 그들 부부였다.
자신 스스로가 '가난한 화가'라고 했으면서, 그림 한 점을 팔아준다고 했는데도... 단번에 No! 했으니.
의아해하는 그들에게 인야는 그 이유를 얘기했다.
"사실, 우리는 알게 된 게 얼마 되지 않았어. 그렇지만, 이렇게 내가 당신들 집에 와서 식사를 할 정도가 된 것을 보면... 우리는 막 친구가 돼간다는 뜻이기도 한데, 나는 친구와 그림을 팔고 사는 일은 원치를 않아."
그러자 부부는 더욱 의아해하는데, 인야의 이어진 설명이 명확했다.
"그림을 팔고 사는 일은 상업적인 행위인지라... 파는 사람은 아무래도 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어하고, 사는 사람은 가급적 싸게 사고 싶어하는 게 당연한데, 그러는 과정에 돈이 개입되면 둘 관계에 안 좋은 영향이나 감정이 생기게 마련이야. 나는 지금 막 당신들과 친구가 돼가고 있는 상황인 것 같은데... 우리 사이에 돈 문제가 개입되면, 서로의 감정이 상할 수도 있어. 더구나 나는 비록 유명하지도 않은 가난한 화가지만, 내 그림을 싸게 팔지 않거든? 어쩌면 당신들이 놀랄 정도로... 그러니 그림 거래를 하다 보면, 어쩌면 우리 사이가 시작과 함께 안 좋은 감정으로 가게 될 수도 있어. 그러니 나는, 그림을 차라리 안 팔더라도... 당신들과 친구 하는 게 더 중요하고 좋다는 거야." 해서야, 그들은 인야를 이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의문을 갖는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물론 그런 자리에서 실제적으로 그림을 팔고 살 상황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들 부부와 첫 식사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주고 받긴 했다.
그렇게 인야는 그들에게 환대를 받았고, 더구나 그날 저녁에 그들 부부는 한 무리의 그룹을 초대해놓은 상태였기에(그런 바쁜 일정이었는데도, 인야를 따로 초대할 정도로 그들은 인야와의 만남도 중요하게 여겼다는 얘기였다)...
인야를 보내고 난 뒤, 열 명도 넘는 저녁 손님들을 위한 준비를 바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러니 인야는 서둘러 자리를 비워줘야만 했다. 물론 자신도 내일 스페인을 떠날 사람이라 바쁜 것 역시 사실이었지만).
서로가 바빴고, 서로가 아쉬웠다.
어쨌든 그렇게, 처음엔 인야가 산티아고를 만나 다음 날 산티아고가 떠나는 상황이었다면, 이번엔 인야가 산티아고를 다음 날 떠나는 상황으로... 둘의 만남은 마지막 날에 이루어졌던 공통점도 있듯이, 아쉬움이 남는 만남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인야와 산티아고는 두 번의 만남이 다 아쉬움만을 던진 결과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