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베율”
- 한북정맥 마지막 이야기(솔고개-노고산-옥녀봉-숫돌고개-원당삼거리-견달산-고봉산-운정신도시-장명산, 40㎞, 2016.1.3.)
북한산 상장능선이 헐렁하게 흘러내린 곳, 솔고개에서 한북정맥 마지막 구간을 시작했다. 새벽 1시 반경, 들머리에는 어제부터 90킬로를 달려온 반딧불이님이 합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200킬로가 넘는 국공연산을 완주한 그에게 이 정도 거리는 크게 어렵지 않은 듯했다. 처음부터 가파르게 1시간 남짓 올라가 둘레둘레 돌아보는데 정상 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고산 정상에 군부대가 주둔하는 바람에 그 아래 펑퍼짐한 자리를 정상 삼아 비박 텐트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맑은 날이면 동남쪽으로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주능선을 훤히 조망할 수 있다는데 밤안개가 자욱해 시계는 몇 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노고산(한미산)은 북한산의 여맥으로 이 산줄기를 분수령으로 북쪽으로는 공릉천이, 남쪽으로는 창릉천이 흐른다. 산 정상 어딘가에 흥국사가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노고산에서 한 시간쯤 지나자 옥녀봉이다. 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을 1월인데, 추위는 눅어 해토머리 진창길 풀어진 흙들이 신발에 연방 달라붙는다. 능선을 따라 폐타이어로 벽을 쌓은 교통호가 실금처럼 이어졌고, 북한 전차를 막기 위한 군사시설이 곳곳에 매복하고 있었다. 새벽 4시 반쯤 숫돌고개 입구인 여석정에 도착했다. 멀리 아래쪽 드넓은 벌판에 삼송택지지구가 듬성듬성 불을 밝혔다. 안개 뒤덮인 도시는 갈다 만 먹물처럼 번져 흐릿했고, 가로등 불빛은 성긴 그물코를 빠져나가는 물고기처럼 바쁘게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여석정에서 내려와 왼쪽 도로로 가야 하는데 오른쪽 허름한 산길로 방향을 잡는 바람에 흙더미가 쌓여 있는 도로 공사장을 지나야 했다. 이리저리 헤매다 도사님과 강과산님이 앞장서 길을 열었고, 마침내 가까운 길을 빙 돌아 숫돌고개에 도착했다. 길 안내를 위해 알프스님이 새벽부터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숫돌고개(여석현)는 오금동에서 삼송동 쪽으로 넘어가는 통일로에 있는 고개로, 이 산등성이에서 칼을 가는 숫돌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서삼릉을 지나 미세먼지 자욱한 아스팔트를 걸어 아침 6시쯤 원당축구장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몸을 녹인 뒤 다시 군부대 철조망을 끼고 한참을 가자 공양왕릉 가는 길이 나왔다. 공양왕이 이곳으로 도망쳐 절 누각에 숨어 지낼 때 절에서 밥을 해 날라 주었다고 해서 이곳 마을을 식사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도로에는 아직도 안개와 미세먼지가 뿌옇다. 아침 공기들이 아스팔트에 차갑게 내려앉았고, 늦은 햇살은 쉽게 그 틈새를 뚫지 못했다. 가는 길 내내 끈적끈적한 적막의 알갱이들이 만져졌다. 야트막한 산길이 이어지고 8시가 넘어 견달산에 도착했다. 견달산은 일산동구 문봉동에 위치한 산으로 견달산(見達山)으로 쓰고, 현달산으로 부른다고 했다. 견달산을 지나자 곧 고봉산이다.
고봉산에서 조금 내려가자 주름이 잔뜩 잡힌 장승들이 금정굴을 안내하고 있었다. 금정굴은 1950년 9.28수복 직후 인민군에게 부역했거나 부역혐의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주민 200여 명이 경찰, 치안대 등에 의해 집단 총살된 비극의 현장이다. 서울을 수복한 군경은 미처 피난 가지 못한 주민들을 끌고 가 5-6명을 1개 조로 묶어세운 뒤 총을 쏘아 굴속으로 떨어뜨려 매장했다. 1995년 유족들은 그 굴속에서 비녀, 곰방대 등의 유품과 함께 153구의 유골을 발굴했다. 다리를 끊고 남으로 내뺐던 자들은 오갈 데 없는 백성들의 시체를 쌓아 자신들의 수치를 덮었고, 북으로 밀려간 자들은 다시 내려올 것을 확신하지 못해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려 죽음을 호출했다. 남아 있던 자들의 호흡은 붉고 푸른 완장들 사이에서 밤낮으로 출렁거렸고, 어스름한 저녁이면 죽음으로 천형(天刑) 같은 나라를 피난했다. 그로부터 57년이 지난 2007년 6월,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금정굴 사건을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 민간인 집단살해로 규명했고, 유족들은 조국 대한민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2012년 9월 20일 마침내 배상을 받아냈다.
호곡초등학교 앞에서 잠시 쉬었다가 운정신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깎이고 시멘트로 덮인 정맥길은 지하 깊숙이 가라앉아 흔적조차 찾기 힘들었다. 한북정맥은 서쪽 심학산 쪽으로 향하다 운정신도시에서 급격히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장명산으로 향한다. 반딧불이님은 발가락 물집이 쓰린지 걷는 것이 불편해 보였다. 47시간 동안 130킬로의 산행, 졸면서 걷다 보면 흩날리는 낙엽이 요정으로도 보인다고 알려 준다. 높은 산에서는 각자 걸음이 달라 함께 다니지 못하는데, 낮은 산과 도심 구간에서는 이렇게 같이 어울려 갈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신도시가 끝나고 날머리에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할 즈음 거대한 쓰레기 집하장이 앞을 막았다. 산처럼 쌓인 폐기물들 사이를 지나고 산비탈을 올라 오후 12시 40분 드디어 한북정맥의 마지막 장명산에 도착했다. 산이 파헤쳐진 자리에는 쓰레기장과 흙무더기가 들어서고, 장명산은 개발의 끝자락에 몇 올 남은 머리카락처럼 빼꼼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히말라야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지상낙원 베율을 찾아 떠난 것도 아닌데, 도굴된 무덤 앞에 선 참람이다. 무심코 스쳐 지났던 평범한 그 길들이 히말라야였음을, 길을 찾아 떠나는 여정의 설렘이 바로 베율이었음을 알지 못했다. 장명산 북쪽으로 흐르는 공릉천은 사패산 송추계곡에서 발원하여 파주시를 걸쳐 한강으로 흘러든다. 장명산과 심학산을 둘러싼 곳에 펼쳐진 드넓은 평지, 이곳은 파주 교하다.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려는 남북 세력이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던 곳, 그 교하의 주산 장명산은 곧 쓸려 나갈 잡풀처럼 흔들린다.
공릉천에서 묻은 흙을 털어내고, 가까운 식당에서 삼겹살로 졸업파티를 했다. 9정맥의 첫 번째 한북정맥이 이렇게 끝이 났다. 산행은 애써 자신의 절벽을 만드는 것이다. 그 절벽에서 한 번도 깨닫지 못했다. 엉망으로 취한 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워 물 때 스쳐가는 전율, 그제야 산길에 하나도 내려놓지 못한 나를 알아차렸다.














첫댓글 손변님의 한북정맥 마지막 스토리는 구구절절
단편소설을 읽듯이 몰입이됩니다.
6.25때 비극의 현장 "금정굴"을 지날땐
숙연해지고 시대적인 아픔이네요~~
한북정맥 한번도 땜빵없이 모범으로 걸음하신
손변님 졸업축하드립니다.
호남정맥에서 또 열렬히 함께 걸어보시지요
포근한 하루되시고 수고 많았습니다^-^
백구님과 같이 걸었던 한북정맥,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겁니다.
유난히도 6.25의 상흔이 많이 베었던 길이었지요.
다음 호남구간에 즐겁게 봬요~~~
참, 총무 맡아 주셔서 감사~~~
손변님 !!한북정맥 졸업구간을 정성들여 우리의 마음과 흩으진 정맥길.그 모든것을 잘도 변호해 주셨습니다 다시 그길 위에 서 있는 기분으로 소설읽는 재미로 잘 보고갑니다 군데마다 속속히 표현. 아주 기가 막힙니다 한북 정맥 고생 햇고 축하합니다
두령 누님이 제일 고생했지요.
누가 정맥길을 가라 한 것도 아닌데,
또 누구는 그만 됐다고 붙잡는데,
두령 누님은 꿋꿋이 그 길 위에 섰습니다.
그 의지에 숙연해진 우리들은
묵묵히 길을 갔습니다.
어렵더라도 끝까지 호남정맥 함께해 주실 거죠? ㅎㅎ
벽을 넘어서
손잡고
우리 모두 다함께 손잡고 갑시다
호남에서 봐유
수고하셨습니다
ㅎㅎ 형님, 한북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호남에서도 잘 리드해 주세요~~~
"무심코 스쳐 지났던 평범한 그 길들이 히말라야였음을, 길을 찾아 떠나는 여정의 설렘이 바로 베율이었음을 알지 못했다."...... 선승의 오도송이군요.^^
순변님의 산행기는 꼭 두번씩 읽게 됩니다. 언뜻 읽는 눈에도 마음을 긁고가는 구절이 있는데..
다시 한번 더 긁히고 싶어서... 두번을 읽습니다.^^ 두령님 말씀처럼 아주 기가 막히는 표현들이 가득하십니다.
한북정맥 졸업 축하드립니다. 흔히들 졸업은 시작이라고 하지요. 다음 시작을 기다립니다.
ㅋ 항상 죄송하게 생각해요. 두 번씩이나 읽게 해서요 ㅎㅎ
응원에 힘입어 호남구간도 멋지게 다녀오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한북정맥 마지막 이야기
손변님의 후기를 잘보았습니다
처음엔 뭔가 싶어서 대충 읽다가
나도 모르게 홀려서 정독을 했네요
표현하시는 방법이 참 기가막힙니다
글 쓰시는분인가? 착각을했네요
J3회원님들은 산도 잘타야하고
글도 잘쓰야하고~~ 힘드네요
두번 읽어도 새롭게만 느껴질 산행기
잘보았습니다^^~
ㅎ 감사합니다. 산을 잘 못타니 산행기라도 열심히 올려야겠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닉네임이 참 정겹습니다. ㅎㅎ 뽀송뽀송한 하루 되세요~~~
역시~~산행기 짱이십니다.
첫구간 졸업 축하드리고~
점점 취해가는 산길이 될듯합니다.ㅎ
항상 안산 이어가세요~
ㅎ 덕분에 무사히 마쳤습니다.
호남길에도 많은 응원바랍니다.
시산제 잘 하시구요~~~
한북정맥길 팀원들과 개인사정으로 2번밖에 함께하지 못하고 졸업하지만
함께한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네요
시대의 상흔들이 유난히 많은 전쟁과 그후 개발의 현장이 있는 길 ~~
손변님의 예리하고 구구절절한 산행기에 정맥길 다시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다음 구간 호남정맥길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보시지요
호남은 죽 같이 걸어 보지요. 한 번에 막 가시지 말고요. ㅎㅎ 담 주에 봬요~~
멋진 산행기 몇번을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독주에 취한 마호님의 뒷풀이 모습이 떠오르네요. ㅎㅎㅎ 사진 감사~~~키득키득
많은 슬픈을 품고있는 마지막 구간 ~
아직도 진행중인 개발로 마루금은 흔적만
찿아야 하는 마음아픈 현실을 다시한번 회상하는 시간이 되었읍니다...
졸업은 또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호남정맥에서 뵙기를 기대 합니다...
네. 다시 또 시작해야지요. 저 남도의 땅에서요. 가 보지 않은 길은 왜 이리 설레는지요 ㅎㅎ
손변님의 산행기는 소설을 읽는것 처럼 다이나믹하게 재미 있습니다..
졸업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대장님, 감사합니다. 이제 한 고비 넘었네요. 정맥6차팀 계속 지켜봐 주시기를요~~~
두번씩이나 같은 길을 걸었지만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데 손변님의 산행기를 읽으며 조금씩 채워 가는듯한 마음
감사드리고
정성들인 만큼 앞으로 진행해야할 많은 산우님들의 길잡이가 될거같습니다
대장님 애쓰시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ㅎㅎ 호남도 잘 부탁합니다 ~~
윗지방, 아니 우리의 산하 어딜가도 전쟁의 상흔이 없는 곳이 없지요.
특히 윗 지방은 더 그렇고....
훼손된 정맥길의 한북정맥 완주 축하드립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호남도 안전하게 진행하세요.
총대장님 응원으로 무사히 마쳤습니다. 호남도 잘 다녀오겠습니다~~
금정굴에 대한 자세한 글을 통해서 산길에 또다른 역사를 배우게 됩니다.
길위를 걸으며 그길위에서 일어난 역사를 배운다는건 언제나 좋습니다.
앞으로도 영혼이 뭍어나는 글 부탁 드립니다
방장님, 워커라인 잘 마치셨지요? 생생한 기록이 기대됩니다. 시산제도 성대하게 잘 치루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