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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더 쌀쌀한 날씨입니다. 이런 날에는 평소보다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로 하는 날입니다.
수선화 꽃대가 올라오고 봄이 오나 싶었던 기대였지만, 아침 차량 위로 조금 쌓여있는 얼음을 보며 아직 봄이 오려면 조금 멀었구나 싶은 생각을 해봅니다.
9시 15분,
오늘 유독 더 많은 어르신들이 나오셨습니다. 평소 2~3분 나오셨는데, 오늘은 5분이나 넘게 나오셨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은 늘 빈집인가 싶었던 집에 사셨던 어르신이셨습니다. 그간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있다가 이제 복귀하셨다고 합니다.
"콩나물 천원어치만 주면 안되?" 라는 어르신 말씀.
옛날 기억에 천원어치 사셨었나봅니다. 점빵에서는 미리 콩나물을 포장해두고 팔기에 가격을 떨굴순 없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르신께서는 1500원의 500원도 아까우셨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본인이 먹는 양이 그간 많이 줄어드셨는지, 아쉬운 마음으로 한 봉지 사셨습니다.
9시 35분,
계란 사러 나오신 어머님. 아버님께서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었습니다. 건강이 괜찮으신지 여쭈니,
"어찌 그걸 알았대~, 이제는 좀 괜찮아졌다고 하긴하는데, 두고 봐야지~" 하시며 허심탄회 하셨습니다. 집안에 누군가가 아프면 온 가족이 힘들어집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10시,
오늘도 재각 윗집 방문해봅니다. 문 밖에 신발이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늘 계시던 선생님이 오늘은 안나오셨습니다. 어르신께 필요한 것을 여쭤보니 알아 들을 수 없는 소리로 이야기를 하시며 나오시려고 하셨습니다. 어르신은 신체적으로 어려움이 있으셨는데, 잠바도 입지 않고 나오시려는 것을 간시히 만류하여 다음주에 사는것으로 말씀드렸습니다.
10시 20분,
오늘은 왠일로 회관에 어르신들이 모여계셨습니다. 매번 없어서 지나갔지만, 들려서 인사드렸습니다.
"아이구 요렇게 들어와서 인사해주고 해주니 얼마나 좋아~" 하십니다.
점빵차가 회관에 종종 멈추지만, 회관에서 차로 나와서 물건을 사고 고르는 일도 고령의 어르신들에겐 힘든점이 있습니다. 물건 매대가 생각보다 높게 있고, 또 날씨가 좋지 않으면 바람을 온전히 맞아가며 장을 봐야하니 녹록치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회관에 갈 땐 돈통과 장부를 함께 들고 방문해서 회관으로 갖다드리곤 합니다.
우리 어르신께선 당장 돈을 갖고 오지 않았지만 물건 하나 팔아주시고자 이야기를 꺼낸 순간, 옆에 계시던 젊은 어머님께서
"내가 갖고올테니, 물건 받아가쇼~" 하십니다. 그러곤,
"나 조까지만 태워줘~ 너무 춥네~" 하십니다. 동네 식당에서 점심 때만 잠시 일을 돕고 계신다고 합니다. 어머님을 모셔드리며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니 "내가 뭘 감사해~ " 하며~ 인사해주시고 가십니다. 어머님이 선뜻 말해주신 덕분에 어르신께서는 맘 편하게 물건을 사실 수 있음이 다행이고 감사였습니다.
10시 40분,
"나 다담주에 고기 한 번 갖다 주쇼~" 하시는 어르신.
지난번 한 번 그런 이후로 어르신은 다시 저희에게 고기를 주문하셨습니다. 어르신 표정엔 맘이 편해보이셨습니다. 농협에서 군청과 협약하여 지원하는 월 4만원의 6개월간 지원금은 어르신들이 쓰기에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생활보호사들이 대신 구매도 해주시는데, 살수 있는 품목도 까다로워 이를 지출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지원도 좋지만, 여건과 형편을 살피면서 일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10시 45분,
회관에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모여계셨습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 하니 밥먹는다고 하십니다. 어르신들께는 점빵에서 돼지고기를 취급할 수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돼지고기 값이 적진 않다보니, 점빵에서는 봉사 차원에서 배달만 해드리겠다고 이야기를 전달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니, 어르신들께서도 좋다고 하십니다. 어르신들은 고기를 주기적으로 먹어야하는데, 고기 사오는 일이 쉽지 않다보니 못먹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11시 10분,
마을에 들어가서 뵌 첫 집, 어르신께선 춥다고 안에 들어오라하십니다. 그러곤 제게 이 스티커를 보였습니다. 내용은 평균 2톤을 쓰던 집이었는데, 최근 14톤의 물이 사용되었다며 누수 검사를 해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르신께 자녀분 연락처를 여쭤보고 바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자녀분께서도 아시겠다며 해당 스티커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셨습니다.
어르신 집 어딘가에 누수가 있다는 것인데, 어르신 혼자서는 알아볼 방도가 없었습니다. 자녀분이 한시라도 빨리 와서 검사하고 수리 할 수 있도록 진행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11시 40분,
점심 먹을 준비, 회관안에서 고등어를 손질하고 계신 어르신. 어제 고기 장사가 와서 한 보따리 주고 가셨다고 합니다. 어르신께서는 장갑도 끼지 않은채로 고등어 배를 뜯어, 내부를 다 빼고 소금을 쳐가며 간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거침이 없으셨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하지 못할 일, 어르신이라 가능하시라 생각합니다. 어르신 손마 담긴 고등어 조림 나중에 먹을 기회가 있을까? 싶은 생각으로 인사드리며 나왔습니다.
13시 30분,
어제 너무 늦게 자서 그런지, 피곤함이 누적되었습니다. 돈통과 장부를 들고가지 않고 회관에 방문하니
"어찌 오늘은 장사 안할텨?" 하십니다.
매번 잘 사주시는 어르신들. 오늘은 커피 한 잔 얻어먹고 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사이 영광읍에 다녀오신 어르신 들어오십니다. 오늘은 고향사랑 주부모임에서 아구탕을 먹었다며, 값싸게 잘먹고 왔다고 하십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 어르신들께도 돼지고기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르신들도 좋다고 하시며, 당장 다음주 금요일날 목살 2근을 말씀해주십니다.
"한근만 해서 갖고 와달라고하기엔 너무 미안하니깐, 두근 갖다줘~" 하십니다. 옆에 계시던 어르신과 눈빛을 교환하시더니,
"한근씩 나눠 먹을텨?" 하시며, "그려 그러지 뭐~" 하십니다.
어르신들께서는 작은 양 주문하는 것도 미안한 마음에 평소보다 더 많이 사시곤 합니다. 원하는만큼 내가 원할 때 사지 못하는 지역에 산다는 것이 때로는 도시보다도 더 많은 지출을 요구 될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보면 시골 지역의 어려움이라 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14시,
오늘도 우유를 갖다 놓으러 집에 들렸습니다. 자물쇠가 채어지지 않은거보니, 어르신이 계신가보다 싶었습니다. 어르신 가는길에 방송 키는것을 깜박하고 갔는데,
"아니, 어찌 방송도 안키고와~ 한참을 기다렸구만. 안오는 줄 알았어~" 하십니다.
어르신께서는 영광읍 나갔다가 막 돌아오셔서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냉장고에 우우 넣고, 어르신께 올해는 농사를 조금만 하시라고 당부의 말씀 드렸습니다. 어르신께서도
"올해 나도 조금만 해야하는데... " 하시면서 허탈하게 웃으십니다.
한창 농사할 때면 늘 땅과 몸이 한 몸이 되어 땅 위를 뒹굴고 계시는 어르신의 모습보면 안쓰러운 마음도 들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있으셔서 대단하시다 싶지만, 그래도 이제는 조금 쉬시면서 편안하게 사시면 어떠실지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14시 10분,
"앞으로는 내가 있든 없든 늘 두병씩 놓고가~" 하시는 어르신.
매주마다 잎새주 큰거 두병을 사시는 어르신이 계십니다. 항상 점빵 지나갈 시간이면 운동하고 계시거나 다른 일 하고 계셔서 만나기 어렵다는 어르신. 그래서 알겠다고 말씀드리며 지난번 외상값까지 함께 주십니다. 그러면서 밤 삶아 놓으셨다며 한봉다리 주십니다. 혼자서 언제 다 먹나 싶지만, 다른 곳에서 가서 드려야겠다는 맘으로 받아왔습니다.
14시 30분,
오늘도 회관엔 한 분 밖에 안계셨지만, 방송 듣고 나오리라 생각하며 잠시 기다려봅니다. 5분쯤 지날 무렵 곳곳에서 나오는 어르신들. 어디서 나오는지 순식간에 다 몰려오십니다. 다른 곳에 비해 이곳은 젊은 분들이 상대적으로 있어, 점빵차 운영할 때 좀 더 활력이 있습니다.(말씀들이 조금 더 거칠기도 합니다.) 다른 곳에 비해서 간식류가 더 많이 나가기도 하지요. 간식류가 많이 나간다는건 지출할 수 있는 여유가 조금 더 있다고도 생각됩니다.
오늘도 커피 한 잔 먹고 가라는 어르신, 그리고 그 아들. 안부를 여쭙니.
"안녕 못했어~" 라고 하시며 농담을 건네시는 아드님. 예전보다 관계가 더 가까워진것 같았습니다. 집으로가서 아드님 한 잔 타드리고 함께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눠봅니다. 어르신께선
"요즘 집에오는 남자 요양보호사가 너무 좋아~ 집 앞에 텃밭도 도와주고, 여러모로 일을 잘 해줘" 라고 하십니다. 아드님은 요양보호사에게 엄마를 뺏긴것 같다며, 엄마가 요양보호사를 너무 좋아한다고 하십니다. 내심 아드님도 요양보호사가 잘해주신것에 마음이 편안하신것 같았습니다.
어르신께 조합원 가입 관련해서 여쭤보니, 농협 조합원이라고 하십니다. 어르신은 항상 한 번 물건 사면 많이 사시다보니 포인트 적립이 되지 않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어르신께 조합원 가입하고 적립하시면서 함께하자고 말씀드리니 아드님께서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담주중에 며느리에게 물어보고 조합원가입 신청서를 작성하시겠다며, 다음주에 진행해보자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점빵에서 조합원 가입은 묘량면 복지를 위해 함께 함을 의미합니다. 단돈 만원일지라도, 동락점빵과 함께 상생하며 더불어 살자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곳 마을의 부녀회장님도 얼마전 농협에서 부녀회장직을 짤렸다며, 아쉬워하셨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새마을부녀회는 농협에서 운영 관리되는 조직입니다. 하지만 면에서 바라보는, 그리고 지역에서 생각하는 새마을부녀회는 마을에서 으뜸가는 봉사조직입니다. 어떠한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마을 위해 활동하는 분들인데, 농사짓지 않는다고, 회장직을 박탈당하는 일이 많은 분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자본과 경영의 논리로만 조직을 생각하고 운영한다면, 결국 사회적 약자들이 함께 할 사회참여는 점점 더 줄어 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15시 10분,
점빵차 소리 듣고 뛰어나오시는 아버님.
"지난번 간담회 때 두부값 결제 했어~ 하나 주고 가쇼~" 하십니다. 정기적으로 물건을 주문 배송 요청하는 일은 저희에게도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 꾸준하게 주문해주시는 아버님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15시 15분,
아까 받았던 밤 한 봉지 들고 회관에 방문합니다. 회관에 많은 분들이 계셨습니다. 밤 한 봉지 드리니
"마침 참 먹을 때가 됬어" 하시며 모두들 밤을 드시기 시작하십니다. 맛있는 밤이라며, 한 봉지 후루룩 끝내십니다. 잘 드셔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난번 이장님댁 공병수거 관련하서 컨테이너 갖다놓았느냐라는 말씀에 깜박했다고 말씀드리며, 집에 금방 갖다 놓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앞으로 이장님 댁에서 공병을 종종 수거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15시 40분,
"아휴 한 참 기다렸네!"
회관에 한 분 밖에 계시지 않아, 그냥 가나 싶었는데 우리 조합원 어르신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앞에서 이야기가 길다보면 뒷마을로 가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집니다. 이야기도 들어야하고, 장사도해야하고.. 할일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기다려 주심이 감사하지요.
어르신께서는 필요하신 물건을 많이 사시길래 회관에서 쓰시는지 여쭤보니,
"아니? 내가 쓰려고 하는데~ " 하시며 많은 물건을 사십니다. 그러다 밀가루 두 봉지 요청하셨는데, 한 봉지가 차안에 구역을 나눈다고 나무 판으로 해놓았던 곳에서, 튀어나온 나무에 걸려 살짝 구멍난 밀가루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동장터 차량 안에는 물품들을 나눠 정리하고자 합판으로 만든 칸막이 안에 물건을 넣어놓는데, 간혹 이 칸막이에서 살짝 튀어나온 조그만 나뭇가지들이 비닐들을 찔러 터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르신께는 물건값 안받고 드릴테니 쓰시라고 말씀드렸더니 어르신께서도 좋아하셨습니다. 한 봉지는 집으로 갖고 가시고, 한 봉지는 회관에 두시고 쓰신다고 합니다. 물건이 많아 집으로 갖다드리니 고맙다고 하시며 담주에 또 오라고 하십니다. 어르신 덕분에 오늘 하루 매출이 훌쩍 올라, 들어가는 길에 기분 좋게 마감하게 되었네요.
간담회 이후 많은 어르신들께서 이동장터를 통해 구매해주시려는 행동을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마음 내어주는 일도 쉽지가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금전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것은 더 여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단돈 천원이라도 더 구매해주시려는 어르신들이 고맙습니다. 하루 매출이 높진 않지만, 하루하루 만나는 어르신들의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함께 하는 어르신들이 더 많아지고 있음을 체감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점빵이 되길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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