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당이야기
김극뉵(克忸: 23세)은 세조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관을 지내고, 광원군으로 봉해졌다.
공의 묘소가 전북 순창군 마흘리에 있다.
이 터가 한국 8대 명당중의 하나다.
산세가 웅장한 기세에 전후좌우, 청룡백호와 현무주작이 기세 등등하게
명기를 이루어 세칭 만대 발복지로 일화가 있다.
이묘를 쓴후 대제학 7분, 상신 3분, 유현 2분,
종묘배향 3분, 왕비가 1분이 나왔다.
고관대작과 명유석학이 대를 이어 나와 광김이 해동명별로 지칭되었다.
모두가 대사간묘 음기의 여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극뉵의 초취 부인인 함양박씨는 2남2녀를 낳고 일찍 별세하였다.
박씨부인 친정에서 이웃미을에 사는 부덕을 겸비한 의령남씨를 중매하니
두 번째 부인의 나이가 20세였다.
남씨부인은 계배로 들어와 인품이 순후하여 전실의 친정을
친가처럼 왕래하였다.
전실 친정에 들려 자다가, 달이 밝아 뜰에 나갔더니 뒷산 등성이에서
벙거지를 쓴 사람들이 모여(귀신들의 장난) 말하였다.
“이곳은 무자손 향화지요, (박 감찰공의 묘를 가르킴) 저기는
금관자 옥관자가 서 말이 나는 만대발복지다.”라고
수군거리며 묘소를 쓰는 것 같았다.
괴이하다 여겨 다음날 아침 그곳에 가서 살펴보니 성분한 흔적은 없었다.
그냥 넘길일이 아니어서 진산군수로 재직중인
장남 종윤을 찿아가서 이시실을 전하였다.
군수는 곧 명지관을 대동하고 현지를 답사하니,
만대 영화지가 맞다기에 이곳에 대사간 묘를 이장하였다.
다른 일설로는 박 감찰 3형제는 모두 풍수 지리가 밝아 각기 명당을 정하였다.
박 감찰은 <말명당>을 신후지로 정해놓고 임종하였다.
신후지에 장사를 지내려고 천광을 하였는데,
전야에 시집간 딸이 광중에 물을 길러 부어버렸다.
익일에 상주들이 하관하려고 보니 광중에 물이 차 있었다.
그 자리를 피해 그 윗자리로 박감찰관을 장사 지냈다고 한다.
또 다른 일설로는 박감찰관은 아들이 없고
딸이 하나있어 자신이 외손봉사를 받을 운명임을 직감했다.
자신의 신후지는 만대향화의 터를 정하고
진혈인
만대발복지는 사위에게 물려주었다는 등 여러 일화가있다.
광산김씨약사, 극뉵 편.
펀집. 대구경북 종친회 전 부회장 선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