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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쁜 생활이다보니 긴 시간 차분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쓸 여유가 없다. 하지만 동창 권희은씨가 쓰는 글만 읽기가 너무 미안할 정도라서 나도 시간을 내 보기로 마음 먹었다. 다음의 글은 지난 2002년 그러니까 월드컵경기가 끝난 직후 비지니스 차 아프리카의 우간다와 남수단을 출장다녀온 이야기를 요약하여 적은 글이다. 본 글은 나중에 내가 다닌 고등학교 총동문회 회보에 게재되었으며, 영구보존 기록물로 남기게 되는 영광을 갖기도 한 출장기행문이다. 아쉬운 점은 동영상을 담아오기 위해 일반인이 소지하는 캠코더로는 당시의 최고 품질인 SONY 제품을 가지고 갔었으나 지금 보면 품질이 매우 불량하기 짝이 없다. 당시에도 영상을 담는 메모리 칩을 사용했지만 비교적 고가였고, 또 용량이 매우 작아 제한적이어서 잘 사용하기 않았고, 주로 테잎을 사용했기 때문에 나도 역시 테잎으로 담아왔더니 PC로 옮기고 CD에 담는 과정에서 화질이 더욱 나빠져 보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차라리 스냅사진을 많이 찍을 걸하고 다녀온 후에 후회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이해를 돕기 위해 캪쳐한 사진도 같이 올려볼까 생각한다. 글 내용이 별로 재미는 없다. 그리고 특별히 볼만한 영상도 없지만 막연하게나마 먼 나라 아프리카에 대한 미지의 정보를 얻는다는 취지로 읽어주기 바랄뿐이다.
P.S : 이글을 작성한 시기가 2002년 말이기 때문에 남수단이라는 나라에 대해 기술한 내용이 다소 현재와 상이합니다. 현재와 상이한 내용에 대해서는 주석을 따로 달아 놓겠습니다. 참고로 남수단은 전 "수단"에서 현재의 "남수단"으로 2005년 2월 6일 독립한 국가로 아직 독립 10년도 안 된 나라입니다. 따라서 제가 아래와 같이 올리는 글 중에서 "현재"라는 단어가 시기적절하지 않을 수 있는 점 이해바랍니다. 필자 : 박정봉 아프리카 출장기행문(1) 이번에 아프리카 지역을 출장가게 된 동기는 약 3년 전(1998년)부터 추진해 오던 아프리카 중동부 지역의 건설공사 등 사업진출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현지 조사를 나서게 된 것이다. 먼저 이 지역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국내 건설시장이 금융대란(IMF) 이후 매우 침체되어 있었고, 반면에 내가 아는 사람이 모 그룹회사의 중역으로 아프리카 지역 본부장으로 오랫동안 재임하였기에 발파공사와 관련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기로 하였던 것이다. 물론 상대국가(현 남수단) 정부수반의 초청에 의해서이다. 금번에 출장가기로 한 주 대상 국가는 뉴수단(New Sudan, 지금의 남수단)으로 아직 독립하지 않은 국가이다. 여기에서 뉴수단이란 나라에 대해 다소 궁금할 것이다. 현재(주. 2002년 당시) 수단(Sudan)이라는 나라는 대외적으로는 하나의 국가이나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것처럼 수단이란 나라도 남수단과 북수단으로 갈라져 있으며, 남수단이 국호를 뉴수단이라고 정하고, 2003년 1월 15일에 반독립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현재까지 완전 독립을 이루지 못한 상태로 과거와 같이 유지하고 있다. 주) 당초 뉴수단으로 국호를 정했으나 현재의 남수단으로 변경함. 공식적으로 외교권은 북수단 정부에서 갖고 있고, 내적으로는 남과 북이 각각의 이원화된 정부를 가지고 있으며, 2005년도에 잠정적으로 유혈전쟁을 종식하고 기회를 봐서 남부수단이 완전독립할 예정이다. 주) 2005년 2월 6일 독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따라서 반독립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하기로 하고, 우선 남수단과 북수단으로 분단되게 된 보다 더 자세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남수단과 북수단은 당초 하나의 수단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나 남수단과 북수단의 종족과 종교는 서로 전혀 다른 이질적 관계에 놓여 있다. 남수단은 기독교 종족인 반면에 북수단은 무슬림 종족으로서 서로 뭉칠 수 없는 물과 기름의 관계이다. 이들은 영국의 강압적 지배로 식민지 생활을 하였으며, 독립할 당시 영국이 북수단에 위치한 수에즈운하 통과권을 확보하는 대신 남수단을 북수단의 무슬림 종족에게 포함시켜 넘겨주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지금까지 19년 동안 남북수단 간에 끊임없는 유혈전쟁이 일어났고, 영국 지배 당시 북수단은 수도 카르툼(Kahrtoum)을 중심으로 많은 개발을 통하여 발전을 거듭하여 왔으나 남수단은 황무지 땅 그대로 남아 있었다. 특히 남⋅북수단 간에 유혈 전쟁이 지속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더 있었다. 첫째, 전자에 밝힌 바와 같이 서로 종족과 종교가 다르고, 둘째, 북수단은 미국이 골치를 앓고 있는 알 카에다 테러집단과 연계되어 있는 반면, 남수단은 기독교 종족으로 그동안 미국의 지원(연 20억불)을 받아왔으며, 셋째, 남⋅북수단 경계지역에 많은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데, 이를 북수단에서 개발하여 북수단의 발전을 위해서만 쓰여 졌고, 남수단을 위해서는 전혀 쓰여 지지 않았다. 따라서 남수단에서 별도로 인민해방군(SPLA)을 조직하여 북수단을 수없이 공격하여 왔으며, 유전으로부터 해안까지의 송유관로를 폭파시키는 테러를 일삼아 왔던 것이다. 이렇다 보니 실질적으로 남수단과 북수단은 공식적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하나의 수단으로 알려져 있으나 각각의 자치정부로 이원화 되어 남북으로 38만명이라는 병력(군인)이 서로 대치하며 갈라져 있었던 것이다. 현재(주. 2014년 당시)의 남부수단(뉴수단) 수도는 주바(Juba, 현재 인구 1백만 도시. 내가 방문했을 때는 불과 5천명 정도였음)에 있으나 당시의 행정수반은 케냐(Kenya)의 수도 나이로비(Nairobi)에 있었으며, 각부 장관 등의 각료들은 케냐와 우간다(Uganda), 그리고 남부수단 등을 오가면서 독립일정과 뉴수단의 국토개발 등의 업무에 열중하고 있다. 뉴수단(New Sudan)이란 남부수단이 독립할 때 사용할 국호이며, 이미 독립 후에 사용할 돈(화폐)까지 일부 찍어놓은 상태로서 추가분은 한국의 조폐공사에 의뢰해 놓고 있다. 주) 그러나 국호를 현재의 남수단으로 정함. 남수단의 대통령은 현재(2002년 당시)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집무 중이며, 영부인은 남부수단의 나콰톰(Nakwatom)이란 아주 작은 마을에서 남북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고아들과 전쟁미망인(과부) 및 부상자 등의 재활교육을 위해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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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프리카의 여러나라들이 아직도 많은 문제를 않고 전쟁을 치루거나 기아에 허덕이거나 전염병등으로 고난을 겪고있습니다.
또한 종족간에 다툼이나 자원의 분배와 종교로인한 갈등이 아프리카를 대립에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조물주가 왜 인종 색깔까지 검게 만들고 저주의 땅으로 만들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돈되는 곳으로 바뀌고 있지만...
정말 문제가 많은 땅입니다
정말 거기서 안태어난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으 듭니다.
불쌍한 아프리카 얼마나 아파서 아프리카일까?
아! 이제야 터득했네. 너무 아파서 아프리카였구나! 그럴싸하군!
아메리카 아프리카 글자하나 차이로
엄청난 다른 세계 입니다
정말 그러네. ㅎㅎ 덕분에 좋은 거 알았어. 강의할 때 써먹어야지.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