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름이 좋다
박 은 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관리비 고지서 전기 요금이 지난달의 거의 2배가 나왔다. 더구나 8, 9월 전기 사용량은 아직 청구되지도 않았는데-.
여름을 좋아한다. 아니 이제 좋아했다고 말해야 할까. 계절에 꽤 민감한 편인 나는 8월 초입 입추立秋쯤이면 벌써 바람결이나 밤공기에서 미세한 가을 숨결을 곧잘 짚어내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입추, 처서, 백로, 가을 절기를 무려 세 고개 넘어 추석 무렵까지 여름은 물러나지 않았다. 밤낮으로 엄청난 열기를 뿜어낸 참 끈질기고 유난한 여름이었다. 혹시 올 같은 여름이 해마다 반복된다면 여전히 여름이 좋다고 나는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여름 사랑은 오래되었다. 왜 나는 그토록 여름을 좋아해 왔을까, 생각에 잠긴다.
‘꽃 피는 봄’이나 ‘흰 눈 내리는 겨울’처럼 한마디로 표현되는 다른 계절에 비해 여름은 좀 더 입체적이고 다양한 풍경을 펼쳐낸다. 1년에 4계절이 있듯, 여름 그 한 계절 안에는 다시 초여름, 한여름, 늦여름이 존재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귀 기울이며 기다리듯, 내가 좋아하는 어름이 언제 올까, 몹시 궁금해했던 적이 있다. 언제나 끝과 시작의 경계도 없이 초록의 파스텔이 번져나가듯, 어느새 봄은 여름으로 슬며시 바뀌어있지 않았던가. 그러다 법정 스님이 법문 중에 “뻐꾸기 소리가 들려오면 여름이 코앞”이라고 한 것을 듣게 되었는데 과연 스님의 그 말씀이 맞았다.
뻐꾹새 울고 뜰 앞에 접시꽃 둥글게 피어나며, 산딸기가 붉게 익어가면 그때는 초여름이다. 그다음에는 초, 중복부터 8월 초순 무렵까지인 여름의 정점 한여름이 온다. 그즈음 나무둥치에 앉은 매미 소리는 점점 커지고, 온 세상을 달구는 작열하는 태양 빛에 널어둔 빨래가 가슬가슬 말라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늘빛이 미묘하게 달라지고, 스치는 바람결이 내 몸과 마음을 살짝 흔들어놓는 시간이 마침내 오고야 만다. 연꽃 호수 위로 물잠자리가 낮게 날고, 한여름 더위에 지친 붉은 노을이 서쪽 하늘을 물들일 때, 노란 달맞이꽃들이 일제히 기지개 켜며 깨어난다. 늦여름, 이제 우리는 여름의 마지막 징검다리를 건너 가을로 가는 중이다.
이런 초여름의 싱그러움, 한여름의 활기, 늦여름의 운치가 나는 모두 좋다. 어쩌면 초년, 중년, 노년 세 단계로 이루어진 우리네 인생과 꼭 닮은 여름이란 계절의 명확한 질서와 순리를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여름은 또 내게 잊고 있던 행복의 본질을 일깨워준다. ‘태양이란 배에 승선함’이란 뜻에서 유래했다는 ‘하루’*, 여름의 하루, 여름의 낮은 길다. 여름 동안 우리는 가장 오래 태양 배에 몸을 실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며 놀고, 여행을 떠나기도 휴식하기도 한다. 그 순간은 현재의 삶을 이루다가 기억의 저장고에 쌓여 어제로 남았다가, 먼 훗날 우리에게 추억이란 이름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렇기에 여름만큼 행복한 경험과 추억들이 넉넉한 계절이 있을까?
해가 저물어가도 지칠 줄 모르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오는 여름이 나는 좋다. 그 재잘거림은 유년 시절의 한때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토담 안 꽃밭에 분꽃과 과꽃이 피어 있고, 깨진 사금파리 그릇에다 흙과 풀을 밥반찬 삼아 동무들과 소꿉놀이며 공기놀이, 사방치기를 하며 놀던 행복했던 그날들로.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 복숭아나 자두 같은 여름 과일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우스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 과일이 가장 흔한 때는 아무래도 여름이다. 그것조차 마음껏 먹을 수는 없었지만, 시장 난전에서 장사하신 엄마가 파장 때 떨이로 사 오셨거나 얻어온 과일들은 물러터졌든 벌레 먹었든 없어서 못 먹었지, 여름 끝물로 갈수록 얼마나 달콤했던지! 지금도 여름철 그 과일들을 베어 물면 과수원집으로 시집보내야겠다던 부모님 말씀과 달큼했던 그때가 떠올라 웃음 짓곤 한다.
여름 夏는 부수 ‘천천히 걸을 쇠夊’를 포함한다. 마치 바쁜 일상의 속도를 늦추고 휴식의 시간을 가지라는 듯이. 누구라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런 쉼의 순간은 여름방학이나 여름휴가가 아닐까?
내게도 여름방학은 길고 긴 1학기 끝에 찾아오는 오아시스 같은 시간이었다. 종업식을 마치자마자 곧장 집으로 내달려, 도서관에서 대출 한도까지 빌려온 책들을 쌓아놓고 서늘한 마루에 누워 한 권씩 읽을 때의 충만함과 자유로움이란! 어려서 무엇인지도 몰랐던 행복의 최절정을 그때 벌써 나는 맛보았던 것 같다.
대학 시절, 동아리 MT로 떠난 7박 8일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섬진강 변 텐트 밖에서 바라본 짙푸른 밤하늘에서 총총 빛나던 별들, 소백산 긴 능선길의 에델바이스꽃들은 젊음의 추억 속 꽃과 별로 남았다.
멈추면 보인다고 했던가. 윤슬 반짝이는 시냇물에 발 담그고, 초록 숲을 퍼져가던 오카리나 음을 듣던 오랜 지인들과의 여행, 어렸던 아이들을 자동차 뒷좌석에 태우고 먹을 것을 잔뜩 실어 산으로 바다로 떠났던 가족여행은 멈추니 행복하고, 행복해서 시간이 멈추기를 바랐던 순간들이다.
이제, 행복의 비결을 전해오는 푸른 여름의 자연 속으로 걸어가 보자. 초여름의 숲은 새와 나무의 합창으로 가득하다. 박새의 선창에 찌르레기가 휘파람을 불고 뻐꾸기는 꾹꾹 맞장구를 친다. 키 큰 참나무 우듬지는 새들의 무대가 되고, 키 작은 나무들은 팔랑이며 손을 흔든다.
초록 다섯 잎 철쭉, 얼기설기 잎 사이로 햇빛 향기 품은 싸리나무, 하트 모양 함박웃음 날리는 청미래 넝쿨, 각기 다른 모양 초록 나뭇잎들은 점차 또 다른 초록으로 짙어 간다. ‘화이부동和異不同, 따로 또 같이’, 자연의 하모니는 우리도 그처럼 ‘더불어 살라.’ 울려 퍼진다.
여름 뜰만큼 ‘열매를 맺는 계절’이란 여름 자신의 이름대로 살아가는 곳이 있을까? 햇빛 담뿍 담은 여름 꽃밭 옆, 텃밭엔 호박이 도담도담 여물고 고추와 토마토는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고, 옥수수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난다. 저마다의 충실함과 생명력이 가득한 여름 뜨락에 서면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내 삶도 영글게 펼쳐내리라, 가슴을 활짝 펴고, “열려라, 여름!”을 부르곤 했다.
마침내 길었던 올해 여름이 갔다. 엄청나게 쏟아지던 비와 함께 흔적 없이 가버렸다. 좋아한다고 해놓고선 변해가던 내 마음을 눈치챘을까, 인사도 없이 훌쩍 떠나갔다. 언제나 초여름 싱그러운 얼굴로 나를 찾아와 한여름 뜨거운 마음을 함께 나누다가, 늦여름에 작별 인사를 건네며 천천히 내 곁을 떠나가곤 했는데…….
쓸쓸해진 마음으로 9월 달력을 넘기다가 알게 된 ‘푸른 하늘의 날’, 검색해 보니 올해가 벌써 5회째란다. 아, 나는 여태 무엇을 했던가. 가슴이 뜨끔하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푸른 하늘의 날은 푸른 여름의 날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달았다, 맑은 공기, 푸른 하늘을 지키는 것이 곧 기후 변화를 늦추고, 계절을 그 계절답게 지켜내는 것일 테니까. 내가 좋아하는 여름, ‘푸른 여름을 위해, 나부터,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고 꼼꼼히 실천해 가리라 결심했다.
지난여름 어느 날의 일기를 펼쳐 본다.
‘뻐꾹새 소리로 시작된 여름, 나뭇잎은 짙어지며 무성하게 자라난다. 눈 부신 햇살, 따사로운 대지, 영글어가는 열매! 소나기는 일체의 오염을 씻어내고, 산책길 산바람 들 바람은 얼마나 시원한가. 무더웠던 날 저녁노을은 붉디붉게 타오른다. 뚜렷한 자연의 움직임, 이렇게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지·수·화·풍의 계절이라니!’
아, 이런 여름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아직도, 여전히. 여름아, 원래 그 모습 그대로 내게 다시 돌아와 주련. 변치않고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청청한 그 이름을 다시 부른다. ’열음, 여름!‘
*하루의 어원 : https://m.blog.naver.com/hyyimmm/223042411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