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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8:1
믿음이란 오랜 시간과 과정을 담아 내는 일입니다. 순간적으로 뜨거워진 마음도 언젠가 식을 때가 오고, 세월의 변곡점에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위도 풍화시킬 만큼 세월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는 믿음이 되게 해야 합니다. 기다리며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살아갈 수록에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한 순간의 결단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손님대접이나 이웃을 돌아보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과 연관이 있습니다.
Faith is the process of capturing a long time. The momentarily heated mind may one day cool down and change at the inflection point of time. However, make sure you have faith that you can withstand the weight of time enough to weather rocks. What is it like to wait and live by faith? We are realizing that the more we live by faith, the more we live by, the more we don't end up with a single decision. Guests and looking back at neighbors are related to the identity of Christ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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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환대는 사랑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조건 없는 환대는 사랑의 절정입니다. 12장부터 등장하는 아브람의 일대기를 서머리 해 보면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말씀 앞에 기득권을 버리고 떠나갔고, 하란에 머물긴 했지만 곧 다시 믿음의 여정을 계속했습니다. 어디선가 기근이 있고 다툼도 생겨서 조카와 결별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조카를 구하기 위해서 생명을 거는 때도 있었고 그로인해 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It is because hospitality is another expression of love. Especially, unconditional hospitality is the peak of love. In the beginning of chapter 12, Abram left his vested interest in front of the words, 'Leave the house of his native relatives', and although he stayed in Haran, he soon continued his journey of faith again. There was a famine and a quarrel somewhere, so he had to break up with his nephew. There were times when I risked my life to save my nephew, and I fell into great 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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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 사건은 치명적입니다. 너무 바라던 아들이었고 너무 사랑스러워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관점,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때는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 아니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아마 믿음의 여정에가장 어려운 일은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느낄 때 말입니다. 내가 더 사랑하는 것, 그것으로 인해 13년의 침묵 후에 하나님은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고 도전하셨습니다.
The Ishmael incident is fatal. He was the son I hoped for so much, and he was so lovely that he would not be sick in his eyes. But from the perspective of faith, from the perspective of God, he was not a son born by faith, but more of an idol than God. Perhaps the most difficult thing to do on the journey of faith is this. When I feel God hates what I love and care about the most. After 13 years of silence, which is what I love more, God challenged me to do before me and be comp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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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하시자, 기꺼이 순종하면서 몸에 언약의 표징을 새겨 넣었던 아브라함은 역시 믿음의 조상답습니다. 18장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삶이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아파트 문화는 점점 환대라는 개념을 소멸시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집에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양상이지만, 성경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환대의 영성'을 갖는 것이라고 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이 뜨거운 때에 일손을 멈추고 오수를 즐기는 것이 통상적인 일입니다.
And when he was told to circumcise as a sign of the covenant, Abraham, who was willing to obey and engraved the sign of the covenant on his body, is also an ancestor of faith. Chapter 18 states that living by faith is a life of treating travelers. Today, the concept of hospitality is gradually disappearing from the apartment culture. It is burdensome to invite someone to your house, but according to the Bible, living by faith is having a 'fantastic spirituality'. In Palestine, it is common to stop working and enjoy sewage during this hot we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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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마리아 여자가 바로 그 정오 즈음에 물 길러 나와 주님을 만난 사건을 기억 하고 있습니다. 사람 만나기를 꺼려한 여인이 그 뜨거운 시간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아브라함도 그 시간에 장막 문에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쉬었을 것이나 어쩌면 선잠이 들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뜨거운 햇살을 온 몸에 받으며 자신의 장막으로 찾아온 나그네가 있었습니다. 나는 이런 상황 설정을 아주 싫어합니다. 내가 죽을 맛인데 잠 잘 때 오는 카 톡은 왕 짜증이 아닙니까?
We remember the incident when a Samaritan woman came out to raise water and met the Lord around noon. It was said that a woman who was reluctant to meet people came out at that hot time. Abraham might have sat at the tent door at that time and rested in the cool breeze, or he might have been sleeping. But there was a traveler who came to his tent while receiving the hot sunlight all over his body. I hate this kind of setting up. Isn't the KakaoTalk that comes when I sleep when I'm d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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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100세의 나이인데도 “장막 문에서 뛰어나가(2)” 지나가는 객들을 초대합니다. 객들의 정체도 모르면서 부지중에 내 집을 찾은 나그네를 위해 쉼과 물과 음식을 제공하였습니다. 진짜로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냥 나그네에게 손 대접을 했을 뿐인데 그분은 여호와가 아닙니까? 나그네는 약속의 자녀가 낳을 확정적인 때를 가르쳐 줍니다. 아브라함은 엘리에셀과 이스마엘을 통해 속히 이루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한 걸음씩 가르쳐주시면서 지금껏 25년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Abraham "jumped out of the tent door (2)" at the age of 100 and invited passers by. He provided rest, water, and food for the traveler who visited his house without knowing the identity of the guests. God has indeed appeared. Abraham just gave a hand to the traveler, isn't he Jehovah? The traveler teaches the definite time of the child of the promise. Abraham tried to achieve it through Elisele and Ishmael, but God taught him step by step and made him wait 2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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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타이밍을 보면서 주님과 동행하고 주의 때를 사는 것입니다. 사라가 믿지 않고 웃자, 하나님은 가장인 아브라함을 꾸짖으셨습니다. 아내의 불신을 확신으로 바꿀 만한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식이 없을 때는 불평하고 시기하던 사라가 자식이 생긴다는 말에는 미소로 반응합니다. 믿음으로 아비 집을 떠나고, 땅을 양보하고, 할례를 행할 만큼 믿음이 있으면서도, 아내의 오랜 불임과 끊어진 경수를 생각하면 불신이 들지 않았을까?
Faith is to accompany the Lord and live the time of the Lord while looking at the timing. When Sarah laughed without believing, God scolded Abraham, the breadwinner. Abraham does not seem to have a belief that can turn his wife's distrust into confidence. Sarah, who complained and envied when she had no children, reacts with a smile to the words that she will have children. Although he was trustworthy enough to leave his father's house by faith, give up the land, and salute, wouldn't he have disbelief considering his wife's long infertility and broken hard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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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믿음은 약속의 실현 가능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신 이의 성품과 인격을 의지할 때 발휘될 수 있습니다. 내가 믿지 못하고 웃었던 일은 무엇인가? 모든 준비가 다된 내게 돈을 주시지 않는 이유는 결국 더 기다려야 한다는 뜻일까? 약속을 받은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성취를 기다려야 하는가?
But faith can be exercised when you rely on the personality and character of the person you promised, not on the feasibility of a promise. What did I laugh about? Does the reason why you don't pay me when I'm all set up mean I have to wait longer? In what way should we wait for achievement when we are promi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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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천사를 접대한 아브라함(1-8)
a.아브라함에게 나타난 하나님과 천사:1-5
b.아브라함의 접대:6-8
이삭의 출생을 선포하신 하나님(9-15)
a.이삭의 출생을 선포하신 하나님:9-10
b.사라의 반응:11-12
c.하나님의 재 확증: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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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1a)
마므레 상수리 수풀(1b)
근처에서(1c)
아브라함에게(1d)
나타나시니라(1e)
오정 즈음에(1f)
그가(1g)
장막 문에 앉았다가(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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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본즉(2a)
사람 셋이(2b)
맞은편에 섰는지라(2c)
그가 그들을 보자(2d)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2e)
영접하며(2f)
몸을 땅에 굽혀(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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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되 내 주여(3a)
내가 주께(3b)
은혜를 입었으면(3c)
원컨대 종을 떠나(3d)
지나가지 마옵시고(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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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4a)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4b)
나무 아래서 쉬소서(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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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5a)
당신들의 마음을(5b)
쾌활케 하신 후에(5c)
지나가소서(5d)
당신들이 종에게(5e)
오셨음이나이다(5f)
그들이 가로되(5g)
네 말대로 그리하라(5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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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6a)
급히 장막에 들어가(6b)
사라에게 이르러(6c)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6d)
세 스아를 가져다가(6e)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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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7a)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7b)
기름지고(7c)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7d)
하인에게 주니(7e)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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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8a)
버터와 우유와(8b)
하인이 요리한(8c)
송아지를 가져다가(8d)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8e)
나무 아래 모셔 서매(8f)
그들이 먹었더라(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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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아브라함에게(9a)
이르되 네 아내(9b)
사라가 어디 있느냐(9c)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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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라사대 (10a)
기한이 이를 때에(10b)
내가 정녕(10c)
네게로 돌아오리니(10d)
네 아내 사라에게(10d)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10e)
사라가(10f)
그 뒤 장막 문에서(10g)
들었더라(1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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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사라가(11a)
나이 많아 늙었고(11b)
사라의 경수는(11c)
끊어졌는지라(1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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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가(12a)
속으로 웃고 이르되(12b)
내가 노쇠하였고(12c)
내 주인도 늙었으니(12d)
내게 어찌 낙이 있을 것이요(1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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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13a)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13b)
사라가 왜 웃으며(13c)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13d)
어떻게 아들을(13e)
낳으리요 하느냐(1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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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14a)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14b)
기한이 이를 때에(14c)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14d)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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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15a)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 하였나이다(15b)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1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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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_ What I did to the weak was what I did to me.
불신의 웃음_a distrustful smile
믿음의 온전함에는 끝이 없다_There is no limit to the integrity of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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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에는 천사들과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시고 마지막 날에는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말씀하시는 하나님, 내 마음이 소돔 고모라 인 것을 깨닫기에 그리스도 안에서만 사죄와 용서의 구원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엘리에셀과 이스마엘을 통해 자녀문제를 속히 이루려고 했던 아브라함에게 무려25년이나 기다리게 하신 것은 믿음 때문이었나이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제게 성도의 교제를 위해 내 집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여유를 주옵소서.
In the old days, I confess that there is an apology and redemption of forgiveness only in Christ, because I realize that my heart is Aunt Sodom, the God who speaks directly to angels and prophets and through Christ on the last day. Faith is the belief in God's ability to create. It was because of faith that kept Abraham waiting 25 years, who had been trying to accomplish his children's problems through Eliezer and Ishmael. Believe in God's ability to create the impossible, and let him wait until God gives him. For me, for the companionship of the saints, Give me some room to keep my house open.
2026.1.24.sat. Clay
신학 비평//
창세기 18장은 “무엇을 믿느냐”보다 먼저 어떻게 시간을 통과하며 사느냐”를 묻는 본문입니다. 여기서 믿음은 교리적 동의도, 결단의 순간도 아니라<지연>된 시간 속에서 형성된 삶의 태도로 나타납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이 본문은 니체의 <되기>베르그송의 <지연> 데리다의 <환대’>가 신학적으로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1. 믿음은 사건이 아니라 ‘지속’이다— 베르그송의 지연과 아브라함의 시간
아브라함의 믿음은 단번에 도약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부름에서 약속까지 25년의 공백이 있습니다. 이 공백은 실패도 공허도 아니라, 믿음이 숙성되는 시간입니다. 베르그송의 말대로라면, 이 시간은 ‘기다림의 공백’이 아니라, 기억과 약속이 압축되어 흐르는 지연(durée)입니다.
* 엘리에셀 → 이스마엘 → 이삭
* 대안 → 타협 → 약속의 재확증
아브라함은 계속 <되기> 중인 인간입니다. 믿음은 여기서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수정되고 늦춰지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믿었다/안 믿었다”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시간 속에 머무를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2. 환대는 가장 깊은 신앙 행위다— 데리다와 ‘부지중에’의 신학
아브라함은 그들이 누군지 모른 채 대접합니다. 이 점이 결정적입니다. 데리다가 말한 *무조건적 환대’는 신원을 묻지 않고-목적을 요구하지 않으며-보상을 계산하지 않는 환대입니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아보고 대접한 것이 아닙니다. 나그네를 대접했을 뿐인데,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히브리서의 말처럼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것입니다. 이때 믿음은 하나님을 정확히 인식하는 능력이 아니라, 타자를 내 삶 안으로 들일 수 있는 여유입니다. 오늘날 아파트 문화, 사생활 중심 사회에서 이 환대는 점점 사라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집을 열지 못하는 신앙은 이미 시간을 닫아버린 신앙입니다.
3. 웃음은 불신이 아니라 ‘균열’이다— 사라의 웃음에 대한 철학적 해석
사라의 웃음을 단순한 불신으로만 읽는 것은 이 본문을 너무 도덕적으로 만드는 해석입니다. 사라의 웃음은 불가능 앞에서의 냉소이면서, 동시에 기억의 압축이 터져 나온 반응입니다. 베르그송 식으로 말하면, 사라의 웃음은 계산의 결과가 아니라, 지연 전체가 한꺼번에 반응한 순간입니다. 끊어진 경수-반복된 실망-사라진 기대, 이 모든 시간이 한 번에 압축되어 웃음으로 튀어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꾸짖되, 파기하지 않으십니다. 정죄하지 않고 약속을 재확증하십니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이 질문은 사라의 웃음을 부정하지 않고, 그 웃음을 믿음의 문턱으로 전환시킵니다.
4. 믿음은 가능성이 아니라 인격을 신뢰하는 일이다
이 본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 일이 가능한가가 아닌“그 약속하신 분을 신뢰할 수 있는가?"입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믿음은 결과 중심적 합리성을 포기하고 관계 중심적 신뢰**로 이동하는 행위입니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흔들립니다. 사라는 여전히 웃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다리는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기다림 속에서 믿음은 결단이 아니라 습관이 되고, 고백이 아니라 태도가 되며, 교리가 아니라 환대의 삶이 됩니다.
5. 결론: 믿음의 온전함에는 끝이 없다
창세기 18장은 말합니다. 믿음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기다림은 실패가 아닙니다 환대는 가장 구체적인 신앙 행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믿음은 하나님의 때를 앞당기려는 열심이 아니라 그 지연을 견뎌낼 수 있는 삶의 넉넉함입니다.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서 졸다 일어나 뛰어나가 나그네를 맞이했듯이, 믿음이란 결국 내 삶의 문을 닫지 않는 것입니다. 그 문으로 하나님은 늘,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들어오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