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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상하 메시야왕국의 대망
(67) 여호사밧의통치(5) 아합의 최후 대하 18.28-34 왕상 22:29-40
북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으로 꼽히는 아합의 최후의 모습입니다.
길르앗 라못을 되찾기 위해, 아니면 여호사밧만이라도 죽게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하고, 딸의 결혼마저 자기 야망을 위해 이용하였습니다. 또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양과 소를 잡아 대접한 잔치, 거기에 더해 시드기야를 비롯한 400명의 선지자를 동원하여 한바탕 쇼를 치르고 난 뒤, 행여나 우려되었던 한 가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그것만 말하는 미가야를 기어코 옥에 가두고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만 마시도록 한 뒤, 계획대로 됐어! 하면서 여호사밧과 그의 군대를 앞세워 의기양양하게 전쟁터로 나갑니다. 28절.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참 이상한 것은, 나와 내 백성이, 당신과 당신의 백성과 다름이 없으나!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보소서” 했던 여호사밧이 미가야의 말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미가야에게 가한 아합의 악한 행동에 제지나 반대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주어졌으니, 전쟁에 못나가겠습니다. 말도 없었고, 선지자가 말씀을 전하는데, 왜 그렇게 행동하십니까 제지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도 종종 이러하지 않나 돌아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래 그럼 들어보기라도 하자” 수준으로 묻고 찾고 구하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혹시 모르니 듣고는 가자”. 나중에 뭐라고 하실지 모르니 하나님께 물어보기라도 하고, 그 말씀을 듣기라도 하고 가자는 태도 말입니다. 여호사밧도 이상함을 느끼고 다른 선지자가 없냐고 그에게 한 번 더 물어보자고는 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대로 하기 위해서 손해를 보려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미 사돈을 맺었으며, 이미 양과 소를 배부르게 먹어둔 때문입니다. 악인과 연합을 해두니,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도 말씀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 하나님의 뜻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입니다. 그저 조금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 연기했던 것은 아닐까, 혹, 내 맘대로 행동하기 전에 보험처럼 행해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일이 잘못되었을 때를 위해 변명거리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두듯 말이죠. 그렇게 묻는 말씀이니 듣는 둥 마는 둥 일 수밖에요.
오늘도 내 맘대로 살아야 하니까 새벽기도 잠깐 드리고, 이번 한 주도 내 뜻대로 살아야 하니까 주일예배 잠깐 앉아있고, 이제 또 내 계획대로 행해야 하니까 말씀한 구절 쓰윽 읽어보고 가듯 말입니다.
물론 아예 안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안한 것하고 별로 차이가 없는 모습, 전혀 기도가 예배가 말씀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모습, 그래도 내가 무늬는 그리스도인이니깐, 그래도 이 정도라도 해두어야 체면치레는 하지, 나중에 정상참작이라도 받지, 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것이지요? 아니 물어봐놓고, 열심히 답해주고 있는데, 딴짓하고 있는 사람처럼 우리는 그렇게 엉터리같은 예배와 기도, 말씀생활을 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자, 저와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호사밧, 하나님의 말씀을 아예 안듣는 정도는 아닌데, 아합과 달리 찾아서 듣기는 하는데, 결국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걸음과 생각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사람이었노라고 성경이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그를 이기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그토록 미가야가 기회를 얻어서 가면 죽는다고 이 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 아니라고, 눈물로 호소하며 외치건만, 목숨을 걸고 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전하건만, 그 무게감은 뭐 아합에게도, 사실은 여호사밧에게도 전해지거나 느껴지지않는 오히려 무시당하는 모습입니다. 그런 미가야, 감옥을 끌려가는 미가야를 뒤로하고 이 둘은 전쟁터로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된다면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지어다”
이토록 간절한 외침과 호소를 뒤로 한 채, 아합과 여호사밧은 길르앗 라못을 향해 싸우러 갑니다. 미가야를 통해 하나님의 경고를 분명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합도 여호사밧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계획대로 행합니다. 미련한 인생들이 스스로 죽을 길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또다시 아합의 사전계획이 진행됩니다. 여호사밧을 죽이려 하는 계획 말이지요? 29절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 왕이 변장하고 둘이 전쟁터로 들어가니라"
아합은 미가야의 말을 무시했지만, 일말의 두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유다왕 여호사밧에게만 왕복을 입으라 하고, 자신은 병사로 변장하여 전쟁에 참여합니다. 미가야의 예언을 의식하면서 자기 생명 부지를 위한 꼼수를 사용하고, 여호사밧에게 남유다 북이스라엘의 총사령관의 명예를 양보하며 자기를 대신하여 죽을 자리로 슬며시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 이내 이 계획과 작전이 잘 먹혀 들어가는 것 같았지요. 30-31절 상반절까지 함께 읽습니다.
“아람 왕이 그의 병거 지휘관들에게 이미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하고만 싸우라 한지라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아서서 그와 싸우려 한즉”
아람에도 특명이 내려집니다. “오직 이스라엘 왕하고만 싸우라!” 이 전쟁의 핵심을 아람도 알고 있었습니다. 아합이 죽으면 되는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아람 왕의 명령을 따라, 병거를 탄 지휘관들이 오직 이스라엘의 왕에게만 달려듭니다. 저 수많은 군사들 앞에 진두지휘하고 있는 사령관, 저 왕복을 입은 사람이 당연히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생각을 했고, 모든 아람의 병거들이 달려들어 그와 싸우려고 했던 것이지요? 저 멀리 변장한 채 서서 자신이 아닌 여호사밧에게 아람의 병거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며 아합은 “역시 난 똑똑해 여호사밧 안녕!” 그러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아합은 이마부터 정수리까지 대머리였을 것입니다. 자기가 똑똑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 바로 그때였지요? 31절 끝까지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아서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신지라”(대하18:31)
모든 병거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것에 놀란 여호사밧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릅니다. 뭐라고 소리를 질렀을까요? 나중에 천국에 가시면 뭐라고 소리를 질렀는지 여호사밧왕을 찾아서 좀 물어보시자구요. 무슨 소리를 질렀든 여호사밧의 소리지름은 하나님을 향한 긴급기도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람 장관들이 여호사밧이라도 죽이지 않고 떠나가게 된 것이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노라(대하 18:31) 오늘 여호사밧의 기도에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노라고 말입니다.
그래요. 아람의 병거들은 아합이 아님을 알고, 그를 쫓기를 그칩니다. 이것도 참 신기하지요? 이래도 저래도 적이요, 왕복을 입은 사람인데, 죽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들이 여호사밧 앞에서 병거의 방향을 돌리고 돌아갑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의 부르짖음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듣고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저들을 감동시켜 떠나게 하실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 어려움이 찾아온 순간, 절체절명의 순간, 소리질러보십시오. 그때마저도 점잔빼고 있으면 죽는 것입니다. 내 모든 상황, 내가 미련하여 빠져있는 올무와 덫 한 가운데, 하나님은 나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십니다. 오늘도 온통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그분 앞에 부르짖는 분들이 다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가뭄에 콩나듯, 힘들고 어려울 때만 부르짖지 마시고, 쉬지말고 기도하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언제나 주의 이름, 능력의 이름, 외쳐부르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를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주시는 분,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여기까지 보면, 아합은 위기를 모면한 것 같습니다.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소용없네!' 그의 잔꾀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잘 통한 것 같습니다. 변장하고 있는 나를 어찌 찾으랴! 그랬습니다. 아람의 군사들이 여호사밧으로부터 방향을 돌려 아합을 찾고자 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이스라엘왕과 싸우려고 하는데 누가 이스라엘 왕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요. 미가야를 통해 들려주셨던 말씀이 거짓말이 되거나 무의미해져 버릴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33절의 일이 벌어집니다.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의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나를 진중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아람의 병사 중에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쐈는데 그 화살이 아합의 갑옷 솔기를 뚫고 박혔습니다. 갑옷 솔기는 갑옷과 갑옷을 이은, 그 틈새를 말합니다. 한 사람이 특별히 아합을 표적으로 쏜 것이 아닌데, '우연히' 아합의 갑옷 솔기를 정확하게 뚫고 들어와, 그에게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그는 아무나 죽으라며 아마 무서워 고개도 못들고 아무데나 활을 쏘았는데, 하필 그 화살이 아합의 갑옷 솔기(갑옷 조각 사이 틈새)을 뚫고 들어옵니다. 마치 소년 다윗이 던진 돌맹이가 어느 새 속도와 파괴력을 입고 골리앗의 이마, 그 투구의 틈으로 날아가 그 단단하다는 머리뼈를 부수고 박히듯 말입니다.
우연의 화살은 엄중한 하나님의 저격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시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34절 말씀대로, 아합왕은 전장에서 한 발자국도 탈출하지 못하고, 아람 군사와 싸우다가 저녁에 죽었습니다. 과다 출혈된 붉은 피가 병거바닥에 흥건했습니다. 치열한 사투가 끝나고 이스라엘은 “각기 성읍으로, 각기 본향으로”라며 퇴각했습니다. 확인해볼까요?
“해가 질 녘에 진중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어 이르되 각기 성읍으로 또는 각기 본향으로 가라 하더라”(왕상 22:36)
그래요. 정확하게 401번째 사람, 단 한 사람 미가야 예언이 응했습니다(대하 18:16).
“그가 이르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하는지라”(대하18:16)
오늘 본문에는 그 이후의 일이 기록되지 않지만, 열왕기상의 평행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요? 아합 왕의 시체가 사마리아로 후송됩니다(37,38). 그의 시체는 장사되었습니다만, 왕의 병거를 사마리아 연못에 씻을 때 그의 피가 씻겨져 흘러나왔습니다.
“왕이 이미 죽으매 그의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왕을 사마리아에 장사하니라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왕상22:37-38)
그렇게 개들이 그 피를 핥음으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을 때 전했던 엘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도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21:19).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왕상21:19)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내리신 심판입니다. 세상에 결코 우연이 없습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입니다.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습니다. 이를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주도하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입니다.
그래요. 참새 한 마리의 날고 떨어짐의 모든 일이, 내 머리카락 하나의 나고 빠짐이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 가운데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익숙한 말로 '섭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결코 '우연'은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사단이 쓰는 전략 하나는, 모든 일을 '우연'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하나님의 경고를 못 보게 만들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한 성취임을 알아,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깨닫고 누리고 증거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아합은 자신이 아닌 여호사밧을 쫓는 아람군대를 보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필연입니다.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겔17:24)
그러니 어떻게 해야할까요? 계속해서 우리의 생각과 판단과 고집을 붙들고 나가며,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배제하고,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옥에 가두며 살아야 할까요?
아뇨. 이제라도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에 어렵고, 힘들고, 고난과 손해를 감수할지라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면, 그 분의 선하신 뜻이, 우리를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여 주신 하나님의 분명하고 확실한 약속입니다.
아합은 우상을 섬기며 악을 행하며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지자를 계속해서 보내주셨던 왕입니다. 그 걸출한 엘리야를, 그리고 미가야를 보내주셨던 것이지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셨고 가르쳐주셨고, 살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여러 차례 기회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따라 돌이키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상의 본문은 그는 회개할 능력을 상실해버린 비참한 인간의 최후를 보여줍니다. 악독하게 타인의 피를 흘리게 만들던 곳에서, 내 피도 쏟으며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 피를 개가 핥는 것입니다.
아합의 모습은 회개할 마음이 없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비참한 모습인가를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말씀 속에서 찔림이 있고, 부담이 생긴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절대로 찔림이 없습니다. 묻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것 같은데, 전혀 반성이나 돌이킴이 없습니다.
말씀으로 인해 찔림이 있고 부담이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완전히 놓아 버린 사람은 마음이 굳어져 아무런 찔림도 없고, 회개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안에서 오늘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결코 우연이 없음을 생각하며,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 속에,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나가야 합니다. 동네방네 쑈를 하며 연기를 하는 삶, 남을 속이며 변장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 삶은 어느 누구에게도 수건을 건네줄 수 있는 삶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묻고 귀담아 듣고, 그대로 준행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땀에 피가 배어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천사가 나타나 돕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요.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연히’ 또는 ‘무심코’라는 것을 없음을 다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만물과 상황과 사건들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이끌어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도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여 가시는지, 살아계시고 주도하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in God-reality, God-initiative, God-provisions), 그분의 일하심에 쓰임받을 수 있도록, 우리는 온통 집중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Give your entire attention to what God is doing right now).
그러므로 더욱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안에서 오늘 우리 삶에 일어나는, 들려주시고 보여주시며 가르쳐주시는, 우리 인생길에 여기 저기 허락해두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온전히 깨달아, 그 뜻대로 힘껏 순종하는 복있는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라옵기는 속임과 거짓, 변장할 일이 없는 정직한 사람들,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 앞에, 사람의 사람다움으로 서시는, 세상에서 만나는 천국의 사람들로 하나님 칭찬하시고 예수님 놀라시는 귀한 종들이 다들 되시길,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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