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가의 독서법]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쓰는 작가
브루스 채트윈(Bruce Chatwin)
<파타고니아(In Patagonia)>(1977)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What Am I Doing Here)>(1989)
브루스 채트윈은 사후에 발표된 한 글에서 작가는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고 말했다. “한곳에 자리 잡고 쓰는 작가”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쓰는 작가”.
첫 번째 점주에 속하는 이들로는 “자기 서재에서 글을 쓴 플로베르와 톨스토이, 책상 옆에 갑옷을 두고 쓴 졸라, 자신의 작은 집에서 쓴 포, 안쪽 벽에 코르크를 댄 방에서 쓴 프루스트”를 꼽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쓴 이들로는 “조용히 매사추세츠에 자리 잡으면서 ‘망한’ 벨빌(포경선을 타고 돌아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한 모험소설로 대주으이 인기를 끈 멜빌은 너새니얼 호손에게 매료돼 그가 사는 메사추세츠로 이사하고 <모비딕>을 썼으나 독자들의 반응은 냉담했고 이후 작가로서 거의 잊혀졌다)이나 헤밍웨이, 선택이었든 불가피한 일이었든 앞뒤 가리지 않고 호텔과 셋방을 돌아다니며 살았던 고골이나 도스토예프스키를 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베리아 감옥까지 가기도 했다.
물론 채트윈은 단연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쓰는 작가의 범주에 속한다.
채트윈은 자신의 DNA에 방랑벽을 가지고 자랐다고 회상한다. 할머니의 사촌으로 칠레 푼타아레나스의 영국 영사가 된 찰리는 1898년 마젤란 해협 어귀에서 조난당했다. 삼촌인 제프리는 아랍 전문가이자 사막 여행가로 에미르 파이살(파이살 1세. 1920년 대시리아 왕국의 왕이 되었으나 프랑스의 식민 통치로 인해 4개월 만에 쫓겨난 후 1921년 영국의 도움으로 이라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로부터 황금 머리장식을 받았으며, 역시 삼촌인 험프리는 “아프리카에서 슬픈 최후”를 맞이했다.
아버지가 해군에 있는 동안 어린 브루스는 어머니와 함께 여러 친척과 친구들의 집에 머물면서 영국을 여기저기 떠들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채트윈은 나중에 “열렬한 지도책 중독자”가 되었으며, 유망한 직장인 소더비스를 떠난 후 스스로 저널리스트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첫 번째 책인 <파타고니아>는 돌풍을 일으켰다. 콜라주와도 같은 서사, 정교한 문체, 그리고 지구상 좌표를 가진 장소인 만큼이나 작가의 상상 속 장소이기도 한 풍경의 묘사와 같은 특성이 여행기의 경계를 넓히고 이 장르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 책의 시작 부분은 널리 찬사를 받고 인용되곤한다. 어린 브루스는 할머니의 장식장에 있던 이상한 동물 가죽 조각이 할머니의 사촌이 파타고니아에서 발견한 “브론토 사우루스의 조각”이라 생각했는데, 이것이 얼마나 어린 브루스의 가슴에 박혔던지 저 머나먼 땅에 대한 매혹에 불이 붙어 언젠가 그곳을 여행하겠노라고 마음먹었다.
마술적인 것, 부조화한 것, 진기한 것을 알아보는 채트윈의 예리한 눈은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에 실린 인물평, 에세이, 여행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책의 좀 더 빤한 소제목들도 채트윈의 관찰력과 자신감을 보여준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부터 제3세계에서의 생존 전략, 하이패션계의 경쟁 관계에 이르기까지 뭐든 쓸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채트윈의 가장 빼어난 글들은 놀라운 인물들로 가득한 온전한 형태의 짧은 소설처럼 읽힌다. 이 책에서 우리는 러시아에는 대작가가 없다고 불평하며 부디 읽을 만한 “진짜 쓰레기”를 가져다달라고 채트윈에게 부탁하는 나데즈나 만델스탐과 보드카를 홀짝거리는 “웨일스(Wales)”를 “고래(Whales)”로 혼동하는 다이애나 브릴랜드(프랑스계 미국인 패션 칼럼니스트이자 편집자로, 패션 잡지 <하퍼스바자>와 <보그>의 편집장을 지냈다)를 만날 수 있다.
“나비 날개 같은 옷깃이 달린 밝은 갈색 상의”를 입고서 의자 끄트머리에 앉은 앙드레 말로는 “위인으로 변신한 재능 있는 젊은 예술 애호가”로 묘사된다. 베르너 헤어조크는 “모순들의 집합체”라는 인상을 준다. 대단히 거칠지만 취약하고, 다정하면서도 거리감이 있으며 소박하면서 감각적이고, 일상의 압박에 특별히 잘 적응하지 못하지만 극한 상황에서는 효율적으로 역할을 수행한다.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도 생생하게 묘사된다. 72년의 생애 가운데 절반을 페루 사막에서 나스카 문양으로 알려진 고고학의 불가사의를 조사하며 보낸 “키가 크고 거의 뼈만 남은 독일의 수학자이자 지리학자”, 두 개의 빙하를 가로지르고 약 5,791미터 높이의 산길을 오르는 여정에 악착같이 나서는 깡마른 티베트인 밀수꾼, 중국의 산촌 사람들에게 이탈리아 테너 가수인 카루소의 음반을 틀어주길 좋아하는 식물학자이자 탐험가.
채트윈은 분명 문명을 뒤로하고 세계의 극단으로 떠난 이 고독한 모험가들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실제로 그 자신의 삶은 티베트의 세르파들과 공유하는 열렬한 믿음으로부터 활력을 얻었다. “강박적 여행자”인 티베트의 세르파들은 돌무더기와 기도 깃발(티베트 불교의 종교적 상징과 문자를 담은 작은 천으로 만들어진 깃발로, 기도할 때 쓰인다)로 자신의 족적을 표시해 “인간의 진짜 고향은 집이 아니라 길이며 삶 자체가 발로 걸어가는 여정임을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