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시그니처 룩인 벨트에 브로치를 착용한 미셸 오바마 ⓒfasheccentric.onsugar.com
스테이트먼트 주얼리
【윤성원 주얼리 컬럼니스트, 주얼리 마케팅 컨설턴트】매들린 올브라이트, 미셸 오바마, 레이디 가가, 사라 제시카 파커. 이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모두 주얼리로 자신의 ‘스테이트먼트’를 보여준 사람들이다.
특히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브로치 외교로 유명했는데 평온한 날에는 꽃과 나비 브로치를, 정치적 사안이 심각할 때는 곤충과 맹수 브로치를 착용하는 식이었다.
그날의 쟁점을 알고 싶다면 그녀의 브로치부터 확인하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몇 년 전부터 패션 잡지에서 심심치 않게 언급되고 있는 ‘스테이트먼트’란 의상과 각종 액세서리를 통해 착용자의 태도, 라이프스타일, 가치관 등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98년,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야세르 아라파트와 만나는 자리에서 올브라이트가 착용한 벌 브로치. 불편한 심기를 브로치로 표현했다. ⓒviola.bz
따라서 ‘스테이트먼트 주얼리’는 여성의 부, 매력, 스타일 등을 드러내어 관심을 집중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장신구를 지칭한다. 주얼리를 통해 본인이 얼마나 유행에 민감하고 세련된 사람인지 알리고 싶은 게 일반적인 목적이다.
두꺼운 커프 팔찌, 샹들리에 귀고리, 가슴 부분까지 내려오는 화려한 목걸이, 커다란 스톤이 박힌 칵테일 반지, ‘I Love You’라고 쓰여있는 펜던트 등 눈에 띄고 대담한 종류는 모두 스테이트먼트 주얼리에 속한다.
그러나 서두에서 언급한 올브라이트의 브로치처럼 때론 개인의 철학이나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기사로 치면 헤드라인이 될 것이고, 그 사람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시그너처 스타일’일 수도 있다.
그만큼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데 주얼리만큼 적합한 액세서리도 없다.
2000년, 올브라이트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난 자리에 성조기 브로치를 착용했다. ⓒviola.bz
미셸 오바마의 패션 스테이트먼트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대통령 부인이 입고 걸치는 모든 것이 화제가 되어왔다. 오바마 정부에서도 미셸 오바마가 애용하는 패션 회사의 주가가 치솟고, 입었던 제품이 ‘완판’되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다.
또 그녀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만났을 때는 캐주얼한 검정 카디건을 입었다는 이유로 로열 에티켓에 대한 국제적인 논란까지 벌어졌다.
즉, 단순히 패션의 개념을 넘어 행정부의 성격과 전략, 경제효과까지 반영하는 중요한 상징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당대 최고의 패션 아이콘이던 재클린 케네디에 견주어 ‘블랙 재클린’이라 불리는 미셸 오바마의 패션 스테이트먼트를 집중적으로 탐구해 보자.
과거 재클린이 대중화시킨 필박스(pillbox) 모자, 구찌 핸드백과 진주 목걸이 등 고급스럽고 우아한 이미지의 ‘재키룩’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스타일이다.
한편 미셸은 다소 서민적이고 활동적인 이미지의 성공한 여성, 오늘날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커리어 우먼’의 모습을 대변한다.
훤칠한 키, 변호사 출신 퍼스트 레이디라는 지위, 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입담과 태도에서 보듯 그녀는 상당히 현대적인 퍼스트 레이디 상이다. 미국의 보편적인 40대 워킹맘에 혁신성과 카리스마를 버무린 모습이라고 할까?
그 결과 미국인의 시각에서는 세련되고 능력 있는 여성이자 ‘실현 가능한’ 동경의 대상으로 비춰지고 있다.
자신의 시그니처 스타일인 sheath dress에 화려한 스테이트먼트 주얼리를 착용한 미셸 오마바 ⓒfreerepublic.com
미셸 오바마의 다소 과감한 민소매의 시스 원피스(sheath dress: 몸에 밀착되는 무릎 길이의 원피스), 카디건과 벨트, 다양한 스테이트먼트 주얼리가 그녀의 시그너처 룩으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입었던 의상과 주얼리를 여러 번 재착용하고, 하이 엔드 디자이너 라벨과 J. Crew 같은 중저가 브랜드를 섞는 미셸의 ‘하이 앤 로우 믹스’ 전략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Jason Wu나 Isabel Tolredo, Laura Smalls 같은 신진 디자이너들을 발굴해 일약 스타로 만들기도 했다. 해외 이민자나 소수 인종인 이들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정치ž사회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었으니 서로가 윈윈한 셈이다.
과거에는 35달러짜리 H&M이나 GAP 원피스를 입은 퍼스트 레이디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다. 당연히 퍼스트 레이디가 J. Crew의 벨트와 장갑을 착용하고 공식 석상에 섰을 리도 만무하다.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자라 변호사로 성공하고, 결국 퍼스트레이디까지 오른 미셸 오바마만이 많은 미국 여성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이런 실용적인 접근으로 국민들의 감동을 배가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그녀가 때때로 유럽이나 일본 브랜드를 입고 등장하더라도 심하게 코너로 몰아세우진 않는다. 지나치게 짧은 반바지나 어깨 노출은 안타깝게도 비평가들의 먹잇감이 되곤 하지만….
대체로 부피가 큰 목걸이와 귀고리, 브로치, 겹치는 팔찌와 진주를 애용하는 미셸은 주얼리에 있어서도 일관성 있는 행보를 보인다. 역시 다양한 가격대와 소재를 섞어 공식적인 자리에서 패션과 품격 사이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톰 빈스의 과감한 모조 진주 목걸이에 고가의 사파이어 귀고리를 매치한 미셸 오바마. ⓒfashionismyonlydrug.blogspot.kr
재클린 케네디의 진주 목걸이와 비교해 보자. ⓒmagazinesforbreakfast.blogspot.kr
하이 주얼리 디자이너 킴벌리 맥도날드(Kimberly McDonald)의 사파이어 귀고리에 패션 주얼리 브랜드 톰빈스(Tom Binns)의 모조 진주 목걸이를 섞어서 연출하는 식이다.
또는 J. Crew의 수십 달러짜리 목걸이에 아이린 뉴워스(Irene Neuwirth)의 값비싼 오팔 귀고리도 매치한다.
이 밖에도 캐시 워터맨(Cathy Waterman), 카라 로스(Kara Ross), 로리 로드킨(Loree Rodkin), 에릭슨 비몬(Erickson Beamon), 보쉭(Bochic), 미리암 살랏(Miriam Salat) 같은 미국 디자이너의 주얼리를 즐겨 착용하고 있다.
브로치를 다양하게 연출한 미셸 오바마. 꽃 모티브를 선호한다. ⓒnymag.com
40대 후반에겐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펑키한 디자인의 주얼리도 소화해 내는 그녀. 이렇게 패션성이 강한 스테이트먼트 주얼리는 또한 그녀의 가치관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도 볼 수 있다.
남편 뒤에 가려진 수동적인 현모양처가 아닌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착용할 수 있는 자신 있는 여성상 말이다. 그녀가 애용하는 진주도 우아함의 대명사인 ‘재키 스타일’보다는 재치와 독특함이 강조된 젊은 스타일을 선호한다.
또한 착용 위치에 제한이 적어 스테이트먼트 주얼리로 제격인 브로치의 중요성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앞이 파진 원피스의 가슴골이나 카디건을 잠글 때 등 다소 입체적인 방법으로 다양한 꽃 모티브 브로치를 활용하는 모습이다.
100년도 넘은 빅토리아 시대 브로치를 애용하는 데서는 역사를 존중하는 그녀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화려하고 눈에 띄는 주얼리를 애용하는 미셸도 애도의 자리에서는 대부분 검정 의상에 귀에 붙는 귀고리 또는 얌전한 진주 목걸이 하나만 걸쳐 평소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의 1박 2일 방한 일정에 만약 그녀가 동행했다면 패션과 주얼리로 어떤 스테이트먼트를 표했을까 궁금해진다.
애도의 자리에서 간소한 주얼리와 블랙 의상의 미셸 ⓒexaminer.com
우머노믹스
이렇듯 미셸 오바마가 입고 걸치는 모든 것은 생각보다 많은 내용을 함의한다. ‘우머노믹스’란 신조어를 반영하듯 그녀는 리더로서 미국의 경제 위기에 고가의 제품만으로 도배하지 않고, 중저가 제품을 적극 활용해 보이지 않는 계층의 장벽을 허물었다.
특히 공식 석상에는 상당 부분 미국 디자이너의 제품을 착용하여 자국 브랜드의 선전을 장려했다. 그리고 대통령 부인으로서 품위가 손상될 지도 모를 민소매에 과감히 팔 근육을 내놓는 모습은 어려울수록 자신감을 가지라는 미국 여성을 향한 또 하나의 ‘스테이트먼트’였다.
그 팔에는 겹쳐 끼는 화려한 팔찌를 착용하여 섹시하고 트렌디해 보이는 모습도 마다치 않았으니, 여전히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품격과 강인함은 건재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다소 흔한 낱말이 된 스테이트먼트 주얼리. 국가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퍼스트 레이디는 아닐지라도 나는 이 ‘당당함은 기본, 메시지는 옵션’인 아이템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최소한, 주얼리에 ‘지금의 나’, 그리고 ‘진정한 나’를 반영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스캔들 여왕, 리즈 테일러의 강박증 - <칼럼>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
10주차스크랩-1[미셸 오바마를 통해 본 ‘스테이트먼트 주얼리’].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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