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2
아침 열 시가 좀 지나서 나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원무과에서 지정해준 영안실은 3호실이었다.
아내의 시체는 냉동실로 들어갔고 빈소에는 시체도 문상객도 아직은 없었다.
아내의 영정 앞에서 딸이 엎드려 울었고 까만 양복을 차려입은
딸의 약혼자 김민수가 우는 딸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딸은 이 년 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두 달 후에 결혼해서 유학가는 신랑과 함께 뉴욕으로 옮겨 살 계획이었다.
딸의 얼굴과 몸매는 죽은 아내를 빼다박은 듯이 닮아 있었다. 눈이 둥그랬고 귀가 작았고 볼이 도톰했다. 쓰러져서 우는 딸은 어깨의 둥근 곡선과 힘없어 보이는 잔등이까지도 죽은 아내를 닮아 있었다. 나는 영정 속의 아내의 얼굴과 쓰러져서 우는 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죽은 사람의 얼굴 표정이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의 얼굴 위에서, 살아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어쩌다가 저녁 식탁에 세 식구가 마주 앉아 있을 때면, 나는 아내와 딸의 닮은 모습에 난감해했다. 그때, 살아서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는 일은 무겁고 또 질겨서 헤어날 수 없을 듯했다. 그러나 죽은 아내의 영정과 죽지 않은 딸의 얼굴이 닮아 있다는 사태는 더욱 헤어나기 어려울 듯싶었다. 오래고 또 가망 없는 병 수발의 피로감에 불과한,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아침에 아내의 임종을 관리하던 당직 수련의가 "운명하셨습니다"라고 말하던 순간, 터질듯한 방광의 무게에 짓눌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고 싶었던 그 무거움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문상객들은 저녁 일곱시가 지나서야 하나둘씩 나타날 것이고 부산이나 광주에 사는 친척들은 다음날에나 도착할 것이었다. 친척이라야 내 남동생 부부와 조카들, 그리고 미혼으로 늙어가는, 죽은 아내의 여동생이 전부였다. 친척들에게 초상을 알리는 일은 딸이 알아서 할 것이고, 신문에 부음을 내거나 내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회, 학군단전우회, 향우회, 거래은행임직원, 지역대리점사장, 감독관청공무원, 동종업계임원, 광고매체간부, 광고제작대행사, 광고모델. 윈료납품업체사장, 용기제작사사장, 어음할인거래처, 미용전문 잡지기자, 일간신문 미용담당기자들에게 알리는 일은 회사 비서실에서 오전중에 처리할 것이었다.
장례용품과 상복, 육개장을 국물로 주는 접대용 식사와 음료수까지 모두 병원 영안실에 준비되어 있었고, 영안실 직원은 진단서를 첨부해서 사망신고를 제출하는 일과 시립 화장장에 연락해서 화장 순번을 받아내는 일을 맡아주었다. 운구용 버스를 예약하고 납골함을 구입하고 납골당의 자리를 교섭하는 일까지도 영안실 직원은 전화 몇 번으로 끝냈다. 아내의 죽음을 몸으로 감당해야 할 사람은 나였지만, 아내의 장례일정 속에서 나는 아무 할 일이 없었다.
빈소에 설치된 전화기가 울렸다. 병원 경리직원이었다. 경리직원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하고 나서, 아내가 죽기 전 일 주일 동안의 치료비와 병실료를 납부해달라고 요구했다. 아내가 발병한 후 병원비는 삼천만원쯤 들어갔다. 수술을 여러 번 했고,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정밀검사와 고액처치가 많았다. 나와 딸이 병 수발하느라고 쓴 돈을 합치면 사천만원쯤 들어간 셈이었다. 환자가 이미 죽었는데, 살아 있던 동안의 마지막 치료비를 내놓으라는 요구는 공정한 거래가 아닌 것도 같았지만, 죽음은 죽은 자 그 자신의 사업일 뿐 병원이 거기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는 없을 것이었다. 나는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딸의 약혼자 김민수에게 건네주고 경리창구에 가서 계산을 하도록 시켰다.
마무리를 추스르는 동안의 긴 울음까지도 딸은 아내를 닮아 있었다. 딸이 내게 물었다.
"새벽에 엄마 많이 아파하셨나요?"
"아니, 아주 고요했어. 난 네 어머니 숨 넘어가는 것도 몰랐다. 자는 줄 알았어."
"그 동안, 그렇게도 아파하시더니……"라면서 딸은 또 울먹였다.
아내는 두통 발작이 도지면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시퍼런 위액까지 토해냈다. 검불처럼 늘어져 있던 아내는 아직도 저런 힘이 남아 있을까 싶게 뼈만 남은 육신으로 몸부림을 치다가 실신했다. 실신하면 바로 똥을 쌌다. 항문 괄약근이 열려서, 아내의 똥은 오랫동안 비실비실 흘러나왔다. 마스크를 쓴 간병인이 기저귀로 아내의 사타구니를 막았다. 아내의 똥은 멀건 액즙이었다. 김 조각과 미음 속의 낱알과 달걀 흰자위까지도 소화되지 않은 채로 쏟아져 나왔다. 삭다만 배설물의 악취는 찌를 듯이 날카로웠다. 그 악취 속에서 아내가 매일 넘겨야 하는 다섯 종류의 약들의 냄새가 섞여서 겉돌았다. 주로 액즙에 불과했던 그 배설물은 흘러나오자마자 바로 기저귀에 스몄고, 양이래봐야 한 공기도 못 되었지만 똥냄새와 약냄새가 섞이지 않고 제가끔 날뛰었다.
계통이 없는 냄새였다. 아내가 똥을 흘릴 때마다 나는 병실 밖 복도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엄마, 이제는 안 아프지? 다 끝났지?"
딸은 아내의 영정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또 울먹였다.
숨이 끝나는 순간, 아내의 몸속에 통증이 있었다 해도 이미 기진한 아내가 아픔을 느낄 수 없었고 아픔에 반응할 수 없었다면 아내의 마지막이 편안했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가 두통 발작으로 시트를 차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때도 나는 아내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아내의 머리카락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고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밤새 뒤채는 아내의 병실 밖으로 겨울의 날들과 봄의 날들은 훤히 밝아왔고 병실을 지키는 날 아침에 나는 병원에서 회사로 출근했다. 뇌종양이 '생명현상'의 일부라고 강조하던 주치의에게 아내의 고통과 나의 고통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묻는다면, 그는 뻔하고도 명석한 답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었다.
-생명현상은 그 개별적 생명체 내부의 현상이다. 생명은 뒤섞이지 않는다. 생명에서 생명으로 건너갈 수 없고, 이 건너갈 수 없음은 생명현상이다.
라고.
김민수가 계산을 마치고 빈소로 돌아왔다. 김민수는 신용카드와 영수증을 나에게 내밀었다.
"빈소 사용료까지 합쳐서 백오십만원이 나왔습니다. 아버님. 어젯밤에도 못 주무셨을텐데 좀 쉬시지요."
약혼 뒤부터 김민수는 나를 '아버님'이라고 물렀다. 듣기에 쑥스러웠으나 다른 호칭을 일러줄 수도 없었다.
문상객이 몰려오기 시작할 저녁 일곱시 무렵까지는 긴 하루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딸과 김민수를 데리고 사체도 문상객도 없는 빈 빈소를 지켜야 하는 일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자꾸만 아내의 영정과 겹쳐지는 딸의 얼굴도 견디기 힘들었다.
"너희는 집에 가서 엄마 물건 정리해놓고 일곱시께 오너라. 그전에는 할 일이 없을 거다. 엄마 옷을 골라서 양로원으로 보내라. 동사무소에서 물어보면 마땅한 양로원을 소개해줄 거야. 라면박스에 넣어서 택배로 보내라."
나는 그렇게 딸과 김민수를 빈소에서 내보냈다.
빈소의 한구석에는 작은 부속실이 딸려 있었다. 문상객이 없는 시간에 상주들이 틈틈이 눈을 붙일 수 있는 방이었다. 부속실은 전기 온돌방이었고 창문이 없었다. 나는 부속실로 들어가 누웠다. 출입문을 닫자 방 안은 캄캄했다. 어제, 그제 사이에 병원에서 죽은 사람이 아내 이외에는 없었는지, 영안실 전체가 조용했다. 오줌이 빠져나간 방광이 빈 들판처럼 느껴졌다. 눈이 쓰라렸고 입이 말라왔다. 아내의 영정 하나가 지키고 있는 빈소 옆 부속실의 어둠 속에서 나는 잠들었다.
휴대폰 울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눈을 떴을 때, 내가 어디에 와서 누워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철지난 벌레가 울 듯이 멀고 희미한 휴대폰 소리가 어둠 속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 희미한 소리가 아내의 죽음과 오늘 저녁부터 시작될 장례일정과 내가 아내의 빈소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사장이었다. 해소에 전 노인의 목소리는 메말랐다.
"오상무, 소식 들었네. 지금 어디 있나?"
"병원 영안실에 있습니다."
"이 박복한 사람아. 그 나이에 상처란 견디기 힘든 거야."
"진작부터 각오했던 일입니다."
"그 동안 자네 정성이 유별나서 고인도 여한이 없을 걸세. 자네가 걱정이야. 회사의 기둥 아닌가."
"저야, 하던 일이 있으니 이럭저럭……"
"그 일 말인데 말이야. 여름 광고 전략은 자네가 끝까지 마무리해주게. 상중이라고 미뤄둘 수가 없는 일 아닌가. 자네한테 면목 없지만, 어쩔 수 없어. 전화로 보고받고 지시할 수 있겠지?"
"모레 중역회의에서 논의되겠지요."
"그야 그렇지만, 회의에서 나온 얘기 대충 들어보고 자네가 판단해서 밀어붙여주게.
늘 그래왔잖아."
"컨셉이 어느 정도 좁혀졌으니까, 얘기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고맙네. 난 오늘은 선약이 있고, 내일 저녁 때 빈소에 들르겠네."
사장은 팔십 노인이었다. 무릎 관절염이 만성이었다. 사장실을 온돌로 꾸며놓고 여름에도 무릎에 담요를 덮고 있었다. 이십 평이 넘는 온돌방 한가운데 불상을 모셔놓고 늘 향을 피우고 있었다.
직원들은 사장실을 대웅전이라고 불렀다. 사장은 삼십대 초에 단신 월남해서 기초화장품 세 종류만으로 회사를 차렸다. 세상의 모든 감각들이 관능화되고 세분화되는 세월 동안에 사장의 회사는 번창했다. 지금은 기초화장품 이십여 종에 색조화장품 삼십여종을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시장점유율 1위의 회사로 성장했다. 기초화장품은 클렌징 로션, 폼클렌징, 스킨로션, 밀크로션, 메이크업 베이스, 자외선 차단용 선블록, 리퀴드 파운데이션, 콤팩트 파운데이션 들이었고 색조화장품은 립스틱, 립글로스, 아이새도,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블로셔, 매니큐어들이었다. 색조화장품들이 다시 울트라 마린 블루나 쇼킹 핑크 또는 인디언 레드, 헌터스 그린 같은 색의 계통별로 분류되면 출시되는 상품 종수는 훨씬 더 다양했다. 작년부터 사장은 화장품이 아니라 의약부외품인 질 세척제와 질 방향제 연구사업에 개발비 오십억을 투입하면서 임원진을 다그쳐왔다. 연구개발중인 질 세척제는 인체 적용실험에서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세척효과는 좋았으나 젤리 타입의 약물이 멘스의 찌꺼기와 부작용을 일으켜서 질 내부에 염증과 작열감을 일으켰다. 또 질 깊숙이 투입된 약물이 오줌으로 완전히 씻겨내려가지 않고 자궁 입구에서 악취 나는 침전물로 변질되어 흘러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연구개발실은 원숭이 암컷 수십 마리로 적용실험을 거듭했으나, 그 실험결과는 여성의 질 내부온도와 분비물의 산성 농도에 따라 수많은 편차를 드러냈고 개발실은 시제품이 인체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화학적 과정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역회의 때 연구개발실장은 여성 생식기의 여러 부위들을 크게 확대한 해부학 사진들을 천연색 환등으로 보여주면서 인체 적용의 난점들을 설명했다. 연구개발실장은 수많은 점들의 개별성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보고하면서 아마도 질 내부의 산성 정도를 서너 계통으로 분류해서 거기에 맞는 제품들을 별도로 생산해야 할 것 같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사장은 생산비가 두 배 이상 들어가고, 선전에서 추가비용이 발생하며 유통과정 관리가 힘들어진다는 이유로 연구개발실장의 대안을 승인하지 않았다. 질 방향제는 스프레이 타입이었다. 인체 적용에서 문제점은 드러나지 않았으나, 생산라인을 가동시키는 문제에 대해서 사장은 생각이 달랐다.
사장은 질 내부의 향기를 아무리 절묘하게 만들어놓아도 그 향기가 질 밖으로 발산되는 휘발성 향기가 아니라면 수요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수요를 창출해낼 수 있는 선전, 마케팅 전략을 확실히 수립한 다음 생산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 회의석상에서 중역들은 사장의 판단에 대해 일제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사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판단이 영업적으로 옳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사장은 질 내부의 여러 부위들을 보여주는 환등 화면을 볼펜으로 가리키며 "저게 다 제가끔이란 말이지. 제가끔이라 하더라도 따로따로 맞게 만들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시장은 무진장인데, 들어서기가 어렵구만"이라고 중얼거렸다.
회사의 직제는 상무인 내가 회사의 모든 업무를 관장하고 결재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연구개발실의 신제품 개발업무는 의사나 약사, 생리학, 약리학 교수들에게 용역 발주되어 있었다. 나는 보고를 듣고 영업적 판단을 할 뿐 연구과정에 간여할 수는 없었다.
사장이 아내의 빈소를 지키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시한 사항은 올 여름시장에 출시되는 제품 다섯 종의 선전과 마케팅 전략을 기한 안에 확정해서 집행에 착수하라는 것이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대리점들로부터 올라오는 결제 대금은 전부가 어음이었는데, 미수율이 십 퍼센트였고 부도율은 삼 퍼센트였다. 지방 대리점들은 담합했다. 미수금 청산을 거절했고, 마진폭 인상을 요구해왔다.
본사 기획팀을 내려보내 총판장들을 구슬렀으나 성과는 없었다.
미수금 총액이 십억을 넘어서자 지방 총판장들을 물건을 팔고도 일정 부분은 대금을 받을 수 없는 영업현장의 애로를 본사가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본사는 미수금을 자꾸만 이월시켜 나갔지만, 이월된 미수금 액수는 단지 숫자일 뿐 수익은 아니었다. 작년 하반기 이후 회사의 유동 자금은 극도로 경색되었고, 금년 여름에는 단기성 개발비 동결로 시장에 내놓을 신제품이 없었다.
이 년 전에 재고 처리했던 쇼킹 핑크 계통의 립스틱 세 종과 울트라 마린블루와 코발트 블루 계통의 마스카라 네 종류와 여름용 선탠크림을 라벨과 용기와 포장만 바꾸고 십오억원의 선전비를 투입해서 시장으로 떠밀어내는 것이 올 여름의 영업내용이었다. 건더기는 없고 껍데기뿐이었지만, 이 업계에서 건더기와 껍데기가 구별되는 것도 아니었고 껍데기 속에 외려 실익이 들어 있는 경우는 흔히 있었다. 여름 시장에 내놓을 이 재고상품 여덟 가지 전체의 선전과 광고에 적용될 리딩 이미지와 문구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는 부서별, 직급별로 다섯 차례 열렸다.
그 회의에서 논의된 리딩 이미지의 문구는 '여름에서 가을까지-여자의 내면여행'과 '여름에 여자는 가벼워진다' 그렇게 두 가지로 압축되어 중역회의에 제출되었다.
장례휴가가 계속되는 일주일 동안 그 둘 중의 하나를 리딩 이미지로 결정하고, 거기에 따른 포스터와 영상제작, 모델, 촬영기사, 디자이너를 교섭하는 일, 광고매체를 확보하는 일과 전국 영업조직에 판매 전략을 시달하고 훈련시키는 일들을 해당 실무부서에 분담시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