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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전(1)
<아니리>
세재(歲在) 지정(至正) 갑신년(甲申年) 중하월(仲夏月)에 남해 광리왕(廣利王)이 영덕전(靈德殿) 새로 짓고, 복일(卜日) 낙성연(落成宴)에 대연을 배설(排設)하여 삼해 용왕을 청하니, 군신빈객(君臣賓客)이 천승만기(千乘萬騎)라. 귀중(貴重) 연(筵)에 궤좌( 坐)하고 격금고이명고(擊琴鼓而鳴鼓)로다. 삼일을 즐기더니, 남해 용왕이 해내(海內) 열풍(熱風)을 과(過)히 쏘여 우연 득병허니, 만무회춘지도(萬無回春之道)하고 난구명의(難求名醫) 지구(至久)라. 명의 얻을 길이 없어, 용왕이 영덕전 높은 집에 벗 없이 홀로 누워 탄식을 허는듸,
<진양>
탑상(榻牀)을 탕탕 뚜다리며 용왕이 운다. 용이 운다. "천무열풍(天無熱風) 좋은 시절, 해불양파(海不揚波) 태평헌듸, 용왕의 기구로되, 괴이한 병을 얻어 남해궁으가 누웠은들 어느 뉘랴 날 살릴거나? 의약 만세 신농씨(神農氏)와 화타(華 ), 편작(扁鵲) 노월(老越)이며, 그런 수단을 만났으면 나를 구완허련마는, 이제는 하릴없구나." 용궁이 진동허게 울음을 운다.
<아니리>
이렇닷이 설리 울 제, 어찌 천지가 무심하리요.
<엇몰이>
현운(玄雲) 흑운(黑雲)이 궁전을 뒤덮어, 폭풍세우(暴風細雨)가 사면으로 두르더니, 선의(仙衣) 도사가 학창의(鶴 衣) 떨쳐입고 궁중으 내려와 재배이진(再拜而進) 왈, "약수(弱水) 삼천리 해당화 구경과, 백운 요지연(瑤池宴)의 천년벽도(千年碧桃)를 얻으랴고 가옵다가 과약풍편(果若風便)으 듣사오니 대왕의 병세 만만 위중타기로 뵈옵고저 왔나니다."
<아니리>
용왕이 반기허사, "나의 병세는 한두 가지가 아니오라 어찌 살기를 바래리요마는, 원컨대 도사는 나의 황황(惶惶)한 병세 즉효지약(卽效之藥)을 가르쳐 주소서." 도사가 두 팔을 걷고 용왕의 몸을 두루두루 만지더니, 뒤로 물러앉어서 병 집증(執症)을 허것다.
<중몰이>
"대왕님의 중한 형체, 인생(人生)과는 다른지라, 양각(兩角)이 쟁영( 嶸)하여 말소리 뿔로 듣고, 텍(턱) 밑에 한 비늘이 거실러(거슬러) 붙었기로, 분을 내면 일어나고, 입 속의 여의주는 조화를 부리오니, 조화를 부리재면 하늘에도 올라가고, 몸이 적자 하거드면 못 속에도 잠겨 있고, 용맹을 부리자면 태산을 부수며 대해를 뒤집으니, 이 형체 이 정상으 병환이 나겼으니(나셨으니), 인간으로 말허자면,
<잦은몰이>
간맥(幹脈)이 경동(驚動)하여 복중(腹中)으서 난 병이요, 마음이 슬프고 두 눈이 어둡기는 간경(肝經) 음화(陰火)로 난 병이니, 약으로 논지허면, 주사(朱砂), 영사(靈砂), 구사(狗砂), 웅담(熊膽), 창출(蒼朮), 백출(白朮), 소엽(蘇葉), 방풍(防風), 육계(肉桂), 단자[丹砂], 차전(車前), 전실[蓮實], 시호(柴胡), 전호(前胡), 목통(木通), 인삼(人蔘), 가미육군자탕(加味六君子湯), 청서육가탕[淸暑六和湯], 이원익기탕(二元益氣湯), 오가탕(五加湯), 사물탕(四物湯), 신농씨 백초약을 갖가지로 다 써도 효험 보지를 못하리다. 침으로 논지허면, 소상(少商), 어제(魚際), 태연(太淵), 경거(經渠), 내관(內關), 간사(間使), 곡지(曲池), 견우(肩骨禹), 단중( 中), 구미(鳩尾), 중완(中脘)이며, 삼리(三里), 절골[京骨], 심총[神庭], 사혈(瀉血), 갖가지로 다 주어도 회춘(回春)허지 못하리다.
<아니리>
진세(塵世) 산간에 천년 퇴간[千年兎肝]이 아니며는, 염라대왕이 동성 삼촌이요, 강님 도령이 외사촌 남매간이라도, 신사이원(身死離遠), 누루 황, 새암 천, 돌아갈 귀 하겠소." 용왕이 이 말을 듣더니마는, "그 어찌 신농씨 백초약은 약이 아니 되옵고 자그마한 거 퇴간이 약이 된단 말이오?" 도사 가로되, "대왕은 진(辰)이요, 토끼는 묘(卯)라, 묘을손(卯乙巽)은 음목(陰木)이요, 간진술(艮辰戌)은 양퇴(陽土ㅣ)온데, 갑인진술(甲寅辰戌)은 대강수(大江水)요, 진간사산(辰艮巳山)은 원속목(元屬木)이라, 목극토(木克土)하얐으니 어찌 약이 아니 되오리까? 용왕이 이 말을 듣더니 탄식을 허는듸,
<진양>
왕 왈, "연(然)하다. 수연(雖然)이나, 창망(蒼茫)헌 진세간의 벽해만경(碧海萬頃) 밖으 백운이 구만리요, 여산(驪山) 송백(松栢) 울울창창 삼척(三尺) 고분(孤墳) 황제묘(皇帝墓)인데, 토끼라 허는 짐생은 해외 일월 밝은 세상 백운 청산 무정처로 시비 없이 다니는 짐생을 내가 어찌 구하더란 말이요? 죽기는 내가 쉽사와도 토끼는 구하지 못하겠으니 달리 약명을 일러 주고 가옵소서."
<아니리>
도사 가로되, "대왕의 성덕으로 어찌 충효지신이 없으리까?" 말을 마친 후에 인홀불견(因忽不見), 간 곳이 없것다. 공중을 향하여 무수히 사례한 후에, "수부(水府) 조정 만조백관(滿朝百官)을 일시에 들라." 영을 내려 노니, 우리 세상 같고 보면 일품 재상님네들이 모두 들어오실 터인듸, 수국이 되어 물고기떼들이 각기 벼슬 이름만 따가지고 모두 들어오는듸, 이런 가관이 없던가 보더라.
<잦은몰이>
승상(丞相)은 거북, 승지(承旨)는 도미, 판서(判書) 민어, 주서(注書) 오징어, 한림학사(翰林學士), 대사성(大司成) 도루목, 방첨사(蚌僉使) 조개, 해운공(蟹運公) 방게, 병사(兵使) 청어, 군수(郡守) 해구(海狗), 현감(縣監) 홍어, 주부장(部將) 조구(조기), 부별랑청 장대, 승대, 교리(校理), 수찬(修撰), 낙지, 고등어, 지평(持平), 장령(掌令), 청다리, 가오리, 금부(禁府) 나졸(邏卒), 좌우 순령수(巡令手), 고래, 준치, 해구, 모지리, 원참군( 參軍) 남생이, 별주부(鼈主簿) 자래, 모래모자(모래무지), 멸치, 준치, 갈치, 삼치, 미끈 배암장어, 좌수(座首) 자개사리, 가재, 깨고리까지 영을 듣고 어전에 입시(入侍)하여 대왕으게 절을 꾸벅꾸벅 허니,
<아니리>
병든 용왕이 이만 허고 보시더니마는, "어, 내가 이런 때는 용왕이 아니라, 팔월대목 장날 생선전의 도물주(都物主)가 되얐구나. 경들 중에 어느 신하가 세상에를 나가 토끼를 잡어다가 짐의 병을 구하리요?" 좌우 제신이 어두귀면지졸(魚頭鬼面之卒) 되야 면면상고(面面相顧)에 묵묵부답(默默不答)이었다.
<중몰이>
왕이 똘똘 탄식헌다. "남의 나라는 충신이 있어서, 할고사군(割股事君) 개자추(介子推)와 방초망신[ 楚亡身] 기신(紀臣)이는 죽을 임군을 살렸건마는, 우리나라도 능신(能臣)은 있건마는, 어느 뉘기랴서 날 살리리요." 정언(正言) 잉어가 여짜오되, "세상이라 허는 곳은 인심이 소박(疎薄)하와, 수국인갑(水國鱗甲)곧 얼른하면(언뜻하면) 잡기로만 위지[爲主]를 허니, 지혜 용맹이 없는 자는 보내지를 못허리다." "승상 거북이 그럼 어떠하뇨?" 정언 잉어가 여짜오되, "승상 거북은 기략이 널렀삽고(널르옵고), 복판이 모도 다 대모(玳瑁)인 고로, 세상으를 나가 오면 인간들이 잡어다가 복판 떨어, 대모 장도(粧刀), 밀이개 살착, 탕건 묘또기, 주일쌈지 끈까지 대모가 아니며는 헐 줄을 모르니 보내지를 못허리다." "아서라, 그래면 못 쓰겼구나. 방첨사 조개가 그럼 어떠하뇨?" "방첨사 조개는 철갑이 꿋꿋하여 방신제도[防身之道]는 좋사오나, 옛글에 이르기를, 관방휼지세(觀蚌鷸之勢)허고 좌수어인지공(坐收漁人之功)이라, 휼조라는 새가 있어 수루루 퍼얼펄 달려들어, 휼조는 조개 물고 조개는 휼조 물고 서로 놓지 아니허다 어부 손에 모도 다 잽히어 속절 없이 모도 죽을 것이니, 세상 보내지를 못허리다."
<아니리>
"아서라, 그러면 못쓰겠다. 수문장 미에기(메기)가 그럼 어떠하뇨?"
<잦은몰이>
정언이 여짜오되, "미에기는 장수구대(長鬚口大)하여 호풍신(好風神)허거니와, 아가리가 너머 커서 식량이 너른 고로, 청림 벽계 산천수, 요기감을 얻으랴고 이리저리 히댈(허둥댈) 적에, 사립 쓴 어옹들 사풍세우불수귀(斜風細雨不須歸)라. 입갑 뀌여서 물에다 풍덩, 감식(甘食)으로 덜컥 생켜, 인간의 이질(痢疾), 복질(腹疾), 설사, 배아피(복통) 얻은 듸 약으로 먹사오니, 보내지를 못하리다."
<아니리>
한참 이리 헐 적에, 해운공 방게란 놈이 열발을 쩍 벌리고 엉금엉금 기어 들어오며,
<중중몰이>
"신의 고향 세상이라, 신의 고향은 세상이라. 청림 벽계 산천수 가만히 장신(藏身)하여 천봉만학(千峰萬壑)을 바래봐, 산중퇴 월중퇴 안면 있사오니, 소신의 엄지발로 토끼놈의 가는 허리를 바드드드드 집어다가 대왕 전에 바치리다."
<아니리>
"아니, 그럼 너도 이놈, 그러면 신하란 말이냐?", "아, 물고기떼는 다 마찬가지지요.", "어라, 저놈 보기 싫다! 두 엄지발만 똑 떼여 내쫓아라!" 공론(公論)이 미결(未決)헐 적에,
<진양>
영덕전 뒤로 한 신하가 들어온다. 은목단족(隱目短足)이요 장경오훼(長頸烏喙)로다. 홍배 등에다 방패를 지고 앙금앙금 기어 들어와 국궁재배(鞠躬再拜)허며 상소를 올리거날,
<아니리>
떼어 보니 별주부 자래라. "네 충성은 지극허나, 세상에를 나가며는 인간의 진미가 되어 왕배탕(王背湯)으로 죽는다니, 그 아니 원통허냐?" 별주부 여짜오되, "소신은 수족이 너이오라, 강상에 둥실 높이 떠 망보기를 잘하와 인간의 봉폐(逢弊)는 없사오나, 해중지소생(海中之所生)으로 토끼 얼골을 모르오니, 화상(畵像) 하나만 그려 주시면 꼭 잡어다 바치겄습내다.", "아, 글랑 그리하여라.
<중중몰이>
화사자(畵師子) 불러라." 화공을 불러들여 토끼 화상을 그린다. 동정(洞庭) 유리(琉璃) 청홍연(靑紅硯), 금수추파(錦水秋波) 거북 연적(硯滴), 오징어로 먹 갈아 양두(兩頭) 화필을 덥벅 풀어 단청 채색을 두루 묻히어서 이리저리 그린다. 천하 명산 승지 강산 경개 보던 눈 그리고, 두견, 앵무, 지지 울 제 소리 듣던 귀 그리어, 봉래, 방장 운무 중의 내 잘 맡던 코 그리고, 난초, 지초, 왼갖 향초, 꽃 따먹던 입 그리어, 대한 엄동 설한풍의 방풍(防風)허던 털 그려, 만화방창(萬花方暢) 화림(花林) 중의 펄펄 뛰던 발 그려, 신농씨 상백초(嘗百草) 이슬 털던 꼬리라. 두 귀난 쫑곳, 두 눈 도리도리, 허리난 늘찐(늘씬), 꽁지난 묘똑, 좌편 청산이요, 우편은 녹수라. 녹수 청산의 헤굽은 장송(長松), 휘늘어진 양류(楊柳) 속, 들락날락 오락가락 앙그주춤 기난 김생, 화중퇴(畵中兎) 얼풋 그려, "아미산월(蛾眉山月)으 반륜퇴(半輪兎ㅣ) 이여서 더할소냐. 아나, 엿다, 별주부야, 네가 가지고 나가라."
<아니리>
별주부, 토끼 화상 받어 목덜미 속에 집어놓고 꽉 옴틀여 놓으니, 물 한점 들어갈 배 만무하지. 사은숙배(謝恩肅拜) 하직헌 후에 본댁으로 돌아올 적에, 그때에 주부 모친이 있는듸, 자래라도 수수천년이 되어서 삶아 놔도 먹지 못할 자래였다. 주부 세상에 간단 말을 듣고 울며불며 못 가게 만류를 허는듸,
<진양>
"여봐라, 주부야, 여봐라, 별주부야. 네가 세상을 간다 허니 무얼 허로 갈라느냐? 장탄식, 병이 든들 어느 뉘가 날 구하며, 이 몸이 죽어져서 오연(烏鳶)의 밥이 된들, 뉘랴 손뼉을 뚜다리며 후여쳐 날려 줄 이가 뉘 있더란 말이냐? 여봐라, 별주부야, 위방불입(危邦不入)을 가지 말어라."
<아니리>
별주부 여짜오되, "나라에 환후 계옵셔 약 구하러 가는 길이오니, 어머니, 너무 근심치 마옵소서.", "내 아들아, 기특허다. 충성이 지극허면 죽는 법이 없느니라. 그럼 수로 육로 이만리를 무사히 다녀오너라." 배별(拜別)하고 침실로 돌아올 적에, 그때에 주부 마누라가 있는듸, 이놈이 어디로 장가를 들었는고 허니 소상강으로 장가를 들었것다. 택호(宅號)를 부르며 나오는듸, "아이고 여보, 소상강 나리, 세상으를 간다 허니, 당상의 백발 모친 어찌 잊고 가랴시오?", "오냐, 네가 아이고 지고 운다마는, 내가 너를 못 잊고 가는 일이 하나 있다.", "아, 무슨 일을 그렇게 못잊고 가세요?", "다른 게 아니라, 재너머 남생이란 놈이 제 조에(주제에) 덧붙임 사촌간이라 하여 두고 볼곰볼곰 자주 돌아당기는 게 아마도 내 구망(久望)에 껄쩍지근혀. 그놈 몸에는 거 노랑내가 나고, 내 몸에는 고순내가 나니, 글로 징험(徵驗)해서 부대 조심허렷다잉."
(중략 - 별주부가 바라를 거쳐 지상에 당도하여, 온갖 짐승들이 모여서 나이자랑을 하는 광경을 본다. 마침 그 자리에 호랑이가 나타나는데 별주부가 이를 토끼로 잘못 알고 불렀다가 곤욕을 치른 끝에 겨우 호랑이를 따돌린다.)
<아니리> 그때에 별주부는 호랭이를 쫓아버리고 곰곰 생각을 허니, "내가 충성이 부족하여 산신님이 변화를 붙였나부다, 산신제나 좀 지내볼 밖으." 산신제를 지내는듸,
<진양>
계변(溪邊) 양류(楊柳) 늘어진 가지를 앞니로 아드득 꺾어 내여 진퇴[塵土]를 씰은(털어낸) 후에, 반석(盤石)으로 제판(祭板) 삼고, 낙엽으로 면지(面紙)를 깔고, 산과 목실 줏어다가 방위(方位) 갈라 차려 놓고, 천어(川魚) 잡어다 어동육서(魚東肉西)로 갈라 놓더니, 분향재배(焚香再拜)허며 독축(讀祝)을 헌다. '유세차(維歲次) 갑신(甲申) 유월 기우삭(朔) 십오일 기해(己亥), 남해 수궁 별주부 자래 감소고우(敢昭告于). 상천일월(上天日月) 명산 신령 전으 지성 발원(發願)하나니다. 용왕이 우연 득병하여 천의 도사으게 문의헌즉 천년 퇴간이 즉차(卽 ) 운(云)한 고(故)로, 원해(遠海) 만리(萬里)에 신고월섭(辛苦越涉)하여 내도차산하(來到此山下)에, 천년퇴 일수(一首)를 허급지지(許給之地) 복망축수(伏望祝手), 상사(常事) 상향(尙饗).
<아니리>
축문 읽고 한 곳을 바라보니,
<중중몰이>
건넌산 바위틈에 묘한 짐생이 앉었다. 두 귀난 쫑곳, 두 눈 도리도리, 허리난 늘찐, 꽁지난 묘똑, 좌편 청산(靑山)이요 우편은 녹수(綠水)라. 녹수 청산의 헤굽은 장송, 휘늘어진 양류 속, 들락날락, 오락가락, 앙그주춤 기는 김생 분명한 토끼라. 화상 보고 토끼 보니 산중퇴 월중퇴라. "저기 앉은 게 퇴생원 아니요?" 허고 불러 노니 토끼가 듣고서 깡짱 뛰며, "게 뉘가 날 찾나, 게 뉘기가 날 찾어? 기산(箕山) 영수(潁水) 소부(巢父) 허유(許由) 피서가자고 날 찾나? 수양산(首陽山) 백이(伯夷) 숙제(叔齊) 채미(採薇)허자고 날 찾나? 백화심처 일승주[百花深處一僧歸]라, 춘풍 석교(石橋) 화림 중의 성진(性眞) 화상(和尙)이 날 찾나? 도화유수(桃花流水) 무릉(武陵) 가자 거주속객[擧酒屬客]이 날 찾나? 완월장취(玩月長醉) 강남 태백(太白) 기경상천(騎鯨上天)허는 길에 함께 노자고 날 찾나. 거 누구 날 찾어, 거누구가 날 찾어. 차산중 운심처에 부지처 오신 손님, 게 뉘가 날 찾나? 건넌산 과부 토끼가 연분을 맺자고 날 찾나?" 요리로 깡짱, 저리로 깡짱, 호도독똑 깡짱 뛰고 놀다
<아니리>
후닥닥허다가 자래와 토끼가 서로 마주쳤것다. "아이고, 코야!", "아이고, 이마빡이야! 여보, 초면에 방정맞게 남의 이마는 이리 들이받다?", "당신 이마보다 복스럽게 생긴 내 코도 다쳤소.", "그러면 우리 피차 일반이니 통성명이나 헐끄라우?", "그럽시다. 대체 게서는 거 뉘랴 하옵시요?", "예, 나는 수국 전옥주부 공신 사대손 별주부 별나리라 하오." 토끼 듣고, "예, 나는 천상 월궁 으음양순사시[理陰陽順四時]허던 예부상서 월퇼(月兎일)러니, 독약주[搗藥酒] 취케 먹고 장생약(長生藥) 그릇 지여 적하중산(謫下中山)하여 머무른 제 오랠러니, 세상에서 나를 우주왈(宇宙曰) 퇴 선비라고 헙넨다." 자래가 토명을 어찌 반겨 들었던지 문자를 쓴다는 게 뒤집어 쓰것다요. "구황성활[久仰聲華]려니, 금일 상봉(相逢)은 하생견지만만[何相見之晩晩] 무고불칙[無故不測], 호로아들놈의 자식이로고." 토끼 듣고 "어, 그놈 뽄은 말질뽄[末質本]으로 생겼으되, 속에 글이 다뿍 든 놈이로고. 내가 이놈한틔 문자 한 마디라도 밀려서는, 나뿐 아니라 세상 문장들이 날로 하여금 해서 망신을 당할 테니, 내가 전일에 배운 문자를 이놈 앞에 한번 베풀어 볼 밖으. 여보, 별 주부, 내 문자통 궁글어 나가오.", "어디 나와 보시오.", "법은홍안[法眼弘眼]이요, 홍안백발(紅顔白髮)이요, 홍불감쟁[紅不敢藏]이요, 이불가독식(利不可獨食)이요, 맥전통로[陌前通路]요, 구행방통(九行旁通)이요, 오륙칠 두루송이요, 친사둔통가문[親査頓通家門]이요, 당구(堂狗) 삼년에 폐풍월(吠風月)이요, 우비독경(牛鼻讀經)이요, 어동육서(魚東肉西) 홍동백서(紅東白西)요, 명지위적[明其爲賊]은 전라 감영이요, 일구이언(一口二言)은 백부지자(百父之子)로고." 이놈의 문자를 뒤집어 썼다, 꺼꾸로 썼다, 이런 야단이 없지. 별 주부 듣고 함소왈(含笑曰), "대체 퇴선비 퇴선비 허더니마는 글도 문장이려니와, 풍신이 선풍도골(仙風道骨)이요그려. 저러한 귀골(貴骨)이 대체 세상에서 무엇을 허고 지내시는지? 어디 세상 경개나 좀 일러 보시오." 토끼 듣고 좋아라고, "내 팔자야 무쌍이지요.
<중몰이>
인적 없는 녹수청산(綠水靑山) 일모황혼(日暮黃昏) 잠이 들었다가, 월출동령(月出東嶺) 잠을 깨여, 값없난 산과 목실을 양식 삼어서 감식헐 제, 신여부운(身如浮雲) 일이 없어 명산 찾어 완경(玩景)헐 적에, 여산(廬山) 동남(東南) 오로봉(五老峰)과 진국명산(鎭國名山) 만장봉(萬丈峰) 기엄기엄 기어 올라 가만히 굽어보니, 화간접무(花間蝶舞)는 분분설(粉粉雪)이요 유상앵비(柳上鶯飛) 편편금(片片金)이라. 모란, 작약, 영산홍과 왜철쭉, 진달화는 여기저기 피였난듸, 등태산소천하(登泰山小天下)의 공부자 대관(大觀)인들 이여서 더하더란 말이냐? 밤이면 완월(玩月)허고 낮이 되면 유산(遊山)헐 제, 강산 풍경 홍미간(興味間)의 지상 신선이 나뿐이든가. 적송자(赤松子), 안기생(安期生)은 나의 제자 삼아 두고, 이따금 심심허면 종아리 때려가며, 글로 소일을 허나니다."
<아니리>
별주부 듣고 탄복하며, "대체 퇴선비 퇴선비 허더니마는, 얼굴이 남중일색(男中一色)이요, 발맵시가 단정한 오입쟁이라. 우리 수국에 들어가시면 훈련대장은 틀림없게 하겠으나, 미간에가 화망살기(禍亡煞氣)가 비쳐서 세상에 있다가는 죽을 지경을 여덟번이나 당하겄소.", "허허, 그 분이 거 초면에 방정맞은 말을 하는고?", "아니, 그대의 세계 팔란(八難) 내 이르께 한번 들어 보시요잉."
<잦은몰이>
"일개 한 퇴 그대 신세, 삼춘(三春) 구추(九秋) 다 지내고, 대한 엄동 설한풍 만학에 눈 쌓이고 천봉의 바람 칠 제, 화초 목실 바이(전혀) 없어 앵무 원앙이 끊쳤다. 어둑한 바우 틈, 발바닥 할짝할짝, 터진 듯이 앉은 모냥, 초운 편월의 무관수 초회왕의 원혼이요, 일월(日月) 고초(苦楚) 북해상 소호(蘇乎) 무호(武乎) 기생(其生)이로다. 벽도홍행(碧桃紅杏) 춘이월(春二月) 주린 구복(口腹)을 채우려고 이리저리 히댈 적에, 골골이 묻은 것은 목다래 엄착귀요, 봉봉이 섰난 것은 매 받은 응주(鷹主)라. 목다래 채거드면 결항치사(結項致死)가 대랑대랑, 제수(祭需) 괴기가 될 것이요. 몰이꾼, 사냥개, 반중송, 떡갈잎, 포기포기 뛰어갈 적에 토끼 놀래 호도독 호도독. '추월자 매 놓아라.' 해동청 보라매, 북두루미, 빼지, 공작이, 망월(望越) 도리당사 끈꾸리 비쳐갈 적에, 방울을 떨쳐 주먹을 박차고 펄펄 수루루 달려들어, 그대 귓전 양발로 당그랗게 추여들고, 고부레한 주둥이로 양미간 골치 대목을 그저 콱콱." "허허, 그 분이 그 방정맞은 소리 말래도. 그러기에 뉘가 거 있간듸, 산중등으로 돌지." "중등으로 닫난 토끼, 풀감투 푸삼 입고 방패 뀌미(꿰미)를 앞세워, 오는 토끼를 놓으랴, 상사밤을, 왜물(倭物) 조총(鳥銃), 월귀약, 덮사실, 반달 같은 방아쇠, 고초 같은 불을 연적(얹어), 한 눈 찡그리고 반만 일어서 괴약불 번쩍 지끈 탕, 토끼 때그르르르르르." "어따, 그분네가 그 방정맞인 소리 말래도 그리 점점 허는듸? 그러기에 뉘가 거 있간듸? 너른 들로 다니제." "들로 닫난 토끼, 초동(樵童) 목수(牧竪) 아 이놈들 몽둥이 들어메고 '들토끼 잡으러 가자', 없는 개 부르며 워리 두둑 쫓아갈 제, 그대 간장 생각허니 백등(白登) 칠일 곤곤(困困) 한태조(漢太祖) 간장이요, 적벽강(赤壁江) 전패(戰敗)하던 조맹덕 정신이라. 짜른(짧은) 꽁지 샅(사타구니)에다 찌고 적은 눈 부릅떠 죽기 망상 올라갈 제, 무슨 정(情)으로 유산, 무슨 정의 완월, 아까 안 기생, 적송자 종아리 때렸단 그런 거짓부렝이를 어느 뉘 앞에다가 헐라고? 에이 여보슈, 그런 소리 마슈."
<아니리>
가만히 토끼란 놈이 듣더니마는, "대체 주부, 상은 잘 보요. 내 팔자가 하기는 영락없이 그렇게 생기기는 생겼소. 그래면 어디 수궁 경개 얘기나 한번 해 보시오.", "에이, 또 수궁 경개 얘기허면 따라올라고?", "아니, 안 따라갈 테니 어디 얘기나 한번 해 보시오.", "수궁 경개 얘기하면 대번 당신 환장할 것이요. 우리 수국 장허지요. 천양지간의 해위최대(海爲最大)하고 인물지내에 신위최영(神爲最靈)이라. 무변대해에다가 천여 간 집을 짓고, 유리 기둥, 호박 주추, 주란화각(朱欄畵閣)이 반공(半空)에가 번듯 솟았난듸,
<진양>
우리 용왕 즉위허사 만족(萬族)이 귀시(貴示)헌듸 백년이 앙덕(仰德)이로구나. 왕모(王母) 금병(金甁) 천일주(千日酒)와 천빈옥반(千賓玉盤) 담은 안주, 불로초 불사약 취토록 먹은 후에, 일흥(逸興)이 도도허면 미색(美色), 세악(細樂), 갖은 풍악을 대홍선(大紅船)에다 가득하니 실고 요지(瑤池)로 돌아들 적에, 칠백리 군산(群山)은 물 속에가 그려 있고, 삼천 사장 해당화는 약수으 붉었구나. 해내 태평하여 월청명(月淸明) 추강(秋江) 상으 어적(漁笛) 소리로 화답허고, 경수(涇水), 위수(渭水), 낙수(洛水), 회수(淮水), 양진( 津), 포진(蒲津), 평야[彭 ], 소상(瀟湘), 혹거혹래(或去或來) 노닐 적으, 적벽강 소자첨(蘇子瞻) 채석강(采石江) 이태백이가 이런 흥미를 알았으면 세상으서 왜 있으리? 원컨대 퇴서방도 나를 따라서 수궁을 가면 훈련대장은 헐 것이고, 미색게악[美色之樂]을 맘대로 다리고 만세 동락을 허오리다."
<아니리>
토끼란 놈 듣더니, "대체 참 좋기는 좋은가부요. 꼭 그렇게만 될 테면 나 당신을 따라가겠소마는." "아, 되고 말고.", "아, 그러면 나 따라갈라요.", "그러면 우리 같이 갈끄라우?", "같이 내려갑시다.", "그럼 같이 갑시다."
<중몰이>
자래는 앞에서 앙금앙금, 토끼는 뒤에서 깡짱깡짱, 원로해변(遠路海邊)을 내려갈 제, 건넌산 바우틈에 여호란 놈이 나앉으며, "여봐라, 토끼야." "워야." "너 어디 가느냐?" "나 수궁 간다." "수국은 무엇 하로 가느냐?" "훈련대장 살러 간다." "어따, 자식 실없는 놈아, 자래놈의 말을 듣고 망망창해(茫茫滄海)를 가랴느냐? 옛일을 모르느냐? 삼려대부(三閭大夫) 굴원(屈原)이도 어복(魚腹) 중의 고혼(孤魂) 되고, 장사태부(長沙太傅) 가의(賈誼)도 양자강에가 빠져죽고, 요녀(堯女) 순처(舜妻) 아황(娥皇) 여영(女英), 창오산(蒼梧山) 저문 날으 순임금 따라오다 소상강에가 죽었으니, 가지 마라." "그래도 나는 수궁 가서 귀경만 하고 올란다." "어따, 내 말 또 듣거라. 고집하다 망신된 일 네 어이 모르느냐? 상(商) 주(紂)의 몹쓸 고집, 비간(比干)의 말을 아니 듣고 목야분사(牧野焚死)하여 있고, 진(秦)나라 시황(始皇) 고집, 부소(扶蘇)의 말을 아니 듣고 궁심소욕(窮心所欲) 십오년의 이세(二世) 망국(亡國)하여 있고, 한(漢)나라 한신(韓信)이도 괴철( 徹)의 말을 아니 듣고 삼족을 멸했으며, 칼 잘 쓰는 위인 형가(荊軻) 적수한풍[易水寒風] 슬픈 노래 장사일거(壯士一去) 제 못 왔고, 천추 원혼 초회왕도 진무관에 한번 가서 다시 오지 못했으니, 가지 마라. 녹록(碌碌)한 자네 몸을 말려 무엇허랴마는, 옛글으 이르기를 퇴사호비[兎死狐悲]라고 일렀으니, 너와 나와 이 산중에서 암혈(岩穴)이 길뜨리고 임천(林泉)으 같이 늙어, 통승상[通天上] 통지상국(通地上國), 일시 이별을 마잤더니 네가 저 지경이 웬일이냐? 가지 마라, 가지 마라. 수국인즉 위방이라, 위방불입(危邦不入)을 가지 말어라."
<아니리>
토끼 이 말 듣고 뒤로 발딱 자드라지며(나자빠지며), "우리 여호 사촌 아니었더라면 하마트면 죽을 뻔하였고! 여보, 별주부, 평안히 가시요. 나 안 갈라요." 깡짱깡짱 올라가니, 별주부 기가 맥혀, "네 이놈, 여호야. 네 사촌 수달피를 따라서 우리 수국에 들어왔기여, 타국 김생이라고 귀히 여겨서 호조판서 시켰더니, 호조돈 삼만냥을 못된 갑잡골이 하여 없애 버렸기로 어전 곤장 삼십도에 문외 출송하였더니, 네 말이 탄로 날까 싶어서 남조차 못 가게 심술을 부린단 말이냐, 이 때려죽일 놈아!" 토끼란 놈 듣고 깡짱 돌아서며, "대체 주부 말씀이 똑다 다 옳소. 저 놈의 심술이 꼭 그러하지요. 먹을 데는 지가 앞서서 가고, 재너머 김포수 목 잡고 앉은 데는 나를 저 놈이 꼭꼭 보냅넨다. 여보 별주부, 나랑 같이 갑시다. 그런데 가기는 가되, 만일 따라갔다가 수국 천 리 먼먼 길에 가서 일거 소식 끊어지면 그 아니 원통하요?" 별주부가 또 구변(口辯)을 한번 내는듸,
<중몰이>
"수궁 천리 머다 마소. 맹자(孟子)도 불원천리(不遠千里) 양혜왕(梁惠王)을 가 보았고, 위수 어부 강태공도 문왕따라 입주(入周)허고, 한개도창[漢旣渡倉] 촉도란(蜀道難)의 황면(黃面) 장군 한신이도 소하(蕭何)따라 한중(韓中) 가서 대장단 올랐으니, 원컨대 퇴서방도 나를 따라 수궁 가면 훈련대장을 헐 것이니 염려 말고 들어가세." "그러허면 내려가세." 벽해수변을 내려갈 제. "강상의 둥둥 떴난 배는 한가히 초강 어부 풍월 실고 가는 밴가? 소소 추풍 송안군의 울고 가는 저 기럭아. 거그 잠깐 머물렀다가 나의 한 말 들어라. 백운청산 노든 토끼가 벽해 용궁을 가더라고, 우리 벗님 앵무전의 그 말 한말 부디 전하여라." 잔소리허며 내려갈 적에, 그날사말고(그날이야말로) 풍세가 산란허여 물결이 워르르르르르르르 출렁 쇄, 뒤둥그러져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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