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만세운동을 도운 호주인 여성 세 명이 독립유공자로 서훈,
한-호주 수교 60주년을 맞아 호주인 최초 독립유공자 탄생이라는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일제 강점기 독립 만세운동을 지원했던 호주인 선교사 3 명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대한민국 훈장이 추서 됩니다.
국가보훈처는 1919년 3월 부산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킨 부산진 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의
호주인 교사 등 호주인 3명에게 대한민국 훈장을 수여한다고 밝혔습니다.
호주인이 독립유공자로서 훈장을 받는 건 이번이 처음으로 이는 한-호주 수교 60주년을 맞는
올해 호주인 최초 독립유공자 탄생이라는 큰 의미를 지닙니다.
컬처 In에서 자세히 알아봅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합니다.
Highlights
일제시기 학생 만세 시위 도운 호주인 선교사 3인 독립유공자 서훈
부산진 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 설립자 멘지스 등 독립 유공 인정
한-호주 수교 60주년 맞아… 호주인 최초 독립유공자 발굴 의미 커
나혜인 PD(이하 진행자): 일제 시기 학생들의 독립 만세운동을 도운 호주인 여성 선교사 세 명이
한국의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됐다는 소식인데요. 호주인으로서는 최초가 된다고요?
유화정 PD: 한국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현재까지 외국인으로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분 중
호주 국적을 가진 인물은 없었습니다. 외국인으로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분은 총 72명 중에는
중국 국적이 34명으로 가장 많고, 미국 21명, 영국 6명 등입니다.
보훈처가 현지에 거주하는 영국인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독립유공자의 집' 명패를 수여한 바는 있습니다.
2019년 호주를 방문 한 당시 피우진 전국가보훈처장은 호주 빅토리아주에 거주하는
영국인 독립유공자 조지 루이스 쇼의 유일한 직계 증손인 외 증손녀의 자택을 방문해
‘독립유공자의 집’ 명패를 수여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진행자: 특히 올해는 한-호주 수교 60주년을 맞는 해로서
호주인 최초 독립유공자 탄생은 양국의 우호관계에도 큰 의미를 갖게 되는데요.
내년 3.1절 서훈에 앞서 보훈처는 부산 동래여고를 찾아 한국-호주 수교
60주년 기념 감사패 증정식을 개최했다고요?
유화정 PD: 지난 3일 부산 동래여자고등학교에서 열린 감사패 증정식은
한-호주 수교 60주년을 맞아 호주 정부에 감사를 전하고,
양국 간에 지속적인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일본강점기 때 호주 선교사들은 조국독립을 지원했고, 6·25 전쟁 당시에도
호주 정부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육·해·공군을 통틀어
연인원 1만 7164명을 파병해 도움을 줬던 우방국입니다.
동래여고는 호주인 최초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벨레 멘지스(Belle Menzies)에 의해
설립된 학교로 한국보훈처는 호주와 인연이 깊은 동래여고에서 이날 행사를 여는 것으로
양국의 우호적 관계를 다졌습니다.
진행자: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6·25 전쟁 참전을 결정했던 로버트 멘지스 전 호주 연방총리가
동래여고 설립자인 벨레 멘지스 선생의 조카로 밝혀졌죠?
유화정 PD: 로버트 고든 멘지스 경은 호주 12대 연방 총리로 선출돼
2차례에 걸쳐 총 18년 5개월 동안 호주 정치권의 최고 수장직을 맡은 경이적인 기록을 남긴 인물입니다.
6·25 전쟁 참전을 결정했던 로버트 멘지스 전 호주 연방총리가 동래여고 설립자인 벨레 멘지스의 조카라는
사실은 동래여고가 양국 우호관계의 상징임을 확실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한데요.
이번 호주인 최초 독립유공자가 탄생하기까진 세 사람의 행적 발굴에 앞장섰던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심옥주 소장은 “한국 전쟁 당시 호주 총리였던 로버트 멘지스는 벨레 멘지스의 조카로 알려졌다”며,
호주가 한국 전에 많은 인원을 파병한 데에는 이 점 또한 영향을 줬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뿐만 아니라 캐서린 레이퍼(CATHERINE RAPER) 주한 호주대사도
6·25 참전용사의 외손녀로서 대한민국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죠?
유화정 PD: 캐서린 레이퍼(CATHERINE RAPER) 주한 호주대사는
이날 호주 정부를 대신해 감사패를 수여받았는데요.
한국 보훈처는 “한-호주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자리에서
양국의 우정이 지속·강화되기를 희망한다”며, “앞으로도 호주 독립운동가와 참전용사의 희생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이번에 훈장을 받는 호주인은 학교 설립자
벨레 멘지스·교장 마가렛 데이비스·교사 데이지 호킹 등으로
이들 세 사람의 행적이 알려지는데 광복회 호주지회의 노력이 컸다면서요?
유화정 PD: 세 사람의 구체적 행적은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와 광복회 호주지회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2월부터 합동 조사에 나선 두 기관은 일본 국무성 자료와 호주 선교 일지, 신문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당시 세 사람의 활약상을 입증했습니다.
이들은 ‘3·11 만세시위’ 참여 학생들을 보호·인솔하다 체포됐고 이후에도
신사 참배 반대 활동 등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년 8개월간 수집된 자료를 근거로 두 기관은 부산 보훈청에 세 사람의 서훈을 신청했고
이들의 활동은 지난달 독립운동 공적으로 인정됐습니다. 내년 3.1절에 맞춰 국무회의 등
절차를 거쳐 포상이 진행될 예정으로, 선례에 비춰볼 때 건국훈장 애족장
또는 대통령 표창이 수여될 전망입니다.
진행자: 동래여고의 탄생 시점이 약 1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본래 이름은 ‘일신여학교’ 였다면서요?
유화정 PD: 동래여고는 1895년 설립 당시엔 '부산진 일신여학교'로 불렸고,
이후 '동래 일신여학교' '동래 고등여학교'를 거쳐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동래여고의 전신인 부산진 일신여학교는 근대적 여성 교육기관으로
호주 장로교 선교회 여자전도부가 1895년 10월 5일 좌천동에서
한 칸의 초가집에서 수업 연한 3개년의 소학 과정 학교를 설치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날로 새롭다’는 뜻의 일신여학교는 여성 교육이 무시되거나 경시되던 때에
여성도 교육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확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진행자: 동래여고의 전신인 일신여학교는 일본강점기 때 많은 독립운동가를 길러낸 모태가 됐는데,
부산 지역의 학교 중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학교로 명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죠?
유화정 PD: 1919년 일신여학교가 주도한 ‘3·11 만세시위’는
부산·경남지역 3·1 운동의 효시가 됐고, 동래여고는 부산·경남 지역의 학교 중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습니다.
만세운동 당시 의거에 뛰어든 교사와 학생 등 12명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됐고,
학생 10명과교사 1명에게 대통령 표창이 수여됐습니다.
진행자: 일신여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이 주요 시위를 주도하면서
교장 마가레트 데이비스와 교사 데이지 호킹 등은 학생 선동의 혐의를 쓰고
구금까지 됐던 것으로 전해졌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이었나요?
유화정 PD: 1919년 3월 11일 밤 9시 일신여학교 학생 11명과 교사 2명이 동구 좌천동 거리에서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다 일경에 체포된 사건입니다.
당시 학생들은 3·1 만세운동에서 발표된 독립선언서를 입수한 후 부산에서도 의거를 일으키자고
결의해 거리로 나왔습니다.
일신여학교 설립자인 벨레 멘지스 등 세 사람은 3·11 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한
일신여학교 학생들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일경에 체포돼 구금됐습니다.
진행자: 3.1 만세운동 당시 외국 선교사들이 설립한 전국의 미션스쿨은 태극기를 만들고
선언서를 복사하는 비밀장소가 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유화정 PD: 일신여학교 역시 독립운동의 비밀 아지트가 됐고,
호주 선교사들은 물심양면으로 학생들의 독립운동을 지원했습니다.
독립만세운동에 사용할 태극기 깃대를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학생들을 인솔해 독립만세를 외치는가 하면,
시위 후 일제의 눈을 피해 태극기를 폐기하는 등 학생 보호에도 적극 임했습니다.
설립자 멘지스는 만세운동 때 쓰려고 만들었던 태극기를 불태우는 등 증거를 인멸했다며
경찰에 붙잡힌 뒤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습니다.
학교장 데이비스는 만세 운동 당시 학생을 직접 인솔했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고 불기소 처분됐고,
교사 데이지 호킹 역시 학생들과 함께 운동에 나섰다가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돼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진행자: 한국 청년의 계몽에 이바지하고 한국의 독립을 위해 힘쓴 어떻게 보면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이들 호주인 선교사 3인은
과연 어떤 성품을 가진 인물들이었을까요? 끝으로 간략하게 전해주시죠.
유화정 PD: 1891년부터 33년간 한국에 머물렀던 벨레 멘지스는
지역 선교, 여성 및 아동 교육, 구제 등의 일을 수행하며
‘호주 선교부의 어머니’ 혹은 ‘대모’로 불렸을 만큼 선교부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습니다.
일신여학교에 앞서 1893년에는 부산 지방 최초의 고아원 ‘미오라’를 설립했는데,
미오라(Myoora)는 호주 원주민어로 휴양지, 혹은 안식처란 뜻으로 한국의 사역을 위해
크게 지원해 주었던 호주 멜버른의 하퍼 부인(Mrs Harper)의 저택 이름에서 비롯했습니다.
24세부터 30 년간 삶의 대부분을 한국의 여성교육을 위해 헌신한 마가레트 데이비스 교장은
첫 번째 호주 선교사로 한국 땅에 묻힌 해리 데이비스의 질녀로, 그녀에게 있어
한국의 제2의 고향이었습니다. 빅토리아 포트 알링턴 출신의 교사 데이지 호킹은
1916년 한국에 발을 디딘 후 1941년 호주로 출국하기까지 25년을 교육 선교사로 봉사했습니다.
진행자: 이제 호주에도 한국을 위해 애쓴 독립운동가가 존재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호주 참전용사와 더불어 호주 독립운동가들의 희생 또한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컬처 IN,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