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22.水. 새벽, 하늘은 짙은 구름
반환점返還點.
어제까지가 108일 기도의 딱 절반인 54일째 되는 날이었다. 새벽에 집을 나서면서 이제부터는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기도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사실 기도를 하면서 기도 못지않게 좋은 것은 봉은사奉恩寺까지 기도를 하러가면서 새벽을 걷는 시간과 기도를 마치고 집까지 새아침을 걸어오는 시간이었다면 이것은 두 발로 생각을 향해 걸을 줄 아는 사람만 느껴볼 수 있는 특별하고도 별난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좌우로 일정하게 흔들리는 몸의 리듬에 맞춰 호흡을 하고, 두 발바닥에 전해오는 땅의 울림을 받아들이고, 하늘과 땅의 기운을 빨아들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공간의 자연스러움은 생각의 그릇인 몸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즐거움의 하나라고 생각을 한다. 집을 나설 때부터 비가 조금씩 흩날리고 있었다. 우산을 펴기에는 빗방울이라기보다는 비먼지에 가까워 비답지가 않았고, 우산雨傘을 접어들고 가기에는 뭔가 손해를 보는 듯한 생각이 드는 그런 정도였다. 그냥 걸을 때면 비를 거의 느끼지도 못하다가 주황색 가로등불을 지나칠 때면 점점의 빗방울이 어슴푸레 눈앞에 떠올랐다 흩어졌다. 가끔 넓은 도로의 끝에서 몰려온 검은 바람이 줄줄이 늘어선 가로수를 부드럽게 흔들어주었다. 고요한 새벽이라기에는 그렇고 밤새 무언가를 만들어 이른 아침에 세상에 내보일 양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한 생동하는 새벽의 표정이었다. 저 멀리 내 시선이 미치는 100m나 200m 안에서 행인이 한 명 혹은 두어 명 보일 듯 말 듯한 이런 어스름한 풍경을 나는 참 좋아한다. 비의 예감으로 습도는 높았지만 바람은 시원했고 몸은 가벼웠다. 또한 기도의 반환점返還點에 들어섰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높이 상승하고 깊이 아득해졌다.
봉은사에 들어가면 내가 주의 깊게 조심하는 곳이 한 군데 있다. 사천왕문을 지나 법왕루 오른편에 해우소와 등나무 휴식처가 있어서 나는 빠알리 초기경전이 들어있는 작은 가방을 등나무 휴식처 돌 위에 올려놓고 해우소에 들어갔다 나와서 큰법당으로 올라가고는 했다. 몸을 개운하게 비우고 얼굴과 손을 씻으면 기도에 더 집중이 잘 되기 때문이었다. 해우소 입구에 계단 턱이 하나 있는데, 대리석 돌과 땅바닥과의 차이가 그리 깊지도 않건만 새벽에는 이곳이 약간 어두워 항상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해우소에서 나와 가방을 가지러 등나무 휴게소 쪽으로 발을 내려딛으려면 그곳에는 처마 낙숫물받이로 놓아둔 것인지 수키와가 몇 장 놓여있어서 둥그스름한 모서리에 발이 헛딛지 않도록 그때마다 조심을 해야만 했다. 얼굴과 손을 씻고 해우소를 나서려고 발을 내딛으려하는데 기도를 오는 도중에 비가 흩날렸던 기억이 갑자기 나서 아참, 비에 젖은 수키와 등이 미끄러울 테니 조심을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자 순간 발을 멈칫하는 바람에 기와를 반듯하게 밟지 못하고 오히려 비스듬히 밟아버렸다. 내려밟은 오른쪽 발목이 바깥쪽으로 꺾이면서 복숭아뼈에 불길이 관통하는 듯한 통증이 짧게 훑고 지나갔다. 그러고 나서 나는 등나무 휴게소에 앉아 발목과 복숭아뼈 부근을 한동안 주무르다 절뚝거리면서 큰법당으로 올라갔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괜찮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발목의 통증이 심해지면서 일어서고 앉고 엎드리기에도 불편하기 시작했다. 통증이 올 때마다 오늘이 기도의 반환점이라 무언가 깊은 뜻을 부처님께서 나에게 알려주시려고 하는 모양이다. 라고 생각을 했다. 기도가 한창인 새벽 다섯 시경부터는 빗줄기가 다발이 되어 검은 하늘에서 줄기줄기 쏟아져 내렸다. 쏴아아... 쏴아아... 하는 빗소리가 아득한 전생의 울림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기도란 무엇인지, 기도를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기도를 하는 나와 기도를 하는 대상의 명확한 실체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그랬다.
기도를 끝내고 큰법당에서 나와 종무소 앞 빈 의자에 앉아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전화소리에 잠을 깨버렸겠소. 차를 가지고 봉은사 주차장으로 좀 와주시겠소. 응, 뭐 별건 아닌데 발을 조금 접질린 것 같으오. 예예, 그래요. 지금 종무소 앞 의자에 앉아 있어요. 잠시 후 집에 돌아와 아내가 복숭아뼈 부근에 약을 몽땅 발라주었다. 그리고 예쁜 복숭아뼈가 이제는 잘 익은 복숭아만큼 부풀어 올라 있었다. 아내가 슥슥 약을 발라주는 동안 반환점返還點이란 단순히 되돌아가는 지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향해 목표를 정밀精密하게 추구해가는 마음의 결단을 의미하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한 번 두 번 여러 번 하고 있었다.
(- 반환점返還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