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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신앙과 신학
Ⅰ. 구약신학사 개관
구약성서는 어디까지나 경전으로 읽어야 하고 또한 신학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과제 앞에 우리는 직면하며 구약에 대한 신학적 논구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과제를 안고 몸부림쳐 온 역사라 하겠다.
1. 18세기 이전
구약신학의 역사는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18세기말부터 19세기초에 이르는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서비평학이 나오기 이전, 18세기초에 이르기까지의 구약신학이란 단지 기독교 교의 신학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교의학자들의 결론을 전제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초기 기독교는 말시온(Marcion;A.D.2세기)사상으로 성서학자들의 호교론적이고 교리주의적인 성서해석으로 치우침을 본다. 성서해석법은 우의적 해석, 문자주의적 해석, 유형론적, 예표론적인 해석으로 분류하며 이러한 해석은 구약성서를 기독인의 경전으로서, 그리소 신의 계시와 인간 구원이 증언되고 있는 성서로서 충분하고도 절대적인 책이라는 확신을 기초한 해석들이었다.
중세교회시대는 “성서신학의 암흑시대”였다. 그러나 M. 루터(1483-1546)의 종교개혁은 “성서해석이란 교황의 특권이다”는 중세교회의 관념을 뒤집고 그 절대적 권위를 교황으로부터 성서로 옮겨놓았다. 칼빈(1509-1564)의 경우는 성서계시의 발전을 인정하였고 구약과 신약사이를 밀접히 연결시켜서 이 둘은 “율법과 복음의 선포”라는 “하나”의 통일된 섭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성격지었다. 성서계시의 성격규명을 구약 신학적 입장에서 처음으로 천명한 자로는 이름 있는 히브리 언어학자인 코케이어스(Johannes Cocceius, 1603-1669)를 들 수 있는데 그가 1648년에 펴낸 책 “신의 계약과 약속에 관한 최고의 교리”는 소위 “계약신학”을 전개하였다.
구약은 신약과 함께 합법적인 성서 연구의 대상이 되었고 또한 기독교 신앙을 직접 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자원으로 받아들여진다. 동시에 독일 루터 교회 내에 일고 있던 경건 주의자들의 “경건 운동”으로부터는 성서연구의 선풍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경건 운동의 움직임은 17c말에 이르기까지 충격적인 반응을 일으켰는데 이와 같은 개인주의적인 경건에 대한 강조는 성서를 단순히 형이상학적인 각도에서만 보게 하지 아니하고 신학적인 각도에서 보도록 하는 하나의 추진력이 되었다하겠다.
2. 18세기에서부터 19세기 역사주의학풍에 이르기까지
18c에 들어서면서부터 성서학은 본격적인 성서비평학의 형태로 나타났다. 합리주의에 힘입어 중세 교리주의의 탈피와 함께 “교의신학와 성서신학 사이의 구별”이 공적으로 인정 될 수 있었다. “교의 신학와 성서신학 사이의 구별”을 획기적으로 선언한 학문적인 발표가 1787년 가블러(Jhan Philipp Gabler)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 가블러와 함께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아 구약신학을 쓴 대표작은 바우어(Bauer)의 “구약신학”(Theoligie des ATs, 1796)이며, 구약신학의 방법은 성서의 주제들 가운데서 가치비중을 따져서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은 끝까지 탐구해 내고 적극적인 가치가 없는 것은 제거해 버리는 방법을 취했다. 이러한 합리주의적 영양에 대해서 다양한 반응을 보인 자가 드․베테(De Wette, 1780-1849)이며 입장은 역사철학적이고도 종교철학적인 면으로 기울어진 감이 많다 하겠다. 구약신학을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보는 경향은 슐라이엘맛하(Schleiermacher, 1768-1834)와 헤겔(Hegel, 1770-1831)에게서 발견된다. 헤겔의 변증적이고 진화론적인 방법론의 영향을 받은 성서신학자로 대표적인 사람은 바트게(Wilhelm Vatke, 1806-1882)였다. 성서신학의 과제는 성서에서 발견되는 여러 종교사상들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더듬어 가는 것이라는 것이고 그 방법이란 역사적 발생학적 방법에 따는 주관적인 관찰, 정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주의적 영향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반응이 나타났는데 대표적 저작들은 성서의 권위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확고하게 고닙하여 성서계시의 발전을 부정했고 성서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처음부터 완전한 것이었다고 주장한 헹텐버그(E.W. Hengstenberg), 이와 동일한 계통에 속하였던 신약성서학자인 폰 ․호프만(J.C.K. non Hofmann)으로 그의 중요관심과 성서학 연구의 목적은 성서의 영감성과 성서의 권위를 정당화하려는데 있었고 그가 말하는 구원사는 예수그리스도의 화육을 그 최종목적지로 하는 역사적 진행과정으로 구성된 역사였다. 보수적인 신학자이기는 하나 웰러(G.F.Oehler)은 역사적 방법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알렉산드라 학파 이래 유행된 성서해석은 완전히 배척하였다. 구약신학 연구에 공헌한 또 하나의 역저는 디스텔(L. Diestel)의 「기독교 교회에 있어서의 구약의 역사」로 하나님의 계시가 가장 완전하게 나타난 곳은 예수 그리스도였으며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활동은 전적으로 인간 역사 안에서 발전적으로 이루어진다라는 것이다.
19c의 구약성서 연구가들은 벨하우젠(1805-1875)의 저작 속에 활발하게 전개된 변증법적이고도 진화론적인 이론에 사로 잡혀 있었고, 구약 종교사상의 진화론적 발달에 관한 그의 <발달설>이론은 히브리 종교사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구약신학에도 적용되었다. 그는 구약신학의 의미를 따로 인정하니 아니하고 구약신학은 곧 이스라엘 종교사학이며 구약은 이스라엘 종교사 연구의 역사자료집의 구실밖에 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의 학문적 경향에 대해서 찬반의 반응을 보인 구약신학자들이 그의 학파 자체 내에서 나타났는데 종교사학파(Religionsgeschichte Schule)의 주류를 따르는 자들로서 라임(Eduard Riehm)과 딜만(August Dillmann)의 구약신학은 종교사학파의 입장에서 만족치 아니하고 새로운 입장에서 다룬 것들이다. 이에 반하여 데이빗슨(A.B Davidson)의 구약신학은 벨하우젠의 학문적 방법을 그대로 구약신학에 적용하였다. 이러한 19c 역사주의는 19c말에서 20c초에 이르면서 도전적인 반발을 받게 되었다.
3. 19c 역사주의에 대한 도전적 반응 - 20c 구약신학
19c 역사주의에 대한 도전적 반응을 언어학, 고고학, 인류학으로 성격지어지는 학문적 경향이고 문학양식의 <삶의 자리>를 탐구하는 양식사적 연구이며 그 다음은 구약신학에서의 반응이라 하겠다. 스미스(Robertson Smith)가 1889년에 재어 좋은 「셈족의 종교」는 이점에서 교대 히브리인들의 종교약식과 사상을 유추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하겠다. 구약에 담긴 문학양식과 그 역사에 대한 연구에서 더욱 현저하게 나타낸 공로자는 20c를 밝힌 거성, 궁켈(Hermann Gunkel, 1862-1932)라 하겠다. 20c 구약신학은 19c의 역사주의뿐만 아니라 양식비평(Form-critism)적 연구에도 내어 버렸던 구약성서의 계시적 성격을 재발견하고 그 신학적 해석을 시도하려는 노력을 활발히 전개했다. 19c의 비평적 여사주의에 대한 20c기의 구약신학의 도전적 반응은 탁월한 히브리 언어학자요 벨하우젠 학파의 숙적으로 알려진 케니히(Eduard Konig)의 <구약신학>에서 그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벨하우젠의 역사주의적 가설에 대한 반동은 스토이엘나겔(C. Steuermagel)의 「구약신학과 구약종교사」는 가블러가 교의학으로부터 구약신학의 엑소두스를 외친 것처럼 구약종교사 연구로부터의 신약신학의 엑소두스를 외치고 있다. 그 주장은 1년 후 아이스펠트(Otto Eissfeldt)의 짧은 논문이 <이스라엘 유대 종교사와 구약신학>에서 다시 대변되었다. 이러한 유형의 논의는 질린(E. Sellin)의 「구약신학」에서 종교사 연구와 구약신학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기독교 신학의 분야라고 주장하였다. 젤린과 동시대에 구약신학 제 1권을 낸 아잇히로트(Walter Eichrodt)는 이미 히브리 종교의 현상에 대한 단순한 역사적 탐구를 지양하여 변증학에 관심을 기울인 바 있다. 퀠러의 구약신학(Theologie der ATs, 1936도 함축적인 어휘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신학적 체계를 시도하였고, 하나님의 계시는 긴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라고 보았다. 비셔(Willheim Vischer)의 구약신학 제1권은 아잇히로트의 구약신학 제1권이 나온 이듬해 아잇히로트와는 아주 다른 성격을 띠고 나타났는데 사용한 방법은 역사적 방법과 공통된 점을 많이 갖고 있기는 하였어도 주로 유형론적 해석방법을 채택하였다. 로빈슨(Wheeler Robinson)의 구약연구는 구약성서의 자료들 속에 나타나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엮어 나갔으며 존스(Cunliffe-Jones)의 구약연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신계시에서 하나님의 계시활동사의 절정을 보았다. 구약의 메시지를 기독교 복음의 <적용>의 과제와 획기적 연결을 시도한 구약신학은 프리젠, 바압, 덴탄, 폴처스, 라이트에게서 나타난다. 라이트(G.E.Wright)는 구약의 기본적인 신앙들이 초대교회 크리스챤들에게는 유형론적인 해석방법을 토하여 이해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신약성서 저자들이 고찰한 한해서만은 유형론을 사용할 수 있다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다. 라이트와 강조점을 달리한 구약신학자는 바움겔텔의 <약속:구약의 복음적 이해의 문제>로 그의 주장은 기독교 복음은 구약성서를 신학적으로 평가해 주는 궁극적인 기준이 된다는 것이고 구약의 특성은 그 예언적 특성보다는 <약속>을 담고 있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20c 구약신학 논의가 한창일 무렵, 1957년에는 구약신학계에 가장 설득력 있는 반응을 던져 준 구약신학이, 지금은 그의 의해 제1권이 나왔는데<이스라엘 역사 전승의 신학>이라 부제를 달고 있다. 그의 구약신학 제2권이 나오기 바로 전 해에 영국에서는 또 하나 괄목할 만한 구약신학 연구서가 나왔는데 그것은 나이트의 「구약의 기독교 신학」으로 신정통주의 신학의 영향이 암시되어 있다. 폰․라트의 구약신학 제2권이 나온 후 이듬해에는 마일렌버그(J.Muilenburg)의 <이스라엘의 길>이 나왔고, 신의 계시 자체보다는 그 계시에 대한 인간의 종교적 경험과 윤리적 응답을 더 강조하였다. 말일렌버그와 동시에 나온 제임스․바(James Baar)의 「성서언어의 어의론」은 킷텔(R. Kittel)의 「신약성서 사전」이 사용한 원리를 비판하는 책으로 나타났다. 그는 성서적 언어와 그 언어가 가진 사상 사이의 관계성에 대해서 논의할 점이 많이 있음을 여러 가지 어의 위에 이룩된 사상구조를 살피는 방법을 강조하였다.
Ⅱ. 알트․노트학파의 방법론(전승비평학)비판
현대구약성서학을 석권하고 있는 성서비평학적 방법론은, 그 방법론의 정당성을 우리가 인정의 하든지 않든지 간에 폰․라트의 “구약신학”을 배태시킨, 이른바 알트․노트학파의 전승사적 연구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저들 속에 나타난 알트․노트의 이스라엘 역사연구와 구약성서 비평학의 방법론은 19c를 풍미했던 역사비평적 방법과 20c 전반을 석권했던 양식비평적 방법의 극복으로 나타났다.
1. 만능적 도구로서의 양식비평적 연구가설
알트․노트학파의 방법이 가지는 그 장점은 사료에 대한 문서비평, 즉 벨하우젠에게스 그 절정을 본 고전적 문학비평(역사비평학적 문서비평)에 철저히 기초를 두고 거기서부터 그 연구를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식비평은 전승자료의 양식에 대한 그 역사성의 판단자로서가 아니라 그 전승에 대한 평가와 해석을 통제하는 기능으로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역사자료에 대한 그 역사성을 판단하는 일은 객관적이고 외적인 증거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 십이지파와 공동체 가설
노트(M.Noth)의 “이스라엘 역사”는 이스라엘의 기원을 배타적으로 여호수아가 주도한 세겜 12지파동맹에게로 돌리고 이 지파동맹의 주요 동기를 중앙성소의 공동예배에서 찾았다.
“이스라엘은 12지파의 종교연맹이라는 형태를 띤 하나의 역사적 실재로 조직되었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 역사의 전 과정을 이해하는데 기본적 의의를 가진다.
“중앙성소의 야훼(cf.삿20:26f)는 이스라엘 공동생활의 가시적 표현의 그 원초적 모습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예배에 관해서는 자세히 아는 바가 없다 아마도 그것은 특별할 ”때“에 전체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드리는 규칙적인 희생제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이스라엘의 통일성과 그 신앙은 어느 한 날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팔레스틴 땅 안에서 한 핵으로부터 점차적인 발전을 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는 지파동맹을 형성한 그 신앙적 동기의 기원을 ‘팔레스틴 안에서 점차적인 발전”이라는 말로 얼버무려 버렸는데 결국 그는 <팔레스틴 정착 이전에는>그 어떠한 종류의 지파 동맹이나 이스라엘 신앙의 존재란 인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배척해 버린 셈이다. 한 이름 없는 “요단 건너편”의 부족지도자가 그렇게도 빨리 이스라엘 전체 민족의 창건자로 존경받게 되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모세전승을 무(無)로 돌려버리고 지파결성의 기원을 팔레스틴 안으로만 국한하므로 이스라엘 신앙의 기원에 관한 주제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은 그의 방법론 자체를 회의하게 만든다.
3. 전승형성의 창조적 동인으로서의 원인론적 사화가설
알트․노트학파의 방법론적 가설 중에서 가장 색깔이 짙고 가장 많은 비판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 이 원인론적 역사해석의 강조이다. 즉 원인론적 사화들은 후대 자녀들의 물음인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주기 위하여 조작된 것이라는 것이다. 바벨탑 설화나 타락설화의 경우처럼 원인론적 색깔이 짙은 사화라 할지라도 그 설화들이 원인론적 형태를 갖추기까지는 오랜 역사가 개재되어 있었으며 신앙고백 동인이 더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한 해석이 될 것이다. 문제는 전승과 그 속에 담긴 원인론적 요소 사이의 우선권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데 있다.
4. 전승의 장소예속성 가설
알트․노트에 의하면, 모든 전승은 어떤 지리적 장소와 제의장소에의 접착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승의 장소예속성을 비판하고 민족예속성을 주장하는 주요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전승에 관한 장소들은 그 전승의 접착점이아니라 전승작용의 현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전승이란 그 전승지역들을 변경시킨다는 점을 지적한다. 초기 이스라엘 전승들을 고정된 접착점에 지역화 시킨다는 것은 반 유목적 히브리인의 전승에 대한 가장 비현실적인 이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5. 전승가의 구성구조로서의 중심주제 가설
알트․노트는 초기 이스라엘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한 하나의 확고한 기초로서 오경에 나타난 다섯 개의 주제-족장들에 대한 약속, 출애굽의 구원, 시내산 계시, 광야인도, 땅 점령-를 들고 이들 각 주제들은 각각 독립된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또 각기 다른 기원들로부터 발전하였다고 주장한다.
Ⅲ. 차일즈(B.S. Childs)의 성서해석 방법론
1. 차일즈의 경전적 성서해석의 “틀”
B.S 차일즈는, 기독교 신학을 위해서는 히브리 성서에 대한 경전적 연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확신을 강하게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히브리 성서 내에서 발견되고 있는 경전의식의 움직임 속에서 진정한 주석학적 과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마침내는, 소위 “신학적 주석”이라는 것을 추구해 간, 대표적인 미주의 성서학자이다.
1). 컨텍스트로서의 경전
차일즈는 다음의 다섯 인용구에서 경전관을 반영해 준다.
경전 형성에 작용한 결정적 힘은...다음에 오는 세대에 권위 있게 전달되는 신언의 전이 안에서 일어 났다.
경전개념은 여러 문서들과 수집물들의 신적 권위를 인정하려는 하나의 “의도”였다.
기독교 교회의 경전은 그것을 통하여 성서신학을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컨텍스트이다.
경전의 맥락 안에서 성서신학을 한다는 것은 성서 전승의 규범적 본질을 인정한다.
궁극적으로 말해서 교회의 전통 안에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교리적으로 규정한다는 정신에 서가 아니 라 성서가 다음 세대를 위한 생명의 떡이 되고 있다는 데에 대한 경이와 경탄 때문에 취하 는 하나의 자세를 의미한다.
차일즈는 히브리 성서의 현실을 그의 많은 논문과 책들을 통하여 긍정하고 입증한다. 그는 경전사와 문학사가 일치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고 그들이 상호 의존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경전”은 그것을 통해서 성서신학을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컨텍스트”이상은 아니므로 경전적 성서연구는 “그것을 통해서 성서가 거룩한 경전으로 읽혀질 수 있는 <발판>울 구축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2). 차일즈의 경적 성서연구의 방법론적 “틀”
(1) 분석학적 과제
차일즈는 “성서는 이스라엘역사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현실을 증언한다. 그러나 역사 그 자체가 경전에 상응하는 계시의 매개는 아니다. 계시의 역사가 지닌 의미가 감지될 수 있는 것은 단지 규범적 역사가 그 안에서 종결되고 있는 성서 텍스트의 최종형태를 통하여서만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분석학적 과제는 본문을 예리하게 첨화시키는데 기여한다.
(2) 신구약의 상호유비의 과제
차일즈는 구약에서 신약에로 가는 편도적인 관찰을 지양하기 위하여, 신구약을 동일한 계시의 책이라는 차원에서 보고 그 두 개의 다양한 증언 사이의 동일본질의 유비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즉 그는 “신구약은 모든 하나의 하나님의 목적을 독립적으로, 그러나 함께 증언한다.”라고 주장한다. 차일즈에게 있어서 구약과 신학 사이의 아날로지는 존재론적 수준에서 추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의 아날로지는 통속적인 유형론과는 맞지 않고 성서에 대한 경전적 연구와 가장 잘 조화되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바로 “구약의 컨텍스트”, 그리고 “신약의 컨텍스트” 라는 항목이 차일즈의 출애굽기 주석의 중심부를 형성하고 있는 그 이유로 보인다.
(3) 비교 주석(주석사)의 과제
진정한 주석은 현대 구약학계의 몇몇 주석가들이 해석한 이론에 초점을 맞추는 따위의 좁은 시야를 탈피, 확대하여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는 “어느 누구도 텍스트와 전혀 새롭게 만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차일즈는 경전을 갖고 그것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앙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4) 신학적 과제(“증언”과 “본질” 사이의 변증적 과제
차일즈는 새로운 성서접근법을 제안하는데, 이른바 분석학의 과제로부터 해석학의 과제로 넘어가는, 즉 파괴적 비판의 과제로부터 건설적 해석의 과제로 넘어가기를 제안하고, 하나의 신학적 컨텍스트를 수립하는데 “신학적 주석”이라고 부른다.
2. 란데스(George M. Landes)의 서평: 차일즈의 구약개론, 그의 경전적 연구의 경이성과 문제점
차일즈의 경전적 분석의 방법론에 대해서 문제로
첫째, 책값이 비싸다는 것을, 구약개론학 선생들로 하여금 학생들에게 다른 구약개론 서적을 추천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언급한다. 이 책이 지닌 주요한 결점은 문학이 발생한 그 역사적 종교적 배경에 대한 자세한 토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둘째, 분래의 성서기자가 전한 그 메시지가, 그 텍스트의 최종 경전적 모습 속에서는 더 이상 빛이나 의미를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 기자가 본래, 대상으로 삼고 기록했던 그 역사적 공동체는 과연 어떻게 그것을 듣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알아보려 한 역사비평가들의 그 피나는 노력들을 차일즈는 너무 가볍게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말해야 한다.
셋째, 질문이 하나의 문제가 될지라 할지라도 문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질문의 형식으로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차일즈의 경전적 분석의 방법론에 대한 문제롤 느끼는 다른 한 가지는 원자가 공헌했을 수 있는 그 어떤 것과 먼저 비교한 다음, 최종 편집자의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 그 원본을 보충하거나 개정하는 중간 편집기와도 비교해 본 다음 그 경전 편집자만이 최종으로 한 작업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구약 문헌 안에서 어떻게 정의해 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Ⅳ. 마일렌버그의 수사비평학
-성서비평학과 설교 현장 사이의 가교 설정을 위하여
1. 서론
1968년 12월18일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모인 ‘성서학회’(SBL)의 연중 모임에서 행한, 학회 회장 마이렌버그 (James Muilenburg, 1896-1974)의 주제강연, “양식비평학과 극복”은 실로 양식비평학이란 결코 성서해석학의 절대적이고도 만능적인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그리고 매우 설득력 있게 역설해 주었다.
2. 양식비평학의 약점
양식비평은, 전통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성서문학에서 여러 문단의 문학 형태 발전사와 그 문학 양식의 배후에 자리 잡고 있는 구전의 역사를 밝히는 일과 그리고 그 문단의 ‘삶의 자리’를 밝히는 데 공헌하였다. 양식비평의 결점은 본문의 해체론적이고도 파괴적인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그 한계에 이르게 되었고, 또 그 방법론에 교조적으로 칩거한다는 것 때문에 자신이 구조 해체한 본문 조각들과 함께 휴지통에 버려질 위험에 처하게 된다. 또 다른 결점은 한 문학 단위에 대한 외형적 관찰에만 관심함으로 그 문학 단위에 대한 전기적, 심리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점이다. 양식비평학자들이 빠져든 중요한 ‘착각’은 고대의 문학 양식들은 양식비평학자들이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당부분 “모방된 것”임을 간과하였다는 점이다. 결정적인 비판점은 문학 단위들을 너무 작은 단위로 ‘세분화’함으로 본문의 구조 해체와 구조 파괴에 주력하게 되고, 그리하여 그것이 설화이든 시이든 성서 문학이 가진 ‘삶의 자리’에만 주로 관심하고 ‘텍스트의 자리’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즉 본래의 삶의 자리가 무엇이든 한문학 단위는 이제 그 원 의미를 변형시킨 하나의 새로운 문맥 안에서 기능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양식비평학은 성서해석학에 끼친 그 공헌을 찬양 받음과 동시에 그 동안 기초를 두었던 그 ‘탈선된 착각’에서도 깨어나야 할 것이다.
3. 마일렌버그의 수사비평학
제임스 마일렌버는 양식비평적 방법을 넘어서 새로운 비평학을 개척했는데 ‘수사비평학’이다. 그의 ‘수사비평학’은 양식비평의 약점을 보충하고 보완하여 그것을 극복하려는 것으로서 “히브리 문학의 본질을 필요 충분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수사비평학’을 정의하면 역사적 사건들 속에 나타난 야훼의 계시와 그 계시의 종말론적 의미를 통전적으로, 그리고 깊이 있게 ‘해석’하는 성서해석 방법론이다. 수사비평학의 첫 번째 과제는 문학 단위의 한계와 범위를 규정하는 일이다. 즉 한 문학 단위가 어디서 시작하고 또 어디서 끝나는지를 살펴 그 문학 단위를 규정하는 일이다. 주목만 할 점은 하나의 문학 단위는 여러 개의 절정점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과제는 그 무엇보다도 한 문학 단위 전체 구조를 인지하고 그 구조의 구성 요소들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그 배열 구도를 식별하는 일, 즉 그 문단을 엮어 만든 날줄과 씨줄을 식별하는 일이다.
Ⅴ. 구약성서 해석학과 케리그마
1. 서론
성서 해석학은 서서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와 현대의 문화적 사고 사이에 개재되어 있는 간격을 어떻게 메우느냐 하는 문제에 관심하는 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구약 성서 해석사를 통하여 본 현대 성서비평학의 자기반성
1). 사몽(R.Simon)의 영감에 힘입은 비터(H.B.Witter)와 아스뜨뤼크(J.Astruc)는 비록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최초의 자료분석적 비평학을 탄생시켰다. 그들은 우선 오경이 모세에 의하여 쓰여졌다고 하는 전통적 견해를 부정하고 창세기 안에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신명을 각각 다르게 사용하는 “두 가지의 문서자료”가 거기에 결합되어 있음을 발견해 냄으로써 소위 오경연구의 “자료가설시대”를 열었다.
궁켈(H.Gunkel;1862-1932)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양식비평학”은 문서자료 그 자체보다 그것의 “전단계”에 더 관심하였다. 그의 양식비평학적 구약 경전 문학 연구는 창세기의 설화문학과 시편의 시문학 Nq만 아니라, 법률자료와 예언문학 분야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영식비평학은 문학사의 역사적인 면을 좀더 조직적으로 취급하기 위하여 알트, 노트, 폰․라트들을 그 대표로 하는 “전승사적”, “편집사적” 비평학에로 발전하여 나갔다. 궁켈의 비평학은 역사비평학에서 받은 “회의주의”를 점점 더 심화시켜 갔다는 점 때문에 구약경전문학 단위들의 삶의 자리를 “추상화”하거나 “일반화”하는 경향을 나타내었다는 점에 비판받았다.
양식비평학의 약점 중 더욱 심각한 점은 성서문학의 문학단위들을 “세분화”함으로써 통일성과 연속성을 갖춘 문학단위의 구조를 해체 또는 파괴하는데 주력함에 따라 양식비평학이 비록 일반적인 삶의 자리는 밝혀냈는지도 몰라도 그 문학단위들의 “텍스트의 자리”를 밝히는 일은 등한시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그 결과 성서문학의 각 문학단위들이 갖고 있는 이전하고자 하는 의미 또는 “케리그마”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그것을 전혀 놓쳐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양식비평학의 이러한 “파괴성”은 해석학적 차원에서 볼 때,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2). 수사비평학과 경전비평학
성서해석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한 해석학이 수사비평학과 경전비평학이다.
수사비평학의 제창은 마일렌버그에 의해서이다. 수사비평학의 첫 번째 과제는 한 문학 단위의 시작과 끝을 살펴서 문학 단위의 그 한계와 범위를 규정하는 일이다. 둘째, 움직임의 수사학적 기획이 어떤 수사학적 형식에 의하여 배열되고 있고 그 전하려는 케리그마가 과연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경전비평학은 대표적인 학자들인 차일즈와 샌더즈 중 특히 차일즈가 자신의 학문방법론에 “비평학”이라는 말을 뭍이기를 꺼려할 정도로 재래의 통시적연구방법이 강조한 본문의 역사성 규명지향성과 그리고 공동체의 신앙과는 유리되는 학문주의 지향성을, 이른바 성서신학의 한 위기라고 보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서 나타났는데 그의 성서해석 방법은, 소위 말하는 공시적연구방법론이라는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경전비평학은 신문학비평학과 함께 “본문이란 그것을 쓴 자와 반드시 관련되지 않고서도 스스로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가질 수도 있다”고 보는 배우 특이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역사비평학 지향성에 대한 성서해서학적 불만과 저항은 계속되었다.
3). 신문학비평학과 사회과학적 비평학
신문학비평학은 양식비평학의 극복으로 나타난 “수사비평학”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으며 “편집 비평학” 및 경전비평학과도 유사한 점을 갖고 있다. 신문학비평학은 성서를 순수문학으로만 보는 것과는 또 다른 한 운동, 이른바 어떤 특수한 본문들의 심층구조를 살펴보는 구조주의적 비평학도 또한 비판적 고려 속에 넣고 있다. 사회과학적 성서경구는 근본적으로 성서본문을 그 본래의 사회적 배경 속에 두고서 해석하려는 연구로서, 히브리 성서가 기록되고 전수된 그 이스라엘과 유대의 사회구조에 관 심하기기에 이 연구는, 성서에 대한 종교적 역사적인 관심 일변도의 역사비평학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서 성서문헌들의 그 고유한 문학적 구조에 관심해온 신문학비평학적 성서해석의 지평과 공통의 기반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성서해석학의 본질적 과제는 이상에서 제기된 제비평학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 무엇보다 성서5가 그 고유의 경전문학 속에 담고 있는 그 케리그마를 찾아내고 그리고 그 케리그마에 모든 독자들이 응답하도록 하는 그 일이라고 하겠다.
3. 구약성서 해석학의 오늘의 과제와 그 전망
지금까지의 제 구약성서 비평학은 그 한계성에 직면함과 더불어 그 본래의 구약성서 해석학적 과제, 이른바 “복음선포의 행위와 복음 선포의 내용인 케리그마”를 바르게 발굴해 내고 해석해 주는 과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장애요인”우로서 등장하기에 이르게 되었다는 자기반성을 하게 한다고 하겠다.
1). 역사비평학의 한계성과 그 학문적 도그마
문서비평형학과 양식비평학에 기초를 든 현대 역사비평학은 그 본래적인 해석학적 과제를 망각하고 비평학적 분석이론에만 심취하여 마침내 일종의 학문주의에 안주하고 말았다는 그 “학문주의적 도그마”가 바로 그 결정적 오류의 근본이다. 구약성서는 어디까지나 인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희망을 계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신 “야훼”의 영원한 구원사역을 증언하는 메시지로 구성된 케리그마의 책이기 때문에 참된, 구약해석학자는 이러한 구약적 현실을 바르게 증언할 수 있는 “구약해석학을 위한 전이해”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2). 케리그마 발굴의 패러다임, “구원사 구조”
구약성서에 대한 해석학적 과제는 성서로부터 해석자인 “나”에게로 “들려오는”, 이른바 케리그마의 소리를 “듣는” 선험적 지식으로서의 “신앙” 즉 “듣는 신앙”이 전제되어야 하며, 또한 구약성서가 객관적 사료의 수집물로서 그 객관적 사실성이 입증되기만을 바라는 책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신앙고백의 여과를 철저히 걸러서 우리에게 전수된 신학적 각색을 받은 책이라는 신학적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구약성서 안에 증언된 “구원사적 구조”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까지 그 역사적 연속성을 구축하고 있으며 구약과 신약 사이의 역사적 단절이나 케리그마적 단절을 막아준다. 신구약의 유비는 또한 이러한 구원사적 관계를 통하여 유지되고 정당화된다. 역사비평학은 일한 성서의 역사적 유비의 단절을 박아주고 구약과 신약을 “한 분”하나님의 구원사를 증언하는 케리그마의 책으로서 읽도록 도와줄 때 비로서 그 본래적 사명을 다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Ⅵ. 유형론적 성서해석의 참 근거
구약학자들은 유형론 또는 유비론을 적용할 수 있는 그 가능성의 “한계”를 우선 먼저 강조한다. 이러한 신념은 구라파 학자들의 일반적인 신념이었고 특히 그것은 아잇히로트의 신념이기도 하다. 아잇히로트 자신도 강력히 강조한 바대로 유형론적 성서해석의 참근거와 목표란 하나님의 역사적 구원행위의 연속성과 목표지행성을 강조하는데 있었다는 점이다.
폰․라트는 다음과 같은 것을 언급하였다.
오히려, 이유형론적 사고 방식은 모든 인간의 사고와 해석의 기본적 기능이다. 이런 유츄적 사고방식이 없었더라면 그 어떠한 시문학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형적 방법론은, 하나님의 구원행위의 역사적 연속성을 유지하는 한, 그것의 방법론적 적법성이 문제일 뿐, 그것을 신구약의 유비적 연결에만 국한시켜 놓은 것으로 만족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폰․라트의 신념도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비론”이 해석학의 도구로서 인간을 사고의 기본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때는 더 그렇다. 진리를 발굴하는 해석학적 지평은 넓다. 그러므로, 모든 비평학이 문제되어져야 하고 또 해석학적 노력이 고려되어져야 하며 그 중의 어느 하나도 설교의 방편으로만 사용되도록 따로 떼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설교만이 적법한 성서비평학이나 해석학에서부터 해방도리 수 있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2. 구약역사서와 신학
Ⅰ. 오경의 자료층들과 그 특성
두 가지 방법의 조화를 통하여 오경의 구성자료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에 도달하는 길을 모색할 수 있는데 쳇 째, 오경의 자료들이란 더 이상 결코 동종의 것으로 나타나지 아니하고 여러 층들과 여러 가닥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두 번째, 문서의 개념에 다소 수정되었는데 즉 양식비평적 연구가들은 문학이전의 단계 즉 구전의 단계에 관심하므로 오경자료들을 개인저자들의 세심한 조립구성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이 아닌 “학파”가 수집, 편찬한 고대전승 자료들의 수집물로 보았다. 최고대의 자료층으로 분류하는 N자료층은 J보다 더 이른 전승군에 기초되었다 하더라도 J의 신학적 관점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 수집되었다는 가정에서 우리는 오경의 자료층 연대순을 J-N-E(c)-D(H)-P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전승구성의 고대자료들(JNE)은 구술형태로 있었던 G에 근거한 것으로 현저한 유사성과 중복성을 보여 준다.
1. J 자료층
J는 “야훼"라는 신명을 사용하는 초기의 두 자료층(J와 N)중 하나로써 ”엘로힘“이라는 신명을 쓰는 E와 공동으로 G²의 전승에 기초되었다. J와 E사이의 가장 현저한 구조상의 구별은 J가 원역사로부터 시작하는 반면에 E는 원역사를 포함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으로부터(창15,20장) 시작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는데, 분명히 이 점에 있어서 J는 E보다 수세기 동안 선민의 종교의식 속에 깊이 뿌리 박힌 고대신조에 덜 얽매여 있으며 성역사의 옛 전승에 덜 의존하고 있겠다 하겠다. 하나님의 야훼와 인간 사이의 ”직접성“에 대한 J의 추구는, J 자료층에 현저히 나타나 있는 신인 동형론적 표현들 속에 나타나 있다. 좁은 제의적 영역을 자유로히 초극한 ”탈제의적 분위기“ 안에서 J는 야훼 하나님의 섭리란 인간 삶의 모든 영역 안에서, 즉 종교적, 세속적, 공적, 사적인 영역이나 간에 인간 세계사의 모든 영역 안에서 계시되고 있음을 표현한다. J의 견해는 ”족장제의의 옛 개념들과 비교할 때 혁명적인 것이었다“
J자료층의 편집물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초기의 표현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 자표층들이 G²에 근거된 것인 이상 J의 기원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라기 보다는 아사와 여호사밧의 반가나안적 종교정책 이후와 온 이스라엘을 포괄하는 한 민족종교와 한 정치단위의 관념이 발견되기 시작하던 초기의 B.C 9C(850-800) 유다 영역 안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2. E 자료층
E는, J가 “야훼”라는 신명을 사용하는 것과 대조되게, “엘로힘”이라는 신명을 사용하는 데서부터 E siglum을 명명 받았다. E란 J와 함께 G²에서 온 독립된 자료층으로서 강력한 내적 통일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J와 E를 “학파”개념으로 돌리기를 꺼려하는 것은 J의 명백한 개인성과 E의 강력한 내적 통일성 때문이라 하겠다. E는 주관적 묘사를 쓰며 그의 기술을 그 장황성에도 불구하고 정확치 못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의 솔직성이 결여된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성격을 나타내게 하는 경정적인 표현을 쓴다. E의 신학은 J와 명백하게 대조되는데 E는 “야훼”라는 이름에 , “에흐예 아쉘 에흐예”라는 새로운 해석을 붙이고 있으며 , J가 신과 인간의 직접성을 강조한 반면에, 신과 인간의 엄격한 분리성과 거리감을 강조한다.
E의 신학적 특징에는 조상들에 대한 윤리의 정련화를 지적할수 있으며, E의 윤리는 범우주적이라기 보다는 민족주의적이요 세계주의적이라기보다는 교조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역사적 사건들을 죄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는 점에서 J는 보다 더 래디칼하다. 그리고 E는 유명한 “십계”(출 20:1-17, cf. D의 신 5:1-21)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 윤리적 십계는 아마도 본질상 모세의 것이라 할 만큼 상당한 고대의 성격을 갖고 있다.
3. N 자료층(제3의 초기 자료층)
N은 J와 E의 표현들과는 아주 밀접하게 평형되고 있으며, J와 E가 한 때 공동으로 기초했던 G¹에 의존하고 있다. N의 명백한 공헌은 유목적 특징을 가진 자료들을 제공해 준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N이 가진 신학적 특성은 정착문화의 토양에 대하여 명백한 적의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N의 연대결정은 그 채용하고 있는 전승자료에 의해서가 아니라 J와 N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얻어져야 할 것이다. N의 자료층 전체의 묘사는 정착묘사에 대한 J의 열정에 대한 강력한 도절적 반응이라는 색깔을 갖고 있다.
4. D 자료층 (신명기 법전)
D Siglum 또는 신명기는 “율법의 복사편”(신 17:18)이라는 히브리어에 대한 희랍역본(LXX)의 오역, 즉 “율법의 반복”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D 자료층은 신명기 32장(오경의 어느 자료층에도 속하지 않음), 신명기 31, 33, 34장을 제외한 현재의 신명기서 전체와 그리고 유월절, 무교병, 축제, 초태생에 관한 규례를 포함한다. D 자료층에 속하는 자료들은, 모압 땅에서 야훼가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새계약의 규례와 법도로 구성된 율법전(신12-26장)을 그 핵심부분으로 하고 역사적 회상과 복종에의 권면을 가지고 있는 일종 볍령형식으로 된 연설체의 서론(신1-11장)과 율법에의 복종권과 축복과 저주선언을 포함은 결론(신27-30, 31-34장의 몇 부분들)으로 구성되어 있다.
D의 기원 문제를 요시아 종교개혁과 연결시키는데 혁명적 제안을 한 자는 드․베테(De Wette)였다. 그는 D의 핵심부분을 요시아 개혁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서와 일치시키고 이 원 신명기가 편집된 시기를 “그것이 발견되기 얼마 전”이라고 보았다. D가 고대 여러 시대의 자료들, 국제법의 규범들 등을 채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교제의를 배척하는 엘로히스트의 영향이나 사회정의를 강조하는 예언전승의 영향등을 받고 있으며, 문학양식상 D법전은 결의론적 또는 필연적으로 기술되어 고대 중동과의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신명기 법전은 왕과 백성 사이의 “관계의 근거”를 만들어 주었으며 나타난 신학으로는 무엇보다 먼저 “유일한 하나의 제의”에 관한 사상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D법전의 특징은 “제의의 유일성” 주장과 함께 “현재(오늘)”의 백성들에게 주는 도전적 권고형식 속에서도 발견된다 하겠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실현으로서의 가나안 땅에서 “결단의 요청”앞에 서있으며 원 신명기 법전이 포함하고 있는 많은 규례들은 약속의 땅에 오랫동안 살려고 하는 그들이 WU야할 무거운 과제였다 하겠다.
5. P 자료층 (P 법전)
제자문서 또는 제사법전이라는 말의 머리 글자에서 빌려 온 P siglum은, 이 자료층이 갖고 있는 제의적이고 의식적인 제도들과 제사적 규례들에 관한 관심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P는 역사에 대한 시대구분을 “이스라엘적 신정”을 기반으로 전개하였는데 (1)창조로부터 노아시대 (2)노아로부터 아브라함시대 (3)아브라함으로부터 모세시대 (4) 모세시대 이후로 사분 하고 각 시대를 “신의 계시와 계약” 그리고 “신정의 기초적 제도를 제시함”등에 의해서 구분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P 신학은 그의 신정기대적 기술 속에 명확하게 표현되는데 그의 하나님은 절대 초월의 신이었다. P는 J에게서 볼 수 있는 “신인동형론적 또는 신인동감적” 표현을 찾기가 어렵고 P는 애써서 이러한 표현을 피하려 노력한다.
하나님의 절대 거룩성과 초월서에 대한 P의 강조는 하나님의 율법과 그 제도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사랑이 있다. P의 기원문제에 있어서 벨하우젠이 제안한 후대설은 별로 도전 받지 않고 있는데 우선 P는 그 문학 양식에 있어서 D와 에스겔의 영향 아래 있으며 비록 P가 고대전승들을 별로 따라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JNE의 고대자료를 오경의 기초자료로 전제하고 있다. H Siglum은 “너희는 거룩할 지니라, 왜냐하면, 너희 하나님, 나 야훼가 거룩하기 때문이다”라는 공식적이 SANS장이 자주 나타난다는 이유로 클로스텔만(Klostermann)이 붙인 이름이다. H 법전에도 첨가 및 수정 부분뿐만 아니라 이를 제외하고서도 많은 반복기사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H도 역시 C처럼 여러 개의 수집물들이 결합된 것이라 하겠다. H 법전은 다양한 자료들을 배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구조상 C보다는 덜 발전되어 있다 하겠으며 “거룩성”에 관한 관념에 있어서는 에스겔과 그리고 인도주의적 윤리관념에 있어서는 C,D와 거의 동일하다. H법전은 교훈적 성격 때문에 D와 가깝다.
4. 오경 구성자료들의 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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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이스라엘 민족형성사에 대한 역사 해석상 고찰
-히브리 역사가들의 역사이해를 중심으로 -
1. 정경적 구원사상
1). 구원사적 역사상
역사상은 “창조-족장에게 준 약속-출애굽 구원-시내산 계약-광야 인도-땅 수여”로 연결되는 도식을 구성하고 있으며 그 역사 서술의 성격은 신앙 고백적 개요이고 핵심적 주제는 출애굽 전승과 땅 정착 전승이며 그 주제들의 연결은 약속과 성취로 이어지는 야훼 하나님의 구원사적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서술들의 구조를 현재 형태의 육경 역사서 전체의 맥락에서 살펴보면 “육경의 축소판”같이 보인다. 육경에서든 사사기에서든 우리는 히브리 사가들의 역사상이 뚜렷하고도 명백한 구원사적 역사상을 구성하고 있음을 발견하게되고 이것이 또한 히브리사가들의 열사기술 및 역사해석의 특징임을 인식하게 된다.
2). 이스라엘 민족 형성사의 역사적 배경
구약역사전승의 신빙성을 명료히 증거 할 수 없는 이상 우리는 경전적 구원사상의 중심주제들이 연결된 그 대체적 서열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1) 족장 전승: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대표적 족장으로 방대한 부피의 족장설화는 이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인 이른바, 지혜문학적 교화설화로써의 요셉설화와 함께 가장 고대의 역사 고백문인 신명기 26:5-9의 첫 절로부터 우리에게 전승된 아주 간결한 표현이다. “하나의 생생한 민족적 상상”이 반영되어 있는 복잡 자료집이며, “아브라함→이삭→야곱”이라는 족장들의 그 족보 구성이나 그들의 유랑에 관한 성서적 서열은 이미 후대의 손질에 의한 인위적 구상임을 보여준다. 족장설화의 기본적 역사성은 그것이 전체 이스라엘 전승의 강력한 한 요소였다는 점과 그 족장전승의 뿌리를 고대중동지역에서 일어난 길고도 폭넓은 셈종족의 이동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족장전승의 영사성은 폭넓은 이주전승과 관련해 읽어야 할 것이며 이것은 이스라엘 형성사에 관한 중심적 역사전승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진다.
(2) 출애굽, 시내, 광야유랑전승: 그것들을 독립된 주제들로 독립시켜볼 때, 그 각 주 제들이 각각 역사적 핵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길이 없다. 본래는 서로 연속성이 없었던 각각의 역사적 경험들이 모여져서 하나의 통일성 있는 구원사적 역사성을 형성했을 그 전승사적 현실을 긍정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떠돌이들이 정착할 땅을 찾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므로 이스라엘의 땅 정착의 상황과 관련해서 이해해는 것이 바람직하다.
(3) 땅 정착전승과 암픽티오니 가설: 여러 가지 설득력 있는 암픽티오니 가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이스라엘이란 근본적으로 12지파의 연맹체라는 주장이다. 실로 이 연맹체는 “이스라엘 계약신앙의 한 외적 표현”이었다. 이러한 계약신앙은 출애굽의 경험을 중심적인 역사신앙으로 하는 무리들에 의하여 역사화되었고 이 출애굽의 경험 주위에 모인 많은 역사적 경험들은 또한 가데스로부터 가져 온 야훼신앙에 의하여 야훼 종교화되었다. 이러한 신앙은 “ 역사신조”라는 형태로 중앙성소의 제의적 낭송의식 속에 들어왔고 그것의 계속적인 현재화는 곧 각 지파를 하나로 묶는 바로 그 “힘”이었다 하겠다.
2. 이스라엘 민족 형성사에 대한 역사 해석
1). 이스라엘은 야훼의 약속성취의 결정
본래의 족장전승에서는 그 약속의 성취가 가까운 미래에 성취도리 것으로 말해졌으나 J와 E의 노력에 의하여 구원사적 개요 속에 삽입도리 때 여호수아 지휘 아래의 마지막 성취에로 확대되었다 하겠다. 약속과 성취의 주제는 이제 민족 형성사에 대한 대단원사적 고백의 중심주제 및 구원사적 대단원의 결론이 된 것이다. 즉 야훼의 모든 약속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이루어졌다고 고백되었다. 땅의 점유는 어디까지나 신의 약속이 성취도니 사건이다. 그러므로 야훼의 계명을 위반할 때는 “모든 불길한일도” 이스라엘에게 임하실 수 있다는 경고가 동반되는 것도 신명기적 사가의 신학적 기조에서 볼 때 자연스럽다 하겠다. 이는 곧 신앙에 의한 역사해석 양식이며 이스라엘사를 구원사로 해석하는 한 야식이라 하겠다. 이러한 역사해석양식은 구원사적 역사상을 붙들어 주는 힘이요 이스라엘 형성의 중추적 구성요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이스라엘은 야훼의 구원사의 결실
“야훼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오히려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작으니라>!”(신 7:7)이러한 신앙고백이 곧 12지파를 하나로 -야위즘의 공동체로-묶는 동력이었다. 야훼의 주격 강조는 암픽티오니의 시대의 사사들의 가나안 정착운동에 대한 도식적 묘사 속에서도 명백히 드러나는데 즉 “이스라엘의 범죄→야훼의 징계→이스라엘의 참회→야훼의 구원”이라는 도식적 구조가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형성은 전혀 “야훼”자신의 구원자적 행동의 결과였을 뿐이다.
3). 이스라엘의 기초
역사신앙, 그리고 야훼가 역사의 유일한 주라는 신앙고백(야훼의 역사화, 역사의 야훼신앙화)이 이스라엘 지파연맹의 구성요소였다.(즉 그것은 결코 암픽티오니에서 발생 진화한 신앙으로 볼 수 없고 오히려 그것을 유지하고 결속하게 하는 중심세력이었다). 출애굽 사건과 시내산 계약의 구원사적 연결은 이스라엘 신학에 있어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계약신앙과 계약법이 암픽티오니에 들어오므로 곧 그것은 이스라엘 형성의 초석이 되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Ⅲ. 야훼와 엘
1. 야훼와 엘의 일치 및 결합
신의 본질적 특성 사이의 공통성과 동질성을 통한 “야훼”와 “엘” 사이의 일치는 창세기 49장 24-25절의 야곱의 유언에서(신 33:13-17과 평행) 좀더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이스라엘 역사의 아주 초기부터 구약 전 역사에 걸쳐서 “야훼‘와 ”엘“은 그 본질적 특성의 동질성을 기초하여, 전혀 충돌 없이 일치되어 왔다는 점이다. ”엘․올람“(창21:33), 즉 영원하신 신의 경우처럼 야훼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셨다. 야훼의 자궁(레헴)속성은 철저히 긍휼(라훔) 속성으로 신학화되어 있었고 야훼의 젖가슴(사따이) 속성은 철저히 후손 축복의 ”전능성“으로 신학화되어 있었다. 야훼는 ”레헴“(자궁)의 엘이 아니라 ”라훔“(긍휼)의 엘이었고 젖가슴의 신이 아니라 생명 창조의 전능의 엘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즉, ”엘“의 총칭적인 기능이라는 맥락에서 우리는 왜 ”이스라-야“ 또는 ”이스라-야후“가 아니고 ”이스라-엘“인가라는 질문을 더지게 된다.
2. 이스라엘은 야비스틱 엘 공동체
야곱을 조상으로 한 신앙공동체는 “엘” 공동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모세 이전의 히브리인 이주그룹 중 초기의 어느 그룹들은 가나안의 “엘”제의들의 “엘” 신과 연결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오랜 아주 역사와 잘 조화되는 견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야후”또는 “이스라-야”가 아니라 “이스라-엘”되었으며, 그 이름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은 그 본질에 있어서 야훼와 일치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먼저 이루어진 “엘” 공동체 속에 출애굽과 시내산을 경험한 야훼 신앙의 친족무리들이 들어가 신앙적 주도권을 잡으면서 이루어진 야비스틱 엘 공동체였다고 할 수 있다.
3. 엘과의 관계에서 본 야훼
출애굽게기3:14의 엘로힘 문서가 말하는 바, “야훼”의 의미는 “에흐예․아쉘․에흐예”-“나는 나다” 또는 “나는 나일 것이다” I am who I am, 또는 I will be쪼ㅒI will be-라는 수수께끼 같은 문구 속에 암시되어 있다. 사제문서 신학자 출애굽기 6:3에서 야훼와 엘의 결합을 “사따이”와만 관련시키는 것은 생산축복의 기능과 야훼의 기능을 연결시키는 , 즉 족장에게 준 후손약속의 주제와 출애굽 해방의 주제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생산기능도 창조기능이요 해방기능도 또한 제 2이사야가 강력히 주장하였듯이 또한 창조기능이다. 창조자 “엘”과 창조자 “야훼”가 만난 것이며 족장 전승(족장종교) 출애굽전승(모세종교)이 만난 것이다.
Ⅳ. 토착화 신학의 성서적 전거
-“조상의 하나님”과 “야훼”의 만남-
1. 조상의 하나님(엘로헤 아비카)와 “엘”의 만남과 일치
“엘”의 설명적 칭호들이 이스라엘의 조상신들과 일치되고 또 “야훼”와도 이치되고 있는 그 성서적 현실이 갖고 있는 선교신학적 의미를 찾아보자
1. 조상의 하나님 “엘”이 되셨다. (하엘 엘로헤 아비키)
“엘로힘”, “엘 사따이”, “야훼”라는 신들, 즉 “신”을 의미하는 일반적 명칭과 고대형의 신의 별칭인 “엘․사따이이”그리고 “야훼”라는 고유한 이름의 그 연속적 배열이 창세기 17장 1절 이하(1절 ab와 3절 참조)와 출애굽기 6장 2절 이하(2절 ab와 3절 참조)에 나오는 사제문서 기자의 구원사 구도 안에서는 피차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즉 자손의 번성의 축복, 계약, 그리고 출애굽 구원의 신학적 주제들은 “구원사”이념의 문맥 아에서는 피차 충돌하지 않고 있다는 것과 그리고 이들의 결합은 그 신명들이 가져온 이념의 일치를 그것들이 수용하였다는 것을 전제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사실은 그 공동체의 특징에 기초한 신명과 그 이념의 일치는 이스라엘 야위즘이 가나안 토착화하는 필수조건이었다는 것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2. “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다. (엘 엘로헤 이스라엘)
야곱의 신앙고백(“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은 “엘”제의의 자리에 대신 들어서게 된 바로 그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제의를 이스라엘인들은 이스라엘 제의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선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2. 야훼와 “엘”의 일치
독장설화에 의하면, 야훼와 엘의 공통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성”은 지극히 높으신 신“엘 엘룐”보다는 생육과 번성을 취급하고 잇는 “엘 사따이” 신과 오히려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하겠다. 출애굽기 6장2-3절에 나타난 야훼와 엘․사따이의 일체에 관한 사제 신학자의 신학적 반성이 출애굽 해방의 주제와 함께 가나안 정착을 열렬히 희망하고 있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 “약속과 성취”의 주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에 전적으로 관심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사제 신학자는 풍요의 신“엘 사따이”와 창조의 신 “야훼”사이의 일치로부터 후손 번성과 땅에 관한 약속의 성취에 관한 한 보증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러한 일치 운동을 통해서, 사제 신학자는 두 시기, 두 이념, 그리고 두 전통 사이의 간격을 메우고 있는 것이다. 시로 야훼 종교의 가나안 토착화 과정에서 일어난 서로 다른 이념 사이의 이러한 동화, 일치 운동은 그들의 공통된 특질을 공유함으로써, 즉, 동종의 “엘 별칭”을 공유함으로써 정립되어갔던 것이다.
Ⅴ. 야훼․후․하엘로힘
1. “야훼․후․〔하〕엘로힘”의 성서적 컨텍스트
신명기 4장은 분명히 이스라엘로 하여금 “야훼․후․하엘로힘”이라는 신앙고백을 하게 하였던 그 신학적 컨텟스트를 두 가지로 요약하여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이스라엘이 겪은 그 “구원사적 경험들”은 신명기 신학자에 의하면 매우 광범위하다. 야훼 하나님의 정체성이 그의 역사적 구원행위를 통하여 확인되고 있는 이 현실은 결코 우연이나 문학적 기교의 산문이 아니라 야훼 하나님에 관한 구약증언의 기본현실이고 본질이다. 둘째로 야훼 하나님의 자기 정체성은 또한 신명기 4장7-8절에 명료하게 연역해 내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최고의 율법을 가르쳐 주셨다는 사실에 의해서 밝혀진다. 야훼의 정체성이란 오직 그의 구원사적 행위와 율법수여의 행위를 통해서만 비로소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야훼하나님의 정체성에 대한 이스라엘의 이러한 신앙고백은 어떤 신학적 결과를 낳았는가 하는 것을 규명하는 일일 것이다.
2. 야훼 하나님의 배타적 유일성(唯一性)과 진정성(眞正性)
다른 신의 존재는 상관하지 않고 야훼만의 신앙을 요구하는 실천적 유일신론의 시대로부터 다른 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부인하는 이론적 유일신론의 시대에로의 신학적 전환을 이룩한 “절대적 유일신론의 대변인”으로서 과서 수세대 동안 널리 알려져 온 제2이사야는 과연 그의 예언 메시지 선포의 주요 쟁점 또는 주요 목적을 유일신론의 신앙 또는 유일신론의 신학을 수립하는데 두었던 것일까? 제2이사야는 메시지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볼 때, 긍정적이지 않다. 제2이사야서(1-39)에서 선포된 야훼의 이스라엘 구원계획이 40장 이하의 제2이사야에서 추인되고 확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야훼의 정체성”(야훼․후․하엘로힘 ․엔 ․옫)선언은 야훼의 유이성 선포라기 보다는 “야훼가 참 신이다!”(야훼․후․(하)엘로힘)라고 하는 그의 신의로서의 진정성의 선포로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신명기 신학자가 야훼 신의 정체성을 선포하는 문형(야훼․후․(하)엘로힘)을 사용할 때의 그 신학적 동기도 또한 후일 제2이사야에게서 나타난 그 신학적 동기와도 동일하겠다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제2이사야는 신명기 신학자의 신학적 컨텍스트와 동일한 신학적 컨텍스트 안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구약성서에 유일신론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원론을 타파하고 있는 제2이사야의 메시지에서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분명,M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유일신론이 있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의 창조자”로서의 “참 신”(하엘로힘, the God)에 대한 신앙이 있었다. 즉 그의 구원활동을 믿고 그를 구원의 의지가 없는 그리고 구원할 수 없는 제국주의적 성격의 모든 이교의 신들로부터 구별하는 일신론, 이른바, “구원의지가 있으신 긍휼의 신”이 한 분 거기에 계시다는 것을 신앙하는 실제적 유일신론이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Ⅵ. 출애굽 해방사거의 구약신학적 의미
-출 14-15장 해석을 중심하여
1. 이스라엘 신앙의 기초인 출애굽 해방 전승
1). 역사신조
신앙고백문이, 분명, 족장전승, 출애굽 저능, 광야인도 전승, 가나안 입주 전승이라는 이스라엘 민족 형성사의 주요 전승들을 다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족장전승(신26:5)은 모두 각각 짧은 발전 정도로만 언급하는 대신 출애굽 전승(신26:6-8)만 유독히 6,7,8,절에 걸친 긴 내용으로 고백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출애굽 해방에 관한 전승들이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자기 아이데티티를 정립하게 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였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2). 안식일 법규
신명기 기자는 신명기적 조문을 출애굽 사건에 대한 언급이 없는 즉 출애굽기 20:8-11(E)에 나타난 E의 안식일 계명과 비교해 볼 때 안식일 계명의 옛 형태에 덧붙여진 이 “해석적 첨가문은 안식일 법을 주시하는 ‘역사적 이유“를 출애굽해방사건이 계명을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유일하고도 근본적 이유가 된다는 것을 증언한다. 그리고 노예법, 이민법, 등 법제정의 이유로 ”출애굽해방 사건“만이 집중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3). 축제 규례에서
유월절 규례나 초막절 규례 등을 잘 지켜야 할 그 역사적 이유가 전적으로 출애굽 구원사건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특히 성결법전(H)의 기자는 이스라엘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각 후 세대에게” 즉 미래의 세대에게 야훼 하나님의 출애굽 구원행위를 알리기 위하여 초막절을 지켜져야 한다고 하는 것을 증언하고 잇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출애굽 구원행위를 기억하고 인식하는 일이 축제예배의 근본동기요 근거요 목적이라는 것이다.
4). 기타 법전 자료
신명기 법전의 한 조문(신 15:12,15)에 대해 출애굽 사건이 바로 이러한 신학적 수정, 보완의 근거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계약법전과 성결법전도 역시 이민법 제정을 선포할 때 그 법 준수의 신학적 근거가 출애굽 구원사건에 있다는 것을 또한 역시 역설하고 있다.“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셨다”라는 표현이 신앙고백문이 되고 이스라엘의 “원신앙고백문”이 됨, 육경전승들의 중심적 핵이 됨이 우연이 아님을 밝힌다.
5). 역사해석의 범례
출애굽기 2장 24절과 6장 5절에서 하나님의 출애굽 해방활동의 동기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계약을 기억”하신 일에서 왔다고 하는 주장을 새롭게 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제법전의 신학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포로후기의 시인인 시편 105편 시인도 또한, 이스라엘의 출애굽 구원사를 다 회상한 다음, 그 결론부에서 출애굽 사건은 어디까지나 야훼 하나님은 이스라엘 선조들과 맺은 계약을 성시하게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 사건이라고 증언하고 있음을 본다.
a. 예언서 : 예언자들의 경우 출애굽 사건의 의미가 더 규명되어 있다. 아모스는 엣소두스 신학의 탈민족주의적 세계주의의 성격을 천명함과 동시에 엑소두스가 구원뿐만 아니라 신의 심판의 목적이 되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에스겔과 제2사야를 보면 에스겔에 있어서 출애굽 사건은 애굽, 바벨론, 그리고 기타 이스라엘이 정착했던 여러 이교 나라들의 제국주의적 유산을 과감히 떨쳐버리는 이른바 과거의 죄스러운 유산을 심판하는 “새로운 출애굽 신학”사건으로 이해되었다. 제2이사야는 새 엑소두스를 맞이하고 준비하는 자들은 단순히 슬픔에 젖어 과거를 되돌아보거나 또는 과거의 영광에 매여 거기에 안주하거나 하는 일은 단연 버리고 단지 곧 일어난 그리고 새로이 갱신도리 그 새 일을 향하여서만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전승에서 늘 새롭게 그리고 다양하게 회상되고 재해석되어 왔다는 한 결론에 도달한다.
b. 시편: 시편 105편 24-28절은 출애굽 사건의 의의를 “조상들과의 계약을 성취하는 일”에서 찾았고 시편 106편 7-12절은 출애굽 사건의 의의를 야훼의 명성을 더럽히지 않고 그 이름을 거룩성과 위대성을 높이 기리려는 의도에서 발생된 일로서 이해하였던 것이다.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신앙을 측정하는 일종의 가장 대표적이고 모범적인 바로미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다.
2. “출애굽/ 바다사건”의 보도에 대한 비평학적 분석
바다사건은 전승사적․내용상으로 볼 때 가장 첫째 되고 중심적인 출애굽 신앙고백행위 바로 그 자체, 핵심이라고 할 있다고 주장한다.
1). 야비스트(J)의 해석
J기자의 도보에 특징적인 것은 바다 기적사건이 “어디에서”일어났느냐 하는 것을 알리는 문제나 이스라엘이 바다랄 통과한 사실에 대한 상황보도에 관심하는 것보다는 표준화된 신화시적 표현으로 묘사된 “야훼의 전쟁”의 인습적이고도 제의적인 전쟁문학 패러다임에 담아서 “전쟁용사로서의 야훼 이미지”증언하는데 훨씬 더 관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야비스가 전하고 있는 거룩한 전쟁 패러다임은 J의 의하면 이스라엘은 야굽군대의 시체만을 본 것이 아니라 야훼의 큰 구원행위도 보았다하며 해방 전쟁에서의 하나님의 일한 주체적 행위를 증거하고 있다.
바다사건에 과한 야비스트의 문학적 구성은 구약의 거룩한 전쟁설화문학에 나타난 구성요소들과 미리암의 노래에 나타난 그 신화시적 묘사 양식과 이데올로기적 관점에 있어서 매우 일치되는데 야비스트가 제시하고 있는 일곱 가지 주제들을 미리암의 노래와 비교하여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정리하면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이 전쟁의 주도자는 오직 야훼이므로 어디까지나 이 전쟁은 “야훼의 전쟁”이다.
둘째, 야훼의 전쟁이란 어디까지나 위기에 처한 약자의 “부르짖음”에 응답하는 약자해방을 위한 약자방어전이라는 사상이다.
셋째, 야훼의 전쟁에서 인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야훼에 대한 “두려움 없는 믿음”이라는 사상이다.
야비스트는 이 출애굽 해방전승을 통하여 감히 여하한 제국주의 논리나 힘의 논리도 거부하는 절대 불 퇴진의 비폭력 저항에 의한 야훼주의 이념을 수립하는 평화적 평등사회 실현에 대한 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2). 엘로히스트(E)의 해석
엘로히스트의 주요 관심은, 애굽을 떠나온 이스라엘 선조가 그들이 옛날에 살다가 들어간 사실을 전하는 데 관심 하였다. E에게 출애굽의 목적은 신속히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먼 광야 길로 들어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해방사건을 경험하는데 있었다.
3). 사제문서기자 (P)의 해석
바다 기적사건에 의한 출애굽 해방사건은 P에 의하면, 애굽 재앙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시내산 사건에 이르는 “야훼 주권 선포” 사건들 중의 하나였다. 이 사실은 야훼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14:4)군대를 풀어 이스라엘을 뒤쫓게 했다는 그의 독특한 신학적 진술을 통해 입증된다. 즉 절대 신격화된 “바로” 조차도 야훼의 이스라엘 해방 역사성취의 한 도구로 이용되었을 뿐이고 이를 통하여 “야훼가 누구이신지”가 바로와 그의 백성에게 알려지게 되고 야훼의 명성과 영광이 찬양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바로왕이 신권이 비 신격화되고 야훼의 유일한 주권이 확립된 것이다. 이 사건은 P에게 있어서 야훼의 유일한 우주적 왕건의 확립사건이었다.
4). 종합 정리
J.E.P의 바다 기적을 통한 출애굽 해방사건에 관한 증언을 공통된 기조로 정리하면 첫째, 출애굽 해방사건은 구약이 증언하는 구약구원사란 단순한 개인의 자기 해방사가 아닌 정치적, 사회적 차원에 속한 한 약속민족의 역사적 해방사와 일치된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둘째, 이 사건은 성서가 말하는 인간해방사나 불의한 억압세력-원수를 격파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사라는 것을 증언한다. 셋째, 야훼 하나님의 유일한 왕권/ 통치권을 선포하고 수립하는 것이 인간 해방사와 궁극목표라는 것을 증언한다.
Ⅶ, 왜 하나님의 전쟁인가?
-“해방신학”과의 대화를 위하여-
1.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의 전쟁의 대표적인 성서적 패러다임
미리암의 노래에 나타나게 된 신학이념을 세 가지로 정리하면 첫째, 『바다의 기적을 주도하신 야훼 하나님은 “전쟁의 용사”이시다』라는 사상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안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실질적인 희망이시라는 것을 긍정하는 신앙 고백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의 전쟁”은 어디까지나 약자를 강자로부터 건지시고 보호하시는 “편당적 성격”을 띤다는 사상이다. 셋째로 전쟁과 전쟁의 승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다는 이념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쟁 이념”은 하나님의 인간해방사 또는 인간구원사를 증언하는 구약의 역사 사료, 예언서, 묵시문학, 시편 시 등 구약 전반에 걸쳐서 깊이 그리고 널리 반영되어 있는 이념이다.
2. 왜 하나님의 전쟁인가?
1). “하나님의 전쟁”은 해방 이데올로기에 기초된 약자보호의 방어전
“전쟁의 신, 야훼”의 역설적 이중성, 즉 전쟁으로 심판하시는 “긍휼의 속성”사이의 조화와 일치를 보게 된다. 이 점이 이스라엘의 밖 고대 중동국가들의 신의 전쟁들이 지니고 있는 그 지배이념적 배경과 이스라엘의 것 사이에 엄격한 구별이 생기는 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스라엘 해방사를 이와 같이 “하나님의 전쟁”이라는 방식으로 증언하는 그 중요한 신학적 이유도 바로 여기에 나타나고 있다.
2). “하나님의 전쟁”이념은 이스라엘의 신 야훼를 “역사의 신”으로서 그리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역사적 해방사건으로서 신학화한다.
성서의 하나님은 “전쟁용사”라는 이미지를 통하여, 그의 관념적 이미지를 비로서 벗어 던지게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성서의 “구원”은 이렇게 하여 철저히 그 관념적, 추상적, 정신적, 영적 의상을 벗어 던지고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는 사회적 부조리의 굴레로부터 해방 받는 “역사적 해방”이라는 개념과 일치하게 된다. 하나님의 전쟁이념은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만나듯이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초월자 하나님과 피안적 구원도 죄스러운 인간 역사 현실 안에서, 즉 피안(彼岸)이 아니라 이 차안(佌岸)서 만나고 체험하게 한다고 하겠다.
3). “하나님의 전쟁”은 인간의 전쟁 참여를 거부한다. “폭력 또는 전쟁폭력은 전혀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이념, 인간의 전쟁행위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반전이념이 여기에 작용하고 있다고 하겠다. “하나님의 전쟁이념”은 인간해방을 위하여 “인간이”해야 할 행동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4). 하나님의 전쟁이념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
(1) 부르짖음
구약성서에서 의미를 보면 하나는 인권침해를 당한 개인 또는 공동체가 그 폭력으로부터의 구원 또는 보호를 요구하는 “외침”(창18:20-21), 또는 하나님과 지도자를 향하여 부르짖은 좌절과 탄식의 “항변”등에 나타나는 부르짖음으로 지적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초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을 맞던 날 부르짖었던 참회의 “부르짖음”이다. 하나님의 이스라엘 해방/구원사를 충동한 핵심적 요소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불의한 지배자에 대한 비폭력적 저항운동은 하나님의 해방전쟁을 충동하는 성서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을 우리는 성서적 현실로부터 배운다.
(2) 절대 신뢰
하나님의 전쟁이 있는 한 승리인 해방 또는 구원은 전적으로 유일한 하나님에 속한 것으로 오직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 만이었다는 것은 뚜렷하게 반영되는 사상이다. 인류평화를 위한 해방전쟁의 진정한 승리는 야훼의 법(토라)에 따라 사는데 있다.
(3) 원수진멸 (할렘)
하나님 대신 인간적 힘에 의지하려는 “비 신앙”과 그리고 그러한 힘을 믿는 잘못된 신앙을 타파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전쟁이념이 시도하고있는 신학적 의도이다.
Ⅷ. 창세기 1-2장에 나타난 창조신앙
1. 창조신앙의 신학적 위치
창조신앙은 이스라엘 신앙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 확실한 것과 마찬가지로 창조신앙은 또한 이스라엘 신앙의 이차적, 또는 종속적 신앙이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다고 하겠다. 우리는 기독교 사도신도가 명백히“그리스도적”이면서도 창조주에 대한 신앙고백을 전제하여야만 하였던 것처럼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신조”도 역시 “구원사적”이면서도 창조주에 대한 신앙을 전제하였던 것임이 확실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2. 창세기 1-2장의 창조신앙
(1). 야비스트(J 창 2:4-25)은 그의 창조신학을 “인간의 창조”에 초점을 맞춰 전개하였다. “인간과 따” 사이의 “불가해한 관계성”에 대한 야비스트의 진술이 지니고 있는 그의 창조신앙의 특수한 점이다. 야비스트는 “하나님과 같이 되어 보려는 ”인간지식의 “타이탄적-프로메테우스적”동기가 낙원을 상실케 한 그 원이 있다고 증언하였다. 야비스트는 창조신학을 전적으로 “땅”과 인간사이의 우주적 종말론적 상황관계성에 대한 신학적 각성 위에 수립하였던 것이다.
(2). 창조에 관한 사제신학자의 교의로서 우선적으로 먼저 언급할 교의는 창조의 주체자와 그 대상을 분명히 구분하고 그 차원의 차이를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모든 창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그 모든 창조가 철저히 하나님의 뜻으로서의 그 “말씀에 의한 창조”의 이래 모든 창조활동은 “혼돈으로부터 전이운동”이며 그 모든 창조는 선이라고 주장하는 교의라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인간창조 목적에 관한 교의이다. 인간창조의 목적을 둔 신학은 이교의 창조신화에만 발견될 뿐 창세기 1-3장의 창조신학에는 결코 발견되지 않는다.
결론
이 책을 정리하면서, 저자의 의도가 구약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저자의 관점에서의 방향성과 요지를 알려주고자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많은 비평신학자들을 다룸으로 인해서 저자가 의도했던 구약신학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기본적 지식을 주려고 했던 의도를 흐리게 한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신학에서 모세를 통한 이스라엘에게 계시되기 이전에는 하나님을 “그가 (스스로) 존재한다”라고 했으나 모든 창조물의 존재론적 발전과정의 바깥에 계신 분, 즉 아닌 그가“창조하신다, 있게 하신다, 존재하게 하신다”라고만 말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학기 동안 구약신학을 공부하면서 구약성서신학에 관하여 폭 넓은 이해를 할 수가 있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저자의 구약성서를 보는 관점이라든가, 해석학적 방법들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서 딱히 저자의 의도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자의 다른 저서들을 살펴보던 중 저자가 이 책에서도 나타내고 있었던 저자의 성서에 해석학적 대한 관점들을 보다 명확하게 발견할 수가 있었다.
저자는 “성서해석학의 위기와 새 소명”이라는 논문에서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신앙의 문제로 돌릴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성서는 신언(神言)을 담고는 있으나, 그러나, 성서의 문학 그 자체 또는 성서의 문자 그 자체가 곧 신언(神言)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누구나가 다 안다. 그러나, 성서의 문자와 문학 속에 담겨 있는 그 신언(神言)이 과연 무엇인지는 누구나가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성서해석학의 과제는 성서 문학 속에 담긴 신언(神言)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써비스 학문"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신학의 스승들인 구미의 성서학이 지금까지 추구해온 역사과학적 성서비평학들, 자료비평, 양식비평, 전승비평, 편집비평, 수사(rhetorical) 비평학 등등은 "신언"(神言)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교적 책임감"이 없이 순수하게(무색 투명하게)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에만 성서문학을 맡겨 두려고 하였는데(여기에는 일종의 대단한 학문주의적 자부심이 개재되어 있는데) 바로 여기서 일종 성서학의 막다른 골목(cul de sac)이라는 것이 나타났다.
저자는 해석학에 있어서 “선교적 책임감” 이야기한다. 우리는 단순하게 객관적인 분석에 그치지 않고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영의 도움을 얻어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이곤 저『구약성서의 신앙과 신학/한신대학 출판부/에서 자료 정리
첫댓글 월말에 공과금 통신료를 못내고..카페운영이 어렵습니다
카페를 잘 운영하도록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농협 233012 51 024388 예금주 황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