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크루즈
오늘 태평양 항해 3일째, 배는 지난 15일 Los Angeles San Pedro 항구를 떠나 하와이로 향했다. 호놀룰루도착까지 6박 7일이 걸린다. 꼭 반을 왔다. 이틀에 한 번꼴로 한 시간씩 시침을 앞으로 당긴다. 해상에서도 시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은 유오성에게 ‘니가가라 하와이’라고 말한다. 우리선조들은 1903년 인천에서 배로 2달 걸려 하와이에 도착했다. 미국 이민사의 첫 시작이다. 1994년 나는 결혼 10주년 기념 첫 해외여행으로 불혹의 나이에 하와이 땅을 처음 밟았다. 그 후 미국 본토여행 후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번 여행은 칠순에 결혼 40주년기념으로 시카고에서 아내와 함께 하와이를 다시 찾는다. 하와이는 인천에서 항공으로 8시간, 시카고에서 9시간 중간에 위치한다.
이번 여행상품은 Princess Cruise의 10월 15일 LA San Pedro항구를 떠나, 21일 호놀룰루에 도착 4개의 섬을 경유하여 30일 멕시코를 거쳐 31일 LA San Pedro항구로 돌아오는 ‘16days 하와이크루즈’이다.
지난 15일 시카고에서 항공편으로 SNA(John Wayne Airport, Orange County)공항에 도착하니 Irvine에 거주하는 아들이 마중 나와 우리를 San Pedro항구로 데려다 주었다.
배는 오늘도 쉬지 않고 달린다. 5일째다. 바다만 바라본다. 동트는 바다. 저녁노을 지는 바다. 바람이 분다. 파도가 인다. 육지와 멀어질수록 파도는 심하다. 해가 나와 갑판을 쏘이는데도 파도는 높다. 배가 흔들린다. 방송을 한다. 걸을 때는 난간을 잡고 이동하라고. 아내는 멀미를 한다. 바다는 다시 조용해진다.
21일 오전 7시 Oahu(오아후섬)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일주일을 바다위에 머물다 육지에 닿았다. 크루즈에서 마련해준 버스로 시내투어를 하기로 했다. 와이키키해변을 지나 시내로 들어간다. 30년 전 방문했던 기억은 희미하다. 오아후섬은 세계 제2차대전이 시작된 진주만이 있는 곳이다. 미국사람들은 우리나라사람들이 제주도 여행하듯 하와이를 방문한다고 한다. 하와이를 좋아하는 이들은 일 년에 한 번씩은 온다고. 창밖으로 보니 주유소의 요금입간판은 $5.13/gallon이다. 시카고의 1.5배가 넘는다. 오후 11시 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22일 오전 8시 Kauai(카우아이섬)의 Nawiliwili에 도착했다. 크루즈의 투어버스로 Waimea Canyon으로 향한다. 이 캐년은 “The Grand Canyon of the Pacific"으로 불린다. 이 섬은 Captain James Cook이 하와이의 여러 섬 중에 맨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길 양옆은 원시림이 나무숲을 이루고 있고, Umbrella Tree라고 불리는 거대한 나무들이 버티고 있다. $14 millon에 이르는 고급별장들이 있고, 개인골프장이 있다. 배로 돌아오니 크루즈입구에 안내요원이 차가운 물수건과 음료를 들고 한사람씩 서비스한다. 배는 오후 5시 출항한다.
23일 오전 8시 Maui(마우이섬)의 Kahului에 도착했다. 마우이는 크루즈의 판매상품이 매진되어 예약할 수 없었다. 우린 아침 일찍 크루즈 밖으로 나가보기로 하였다. 항구에 바로 Taxi들이 줄을 이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곳, 마우이의 목적지 Haleakala National Park(Summit, Pu'u'ula'ula 10,023ft)으로 향했다. 우연히 만난 기사는 한국인 여성분이었다. 마우이에서만 20년 택시운전경력이란다. 항구에서 약 1시간 반 남짓, 산길을 꼬불꼬불 달려 정상으로 올라간다. 이 산악도로를 자전거로 오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도로 양 옆은 낭떠러지, 조망은 일품이다. 비가 오기 시작한다. 정상부근 Visitor Center(9,740ft) 주차장에 이르니 운무로 산 아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쉬웠다. 날씨는 산신령만이 조절할 수 있는 것, 다음에 한 번 더 오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이곳은 해맞이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일출을 보러 새벽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고 한다. 우리는 크루즈 일정상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개스를 피할 길은 없고, 정상은 조금 더 남았으나 발길을 돌린다.
23년 8월 마우이의 라하이나지역에서 큰불이 났다. 100여명의 사망자가 속출했고 1,000여채의 건물들이 전소되었다. 지금은 거의 제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마우이에는 우리교포들이 500명 정도 살고 있다. 마우이섬은 하와이섬 다음으로 2번째 큰 섬이다.
24일 오전 8시 Hawaii(하와이섬)의 Hilo에 도착했다. 투어버스로 Hawaii Volcanoes National Park을 찾았다. 이곳은 하와이섬이 7천만년 전에 화산분화를 통해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이 국립공원은 아직도 곳곳에선 연기가 솟아오르고 화산아래는 용암이 꿈틀거리는 휴화산이다. 이 하와이섬은 하와이 군도에서 제일 큰 섬으로 ‘Big Island’로 불리는 곳이다. 배는 오후 9시 멕시코의 Ensenada를 향해 떠난다. 주마간산으로 돌아본 하와이의 여정이 끝났다.
하와이는 137개의 군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가 돌아본 위 4개의 오아후섬, 카우아이섬, 마우이섬 그리고 하와이섬이 주요섬(Main Islands)이다. 인구는 23년 현재 1,435,138명이다. 섬과 섬사이의 대중교통은 항공으로만 가능하고 선박은 없다. 선박으로는 크루즈가 유일하다. 우리는 각 섬에서 하루정도의 일정이었지만 한번에 4개의 주요 섬을 모두 돌아볼 수 있었다. LA부터 먼 항해를 하지 않고 하와이의 섬들만 Tour할 수 있는 크루즈도 이용할 수 있다.
항해 13일째 오늘도 갑판에 나와 바다를 본다. 햇볕이 따갑다. 수평선의 윤슬이 아름답다. 배는 포말을 일으키며 전진한다. 바다의 색깔은 햇빛에 따라 변한다고 한다. 지금은 해가 좋아 바다는 짙푸른 청남색을 띄고 있다. 구름이 많으면 회색으로 변한다. 매일 보는 바다. 방에서, 식당에서, 갑판에서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가져온 책 2권은 벌써 모두 읽었다. 그중 한권은 한강의 ‘채식주의자’이다.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때 구입한 책을 이번 노벨문학상을 계기로 다시 읽기로 하고 가져온 것이다. 작가는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라고 말한다.
며칠 전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은 어르신은 우리나라 참전용사라고 하신다. 연세가 95세이고 23세 때 파병되어 인천에서 트럭운전을 하셨다고 한다. 거듭 거듭 감사의 말씀을 올렸다.
내가 타고 있는 이 배는 “Grand Princess Cruise"이다. 승객 2,600명의 승선이 가능하고 Crew가 1,600명이다. 1998년 이탈리아에서 제조되었다. 선내의 Medical Center는 의사가 상주하고 24시간 Emergency를 운영하고 있으며 진료는 오전 오후 각 3시간씩 본다. 또 하루에 50개정도의 프로그램이 선내의 각 장소에서 열린다. 우리 방이 있던 5층 로비에선 매일 행사가 열린다. 초청가수의 노래, 춤 강습, 선원들의 수건공예, 심지어 요리까지.
소파에 앉아 뜨개질하는 아주머니, 그 옆에서 책 읽는 아저씨, 주변에 서있는 노부부,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입맞춤을 하려는데 동작이 너무 느려 입과 입이 멀게만 느껴진다. 자연스런 풍경이긴 하나 어쩐지 좀 애처롭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54년 우리나라의 공업발전을 위해 하와이교포들의 피땀 어린 성금으로 인천에 인하공대를 설립한다. “인하”는 인천의 ‘인’자와 하와이의 ‘하’자를 따 붙여진 이름이다. 나는 인하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승만은 배재학당 졸업생으로 나의 선배이기도 하다. 그는 1964년 하와이에서 임종을 맞는다.
30일 오전 9시 멕시코의 Encenada에 도착했다. 5번째 마지막 기항지이다. 멕시코는 모든 외국인에게 관광 입국시 비자를 요구하지 않는다. 크루즈승객은 여권도 필요 없다. 투어버스로 라부파도라(La Bufadora)로 향한다. 이곳은 세계 최대의 바다 간헐천이 있는 곳이다. 바다위로 100ft가 솟구친다고 하며 옷이 모두 젖을 수도 있다. 미국 샌디에고에서 차로 90분정도 걸린다고 한다. 버스는 도심을 지나 외곽으로 접어들었다.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나라가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지 쌓인 포장도로 옆길은 모두 비포장이며 건물들도 초라해 보였고 남미의 외곽도시로 들어 온 느낌이었다. 라부파도라에 도착하니 간헐천까지 약 100여미터 걸어가는 길에 도로 양 옆으로 가건물로 지은 상점들이 줄을 이었다. 옷가지, 신발, 츄로스, 음식점, 각종 공예품등을 팔고 있었다. 오후 5시 배는 최종목적지 LA로 출발한다.
31일 오전 6시 15분 출발지였던 LA San Pedro항구에 배는 닻을 내렸다.
이번여행은 아내의 만성위염과 방광염의 재발로 출발 하루 전까지 결정을 못하였다. 다행히 여행 중 호전되어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올해 2024년은 우리 부부의 40주년 결혼기념일이 있었고, 나의 칠순을 지냈고 첫 손자를 본 뜻 깊은 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