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마루
김혁종(2021. 7. 신인상. 전북)
군軍 생활의 시작인 00훈련소에서 기본 교육을 마쳤다. 자대 배치 명령을 받기 위한 00보충대 가는 길은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이었다.
사단 명칭부터 무섭게 생긴 00부대 보충대에 도착한 것은 깊은 밤, 강원도 산골 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된 10월도 끝나가는 때였다. 낯선 시골 역 근처 여인숙 같은 곳에서 먼저 와 대기하고 있는 낯선 대기병들과 어색한 밤을 지낸 다음 날 이른 아침은 모든 것이 생소하고 두렵기조차 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일과가 시작되었다. 먼저 온 대기병들이 많이 보였는데 분주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활동 중 앉아서 하는 새끼줄 꼬기가 제일 힘이 안 들고 쉽게 보였다. 그때 마침 선임병이 새끼줄을 꼬아서 용마루*를 엮어야 되는데 할 줄 아는 병사가 있으면 손들어 보라 했다. 옆에 있던 입대 동기가 새끼줄 꼬기가 쉽고 편할 것 같다는 말만 믿고 용감하게 손들어 지원했다.
사실 나는 새끼줄을 한 번도 꼬아본 적도 없고 용마루가 뭣에 쓰이며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조차 해 본 일이 없는 처지였다. 일이 맡겨지자 동기가 새끼줄은 그럭저럭 해보겠는데 용마루는 만들어 본 일이 없다며 난색을 한다. 용감하게 지원은 해 놓고 할 줄 모른다니 이만저만한 낭패가 아니었다. 몇 명씩 팀을 이루어 짚을 추리고 새끼를 꼬는 등 여러 작업팀 간에 속도를 비슷하게 맞춰서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용마루 팀은 짚으로 엮기는커녕 새끼줄 꼬는 것조차 앞으로 나가질 못해 손을 놓고 있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결국 우리 용마루 팀 때문에 다른 작업팀도 자연히 속도가 느려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과가 끝나갈 무렵 올 것이 오고 말았다. 호랑이보다 무섭고 하늘같이 높게 보이는 상사의 호출에 새끼줄과 용마루를 담당하기로 한 세 명이 불안한 마음으로 불리어 갔다. 보충대에서 이런 참담한 작업 상황은 처음 있는 일이라니 강원도 10월 찬바람에도 등골에 땀이 나고 말았다. 여지없이 호된 꾸지람과 얼차려에 돌입했다. 한참 얼차려 받고는 용마루를 구경도 못 해 본 놈들의 거짓 지원 때문에 부대 일 망쳤다며 전시 같으면 너희 놈들 때문에 전원 전사할 수도 있다는 훈시를 했다. 큰 실수를 했다는 두려움과 뒤따르는 죄책감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조금 편해 보겠다고 어떻게 되겠지 하는 잔꾀를 부려 전체의 일을 그르쳐 놓은 어처구니없는 잘못된 행동이었다.
소문은 보충대에 빠르게 퍼졌다. 이 용마루 사건으로 내 이름과 계급은 간 곳 없고 ‘용마루’ 병사라는 딱지가 붙었다. 특히 고참병들이 만나기만 하면 “야! 용마루”라고 불렀다. 그럴 때마다 창피하고 괴로워 어디로든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기병 생활을 마치고 사령부로 배치되어 보충대를 떠나는 날이다. 군용 백을 들고 차에 오르기 전 “야! 용마루, 잘 가라”라며 고참병들이 웃으며 포옹과 악수를 해준다. 차가 모퉁이를 돌아 안 보일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에 마음이 울컥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짧은 날이었지만 빨리 이곳을 벗어나기를 학수고대했는데 오히려 헤어질 때의 고참병들의 따뜻한 모습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훗날, 이런 것이 전우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함께한 전우들이 지금도 그리워진다.
용마루 사건은 자대에 배치되어 3년여 동안의 군 생활을 무사히 끝낼 때까지 적당히 라는 내 사고방식에 변화를 주는 계기가 되었다. 주어진 일에는 근본적인 원인부터 생각해 보는 습관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이 가슴에 자리 잡아가기도 했다. 내가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면 경솔하게 나서지 않았고 이를 실천하려 노력했다.
군 생활에서 용마루라는 별명으로 몸에 밴 신중함은 제대 후 사회생활을 하는데 이정표 같은 안내판 역할을 해 주었다. 계약을 하거나 물품 거래를 할 때 용마루가 떠올라 신중을 기했다. 내가 손해 보는 것도 막아야 하지만 남에게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의식도 짙게 작용했다. 불에 한 번 데고 나서 얻은 쓰디쓴 교훈은 일상에서 귀한 약이 된 셈이다.
군 생활이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꼭 지켜야 할 국민의 의무이지만, 힘든 생활을 해야 하는 부담감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때의 용마루 사건은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한 번쯤 겪어볼 만한 값진 경험이었음을 실감한다.
지금도 내 안에는 어설픈 용마루 하나가 내 삶을 저울질하는 좌우명으로 자리하고 있다.
[당선 소감]
글을 쓴다는 것은 나한테는 커다란 사건입니다. 내 삶의 많은 세월을 체육 활동에 종사하면서도 감동적인 글을 대할 때마다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평생교육원 글짓기 교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니 글재주가 없는지 너무나 낯설기만 했습니다. 늦은 밤까지 내 나름대로 열심히 쓴다고 노력한 작품이 여러 사람 앞에서 이런저런 지적을 받을 적엔 이를 수긍하고 받아들기 전에 내 능력이 탄로 나는 것 같아 창피해서 포기하고도 싶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지인을 따라 <수필창작> 반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늦가을에 창틀 사이로 살며시 스며드는 따듯한 햇살처럼 내 가슴에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용기를 주신 분들을 만났습니다.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이제 막상 등단이라는 허락을 받고 보니 아무도 가보지 못한 행성에 홀로 서 있는 듯 두려움이 앞섭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라는 뜻으로 삼고 글을 쓰겠습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도록 힘을 주신 지도 강사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구불길문우회 문우들과 평생교육원 회원님과도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어려운 관문을 통과시켜 주신 심사 위원님 감사합니다.
첫댓글 김혁종 선생님. 2021년 7월 <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과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더 좋은글로 만나뵙기를 바랍니다.
등단작품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김혁종 선생님, 수필과비평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용마루는 초가지붕의 이영의 맨위에 올리는 것으로 용마루 틀기는 숙련된 사람이 아니면 쉽지않은 일이지요, 잘 읽었습니다.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