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詩碑 [자유 평화의 빛]
세종시 개미고개 - 왼쪽 입구 석비가 박경석 시비 [자유 평화의 빛]이다
기념비 [자유 평화의 빛] 앞에서. 김혜린
내 뒤 기념비'자유 평화의 빛' 제자(題字)는 내가 썼다.
새로 단장한 시비. 위 모서리를 자연스럽게 깎고 입구쪽으로 옮겼다.
아래 박경석 시비는 최초의 모습. 모서리가 각져 있다.
박경석 시비(詩碑)
자유 평화의 빛
박경석
보라 이 평화로운 산과 들
지난날 불길 솟아 올랐던
끔찍했던 죽음의 고갯마루
이름도 모르는 곳에 자유를 위해
이역만리에서 달려와 평화를 위해
숱한 생명 버려가며 버틴 이 능선
어디 자유가 거저 얻어지는 것인가
평화 또한 절로 찾아오는 것인가
아니다 많은 장병이 생명 불살랐기에
오늘 이 땅에 빛으로 남았느니
세월은 흐르고 흐르지만
영웅들 공훈은 영원하리라
우리는 자유롭고 평화로울 때마다
이들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오 자유 평화의 빛이여
박경석 설명비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이 남침을 시작하자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전쟁개입을 선언한 후 미 24사단 21연대 1대대를 선발
대로 하여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를 편성 오산 죽미령에 배치한다.
7월 5일 인민군 4사단의 공격을 받은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전
투에 임했으나 대부대 공격을 감당 못하고 격파당하여 많은 희생
을 내고 분산 철수하는 비운을 겪게된다.
이에 미24사단장은 21연대 스티븐스(Richard W. Stephens)대령에
게 잔여부대를 지휘,1번국도에 걸친 지연작전을 수행케 한다.
동년 7월 7일,미 21연대는 사단장 딘(Richard F.Dean)소장으로부
터 "조치원 부근에 진지를 점령하라"는 구두 명령을 받고 다음날
미곡리의 개미고개 좌우측 능선에 지연진지를 구축하였다.
7월 11일 새벽,인민군 4사단에 이어 3사단이 교대하여 개미고개
미군진지에 공격해 욌다.
미 21연대는 전의와 조치원간 전투에서 5일간 적의 남진을 지연
시킴으로써 인민군의 남침전략에 타격을 입혔다.
이에 장병들의 영웅적인 공적을 기리고 전사한 장병의 명복을 기
원하는 뜻에서 격전지 개미고개에 시비와 기념비를 세운다.
이 기념비가 한미동맹을 견고히 하고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후
세에 일깨우는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글 박경석 장군
첫댓글 한미 우호 증진을 위해 충남 연기군에서 미군 격전지에 기념공원을 조성하였다.
세종시에서 이관 후, 시장 주관하에 매년 기념행사가 이어진다.우리국군과 미군의 수뇌들, 시민 등이 참석하는 큰 행사로 알려졌다. 세종시에서는 이 행사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이 기념공원은 2005년 5월 20일 준공되었으며 2013년에 국비 3억원과 세종시비 5억 5천만원을 들여 새롭게 단장했다.
기념행사는 해가 갈수록 규모가 확대돼어 미군 전사자 가족까지 참석하는 국제규모 행사로 발전하고 있다.
나는 2005년 준공식에 참석한 이후 상당 기간 뜸하다가 2012년 대전으로 귀향 후 처음 2018년 10월 30일 오전에 아내와 함께 둘러 보았다.이날은 매우 청명한 가을 날씨였다. 약간 쌀쌀한 기온 12도C였지만 바람이 없어 상쾌했다..
준공 후의 기념공원과 주변은 황량하였으나 새로 단장한 오늘의 모습은 어느 기념공원과 비교해도 손색 없이 정비돼 있었다.
보강공사를 할 때 '자유 평화의 빛' 시비를 반대편 위치에서 입구 쪽 중앙에 옮긴 것은 잘한 일이다.
기념공원에 접근하는 모든 방문객이 볼 수 있게 유도하고 있다.
'자유 평화의 빛' 구조물은 원래 기념비로 만들어졌는데 일부에서 위령비로 호칭하고 있어 정정하기 바란다.
이 기념비는 자유와 평화를 기리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시비 뒤 설명비에도 분명히 '기념비'로 조각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