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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
코타키나발루가 속해 있는 사바 주에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키나발루산(4001m)이 우뚝 솟아있지만 평범하면서 가깝게 보인다. 그러나 얼핏 보기와는 달리 험악하기 짝이 없는 지형에 식물의 보고라고 한다. 하지만 코타키나발루의 해안일대는 넓은 평원으로 잘 정지작업이 된 곳 같아서 나무를 베어내면 곧바로 대지나 논밭이 될 수 있을 만큼 평지이다. 현지인들은 대체로 키가 작으면서 피부는 까무잡잡하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라도 거부감을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호감이나 친밀감을 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비록 처음 만난 얼굴로 피부가 다르고 키와 머리와 생김생김이 달라도 눈빛을 보면 무엇을 말하고 싶고 알고 싶어 하는지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속을 뚫어보고 있어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다. 네덜란드, 포르투갈, 일본을 거쳐 영국의 식민지에서 수백 년 만에 독립하여 말레시아에 편입된 곳이다. 주민들은 일하기를 꺼려한다.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보르네오에는 열대지방으로 자연 속에 풍부한 먹을거리가 널려있다. 그런데다 너무 오랜 동안 여러 나라의 통치를 받다보니 열심히 일해도 자신들에게는 돌아올 몫이 그다지 없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먹을거리는 철저하게 관리되고 회교국가로 돼지고기를 절대 금기시 한다. 술도 즐기지 않아 모임이나 회식에서도 거의 술보다 음료수를 놓고 즐기는 문화이다. 하지만 먹을거리를 갖고 함부로 불량식품을 만들거나 유통기간을 속여 장난치다 큰 코 다친다. 다른 범죄보다 더 철저하게 법적용을 받으며 용서가 없다. 정부에서 인증하는 상표가 아니면 신뢰를 않는다. 브라질의 아마존 강유역이 70%쯤 개발되었다면 보르네오는 50% 정도밖에 개발되지 않은 원시의 청정지역이다. 일부지역에서는 왼손으로 변을 씻을 만큼 화장실문화는 얼굴을 붉힌다. 말라리아에 유난히 약한 그들은 열매보다는 모기를 퇴치하기 위해서 바나나를 집안과 울타리에 심는다. 바나나나무만의 특유한 냄새가 모기를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나나문강에 반딧불이를 보러가는 길에서도 농경지가 눈에 들어오고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가을처럼 풍성해 보이지는 않았다. 소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방목이다. 변변한 목장을 마련한 것도 아니다. 편한 세상 같지만 자연에만 의존하는 원시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이름 모를 꽃에 눈길이 간다. 이름 모를 새라도 귀엽고 귀를 간지럽게 한다.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소가 삶에 필수인 염분을 보충하기 위해서 바다로 간다. 길가로 자진해서 나와 자연스럽게 줄을 서고 무리를 지어 가고 있다. 이 또한 자연이 만들어 주는 진풍경이다. 소는 대체로 작은 몸집이고 털은 회색에 가까우며 윤기가 부족해 힘이 없어 보인다. 우리의 한우와는 겉모습에서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다. 육질도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문득 뉴질랜드의 목장에서 젖을 짜기 위해 한 줄로 착유실로 가던 모습이 스쳐갔다. 바닷물을 먹기 위해 가는 모습과 젖을 짜러 가는 모습은 그 목적 자체가 다르기에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열을 짓고 가는 모습만은 다르다고 할 수 없지 싶었다. 실제로 해변에는 소똥이 여기저기 흐트러져있어서 잘못 밟았다가는 미끄러질 수 있어 조심스럽기도 하였었다. 보르네오의 깊은 정글 속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원시적인 농사 방법에서 아직껏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적당하게 기울어진 경사진 언덕을 골라 우선 톱으로 큰 나무를 쳐낸 후에 불을 질렀고, 타고 나면 뿌리 등을 골라내고 농토를 만들어 농사를 짓는다.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아 동네사람들이 공동으로 작업을 하는데 이것을 말레이어로 ‘따남 바디’라 한다.
저 멀리에서 오늘도 계속 연기가 꾸역꾸역 올라왔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텐데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은 보면 지금도 공공연히 화전을 하고 있는가 보다. 미개척지가 많고 산중 깊숙이 모여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부 당국으로서도 불을 질러 화전을 일구는 기간 중에는 대형 산불로 번지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묵인을 한다고 한다. 산간지대나 고원지역을 불태운 뒤 밭으로 경작하는 농업을 원시적 약탈경제라 하는데,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농경방식으로 화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농법의 화전이 오랫동안 성행하여 왔으며 화전이 제도상 인정을 받은 것은 고려시대이다. 반세기 전만해도 강원도 산악지대에 화전민이 많았으며 산림이 하루아침 불에 타 폐허로 변하여 갔다. 원주민은 커다란 땅덩어리가 있어도 자신들의 소유가 아니며 개발할 만한 능력이나 자본이 없다. 날이 가면 갈수록 외국의 거대한 자본이 몰려들면서 개발하여야 한다는 측과 더 이상 무분별한 개발은 안 된다고 맞서면서 환경을 지키려는 측 사이에서 끊임없는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동남아의 허파라고 불리는 보르네오도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같은 보르네오 지역이라도 문명인들이 살아가는 코타키나발루의 활기찬 모습은 정글 속에서 햇볕을 바라보는 것이나 다름 아니다. 아무리 휴양도시로 발전하고 미래 도시로 발돋움해도 거리에 득실거리는 것은 외래인 뿐이다. 원주민에게는 관심 밖으로 설 자리라고는 없다. 막상 동참하고 싶어도 그만한 돈도 기술도 교육도 능력도 없다. 간격은 자꾸 벌어진다. 바깥이 오히려 불안하다. 하루가 다르다고 할 만큼 주변은 통 크게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원주민들이 살아갈 입지가 자꾸 좁아들어 위협을 느낄 것이다. 부족끼리 모여 외부의 관심이나 간섭에서 벗어나 그냥 옛 모습 그대로 조용히 살고 싶다. 당국은 그들과는 어떤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어 보다 호의적으로 특별히 보호를 한다고 하지만 하나나가 번거롭다. 밖에서 보는 눈길은 여전히 호기심 많은 눈초리에 미개인이고 야만인이고 원시인으로 여길 뿐이다. 이러다가 구경거리가 되고 관광 상품으로 될 날도 머지않았지 싶기도 하다. 원주민은 그래도 자신들의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여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바깥세상과 부딪쳐야 하나도 득이 될 것이 없다. 지구상에 마지막 자연인으로 남기를 바라나 보다.
대접을 융숭하게 받으면 대개는 우쭐해지고 즐겁다. 하지만 까닭 없이 보호를 받거나 일방적인 대접을 받다보면 오히려 떳떳함을 잃어 불안하기도 하고 두려울 수도 있다. 선물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명분 없이 받아서 좋을 리가 없다. 원시인의 처지가 그럴지도 모른다. 대접을 받고 보호를 받는다고 무조건 좋다고는 할 수 없다. 그만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어느 한 사람을 놓고 누구는 막연히 좋은 사람이라고 하고, 누구는 그냥 싫은 사람이라고 한다. 자신의 감정이나 잣대에 맞는 사람이거나 맞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관계가 엇갈린다고도 한다. 일방적이라고는 하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들의 삶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그들을 보호하여야 하는지 보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정면으로 부딪칠 때가 있다. 취향이 같으면 좋을 것이다. 같지 않으면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며 자신의 길을 가면 된다. 구태여 억지로 부딪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좋지 않아도 때로는 맞춰가야 한다. 체면이 있어 남의 눈초리도 의식을 한다. 더 나아가서 인간이라는 양심도 작용할 수 있다.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이라고 일방적으로 적대시하고 경계할 일만은 아니지 싶다. 힘의 논리에 의한 억압이 아니라 합리적인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며 공생할 길을 찾아야 한다. 굳이 원주민이라고 이유 없는 따돌림을 받거나 겉돌기보다 스스럼없이 손을 맞잡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되어야했을지 모른다. 서로 정보를 나누고 공유하며 발전할 수 있다. 끊임없는 다툼의 너와 나라는 극한적 나눔에 따른 차별화로 상실하기보다는 너와 내가 어우러져 하나 되는 공동체로 우리가 될 때 동질감에서 보다 친근감을 갖게 되고 서로 책임의식 같은 것이 울어나기도 한다. 힘을 합쳐 함께 풀어나가는 것이다. 이제는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도움을 받을 일은 받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은 주며 이해관계를 풀어나갈 수도 있다. 우리라는 한울타리가 되어 생떼 쓰는 억지 경계심을 풀면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걸음 떨어져서 모른 척 아닌 척 연기하듯 눈치만 보기보다는 한걸음 다가가서 도울 일은 도우면서 더불어 기뻐하고 아쉬워하며 함께 살아가는 참모습을 그려보게 되기도 한다. 요즈음은 소위 다문화세상으로 다양화되어 가며 세계 곳곳을 이웃처럼 들여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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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보통 외국 여행을 가면 주마간산격으로 훑고 지나오는데, 참 자세히 보시네요. 좋은 자료로 공부하는 기분입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글 쓰는 이는 관찰과 생각이 습관인가 봅니다.^^