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은 1936년 조선일보사를 사임하고 함흥의 영생고보 영어 교사로 자리를 옮긴다. 여기서 백석은 운명의 여인 김자야(金子夜)[본명 김진향]를 만난다. 김자야는 국악사(國樂師)인 금하(琴下) 하규일(河圭一)의 문하에서 가무를 배워 여창 가곡에 뛰어났고, 섬무, 춘앵전 등의 춤에 능통한 예기(藝妓)로, 백석의 사랑을 받아들여 함께 생활하지만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다. 백석은 김자야를 사랑하면서도 가족강권으로 두 번씩이나 다른 여인과 형식적인 결혼을 올린 바 있는데 김자야는 이 때마다 백석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그를 피해 주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백석은 아내를 버리고 다시 김자야을 찾았다. 이 시는 이렇게 함흥에 있는 백석을 피해 서울로 떠나간 김자야[나타샤]를 그리면서 쓴 시이다.
우선 화자인 ‘나’의 처지가 가난하고 쓸쓸한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런 화자는 ‘나타샤’를 사랑하지ᅟᅡᆫ, 현실 세계에서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화자는 현실을 떠나 깊은 산골로 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한 현실도피를 일러 화자는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행위가 현실에서 패배하는 것이아니라, 더러운 현실을 능동적으로 버리는 행위임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화자의 인식에서부터 시대적 아픔과 고민을 애써 외면하려 하는 시인의 의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비록 치열한 현실 인식이 나타나 있지 않아 아쉬움을 주지만, 인간 모두의 마음속에 근원적으로 내재해 있는 사랑에의 환상적인 꿈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어 서정시의 한 진경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에서 환기되고 있는 사랑에의 환상적인 꿈은 ‘눈’ · ‘나타샤’ · ‘흰 당나귀’ 등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미지의 조화를 통해 환기되는데, 그러한 이미지들은 다분히 이국적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색채를 띤다. 그러나 현실과의 거리감과 단절감을 느끼는 화자가 끝내 현실에 합일되지 못한 탓으로, 이 시는 환상적인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고독하고 우수 어린 징조가 짙게 배어 있는 것이다.
[작가소개]
백석(白石)
본명 : 백기행(白夔行)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29년 오산보고 졸업, 동경 아오야마(靑山)학원에서 영문학 공부
1934년 귀국 후 조선일보사 입사
1935년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며 등단. 함흥 영생여고보 교사
1942년 만주의 안동에서 세관 업무에 종사
1945년 해방 후 북한에서 문학 활동
1995년 사망
시집 : 『사슴』(1936), 『백석시전집』(1987), 『가즈랑집 할머니』(1988), 『흰 바람벽이 있어』(1989), 『멧새소리』(1991), 『내가 생각하는 것은』(1995),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1997), 『집게네 네 형제』(1997), 『백석전집』(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