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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01 딴 곳에 개켜 있더라.
요한복음 20장 1절-8절
오래 전에 프랑스의 한 잡지사에서 세계의 저명인사 100명에게 “지구의 파멸이 시작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반출해야 할 지구상의 보물이 무엇이냐?”는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에는 지구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설문 조사의 결과는 1위에 ‘예수님의 시체를 쌌던 것으로 알려진 세마포’였고, 2위가 미로의 비너스 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예술의 극치로 인정받고 있는 걸작 중의 걸작인 미로의 비너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세마포는 폭 1미터 5센티미터 길이 4미터 20센티미터에 불과한 삼베 수의천이 인류 최대의 보물로 인정 되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1997년 4월초에 이탈리아의 토리노 대성당의 내부가 누전으로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실수나 이교도들의 방화로 인하여 예배당이 불타는 사건은 가끔 있었던 일이지만, 이처럼 훌륭한 건축물이 훼손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성당의 화재가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바로 인류 최대의 보물로 여겨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의’가 보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화염에 휩싸인 성당의 내부로 목숨을 걸고 뛰어 들어가 3중으로 된 방탄유리를 도끼로 찍어 깨뜨린 뒤, 그 ‘세마포’가 담긴 성궤를 안고 나오는 장면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예수님의 시체를 쌌던 수의라 하더라도 삼베 수의천에 불과할 것인데 이렇게 귀중한 보물로 인정받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십자가에서 시체를 내렸습니다. 이제 시체를 장사 지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 지낼 만한 무덤이 없었습니다. 별 수 없이 흉악범이나 저주받은 자들의 시체를 장사 지내는 기드론 골짜기의 ‘일반 공동묘지’속으로 던져질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산헤드린 공회의원이며, 소문난 부자로 알려진 아리마대에서 온 요셉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나 유대인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는 사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던 사람이었지만 주위에 알려질까 봐 조심스럽게 믿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의 간청을 들은 빌라도는 선심 쓰는 체 허락하게 되었고, 예수님의 시체를 인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소식을 들고 유대인으로 역시 산헤드린 의원의 신분이었지만 예수님을 믿었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요셉을 찾아 왔습니다. 그도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대인의 장례법은 시체에 방부제를 바르는 이집트나 로마의 장례법과 전혀 달랐습니다.
도리어 시신에 향 품을 발라서 악취를 제거하고 부드러운 세마포로 감싸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유대인의 관습대로 향품을 바르고 세마포로 염하였습니다.
그리고 난 후 아리마대 요셉은 마태복음 27장 60절에 기록된 대로 아무도 장사된 적이 없는 ‘자기를 위하여 준비해 둔 무덤’인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정성을 드려 예수님을 장사지낸 아리마대 요셉의 행동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알지 못하였지만 그를 통하여 이사야 53장 9절의 예언이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고 죽으시기 630여 년 전에 이미 예언되었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죽었던 강도들과 같이 강도처럼 못 박혀 죽으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는 말씀은 말 할 수없이 가난했던 예수님께서 아주 부자의 무덤에 장사되실 것을 예언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장사되는 것 하나까지도 완벽한 예언의 정확한 실현이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여의고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 없던 막달라 마리아였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벌써 사흘이 지났고 그날은 바로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즉 안식 후 첫날, 지금으로 말하면 주일, 이날 아직 날이 새지 않은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는 사랑하는 예수님의 시신에 향 품을 다시 바르려고 예수님께서 장사된 무덤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이 저만치 옮겨진 것입니다.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은 장정 20명 정도가 힘을 대해 밀어야 겨우 밀릴 정도의 무거운 돌이었는데 그 무거운 돌이 번쩍 들어 옮겨진 것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막달라 마리아는 순각 적으로 예수님의 시신이 도둑맞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막달라 마리아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까?
이렇게 생각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장례가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서 끝이 났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마음은 불안했습니다. 그들의 심정을 마태복음 27장 57절에서부터 66절을 보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생전에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하신 말씀이 마음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책을 세우기를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서 훔쳐간 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소문을 퍼뜨릴 것을 우려하여 빌라도에게 이 사실을 설명한 뒤 빌라도의 허가를 얻어 중무장한 로마 군인들로 하여금 무덤의 돌문을 철통같이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해 가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죽은 후 삼일 후에 살아난다는 희대의 사기극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며, 예수님은 죽어서도 사기꾼이라고 조롱받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로 돌아 왔다는 말씀입니까? 예수님의 시체를 정말 도둑맞았단 말씀입니까? 이런 생각에 도달하자 막달라 마리아는 죽어라고 뛰어 달려가서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 즉 요한에게 달려가서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도난당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달렸습니다.
그러나 같이 달렸지만 베드로는 자기보다 젊은 요한보다 빨리 뛸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보다 먼저 무덤에 도착한 요한은 겁이 나서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약간 아래쪽의 시체가 놓여있던 돌로 쌓아 만든 긴 의자 쪽을 구푸려 보았더니 예수님의 시체는 온데간데없고, 시체를 감쌌던 세마포만 놓인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때 헐떡거리며 베드로가 무덤에 도착했고,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는 베드로가 무덤에 들어가 보니 역시 세마포가 놓여 있었고 예수님의 시체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때까지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던 요한도 베드로가 들어가자 따라 들어와서 보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생전에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하신 말씀대로 부활을 믿었습니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막달라라 마리아도, 베드로와 요한도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도 본디오 빌라도도 어느 한 사람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9절에서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 하더라”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직 부활을 알지 못한 것이 아니라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집으로 터덜거리며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 요한 그리고 이렇게 소란을 떠는 그들을 보고 뒤 늦게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로마 병정들과 이 소식을 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명수사관’이 될 자질은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건 현장인 무덤을 세밀하게 관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조금만 주의 깊게 관찰하였다면 아주 특이한 상황을 목격하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상황이라는 말씀입니까?
바로 7절입니다.
“또 머리에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의 얼굴을 감쌌던 수건이 시체를 감쌌던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놓였다’라는 단어와 ‘개켜있더라’라는 단어를 살펴봅시다. ‘놓였다’는 동사 ‘Keimai’는 아무렇게나 놓인 것이 아니고 정돈 되어 놓여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개켜있더라’는 동사 ‘Entulisso’는 ‘마치 붕대를 감듯 정성을 다해 잘 개어 놓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시체가 도둑맞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도둑들이 어떻게 시체를 감쌌던 세마포와 얼굴을 감쌌던 수건을 잘 개어 정리해 놓고 도둑질해 간다는 말씀입니까? 그리고 무덤을 지키고 있던 중무장한 본디오 빌라도의 병정들은 모두허수아비란 말입니까? 도둑이 그랬다면 절대 근처에 접근할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채 예수님의 시체를 감쌌던 세마포와 얼굴을 가렸던 수건이 무덤 속에서 잘 정리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개켜 놓으셨던지, 아니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천사들이 정성스럽게 개켜 놓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참된 의미는 무엇입니까?
"Cosmos" 즉 잘 정리 정돈된 “하나님의 질서”라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부활이전의 상황은 아무리 예수님의 시신에 향 품을 바르고, 부드러운 세마포로 싸서 소문난 부자인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안치되어 있었다고 할지라고 그 상황은 "Chaos" 즉 혼돈입니다.
그렇다면 부활 이전의 상황이 ‘혼돈’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바로 사도들의 고백인 사도신경을 보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He descended into hell" (그는 지옥으로 내려 가셨었다)
사실 이 부분은 우리가 고백하는 한글 사도신경에는 나오지 않는 부분이나 성경 맨 앞부분의 사도신경이 기록되어진 하단에 영어로 표기된 부분을 보면 정확하게 이렇게 기록된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번역해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난 후 ‘지옥에 내려 가셨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지은 더러운 죄를 지고 우리대신 지옥에 내려 가셨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지옥은 어떤 것을 상징합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까? 아주 혼란한 곳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곳은 하나님의 질서를 깨뜨려 혼란하게 한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혼란하고 무질서했던 모든 것을 단숨에 정리 정돈하여 바르게 질서를 회복한 사건입니다. 그것을 부활하신 현장에도 분명하게 남겨 놓으셨습니다. 증거가 바로 주님의 시체를 감쌌던 세마포입니다.
중국의 어느 지방에서 목회를 하고 계신 조선족 목사님은 아주 잊혀 지지 않는 간증을 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십여 년 전에 아내를 한국인에게 빼앗겼답니다. 사모님이 한국 사람과 바람이 나서 떠나 버렸기 때문에 이 목사님은 아내를 빼앗겼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내를 빼앗아 간 사람의 나라에 가서 온 몸에 ‘다이너마이트’를 두르고 함께 폭파하여 죽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안타까운 것은 아내를 잃고 복수에 불을 켜는 한 사람의 인간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끔찍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그분이 그렇게 기도를 드리면서 목회를 했다는 사실이 불쌍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한 영성훈련을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그 사람을 이제는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간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이면서도 아내를 빼앗아간 사람과 폭탄을 터뜨려 같이 죽게 해주시라고 기도한 것은 영적인 혼란 "Chaos'"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이제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고백은 새롭게 회복된 '"Cosmos'"즉 질서의 회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질서를 되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생은 이 생명의 영원한 질서 속에 거하는 것입니다.
또한 경건한 삶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질서 있는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를 감쌌던 세마포가” 인류 최대의 보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온 인류가 하마터면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갈 번한 생명의 혼돈 즉 "Chaos"에서, 하나님과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위대한 생명의 질서 즉 "Cosmos"를 회복한 또 하나의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질서를 회복케 하여 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계십니다.

첫댓글 주님의 세마포가 보관된 성당 말씀 ㅡ혼돈을 정돈하신 주님 말씀 부활의 주님만이 용서할 수있는 영혼 말씀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