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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후 세 번째 주일
성경 ; 시23:1-6, 계7: 9-17, 요10:22-30
제목 ; 그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씻어주시리라
저희 누님은 제가 중학교 3학년 때에 결혼했습니다. 누님이 시집 간 지
얼마 안 되어, 저는 누님 댁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누님이 결혼해서 사시는
집은 들녘 한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대개는 마을이 동산 아래나 언덕 위에 형
성되어 있는데, 누님이 시집간 동네는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누님 댁을 방문했을 때에 가장 부러웠던 것이 하나 있습니
다. 그것은, 논 사이로 나 있는 수로마다 맑고 깨끗한 물이 아주 시원스럽게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물은 바로, 가야산 밑에 조성되어 있는 저수
지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누님이 사는 동네에서는, 극심
한 가뭄이 들지 않는 한, 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제가 살던 마을에서는, 조금만 가물어도 농사꾼들은 농
수 부족으로 인해서 엄청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동네의 논
들은 대부분 하늘만 쳐다본다는 천수답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래부터 비리비리
했던 저까지도 초등학교 시절에 벌써 물을 퍼 올리는 일에 동참해야만 했습
니다.
물을 퍼 올리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마침 우리 논은 냇가 옆
에 있었기 때문에, 시내를 막아놓고 물이 고이기를 기다렸다가, 물이 고이면
퍼 올렸습니다. 그런데, 시내바닥이 논보다 뚝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용두레
가지고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사람이 양쪽에서 두
손으로 두 끈을 마주잡고 퍼 올리는 두레박을 사용했습니다.
때로는 한낮에도 물을 퍼 올렸지만, 대개는 해뜨기 전 이른 아침이나, 아
니면 저녁 식사 후 밤에 나가서 물을 펐습니다. 한낮에 물을 푸는 것보다는,
이른 아침이나 저녁 시간이 덜 덥기 때문에, 그 시간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각에는 모기와 각다귀들이 한참 활동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놈들이 연약한 이 몸의 이곳저곳을 사정없이 물어대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물어서 몸이 가려워도 긁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물을 1천 번 이상 퍼 올리면,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습
니다. 왜냐하면, 물을 풀 때에는 허리를 굽혔다 젖혔다 하기를 반복해야만 하
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에는 한 번에 이천 번 이상을 푸기도 했습니다. 그러
니, 수로를 따라서 시원스럽게 흐르는 물을 보았을 때, 제 느낌이 어떠했겠습
니까?
그때 저는, ‘이 동네 사람들은 물이 흔한 곳에 살아서 참 좋겠다. 물을
퍼 올리는 고생을 안 해도 되지 않겠는가? 난 하필이면 천수답만 있는 곳에
살아서 죽도록 고생을 해야 하는가?’하고, 혼자 속으로 푸념을 얼마나 늘어놨
는지 모릅니다.
인간은 천수답(天水畓)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도 하늘을 바라봐야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 인간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온전히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천수답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도무지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하
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비로소 사람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
서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들이든지 간에 사람구실을 제대로 하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햇빛을 허락하시지 않을 경우, 우리가 어찌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공기 중에 있는 모든 산소를 거두어 가신다면,
우리가 한 순간이라도 호흡을 할 수 있겠는지요? 하나님이 우리 주변의 모든
땅을 사막으로 바꿔놓으신다면,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어찌 살아남을 수 있겠
습니까?
아무튼, 천수답은 농사짓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리고 항상 불안합니다.
만약 비가 오지 않아서 가뭄이라도 오래 계속될 경우, 한 해 농사를 망칠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해던가는 7월에 모내기를 끝마친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 천수답 농사를 짓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천수답을 수리안전답으로 만들어야 합니
다. 예를 들자면, 저수지와 통하는 수로(水路)를 개설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
니면, 지하수를 뚫어야 하겠지요. 물론, 저수지나 지하수도 언제나 무한한 것
은 아니지만, 그래도 크게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물이
풍부한 저수지 바로 옆에 있는 논이라도, 그 저수지와 통하는 수로가 개설되
어 있지 않을 경우, 그 논에서 농사짓는 사람은 항상 물 걱정을 하면서 살아
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물이 많은 저수지와 통하는 수로를 개설하든지, 아니면 지하수를
뚫어야 합니다. 만일 물이 풍부한 저수지와 연결되어 있는 논이라면, 어지간
히 가물지 않고서는 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언제든지 물이 필요
할 경우에는 수문을 열어놓으면 되고, 물이 필요치 않을 때에는 수문을 닫아
놓으면 되니까, 물 때문에 걱정하는 일은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천수답처럼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하나님과 우
리 인간을 이어주는 수로(水路)가 개설 되어 있을 경우, 우리는 언제나 풍성
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가뭄이 들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거니와, 언
제든지 물이 필요할 때에는 수문을 열어놓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시편 23편 기자는 노래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그 무엇이 부족하리오.’라고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는, 우리를 푸른 풀밭이나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여 편히 쉬게 하심으로써, 우
리로 하여금 항상 새로운 힘을 얻도록 해주신다고, 시인은 고백하고 있습니
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까? 우리가 계속 하나님만 잘 섬겨 살 경
우, 하나님은 틀림없이 우리로 하여금 참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해주시리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진정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언
제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항상 올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수로가 막혀있거나 끊
어졌을 경우에는 물을 받아들일 수 없듯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해주는
통로가 막혀 있거나 끊겨 있을 경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기자는 말하기를 ‘나는 두려움이나 걱정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가 죽음의 골짜기와 같은, 아주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지라도, 하
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시고 위로해주시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다시금 말하기를, 그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언제
나 그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주실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시편 23편의 시인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겠습니까? 이미 그 답은 말씀드렸습니다. 다른 말이 필요 없
습니다.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
나님뿐이시라는 것을 굳게 믿고, 그가 보내신 선한목자 구주 예수님을 신실하
게 믿고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1.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굳게 믿고 따
라가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양
은 내 음성을 알아듣고,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른다.”고 하셨습니
다. 이처럼, 선한목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우리가 성실하게 따라갈 때, 예수님
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10장 28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
다.
그러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
고, 예수님은 우리의 스승이 되셔서,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참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이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무
슨 말을 믿겠습니까?
물론,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아니 믿고’는 각 사람의 자유입니다. 어떤
논이 물이 풍부한 저수지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논의 임자가 수
로를 개설하지 않겠다고 굳이 거부한다면, 누가 그를 말릴 수 있겠습니까? 다
만, 뭘 선택하든지 각 사람의 자유로되,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이나 결과는 그
사람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고 주님의 귀한 제자가 된 것은, 참으로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
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선한목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무조건 따라가기만 하
면, 주께서는 우리를 편히 쉴만한 곳으로 안전하게 인도해주실 뿐만 아니라,
모든 적들을 물리쳐주시고, 두려움과 걱정이 없도록 해주신다고 하셨으니, 그
리고 나중에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이끌어주신다고 하셨으니, 이 얼마나 크
고 놀라운 축복입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좋으신 예수님을 아예 모른 체하고 사는 사람
들이 수없이 많거니와,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잘 듣고 열심히 따라가기보다는, 여전히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아무렇게나
살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폴레옹 황제가 유럽을 다 정복한 후에, 그 여세를 몰아서 러시아까지
진격해 들어가려고 할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출정하기 전날, 그는 어느 귀족
부인에게 승전의 확신을 갖고서 자신의 계획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나폴레옹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그 부인은 “인간이 모든 일
을 계획하나,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
습니다. 그러자, 나폴레옹 황제는 껄껄 웃으면서 “부인, 나의 모든 것은 내가
계획하고 내가 이룰 것입니다.”라고 아주 거만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몇 달 후, 그처럼 거만하게 말했던 나폴레옹은 러시아와의 전쟁에
서 크게 패하고, 드디어 1814년에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
리고 끝내는 엘바 섬에 유배되고 말았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나폴레옹이 인
생 말년에는 아주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다가 비극적인 인생을 마쳤던 것입니
다.
세상의 그 어느 인간인들 어찌 죽음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하건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종말을 생각하지 못한 채, 참으로 건방지고 교만한 모
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인간은 다 죄인
이고 정말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SBS-TV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붕어빵’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습
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왕종근 아나운서와 배한성 성우가 그 프로그램에 출
연했습니다. 이분들은 그 전주(前週)에도 출연했었습니다.
그동안 이분들은 유난히도 자식들에게 공부를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그랬
는지, 방송국 측에서는 그들의 중학교 성적표를 입수해가지고,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그 성적표를 공개했습니다. 아, 그런데, 그 성적표가 참으로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거의 대부분 ‘양, 가’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방송국에서는 무슨 의도로 그 성적표를 구해서 공개했는지, 그 분명한 목
적을 알 수 없지만, 제가 보기에는 적잖이 민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분들은 자신들도 제대로 하지 못한 공부를 어째서 자녀들에게 그토록 강조
하는 것일까요? 물론, 조금은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자신들은 공부를 못
했지만, 자식만큼은 제대로 공부시켜보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서, 그토록 자녀
들에게 공부를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결코 큰소리 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무릎 꿇고, 그분에게 지혜와 능력
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은
선한목자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성실하게 잘 따라가면 결코 후회하지 않습
니다.
요한계시록 7장 10절 말씀을 보면,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보았는데,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어린양 앞에서 큰소리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십니다.”하고 외쳤다는 것입니다. 이때,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면서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길이길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아멘”하고 외쳤
다고, 사도 요한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주님을 따라갈 때에 누리게 될 축복을 말하고 있습니
다. 하나님은, 마치 그 물이 언제나 마르지 않는 저수지와 같아서, 우리에게
이 모든 것들, 곧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을 주실 수 있습니다. 떡
을 갖고 있는 사람을 가까이 하면 떡을 얻어먹을 수 있듯이, 이 모든 것을 갖
고 계신 주님을 가까이 하면, 그런 것을 틀림없이 얻을 수 있습니다.
2.그런고로, 우리는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면서 생명의 길을 가야 합니
다.
중동지역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은, 양들이 목자의 말을 따르지 않고 제
멋대로 돌아다니려고 할 경우, 그 양의 다리를 사정없이 부러뜨린다는 것입니
다. 그러면, 그런 양은 다리가 아파서 다른 곳으로 맘대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절룩거리면서 목자의 뒤를 잘 따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목자는 그 양의 아픈 다리를 다시 싸매주어서 낫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양은 다리가 다 나은 다음에도 결코 다시는 곁길로 가
지 않고, 언제나 목자의 말을 아주 성실하게 잘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살면,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살 경
우,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을 떠나 사
는 것을 ‘죄(罪)’라 말하고, 그 죄의 결과로 인해서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되
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부활이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뜻합니다. 죄를 회개
하고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살 경우, 그런 사람은, 그 이전의 인생
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영광과 지
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이 충만하기 때문에,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관계수
로만 잘 연결되어 있으면, 그 풍성하신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만족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서 계속 자기 고집대로만 살
아간다면, 그런 사람은 천수답과 같기 때문에, 비가 그친 후에 조금만 가뭄이
들어도, 그 땅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마는, 불행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 형편이 좋아졌다고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면에, 그 형
편이 조금 어렵다고 해서 낙심할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든지, 하나님과의 관계만 제대로 되어 있으면,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습
니다. 물론, 하나님을 떠나 제멋대로 살아간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
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 7장 15절에서, 하나님 앞에 있던 장로가 한 말을 기
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하늘 보좌에 앉아계신 주님께서는 어린양
의 피로 자기들의 옷을 빨아 희게 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주실 것이다.”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다시 주리거나 목마르는 일이 없을 것이
며, 뜨거운 태양도 그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더욱 감동하게 만드는 말씀이 요한계시록 7
장 16절과 1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말씀을 보면, ‘끝까지 믿
음을 지켜 산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들을 생명수의 샘으로 인도해주시고, 또
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씻어주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잘 섬겨 살아감으로써, 주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듬뿍 받을 수 있기를 바
랍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겨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산다는 뜻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부활의 삶’인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그날까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온전히 믿음을 지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